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석의 사진과 매휘립

오경석의 사진과 매휘립

오경석의 사진과 매휘립
07/25/2019
/ salon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 1831~1879) :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원거(元秬), 호는 역매(亦梅)·진재(鎭齋)·천죽재(天竹齋) 등을 썼고, 서울 출신이다. 아버지는 당상역관이며 지중추부사를 지낸 오응현(吳膺賢)이고, 아들은 3·1운동 33인의 한 사람인 오세창(吳世昌)이다. 조선 말기의 개화사상의 비조라 할 수 있다. 이상적(李尙迪)의 문하에서 한어(漢語)와 서화를 공부했고, 가학(家學)으로 박제가(朴齊家)의 실학을 공부했다. 1846년(헌종12) 역과(譯科)에 합격해 역관으로 활동했고, 1853년(철종4) 4월 북경 행 사신의 역관으로 청나라를 방문한 이래 13차례나 역관으로 중국을 내왕하면서 신지식을 습득하고 전파해서 개화사상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1869년에는 통정대부, 1873년에는 가선대부, 1875년에는 자헌대부, 1877년에는 숭정대부를 거쳐 숭록대부의 직함을 받았다.

오경석에 관한 위 내용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나와 있는 개화사상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낸 역사학자 신용하 교수가 집필한 글에서 발췌했습니다.

1. William F. Mayers, 오경석초상,1872, 베이징 영국공사관

1872년 북경에서 찍은 초상사진이 있습니다. 1863년 이조판서였던 이의익(李宜翼)을 정사(正使)로 하는 삼절년공행(三節年貢行) 연행사절단이 북경에 가서 찍은 사진들이 발견되기 전까지 한국 사람이 찍힌 최초의 것으로 알려져 있던 사진입니다. 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위에서 소개한 조선말 역관 출신의 개화사상가 오경석입니다. 아들이 한국서화 역사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의 저자인 오세창입니다. 그래서인지 비록 복사본일지라도 부친의 사진을 잘 건사하고 발문까지 붙여 가족의 유산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덕분에 오경석의 사진은 명확한 기록에 따른 우리나라 최초의 초상사진으로 오랫동안 공인받아 왔습니다.

사진은 대지에 붙어 있고, 양쪽에는 오세창이 쓴 사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사진 오른쪽에는 先附君 四十二歲, 高宗九年 壬申 寫眞, 世昌記(선부군 사십이세, 고종구년 임신 사진, 세창기)라고 적었고 밑에 낙관을 찍었으며, 사진 왼쪽에는 北京 法國 公使館 參贊官 梅輝立 撮影, 不肖 在東京 複寫本(북경 법국 공사관 참찬관 매휘립 촬영, 불초 재 동경 복사본)이라고 썼습니다. 돌아가신 부친이 42세 때인 고종 9년 임신년 즉 1872년에 찍은 사진으로 내용은 오세창 자신이 쓴 글이며, 북경의 프랑스(法國) 공사관 참찬관인 매휘립이 촬영했고 자신이 동경에 있을 때 복사한 복사본이라는 내용입니다. 오세창은 부친의 사진을 일본에 갈 때 다른 물건과 함께 가져갔으나 불행하게도 원래의 사진은 손실되었고, 다행히 일본 동경(東京)에서 복사한 복사본이 있어 남겼다고 증언했습니다.

오경석이 사진을 찍은 경위는 이렇습니다. 1872년 조선 조정에서는 이전 해인 1871년에 일어난 신미양요의 전후 문제 처리와 관련하여 박규수(朴珪壽)를 정사로 한 사절단을 청나라에 파견했습니다. 오경석은 이 사절단의 수석 역관으로 사행을 했습니다. 8대에 걸쳐 20여명 이상의 역관을 배출한 명문가 출신인 오경석은 1853년 처음 역관으로 사행에 참여한 이래 1874년까지 20여 년 동안 무려 13번에 걸쳐 중국에 다녀온 베테랑 역관이었습니다. 정사인 박규수의 귀국 보고에도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이들은 북경에 체류하는 동안 프러시아와 프랑스와의 전쟁을 둘러싼 유럽의 정세, 중국내의 유럽과 미국인 동향에 대해 상세한 정보 등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당연히 수석역관인 오경석이 서양 공사관원들을 비롯한 외국인들과의 접촉을 도맡았을 것입니다. 매휘립(梅輝立)이란 주중 서양 공사관의 참찬관은 이런 과정에서 만났고, 그의 카메라 앞에서 사진도 찍게 되었습니다.

한국사진의 역사를 연구하고 집필하는 과정에서 오세창과 같은 한국서화사의 거두가 친히 남긴 사진과 기록은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습니다. 대부분의 권위 있다고 하는 백과사전이나 오경석 연구서 등에서도 모두 ‘북경에서 프랑스 공사관 참찬관 매휘립이 찍은 오경석의 사진’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오경석의 개화사상과 활동에 관한 연구서를 집필한 신용하 교수 또한 『한국근대사상사연구(韓國近代社會思想史硏究)』에서 이 기록을 그대로 원용하여 한국 최초의 사진으로 기술했습니다. 촬영 시기, 장소, 촬영자, 원본 유무, 복사본의 존재 등 역사적 사실을 입증할 사진에 관한 기술 항목이 이렇게 완전히 기록되어 있는 19세기 사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만 한국사진사 연구의 과정에서 남은 문제는 사진을 찍은 사람으로 나와 있는 매휘립이 과연 누구이고, 그가 찍은 다른 조선인의 사진은 더 없는지 여부를 아는 일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은 매휘립이 당시 북경의 법국 즉 프랑스 공사관의 참찬관이었다는 오세창의 기술을 근거로 프랑스의 정부문서, 외교문서, 프랑스사진의 역사서, 외교사 등에 그런 인물이 있는지를 찾는 일은 오랫동안 연구자들의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중국 베이징의 <중국국가도서관>에 소장된 <중국사회과학출판사>가 간행한 『近代來華 外國人 人名辭典』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근대 시기 중국에 왔던 외국인들의 명단과 면면을 조사 연구한 사전입니다. 여기에서 의외로 매휘립이란 인물의 항목을 발견했고, 내용은 중국명 매휘립은 본명이 Mayers, William Frederick(1831~1878)로 청국 주재 영국 공사관의 참찬관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프랑스 공사관의 참참관이 아니라 영국 외교관이었던 것입니다. 오세창에게 영정으로 사진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정보가 잘못 전해졌을 것입니다.

사전에 따르면, 매휘립은 호주 즉 오스트레일리아 출생으로 아버지가 영국의 호주총독 비서였던 인연으로 12세에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귀화했고 공부했으며, 미국으로 건너가 매스컴 분야에서 일하다가 1859년 중국에 왔으며, 1860년 베이징 주재 영국공사관에 특채되어 일한 외교관이었습니다. 영국의 중국 전문가로 『Introduction of Cotton into China, 1868』, 『Chinese Reader’s Manual, 1874』, 『The Chinese Government: A Manual of Chinese Titles, Categorically Arranged and Explained, 1878』, 『Treaties between the Empire of China and Foreign Powers,1877』 등 중국 관련 연구서를 많이 집필한 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아시아에 체류하던 대부분의 서양 외교관들은 사진술을 배우고 카메라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현지의 모습을 찍어 본국에 보고하던 일종의 스파이들이었습니다. 구한말 우리나라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 대부분도 이들 외교관들이 찍어 본국에 보낸 기록물 덩어리에서 나옵니다. 매휘립의 사진 활동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고, 오경석의 사진은 매휘립의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매휘립은 1878년 타계할 때까지 영국에 돌아가지 않고 중국에서 머물렀습니다. 따라서 영국에 그의 흔적이 남아있을 확률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외국인으로 지냈기에 중국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다른 사진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 

시청각 기록의 정보로서의 가치

시청각 기록의 정보로서의 가치

시청각 기록의 정보로서의 가치
03/06/2019
/ 이해영

공공기관에서는 주로 공문서류만 기록으로 정리하고 관리하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사실 사진이나 동영상 등 시청각 자료를 꼭 남기도록 하는 조건이 있다. 즉 예를 들면 공공기록물법령에서는 시청각기록물 생산을 꼭 하도록 규정하는 사항으로, 대통령ㆍ국무총리 및 주요 직위자의 업무 관련 활동과 인물사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행사, 대규모 공사 등으로 본래의 모습을 찾기 어렵게 되는 사항, 철거 등으로 사라지나 사료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나 구조물이 시청각기록물로 남기게 되어 있다. 또, 다수 국민의 관심 사항이 되는 보존이 필요한 주요 사건, 사고, 증명적 가치가 높아 시청각기록물로 보존할 필요가 있는 현장 또는 형상, 국내 최초의 출현물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은 사항 등을 규정하고 있다.

특별히 동영상기록을 남기도록 하고 있는 사안도 있는데, 대통령 취임식, 「국가장법」에 따른 장의행사(葬儀行事)와 국가적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인정되어 특별법으로 정한 국제행사 또는 체육행사, 다수의 외국 국가원수 또는 행정수반이 참석하는 국제회의, 공공기관의 장과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의 장이 협의하여 정한 대규모 사업ㆍ공사 등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많은 이들의 인식은 이렇게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기록을 남기고 보존하는 것이 먼 훗날의 누군가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서나 사진이나 동영상 등으로 무엇인가를 남기는 것은 역사적인 가치나 문화적인 가치만을 위해서는 아니다. 최근 기록학쪽에서 나온 세계 표준에서는 정보 자산으로서의 기록의 가치를 얘기한다. 이는 사진이나 동영상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서 남기는 것만이 아니라, 이들이 정보로서 큰 가치를 갖고 있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잘 이용하도록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의 사진들이 실제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잘 활용되도록 고민하고 방법을 고안해 내어야 하는 것이다. 이용자들이 핸드폰으로 찍어 보내는 동영상이 실제 뉴스에 큰 자료 화면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된다. 어떤 사진이나 동영상 속에 제시된 내용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쉽게 찾아지도록 해줄지, 어떻게 길고 짧은 동영상 속의 정보가 바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쉽고 빠르게 전달되도록 해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요즘은 유행처럼 구술자료 수집도 많이 한다. 지역 주민의 기억들, 원로 전문가나 정치가, 학자나 기억들이 구술자료로 수집되고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렇게 수집된 동영상이나 구술자료 등이 녹취나 내용 소개가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예산도 부족하다 보니, 그냥 동영상 자체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렵게 확보한 시청각 자료들에 꼭 필요한 정보가 있어도 필요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활용이 쉽지 않다.

최근 도입되고 있는 인공지능의 중요한 요소에 speech to text 기능도 빠른 발전을 하고 있다. 이를 잘 적용하면, 자동으로 많은 부분 녹취가 가능하여 활용되기에 좋을 것이다. 또한 동영상의 장면들(scene)을 분해하여 그 안에 보이는 객체가 무엇인지 도출하여 주제어로 제공하는 기술도 많이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을 함께 노력해서 잘 발전시키고 접목하여 사진이나 동영상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장면 단위나 프레임 단위로 제공해주는 것도 활용되면 좋겠다.

요즘은 유튜브 등 동영상이 큰 인기가 있고, 많은 이들이 텍스트보다 동영상을 통해 배우고 익히고 즐기고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사진과 동영상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들의 내용이 더 잘 검색되고 활용되고 공유되면 더 큰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이해영  :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 전문대학원 교수

개인 기록의 보존

개인 기록의 보존

개인 기록의 보존
02/06/2019
/ 이해영

우리에게 남아 있는 기록들은 많은 부분이 왕의 통치 기록들이거나 국정 관련된 기록들이다. 일반인들의 기록은 오래 보존되도록 남아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래서 가끔 어디에선가 나타나는 일반인들의 기록은 귀한 가치를 갖는다.

몇 년 전 읽었던 책 하나가 무척 인상 깊었는데, ‘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 무관 노상추의 일기와 조선후기의 삶’이라는 책이었다. 노상추라는 사람이 아버지로부터 노비 등 재산을 물려받은 시점부터 죽기 전까지 기록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처음엔 메모로 시작해서 일기가 된 내용에는, 과거에 붙었지만 벼슬자리를 못 얻고 기다리던 날들, 어렵게 조부 덕에 얻었던 먼 곳의 관직, 처음 부임했을 때에는 기생 애인들을 둔 벼슬아치에 대해 흉을 보았지만 결국 본인도 정을 주고 받았던 여인이 생겨서 관직에서 떠나면서 아쉬운 이별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 결혼하고 재혼한 부인들과 아이들의 죽음을 겪은 회한 등, 그 시대 양반의 삶이 고스란히 남았다. 이렇게 종이에 남은 기록들은 몇 백 년 동안 남을 수 있어 우리에게 그 시대상을 전달하지만, 전자매체에 남은 기록들은 그만큼 남기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필자가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2년간 일했던 직장에서는 모두 매킨토시를 사용하였다. 매킨토시를 이용해서 DB를 설계하고, 기록의 분류체계를 만들고, 색인어를 부여하여 입력하고, 입력과 사용을 위해 실무자 매뉴얼과 이용자 매뉴얼도 만들었다. 그리고 직장을 떠나면서 내가 만들었던 분류체계와 매뉴얼 등의 복사본을 3.5인치 플라피 디스크에 담아 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25년이 흘렀다. 내가 만든 자료는 어디서 어떻게 열어볼 수 있을까? 누가 매킨토시 3.5인치 플라피 디스크에 담긴 내용을 읽을 수 있는 오래된 컴퓨터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그 당시 사용했던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어 이에 담긴 문서를 열어볼 수 있을까? 설상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25년된 디스켓에 정보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우리가 개인적으로 남기는 많은 사진들이나 기록들은 프로그램의 업그레이드가 제대로 제시간에 되지 않으면 더 이상 읽을 수 없게 되거나 소멸되어질 것이다. 오래전 남긴 기록들이 몇 백 년 이상의 생명을 유지하기란 쉽잖은 일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정보의 홍수라는 얘기가 부족할 정도로 정보도 넘쳐나고, 개개인들의 컴퓨터나 노트북 등에 저장된 사진이나 글들, 이용자들이 만들어가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옛날보다 개인의 삶의 모습들은 다양한 전자 매체와 사이트들에 많이 담겨있다. 그런데, 이러한 디지털 공간에 자리잡은 우리의 기록들이 얼마나 오래 갈수 있을까? 몇 년 전 한 때는 커뮤니티 수가 백만에 달하던 프리챌이 지지부진하다가 서비스를 끝내게 되면서, 남아있던 이용자들이 게시판에 남은 기록의 보존이나 이관에 어려움을 겪었던 사례도 있었다. SNS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가 몇 백 년 이상 모든 사람들의 기록을 유지한다는 보장도 없고, 개인들이 저장하고 있는 기록들은 더욱 더 가독성 있게 오래 보존할 수 있기가 어렵다.

오래 보존되어 남아있는 기록들은 전쟁과 화마를 거치면서 생명력을 유지해온 것들이다. 네 곳의 서고에 있었던 조선왕조실록들도 대부분 불타서 한 곳의 실록만 온전히 남았다가, 그 원본과 복사본들이 지금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일반인이 남긴 기록은 그래서 이런 오랜 세월을 거치고 살아남기 힘든데, 앞에서 예를 든 노상추의 일기는 그래서 특별한 것이다.

요즘 일상아카이브가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 일반인들의 기록, 마을의 기록 등을 남기자는 것이다. 그렇게 남긴 기록들이 어떻게 몇 백 년 후에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요즘 시대를 디지털 암흑의 시대라고 한다. 실제 디지털로 남긴 기록은 종이보다 훨씬 더 신경을 쓰고 업그레이드를 해주어야만 생명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국가기록원도 그런 기록을 남기기 위해 보존 기록을 선별하고 오래 보존하려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 그들은 살아남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개인 기록들은 어떻게 될까? 기록을 남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이 기록들이 어떻게 남도록 할지, 그리고 이러한 기록들이 도움이 될 사람들에게 어떻게 검색되고 확인을 할 수 있도록 할지, 오랜 시간의 관심과 많은 노력들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많은 이들의 조상이 될 ‘우리’들의 기록과 사진들을 남기고 활용하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기록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책무이다.

 

* 이해영  (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 전문대학원 교수)

이용자의 마음을 훔쳐라

이용자의 마음을 훔쳐라

이용자의 마음을 훔쳐라
12/12/2018
/ 이해영

우리나라의 도서관, 기록관, 문화자원 기관 등은 아직도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거니와, 이용자에 대한 서비스 마인드가 많이 부족하다. 박물관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기록관 등은 훗날의 이용자들을 위한 보존을 중요시하고, 현재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 방문하는 이용자가 중요하고 그들에 대한 서비스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경험했던 이용자들에 대한 서비스는 참 감동적이었다.

벌써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보스톤에서 살 때, Museum of Fine Arts에서 진행하는 어린이를 위한 박물관 교육 프로그램에 몇 주 참여를 했는데, 쉽게 설명하는 좋은 내용에 감탄하며, 나도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인상에 남는 한 가지는 이집트 조각은 남자들이 서있는 모양은 꼭 왼쪽 발을 앞으로 내밀고 있고, 아이들이 같이 있다면 무릎 사이즈 정도로 작게 만드는데, 이는 남자들이 힘이 강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어떤 날은 인상파와 고전파 그림을 비교해서 보여주며 설명하는 등, 다양한 주제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었고, 그러한 다양한 이용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었다.

또 감동적인 것은 도서관이었다. 들어가면 사서들이 무엇이든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었고, 데스크에 가까이 다가가거나 조금이라도 헤매는 듯이 보이면 단박에 달려와서 May I help you?나 How can I help you?를 외치고 바로 도움을 주었다. 조금이라도 뭘 찾고 있으면 바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보는 게 참 신기할 정도였다. 간호사였던 지인은 한국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미국 병원에서 근무를 했는데, ‘교과서에서 들었던 환자에 대한 지극 서비스를 이곳은 정말 그대로 하더군요. 교과서에서만 그렇게 하라는 것인 줄 알았는데..’ 하고 얘기를 했다.

어쨌든 한국에서 겪어보지 못했던 경험들이었는데, 그렇게 몇 년을 지나고 한국에 돌아오니 우리나라의 고객 서비스도 참 많이 좋아져있었다. 외려 백화점이나 큰 마트 등은 몇 년 전에 다시 가 본 미국보다 우리나라가 더 서비스가 좋아지고 친절해졌다. 그렇게 많은 시민들이 다양한 곳에서 경험하는 좋은 서비스를 우리나라 문화자원 기관이나 기록관, 도서관 등에서도 제공할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 직접 방문을 하거나 관련 회의에 가보면 여전히 많은 곳에서 이용자들에 대한 서비스 마인드가 부족하다.

대면 서비스도 물론 요청을 해야 마지못해 이뤄지는 곳이 많을뿐더러, 이용자들이 많이 활용하는 웹에서도 이용자들이 스스로 자료나 사진 등을 어떻게 검색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웹의 사용성에 대한 좋은 책 하나는 제목이 ‘Don’t make me think’이다.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이용자들이 바로 직관적으로 웹에서 무엇이든 찾아볼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도서관 목록처럼 사진이나 기록을 찾을 수 있도록 더 많은 내용으로 채워져서 이용자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메타데이터는 내용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사진이나 동영상, 스캔된 자료 등은 검색을 잘 하기 위해서는 알찬 내용으로 채워져야 이용자들이 검색을 쉽게 할 수 있는데, 사진의 제목조차 img_05 식으로 엉망인 곳도 많다. 이용자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이다. 물론 예산 문제도 늘 있고, 더 시급한 업무용 시스템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일도 많다.

이용자들을 위해 좋은 전시나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기관의 자료들을 이용해 콘텐츠를 만들어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이렇게 만든 내용이나 자료들은 찾기 쉽게 메타데이터의 내용을 정확한 내용을 채우되, 다른 기관들과의 공유나 통합 검색도 고려해서 표준 포맷으로 만들면 좋겠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전시도 사진과 패널로만 덜렁 채우지 말고, 설명이 많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들을 잘 검색하게 해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멋지게 만들어 잘 찾아볼 수 있게 해주면 더 좋지 않겠는가. 학생들에게 늘 얘기한다. 어떤 일을 하다 결정을 내리기 어려우면 내가 이용자라면 무엇을 바랄까, 어떻게 해주기를 바랄까를 생각하고 판단하면 제대로 된 길이 보일 것이라고.. 이용자의 마음을 살 다양한 방법들을 기록관이나 문화자원기관에서 더 많이 고민하고 제공하면 좋겠다. 결국은 만족하는 이용자들이 존재해야 기관의 존재가치가 더 올라감을 기관들이 많이 인식하면 좋겠다.

 

* 이해영  :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 전문대학원 교수

사진기록의 가치와 기술의 발전

사진기록의 가치와 기술의 발전

사진기록의 가치와 기술의 발전
09/11/2018
/ 이해영

사진이 기록으로서 우리 사회에 주는 가치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만일 신라, 고구려, 백제, 또는 고조선 시대의 사진이 남아 있다고 하면, 역사가 얼마나 더 풍부하게 살아있을 수 있을까 상상해보면 그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오래전에 남겨진 사진들이 우리에게 주는 정보와 감동은 매우 크다.

그러나 사진은 그 자체로서 정보를 담고는 있으나, 사진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면 사진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진의 정보를 담는 메타데이터를 잘 남기고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사진기록과 관련된 정보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제시되었다. 예를 들면 미국 국가기록관리청 NARA(The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에서는 그들이 가진 사진 기록을 웹에 올리고 이용자들이 그 사진에 대한 정보를 남기도록 하여 성공적으로 사진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기도 하였다. 또는 사진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이용자들이 바로잡기도 하였다. 이용자들이 사진을 올려 공유하는 Flicker 사이트는 기록에 태그 정보를 달도록 하여, 이용자들이 기록에 대한 간략한 주제나 정보를 주도록 하였고, 그에 의해 한 주제에 대한 사진들을 모아서 볼 수 있도록 하는 폭소노미(falksonoty)라는 기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즉 이용자들에 의한 분류가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Global Memory Net이라는 사이트는 2005년 프로젝트를 통하여 유사한 사진을 사진으로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을 도입하였다. 즉 백자에 대한 사진을 찾아서 유사한 이미지를 찾아달라고 하면 다양한 백자를 검색하여 결과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기능으로 사람들은 사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검색할 수 있으나, 여전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국 사진기록을 관리하는 전문가들이 기록에 메타데이터를 입력하는 방안이 가장 효율적인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최근에 구글 등 여러 기관은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사진 또는 동영상에 나오는 이미지를 학습한 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제시된 이미지가 무엇인지 텍스트로 제공하도록 하는 연구들을 진행하였다. 많은 이미지에 대해 상당히 높은 확률로 정보를 맞게 제시하고 있어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되고 있다. 예를 들면 김대중 대통령의 사진을 학습하여, 사진 속에 나오는 인물 중에 김대중 대통령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 최근에는 구글 포토나 네이버 클라우드에서 개인이 올린 사진들에 위치 정보 등을 활용하여 사진이 찍힌 도시명 등의 정보도 제공해준다. 개인이 특정 장소에 다녀온 시간과 장소가 어디였던가에 대해 잊어버리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이 사진 관리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술의 발전은 사진을 정보로 활용할 수 있는 지평을 확대해 가도록 하고 있다. 오래된 사진 속의 인물이나 사건에 메타데이터를 입력해놓지 않아도 인공지능이 척척 알아내는 세상은 생각만 해도 참으로 편리하고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래된 사진 속의 장소가 어디인지,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기가 쉬워지면 사진을 통해 더 많은 증거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시대의 역사를 유추해내기도 쉬워질 것이다. 이로써 사진의 가치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 이해영  :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 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