처음으로 투명하고 유연한 필름 형태를 실험한 사람은 콜로디온습판의 발명자인 Archer이다. 그는 이미지가 찍힌 콜로디온 층을 플레이트로부터 벗겨내 종이지지체로 옮기는 실험을 했다. 1850년대에 이러한 방법으로 풍경사진을 찍은 사진가가 몇몇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실험에 자극을 받아 종이 네거티브에 대한 실험을 간헐적으로 계속되다가 1887년 코닥(KODAK)의 설립자인 George Eastman이 종이를 대신해서 셀룰로즈 니트레이트 필름을 사용하면서 본격적인 필름 사용의 시대가 전개되었다. 유리판에 비해서 가볍기 때문에 이동이 간편했고 값이 저렴해서 아마추어들에게 환영 받았다.
초기에는 1920년대 35mm 영화 필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라이카(Leica) 카메라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사진보다는 주로 영화에서 필름을 더 많이 사용했다. 이렇게 사용되기 시작한 필름은 석유화학이 발전하면서 지속적으로 변해갔는데, 니트레이트, 디아세테이트, 트리아세테이트, 폴리에스터 순으로 진화해 갔다. 디지털 사진이 나오기 전까지는 사진하면 필름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질만큼 널리 사용되었고, 네거티브와 포지티브 그리고 컬러와 흑백 사진 전 영역에서 사용하고 있다.
필름은 카메라에 장착되어 빛에 직접 반응하는 단계에 사용하는 것으로, 인화물이나 인쇄물에 비해서 정보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고 따라서 정보가치가 매우 높다. 일반적으로 같은 장면의 사진인 경우 필름과 인화물이 공존할 때는 기록학의 영역에서는 필름에 가치를 높게 부여하고, 미술관 등의 영역에서는 인화물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우리나라 사진기록물의 경우 일제강점기는 매우 드물게 필름이 사용되었고, 해방 이후 생산된 것은 대부분이 필름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나 최근 디지털 프로세스가 등장하면서 효용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셀룰로스 니트레이트 필름 (Cellulous Nitrate Film)

미국의 Hannibal Goodwin이 1887년 발명한 것으로 영화를 개척한 뤼미에르 형제나 코닥 등에서 주로 영화용으로 사용했고, 나중에는 사진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주로 감광제는 은염이고 용제는 젤라틴이며 지지체로 이것이 사용되었다. 형태는 롤(Roll)필름, 시트(Sheet)필름 등이 있고 크기는 카메라의 형태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이 필름은 너무 얇아서 3개의 레이어를 지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컬러 필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셀룰로스 니트레이트 필름은 선천적으로 불안정하고 가연성이며, 필름이 분해되면서 나오는 기체 부산물이 다른 사진 재료와 종이기록에 손상을 준다. 다른 재료에 손상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셀룰로스 니트레이트 필름은 다른 재료들과 분리하여 최적의 저장 조건 하에서 보관되어야 한다. 니트레이트 필름은 50ºF(10ºC) 이하, 상대습도는 30%~40% 사이에서 보관한다. 이는 최소한의 조건이며 화학 반응을 멈추게 하고 시간을 더 벌기 위해서는 냉동보존을 하는 것이 좋다. 이런 단점 때문에 1940년대부터는 아세테이트 필름으로 대체되었다. 셀룰로스 니트레이트 필름은 화학적 오염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다른 기록물들과 분리해야 하며 중요한 이미지가 손상되기 전에 인화물이나 디지털로 복제를 해놓는 것을 권장한다.
우리나라 사진기록물 중에는 일제강점기의 후반과 해방 공간 그리고 6.25전쟁 시기 및 195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것들이 있어 기록관의 주의를 요한다. 다음의 <도표>는 이 필름의 마지막 생산 년도에 관한 정보이다.

 

필름의 종류 미국 코닥에서 니트레이트 필름을 생생산된 마지막 연도
X-ray 필름 1933
135사이즈 롤 필름 1938
초상사진과 상업용 시트 필름 1939
항공필름 1942
필름 팩 1949
616, 620, etc 사이즈 롤 필름 1950
프로페셔널 35mm 모션 픽처 필름 1951

 

2) Safety film
셀룰로스 니트레이트 필름이 화학적으로 불안정하고 불에 잘 탄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셀룰로스 아세테이트 필름(Cellulous Acetate Film)과 폴리에스터필름(Polyester Film)을 통칭해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스트만 코닥은 1937년 엑스레이 필름에 처음으로 세이프티 필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51년부터 세이프티 필름은 몇몇 그래픽 아트 필름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타입의 필름을 대체했다.
처음 등장한 세이프티 필름은 1937년부터 1956년까지 사용된 셀룰로스 디아세테이트 필름(Cellulous Di-Acetate Film)이다. 셀룰로스 니트레이트에서 셀룰로스 아세테이트로 젤라틴 네거티브의 지지체 재료를 바꾸면서 제조업자들은 필름의 손실위험과 화재위험을 어느 정도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디아세테이트 네거티브는 젤라틴 유제에 큰 주름과 잔물결 무늬를 생기게 해 이미지에 손상을 입혔고, 유제에 종종 작은 거품이 형성되고 노란 얼룩이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나타났다. 1947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로 코닥은 다른 종류의 세이프티 필름으로 현재까지도 사용되는 트리아세테이트(Celluse Tri-Acetate Film)를 개발했고, 1960년에는 레이어 층이 두꺼운 컬러슬라이드 지지체를 위해 다른 세이프티 필름으로써 폴리에스터 필름을 개발했다. 폴리에스터와 트리아세테이트는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셀룰로스 아세테이트 필름은 유제가 찌그러지고 휘면서 수명에 따라 오그라들고, 분해의 부산물로 아세트산을 방출한다. 아세트산은 식초 냄새가 나기 때문에 이분해 프로세스를 ‘비니거 신드롬’으로 부르기도 한다. 아세트산은 같이 보관된 다른 사진에 손상을 줄 뿐만 아니라 사람을 자극하고 건강에도 해롭다. 셀룰로스 니트레이트 필름처럼 아세테이트 필름도 다른 자료들과 분리해야 하며 중요한 이미지가 손상되기 전에 인화물이나 디지털로 복제를 해놓는 것을 권장한다. 셀룰로스 아세테이트 필름에는 보통 구석에 ‘safety’라고 적혀 있고, 폴리에스테르 필름에는 ‘ester(혹은 코닥명인 Estar)’라고 적혀 있어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