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8월 일본 선수로 출전한 손기정 선수가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비록 일본 선수로 출전했지만 엄연히 한국 사람이고, 또 이민족의 지배 하에서 억압과 비하로 신음하던 우리 민족에게 그의 우승 소식은 억눌려 있던 민족혼을 흔들어 깨우기 충분했다. 당시의 민간지, 조선일보, 동아일보, 조선중앙일보는 손기정 선수의 세계 재패를 연일 대서특필하고 다양한 편집으로 한민족의 분출하는 민족의식에 불을 지르게 되었다. 손기정 선수의 승리를 앞세워 제국을 때려눕히고 독립의지를 달성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 사설을 게재하는 등 일제에 대한 저항이 위험수위에까지 이를 정도로 대담한 논설을 폈으며, 여러 사업을 제기해 민중들 속에 세계 재패 정신을 심으려고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라는 전무후무한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일장기말소사건은 두 신문이 마라톤 경기 후 시상대에 서있는 손기정 선수의 수상장면을 촬영한 사진을 게재하면서 가슴에 선명하게 나타난 일본 국기, 즉 일장기를 지워 신문을 발행해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다. ‘일장기 말소’ 또는 ‘일장기 표식 말소’로 당시에 알려졌던 이 사건은 첫째, 게재된 뉴스 사진이 문제가 되어 최초로 동아일보는 무기 정간 처분을 당했으며, 조선중앙일보는 자진 휴간했다가 나중에는 폐간되고 말았다. 그때까지 사진보도가 문제되어 압수나 차압된 경우는 있었으나, 신문 발행을 정지시킨, 그것도 기한도 정하지 않은 무기정간 처분은 최초이자 가혹한 행정처분이었다. 둘째,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라는 민간지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소속 기자들, 관련부서 기자와 사진기자들이 주도했으며, 셋째, 이 사건으로 해당 신문은 무기정간에 처해졌고, 조선중앙일보는 무기 휴간 뒤에 폐간해야 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넷째, 일장기를 말소하여 신문을 제작하는 데 관련된 기자들은 모두 투옥되어 고문으로 33일간을 지샜으며, 다섯째, 이들 기자들은 일장기 말소가 형사소추를 할 수 없는 사건이어서 재판에 넘겨지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더 가혹하게 그들이 언론기관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영원히 추방했다. 사진기자로 신낙균, 서영호, 백운선, 조선중앙일보의 권태완, 김경석 기자까지 포함해 5-6명이 그러한 처분을 받았다.
일장기말소사건은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부착한 유니폼을 입고 시상대에 서있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이고, 또 이 일장기를 말소한 것은 전적으로 사진기자들에 의해 실현된 사건이었다. 물론 사진에 나타난 일장기를 제거해 손기정을 한국인으로 원상복귀시키려는 최초의 발안자는 운동부 기자였고, 조사부 화백과 사회면 담당기자가 가담하게 되지만 사진에 나타난 일장기를 제거하고 이것으로 동판을 만들어 윤전기에 걸기까지 모든 작업은 전적으로 사진기자들에 의해 추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