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을 가진 기록전문가들의 노력

열정을 가진 기록전문가들의 노력

열정을 가진 기록전문가들의 노력
12/25/2019
/ 이해영

우리나라는 아직 일반인들의 기록 관리에 대한 인식도 부족할뿐더러, 기록관의 서비스도 많이 부족한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록전문가들의 노력도 많이 보인다. 지역기록관이나 박물관, 도서관 등에서 다양한 역사 기록 사진들과 문서들을 활용하는 전시회들이 곳곳에서 열리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사진이나 예술품들을 전시하는 것과 달리, 기록을 활용한 전시는 그 기록의 생성 과정이라든가 배경 정보들이 다양하게 제시되는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저런 곳에서 기록을 활용한 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이용자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들이 반갑다. 이러한 시도들이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몇 년 전 대학기록관 기록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서비스 현황을 조사한 일이 있었다. 조사 전에는 주변에서 과연 기록관에서 서비스들이 이루어지고나 있을지, 그저 기록의 수집과 관리만 이뤄지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걱정들이 많았다. 그러나 살펴보니 서비스를 진행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많은 전문가들이 큰 노력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한 대학기록관은 대학교 앞에 아파트가 생기면서 없어지게 된 동네의 옛 사진들을 수집하여 동네 분들과 함께 사진 전시회를 열기도 하였다고 하고, 또 대학 내에서 신입생들에 대한 필수 세미나 수업 시간에 학과별로 기록관에 대한 안내를 하기도 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기록관리에 관련된 강좌를 캠퍼스에서 진행하기도 했고, 기록을 활용한 다양한 전시회를 여러 번 진행하고 소장 기록에 기반한 출판물을 낸 대학기록관도 있었다. 이런 일들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만남과 노력들이 있었을까 싶다. 참 의미 있는 활동이다. 

최근에는 증평군 기록연구사는 많은 노력을 통해 큰 국가 예산을 따서 단독 기록관을 설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지역의 역사와 지역민들의 사진 등으로 계속 전시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더니 좋은 성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증평군 전체의 다양한 발전상을 VR로 남길 예정이라고도 들었다. 이러한 결실들을 보니, 전문가들의 노력에 따른 성과들이 계속 나올 것 같아 기대가 된다. 

한 연구사가 페이스북에서 토로를 했던 내용이 인상에 남는다. 몇 년간 열심히 기관에서 일해서 인정도 받고 해서 시스템을 구축하는 예산을 받으려니, 미리 말을 좀 하지 그랬냐면서 미루자는 얘길 들어 엄청 섭섭하다는 얘기였다. 우리가 어떤 일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금씩 조금씩 그 중요성에 대해 주변에 얘기하고 낙숫물을 떨어뜨리는 일을 해야 바위가 뚫리는 것처럼 가능한 일이 많은 것 같다. 어떤 일을 한 번에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러 관련된 사람을 만나는 기회를 자주 만들고, 조금씩 그 중요성을 얘기하여 인식을 바꾸어 나가는 방법의 일처리가 필요한 것 같다. 물론 세상엔 너무나 완고해서 생각을 바꾸기가 어려운 사람이 많지만, 꾸준히 다양하게 노력하면 조금씩 변화가 올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일들이 주변에서의 만류나 몰이해를 떨치고 용기를 가지고 진행한 끝에 이루어진다. 기록관에서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도 실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가 주변에 우군을 조금씩 만들어 가면서 기록관리와 서비스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바꿔가는 노력을 하면 언젠가는 좋은 성과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안보이는 곳에서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전문가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이해영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 전문대학원 교수)

인공지능의 활용 전망

인공지능의 활용 전망

인공지능의 활용 전망
11/13/2019
/ 이해영

요즘 인공지능이 큰 화두가 되고 있다. 여러 영역에서 인공지능을 많이 활용하고 있으며, 발전의 속도가 눈부시다. 인공지능에 의한 암 진단, 취향에 맞는 동영상의 추천, 자율주행자동차 등등 다양한 영역에 인공지능이 자리잡아가고 있으며, 실제 활용되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확산되어 이용될 것이다. 

얼마 전 인공지능을 활용한 홈스피커가 독거노인들에게 의미있는 친구 같은 역할을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홀로 사는 노인이 스피커를 사용할 때 “심심해”, “너는 기분이 어떠니” 같은 ‘감성대화’를 사용하는 비중이 전체의 13.5%로 일반인(4.1%)보다 3배 이상 높아, AI스피커가 외로움을 달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연합뉴스, 2019. 7.9). 평균 연령 75세인 독거노인의 서비스 사용 비중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63.6%로 가장 높았고, 감성대화 서비스가 그 다음이고, 날씨, 운세 순으로 많이 활용했다고 한다. 게다가 위급상황에 외치는 소리를 인지해 119에 연결해서 3명의 목숨을 살리기도 했다고 하니 인공지능의 역할이 정말 커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기록관리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필자가 속한 연구그룹이 국가기록원에 제시한 차세대 기록관리 방향에 대한 프로젝트에서도 다양한 활용 방안이 검토되고 제안되었다. 예를 들면 영상 기록과 관련해서는 영상으로부터 인물이나 장소 등의 메타데이터를 자동 추출하여 더 정확한 검색을 도울 수 있으며, 스캔된 문서의 텍스트를 추출하여 원문 검색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고, 유사 이미지 검색 등의 기능으로 영상인식과 검색을 더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하였다. 또 음성 인식 기능으로는 녹음파일에서 스크립트를 쉽게 추출할 수 있을 것이고,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음성 서비스도 쉽게 이뤄질 수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텍스트 기반으로는 기록 내용을 인지하여 자동분류 하는 방안, 기록에 제시되는 인물이나 장소 등의 정보를 외부의 정보자원과 연결하여 이용자가 폭넓은 정보에 접하도록 하는 LOD(Linked Open Data)의 채택, 기록에서 추출된 키워드를 활용해 기록의 공개여부를 판단하여 자동으로 추천하는 기능, 그리고 이용자들의 자유로운 질문에 적절한 응답을 제공하는 챗봇(Chat Bot)의 운용 등이 기록관리에 적용할 만하다고 제시하였다. 

예를 들면 챗봇은, 자주 받는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작성된 FAQ(Frequently Asked Questions)를 대신할 수도 있고, 특히 전화로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는 업무에도 이를 도입해 볼 수 있는데, 전문가가 아니어도 공부를 통해 구현이 가능하다. 석사논문을 위한 연구로 한 학생이 명지대학교 사료실을 대상으로 간단한 챗봇을 구현해보았다. 이용자들의 다양한 질문들을 범주화한 후 홈페이지에서 제공되는 내용들을 기반으로 유형별로 표준 응답을 제공하는 것이었는데, 좀 더 고도화를 하면 실제 활용이 가능할 정도로 개발이 되었다. 

앞으로 많은 직업군들이 인공지능 때문에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반면 인공지능의 개발이나 적용과 관련된 직업들은 수요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을 쉽게 구현하도록 하는 기술들도 많이 개발되고 있으니만큼, 각 영역에서 전문가로 일하는 사람들은 특히 인공지능의 개발과 활용에 관심을 가지고 본인의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기술에 대해 공부를 해보면 좋을 것이다. 세상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고 따라가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평생학습이 의무인 세상을 사느니만큼 공부와 가깝게 지내야 할 것 같다.

 

이해영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 전문대학원 교수)

검색어의 활용

검색어의 활용

검색어의 활용
10/16/2019
/ 이해영

최근 조국 장관 관련된 검색어 랭킹 다툼이 뉴스가 되기도 했고, 얼마 전에는 드라마로도 상위 검색어 다툼이 다뤄지기도 했듯이, 상위에 오른 검색어는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의미가 있다. 검색 사이트에서 상위 랭킹에 오르는 검색어들은 한 때의 트렌드를 보여주기도 하고 어떤 시기의 관심사들을 대변하기도 한다. 구글은 특정 시기에 특정 지역에서 많이 검색된 용어도 보여주고, 특정 용어에 대한 검색의 증가와 감소를 보여주기도 한다. 네이버 검색어 트렌드도 특정 시기 특정 용어의 검색 빈도수를 성별과 연령대별 등으로 보여줌으로써, 다양한 사람들의 관심사를 파악하게 해준다.

검색 포털 뿐 아니라, 한 조직이나 기관의 웹사이트에서도 검색어에 대한 통계는 다양한 역할을 하고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어떤 조직이든 웹사이트를 방문하는 이용자들이 어떤 단어를 입력하여 검색을 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여러 가지 시사점을 제시한다. 즉 검색어 분석을 통해 이용자의 요구를 미리 파악하면 많이 원하는 정보나 상품을 확인하여 더 적극적으로 웹사이트 전면에 눈에 띄게 배치하여 제공할 수 있으며, 로그인한 이용자의 검색어를 개별적으로 분석하면 이용자의 요구가 반영되는 정보를 선제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그럼 기록관리기관에서는 이용자들이 무엇을 가장 궁금해 했을까? 국가기록원과 대통령기록관의 검색 포털에 입력된 검색어를 분석해 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10여 년간의 국가기록원 포털에 많이 입력된 검색어들을 살펴보았더니, 가장 많이 검색된 용어는 토지조사부, 토지대장, 위토대장, 임야조사부, 지적원도 등, 조상 땅 찾기 관련 정보들이었다. 그 외에 박정희, 한국전쟁, 새마을운동, 일제강제연행자명부, 대통령, 노무현, 이승만 등의 용어가 꾸준히 상위 검색어를 차지했다. 대통령기록관에서도 포털 개설 후 대통령연설, 대통령선물, 대통령기록, 대통령임기, 대통령선거, 연설문, 청와대, 박정희, 노무현, 이승만 등이 많이 검색되었다.

이렇게 특정 기관의 검색 사이트에서 상위에 오른 검색어를 분석하면 그 사이트에 방문하는 이용자들의 관심사와 이용 가능성이 높은 기록 등에 대해 확인할 수가 있다. 이를 기반으로 웹사이트에서 눈에 잘 띄는 곳에 이용자들이 많이 검색하는 용어를 주제로 하여, 이를 중심으로 관련 자료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상위 검색어와 관련된 다양한 사진기록이나 문서기록을 이용하여 디지털콘텐츠를 제작하는 것도 좋은 활용법일 것이다. 물론 전시 주제를 선정할 때에도 그 기관 이용자들의 관심사가 높은 용어와 관련된 기록이나 사진자료 등을 중심으로 기획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직 기록관들이나 문화기관의 많은 기록이나 자료는 종이나 실물 형태로 제공되고 있고, 온라인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스캐닝 작업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때에도 우선순위를 이러한 검색어 기반으로 선정하면 좋을 것이다.

많은 기관에서 검색어를 분석하여 이용자들이 원하고 궁금해 하는 내용에 대해 중점적으로 쉽게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을 가지면 좋겠다. 결국 기록관이나 문화자원 기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기관을 찾는 이용자들을 만족시키고, 잠재적인 이용자들의 요구를 선제적으로 확인하여 더 많은 이용자들을 유도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의 중요한 기반의 하나가 검색어 분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해영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 전문대학원 교수)

인증샷 시대

인증샷 시대

인증샷 시대
10/02/2019
/ 박평종

유명 관광지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구글에서 에펠탑 이미지를 검색하면 수백만 장의 사진이 나오는데 뭐 하러 또 찍는단 말인가! 게다가 촬영 포인트도 좋고 근사한 배경의 ‘수려한’ 이미지가 많아 그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니 구태여 민폐 끼쳐가며 여행 시간을 낭비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그들을 이해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찍어 놓은 ‘멋진’ 사진이 아니라 내가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초점이 잘 맞지 않아도 상관없고, 에펠탑이 작게 나오더라도 무방하다.  그 사진을 통해 내가 에펠탑 앞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모든 사진은 그 점을 보증한다. 소위 인증샷이다.

수많은 종류의 인증샷이 있다. 투표 인증샷이나 불매운동 참여 인증샷이 있고, 체중감량 성공 인증샷도 있으며, 심지어 일부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자해 인증샷도 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결혼사진이나 졸업사진도 일종의 인증샷이다. 인증, 어떤 행위를 공적으로 입증한다는 뜻이다. 일종의 증명서라 하겠다. 따라서 인증샷은 증명서 역할을 한다. 이유와 목적을 떠나 사진은 이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리고 사진의 인증력은 롤랑 바르트의 표현을 빌자면 재현력을 능가한다. 사진의 인증력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허구로 간주될 만큼 기이한 장면을 찍은 사진에서조차도 그 확실성을 의심할 수 없다. 바르트는 자신을 촬영한 사진에 대해 언제, 어디서 촬영됐는지 기억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사진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모두가 경험하는 일이다.

디지털 기술의 등장으로 사진의 시대는 저물고 후기 사진, 이른바 포스트 포토그래피의 시대에 진입했다는 주장이 있다. 아날로그 사진이 도큐먼트, 기록, 실재와 같은 개념들에 의지하고 있었다면 디지털 사진은 간단한 조작과 합성 등을 통해 시물라크룸, 가상, 허구와 같은 개념들에 의존하게 됐다는 것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인공지능과 접목한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원본 없는 가상 이미지의 생산을 더욱 탁월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날로그 사진의 ‘탁월함’으로 평가받아 왔던 인증 기능은 디지털 사진에서도 동일하게 발휘되고 있으며, 나아가 그 영역도 넓어지고 있다. 사진의 인증력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물론 사진 못지않게, 사진보다 뛰어나게 인증 기능이 탁월한 수단도 있다. 공항 입국장에서 활용되는 지문 인식이 그 예다. 실상 지문은 여권에 붙어 있는 사진보다 인증력이 뛰어나다. 홍체인식이나 음성인식도 그렇다. 그런데 모든 인증 수단은 완벽하지 않다. 위변조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비슷한’ 개별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인증의 어려움은 바로 이 ‘유사성’에서 온다. 여러 가지 인증 수단을 함께 사용하는 까닭은 이 유사성으로부터 오차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사실 사진은 개별자의 식별을 목적으로 한 인증, 말하자면 내가 나임을 확인하기 위한 인증 수단으로는 부적합하다. 나와 닮은 사람이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진은 내가 그 곳에 있었음을 인증하는 수단으로는 탁월하다. 사진 속의 인물이 나 자신임이 명백할 경우에만 그렇다. 그런 점에서 SNS에 범람하는 인증샷은 신원 확인이 전제로 깔려있다. 유명 맛집에 갔다 왔다는 인증샷을 보고 사진 속 인물이 바로 그 사람임을 ‘이미’ 알지 못한다면 그 사진은 인증샷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증과 식별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제 사진은 더 이상 식별의 수단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인증의 수단으로만 활용된다. 그리고 사진의 인증력은 법적 실효성도 갖지 못한다. 다만 네트워크상에서 정보의 공유나 ‘놀이’의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다. 인증샷은 이제 그 정도의 의미밖에는 갖지 못한다. 하지만 그 가치는 확장성이 크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

 

 

박주석의 사진살롱 21 – 개화기의 사진 관련 서적

박주석의 사진살롱 21 – 개화기의 사진 관련 서적

박주석의 사진살롱 21 – 개화기의 사진 관련 서적
08/21/2019
/ 박주석

박물신편 초집 광론 편 중에서,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조선말인 1860~80년대 개화선각자들의 필독서로 꼽혔던 『박물신편(博物新編)』 중 「광론(光論)」 편에 실린 도판 중 하나입니다. 각종 광학의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일러스트 모음 정도 됩니다. 위에서 두 번째 도판은 <외경투凹경도(外景透凹鏡圖)>라는 제목의 그림입니다. 암(暗)상자에 오목렌즈를 붙여 외부의 사물이 비례에 맞추어 상자 내부 반대쪽에 거꾸로 비치는 카메라옵스쿠라의 원리가 쉽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맨 아래 오른쪽 도판은 <외성촬입성내경도(外城撮入城內景圖)>라는 제목으로 서양 사람들이 그림 그리는 방법으로 자주 사용했던 ‘텐트형 카메라옵스쿠라’의 원리를 나타낸 것입니다. 그 외에도 원근법의 원리, 렌즈의 작용 등을 설명하는 도판들이 있습니다.

『박물신편(博物新編)』은 조선말 역관이자 개화 사상가였던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 1831~ 1879) 선생이 역관(譯官)으로 중국을 오가면서 1853년부터 58년 사이 국내에 들여온 책입니다. 원래 영국에서 발행한 과학 해설서인데, 영국인 선교의사인 홉슨(B. Hobson, 중국명 合信)이 1854년 중국의 상하이(上海)에서 한문으로 출간한 책입니다. 오경석 선생은 당시 『해국도지(海國圖志)』, 『영환지략(瀛環志略)』 등 다른 한문 과학서들과 함께 이 책을 들여왔고, 이후 조선 사대부와 중인 계급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개화사상의 기초 형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은 광학, 물리학, 화학, 기상학, 식물학 등에 대한 기초 과학서였는데, 개화파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1880년대부터는 그들에게 거의 필독서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박물신편』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여러 가지 과학 서적이 소개되었고, 외국 문물이 소개되어 개화의 파고를 더욱 높였습니다. 지리학 분야의 『지구도경(地球圖經)』, 국제법의 표준서로 세계 각국에서 이용된 『만국공법(萬國公法)』,종교⦁정치⦁경제 관계 기사를 발췌한 『공보초략(公報抄略)』 등은 개화파 인사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었습니다. 그 중 하나인 『격물입문(格物入門)』이란 책은 일종의 물리학 교과서로 여기에도 역시 사진에 필요한 광학의 원리를 설명한 부분이 실려 있었습니다. 

‘격물(格物)’이란 말은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격물치지 성의정심 수신제가 치국평천하(格物致知 誠意正心 修身齊家 治國平天下)’의 첫 번째 학문의 도리입니다. ‘이 세상 사물의 이치를 열심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넓게 보면 자연과학 좁게 보면 물리학을 먼저 공부해서 ‘지식을 축적(致知)’하라는 의미입니다. 서양에서 시작한 근대사회(modern society)의 근간이 ‘세상에 대한 지식의 축적이고 이를 계몽이란 도구를 통해 확산’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근대를 향한 개화 선각자들의 필독서로 『박물신편』과 『격물입문』이 꼽힌 것은 제대로 가는 방법이었습니다. 원근법과 카메라의 이미지 형성 원리 그리고 사진술은 바로 근대의 상징이자 반영인 사실은 주지하는 바입니다.   

한국에 사진을 처음 도입한 선각자 중 한 분인 지운영 선생 – ‘지운영 외전’을 통해 설명 드린 바 있습니다 -의 친동생이 지석영(池錫永, 1855~1935) 선생입니다. 우리나라에 종두법(種痘法)을 처음 들여와서 천연두 퇴치에 공을 세운 분으로 유명합니다. 형제 두 분 모두 개화사상가의 길을 걸었고, 근대 문물 도입에 공을 세웠습니다. 지석영 선생이 개항 이후인 1882년 즉 고종 19년 조선의 개화에 필요한 서적을 상소한 일이 있었습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고종 19년 8월 23일조』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선생은 고종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개화를 위해 필요한 시무를 위해 여러 사람들이 꼭 열람해야 할 책으로 『박물신편(博物新編)』, 『만국공법(萬國公法)』, 『조선책략(朝鮮策略)』, 『보법전기(普法戰記)』, 『격물입문(格物入門)』, 『격치휘편(格致彙編)』 등 외국 책과 박영교의 『지구도경(地球圖經)』, 김옥균의 『기화근사(箕和近事)』, 안종수의 『농정신편(農政新編)』, 김경수의 『공보초략(公報抄略)』 등 국내 서적을 열거했으며, 각국의 수차, 농기구, 직조기, 화륜기, 무기 등을 매입하고, 각 고을의 유생과 관리들을 선발해 이를 연구하도록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박물신편』이나 『격물입문』이 소개되기 이전에도 조선에는 사진술까지는 가지 않았더라도 카메라옵스쿠라의 원리가 이미 소개되어 있었고, 실제 카메라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복암(茯菴) 이기양(李基讓) 묘지명(墓誌銘)」에 그 과정을 상술한 바 있습니다. 다산의 시문집인 『여유당전서』에 그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복암이 사망한 때가 1802년이니 그 무렵 쓴 글입니다. 다산 선생은 여기에서 카메라를 ‘칠실파려안(漆室玻瓈眼)’이라고 칭했습니다. ‘암실에 유리 눈이 달린 기계’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사용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복암이 일찍이 선중(先仲) 씨의 집에서 칠실파려안을 설치하고 거기에 비친 거꾸로 된 그림자를 취하여 화상을 그리게 했다. 밖에 앉은 사람이 털끝 하나만 움직여도 상을 그릴 수 없는데 공은 해를 향해 뜰에 설치된 의자에 앉아 그 의연함이 흙으로 만든 사람처럼 이윽토록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 또한 다른 사람은 능히 하기 어려운 일이다.”  

Athanasius Kircher, 대형 이동용 카메라옵스쿠라, 1646. ⓒ Gernsheim Collection.

위 도판은 렌즈가 장착되기 전 카메라옵스쿠라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장면을 복암 선생의 경험에 대입시켜 봅니다. 멀리 보이는 산과 들 대신 복암이 앉아있고, 화가가 카메라 안에 들어가 반대 벽에 거꾸로 비치는 모습을 따라 그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다산 선생이 묘사한 ‘칠실파려안’ 이용 방법을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움직이지 않고 계속 앉아있어야 제대로 그릴 수 있는데, 복암 이기양 선생은 요즘 사람들과는 달리 참을성이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다산 선생은 이 참을성을 의연한 인품으로 보았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과『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를 출간한 이규경 선생 등이 연구 대상으로 삼았던 ‘칠실파려안’은 이들 이후에도 관련 연구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실학과 개화의 시대에 걸쳐서 활동한 최한기(崔漢綺, 1803~1879) 선생이 그 주인공으로, 기의 체(體)에 대한 본질이나 성질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기측체의(氣測體義)Ⅰ」 중 「신기통(神氣通) 제2권 목통(目通)」 편 ‘눈동자는 내외를 출입하는 관문이다(眸爲內外咽喉)’에서 눈에 대한 과학, 철학적 해석을 칠실파려안의 원리와의 인과 관계를 밝히는 연구를 남겼습니다. 1842년의 일입니다. 그 설명을 소개합니다. <민족문화추진회의>의 번역본에서 인용합니다.   

“한 방안에 틈을 남기지 않고 장막을 빙 둘러치고, 오직 창에 작은 구멍 하나를 뚫고 유리 눈을 붙이면, 밖으로부터 나타나는 초목(草木)과 조수(鳥獸)가 모두 방안에 비치는데, 그 지나가는 햇무리와 그림자에 실내의 기가 온통 움직인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눈 안에 나타나는 빛은 능히 한 몸의 신기로 하여금 따라 응하게 하여 모두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간혹 신기가, 심상히 여겨 조금 응하거나 전혀 망매(罔眛)하여 응하지 않기도 하는 것은 나타난 빛에 대한 경험 때문이다.”

사진이 도입되기 전까지 조선에서 ‘칠실파려안’은 자연 풍경이나 초상을 그리는 도구로 활용되었고, 더욱 발전되어 학문적 사실 고증을 위해 실험도구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최한기 선생은 그 대표적인 학자였으며, 사물의 현상을 연구한 그의 책 『심기도설(心器圖說)』에 그 증거가 남아 있습니다. 카메라옵스쿠라는 물상(物像)을 재현하는 방법으로 조선말까지 이어왔습니다. 『박물신편』에 실린 카메라의 광학적 원리가 소개되기 전 이미 조선에서는 카메라를 실생활에서 이용하고 그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본격적인 사진 도입 이전 관련 지식을 담은 서적들은 이외에도 몇 권 더 있습니다. 한국에서 사진이론 책의 역사는 사진의 역사보다 더 깁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