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미술제도 및 장르의 이해

미술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미술제도 및 장르의 이해

미술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미술제도 및 장르의 이해
02/27/2020
/ artachives1

미술 관련 기록물의 수집, 관리, 활용 등 아카이브의 업무 프로세스 전반을 계획하려면 가장 먼저 선결되어야할 절차가 바로 미술기록물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장소와 행위를 정확하게 아는 일이다. 앞서 말 한대로 아카이브는 일종의 ‘기록물 덩어리’이기 때문에 기록물의 수집이 전제되어야 하며, 수집을 위해서는 기록물이 생산되고 축적되어 있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여러 제도와 장르를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각각의 미술 관련 기관들이 갖고 있는 기록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fonds’으로 취급하는 것이 기록학의 원칙에 부합한다. 문화적 양상으로서 미술의 제도를 분석해본다.

① 전시회(Art Exhibition)

전시 또는 전람회는 미술의 생산물인 작품이 작가 개인을 떠나 소비자 또는 향유자와 만나는 최초의 접점이라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1차적 제도라고 볼 수 있다. 광의로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작가나 소장자 등이 작품이나 관련 기록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 전체를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비엔날레나 페스티벌처럼 일반적으로 일정한 조직이나 단체가 정기적으로 주최하는 행사, 부정기적으로 개최되는 개인 및 단체의 전시,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개최하는 상설 전시나 특정한 주제를 갖고 여는 주제전, 화랑이나 옥션 등이 상업적 판매를 목적으로 만드는 전시, 특정 문화 관련 기관이나 교육기관이 교육과 선전, 계몽을 목적으로 만드는 것 등이 있다.

전시가 열리는 장소로는 미술관과 박물관, 화랑, 학교, 백화점과 같은 상업 시설,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건조물 등이 있고, 때로는 작품의 물리적 성격이 가능할 때 길거리나 광장 등에서 열리는 경우도 있다. 현대 사회는 미술의 전시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어 특정 장소에서 관객을 기다라는 전시에서 나아가 잠재 관객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이동형 전시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또 단순히 만들어진 작품을 전시하는 데서 벗어나 전시의 현장에서 전시 공간에 맞게 작품을 제작하는 경우도 많다. 전시의 주제는 시대, 미학, 유파, 대상, 장르 별로 꾸며지는 경우가 많고, 개인전의 경우는 기획 초대전, 유작전, 회고전, 신작발표 전시 등이 있다.

아트 페어는 그림을 팔고 사는 시장이기 때문에 작품성 위주의 비엔날레와는 성격이 다르고 작가 개인이 참여하는 형식도 있지만 시장의 정상적인 기능을 활성화하고 화랑간의 정보교환과 작품 판매촉진, 시장 확대를 위해 주로 화랑간의 연합으로 개최된다. 시초는 1959년 영국의 <쿨벤칸> 재단이 후원하여 런던 지역을 중심으로 한 화랑들이 주축으로 조직한 미술제이다. 이후 1967년에 출범하여 가장 오랜 역사를 갖는 <아트 쾰른> 이후 본격화되어 미술시장 내에서 화랑 및 경매와 더불어 3대 축을 형성하고 있다.

② 미술관(Museum)

오늘날 미술관은 미술 작품을 수집, 보존, 연구하고, 전시회라는 형태를 통해 이를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며, 소장품을 근거로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해서 사회의 문화적 역량 강화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영어로는 미술관과 박물관의 구별이 없이 Museum으로 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미술관과 박물관을 구별해서 쓰고 있다. 박물관이 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데, 미술관이란 미술박물관 즉 Art Museum의 준말 정도로 보면 된다. 미술 관련 제도 중에 분명한 법적 근거를 갖고 있는 기관이 바로 미술관으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1조 2항에 따르면 “미술관이라 함은 박물관으로서 회화, 조각, 공예, 건축, 사진 등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하고 이들을 조사 연구하여 문화, 예술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교육에 이비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의한다.

산업혁명 이후 근대 국가가 출현하면서 특정 권력 계층의 소유물 또는 전유물로 여겨졌던 미술 작품을 국민 전체의 소유물 즉 공공의 문화적 재산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근대적 의미를 갖는 미술관의 출발이었고, 그것의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성격으로 미술의 공공성을 중요하게 받아 들였고 교육 기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또 근현대에 접어들어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미술관은 엘리트만이 이용하는 고급문화 공간이 아닌 일반 대중들이 친근감을 가지고 미술품을 감상하고 시각문화를 즐기는 복합 공간으로 확대가 되었다.

근대의 지식과 미적 활동의 집적 기관으로 출발한 미술관은 미술 작품의 수집, 보관, 전시라는 전통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미술에 관한 교육과 정보를 다루는 복합적 문화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즉 공공의 문화적 욕구를 종합적으로 수용하고, 더 나아가 사회의 미적 수준을 선도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제도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 MOMA>과 프랑스 파리의 <센터 퐁피두>는 미술관에 현대적 복합 기능을 처음 도입한 대표적인 기관이다. 하지만 미술관은 미술 작품의 종착지 역할을 하면서 마지막 안식처가 된다는 의미에서 ‘작품의 무덤’이라고 비판 받기도 한다.

③ 경매(Auction)

작가의 작품은 작업실에서 나와서 제일 먼저 1차 시장인 화랑으로 가고, 화랑을 통해 컬렉터 또는 소비자에게 들어간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 경매를 통해 시장에 다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경매장 즉 옥션은 기본적으로 미술품 거래에 있어 중고시장이며, 작품을 유통하는 3차 시장으로 정의할 수 있다. 화랑이나 개인 간의 거래는 한정된 사람들만 작품을 살 기회가 있는 ‘닫힌 시장’인데 반해서, 경매는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는 ‘열린 시장’이라는 특징도 있다.

경매 시장에서의 미술 작품의 가격은 1, 2차 시장에서의 거래 실적과 경매를 통한 판매 기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비교적 특정 미술 작품의 가치에 대한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가치와 가격의 상관관계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상태에서 결정이 이루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또 공개적이고 경쟁적인 판매 방식으로 경매 진행의 과정과 결과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객관적인 측면이 있다. 그래서 경매의 가격은 특정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최근 들어 경매 회사는 미술 작품의 경매 서비스를 비롯해서 적절한 가격 산정, 대출 서비스, 대금 지불과 작품 인도 및 탁송, 경매 전 전시회 개최, 관련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제도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주 수입원은 작품의 위탁자와 구매자가 내는 수수료이다. 따라서 경매 회사의 기록을 잘 살펴보면 작품 거레의 역사와 진위 여부, 감정 평가 등 작가와 작품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다.

④ 비평(Art Critic, Journalism)

문자를 매개로 미술 작품을 해석하고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비평의 가장 큰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특정 대상이나 내용을 지적함으로써 그것을 알지 못했을 때에는 놓쳐버렸을 것을 지각하도록 이끌어 주고 그를 바탕으로 감상자들 나름대로 그 내용에 대한 삶의 측면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다. 또한 미술비평은 미술사와 미술이론과 달라서 학문적 영역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작품의 생산과 유통에 관여하는 실천적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 작품과 작가 및 제도에 관한 비평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서구에서는 18세기 후반 살롱의 전시회에 관해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형태로 처음 나타났고, 19세기 들어 미술 작품의 생산이 주문생산에서 기성품 즉 레이디-메이드의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본격적으로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미술사와 분리되어 주로 전시회 평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비평 형식을 만들어 근대적 비평 개념을 확립한 것이다. 이런 비평이 나오기 전에 미술에 관한 문자적 활동은 작가 평전, 기법서, 작가의 서한과 일기, 여행기 등이 있었다.

제도적 차원에서 볼 때 비평의 경향과 강도는 비평문을 발표할 매체의 존재와 성격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고, 매체 자체가 비평의 통로이자 산실이기도 한다. 그래서 기록학적 관점에서 보면 비평 매체의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 매체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 신문 : 불특정 다수 대중이 늘 접하는 매체이면서 변화하는 각 시대의 이슈를 가장 예민하게 반영하는 매체이다. 신춘문예와 같은 형태를 통해 비평가를 배출하는 기능도 한다.
– 학술저널 : 직접적인 비평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학술 연구자를 중심으로 비평을 비평하는 메타 비평이 실리는 경우가 많다. 미술사나 미학과 같은 학문 분야의 연구자들이 주로 활동하는 매체로 보면 된다.
– 미술전문 잡지 : 현장 중심의 비평 활동이 중심을 이룬다. 신문과 같이 시사성을 띤 비평문이 발표되지만 훨씬 심층적인 글이 많이 실린다. 비평가들의 글도 많이 실리지만 큐레이터나 기획자의 글이 많이 실리는 경향을 보인다.
– 전시 서문 : 대개는 작가의 요청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비평의 형식과 분량이 자유로우며, 작가와 작품 그리고 감상자 또는 관객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 작가의 전시장이나 작품집에 작품을 해설하고 감상의 포인트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 온라인 미술비평 : 인터넷 문화의 발달로 생긴 형식으로 블로그나 SNS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비평 활동이다. ‘비평가’라는 지위에 관계없이 누구나 특정 작가와 작품 그리고 정책 등을 평가 할 수 있는 장이다. 하지만 일정한 검증 절차가 없이 발표하기 때문에 신뢰도에 문제가 있다. 전문 비평가들이 매체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비평 활동을 하고자 할 때 선택하기도 한다.
– 방송매체 :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의 문화예술 관련 프로그램에서 글 대신 말로 비평을 하는 경우이다. 대중매체의 영향력 확대에 따라 각광을 받는 매체이다. 다만 매체나 프로그램의 성격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 단행본 출판 : 비평가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발표한 글을 한 주제로 편집하여 묶어 만든 책이 많고, 특정한 이론을 확산하기 위해 깊이 있는 글쓰기의 장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⑤ 연구 및 교육제도(Academy)

미술의 교육제도는 작품 생산의 주체인 작가를 배출하고, 감상자를 확대하는 중추적인 기능을 한다. 역사적으로 작가의 양성은 도제 교육을 통해 이루어져 왔으나 근대의 보통 교육과 공교육 시스템이 정착하면서 학교라는 오늘날의 교육제도가 만들어 졌다. 미술 교육은 현재 대학 및 대학원, 초중등과 같은 보통 교육 기관, 학원과 같은 사설 교육기관, 미술관이나 문화기관에서 행하는 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관련 기록의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미술 교육제도는 주로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작가 양성 기관으로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대학이나 미술관 등이 부설로 운영하는 연구소 같은 연구기관도 역사나 미학, 제도 등의 연구를 수행하기 때문에 기록 관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미술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교육과 연구의 부분을 포함하는 것은 작가와 작품의 배경을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연구자의 요구를 수용하려는 것이다. 시각 예술의 작품 생산은 개인의 취향과 세계관을 반영한다. 하지만 그 취향과 세계관은 작가의 성장과 교육 환경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연구자들이 작가를 연구할 때 출신 학교를 따지고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⑥ 화랑(Gallery)

서양의 경우 갤러리는 제도적인 의미를 갖기 보다는 일반적으로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장소 전체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따라서 미술관 내에 갤러리가 여러 개 있기도 하고, 런던의 <National Gallery, 런던국립미술관>처럼 미술관의 명칭을 갤러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박물관, 미술관, 화랑 등을 엄격히 구별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화랑은 갤러리의 번역어이고 또 우리가 말하는 화랑은 갤러리로 번역되기도 한다. <박물관, 미술관 진흥법>과 같은 제도적 구별에 따르면, 화랑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체이다. 일정 기간 단위의 다양한 미술 작품의 전시를 통해 작가와 대중을 소통시키고, 작품을 유통시키는 작품의 1차 시장 역할을 하는 단위인 것이다.

화랑은 미술 작품의 매매가 가능하며 판매 목적의 전시를 통해 수익을 올리고 운영하는 영리기관이다. 작품 유통의 첫 단계로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고 작가를 사회와 소통시킨다. 또 특수한 장르, 미학적 영역을 전문화하는 방법으로 문화적 위상을 만들고 작가의 창작을 지원해서 예술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기능을 한다. 한편 일반적으로 화랑의 종류에는 전시장 대관을 하지 않고 전적으로 자체 기획에 의한 전시와 작품 판매로 운영되는 상업 갤러리와 필요한 작가나 단체 또는 기관에 장소를 대여하는 대관 위주의 대관 갤러리 등이 있다. 오늘날 화랑은 서로 연합해서 정보를 교환하고 시장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아트 페어’ 등을 개최하는 방법 등으로 미술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⑦ 작가(artist) 또는 작업실(atelier, studio, workshop)

미술 분야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와 제도적 장치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존재는 누가 뭐래도 작품 생산의 주체인 작가이다. 또 예술의 장르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작가가 작품을 생산하는 주 장소가 작가의 작업실이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참여자들이 협업을 해야 하는 공연예술이나 영화와 달리, 대부분의 미술 장르는 개인인 작가가 생산을 전담한다. 따라서 미술 분야는 문학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개념이 매우 중요하며,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작업 공간이 관련 기록물 생산의 1차적인 장소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순수예술에 가치를 크게 부여하는 근대 미술이 시작된 후에는 근대적 주체로서 작가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작가의 미학과 세계관, 성장 배경, 교육 환경, 작업의 장소와 환경 등이 연구의 대상으로 떠올랐으며, 작가 연구가 미술사와 비평의 중요한 테제가 되었다.

현재 작업실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먼저 예술가 개인의 작품 창작 활동만을 위한 예술가 개인의 작업실이 있으며, 공예나 조각과 같은 전통적인 장르의 예술가가 소규모로 운영하면서 교육과 작품 활동, 판매까지 함께하는 고전적인 공방도 있다. 또 작품 판매의 양이 많고 가격이 높은 대가들이 분업과 협업의 형태로 운영하면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기업형, 공장형 작업실도 있다. 한편 공공기관이나 재단 등에서 작업실 마련이 어려운 유망한 작가들에게 작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작업 공간을 지원하는 제도인 예술촌, 창작스튜디오, 오픈스튜디오 등도 작업실의 한 종류이다.

⑧ 공공미술(Public Arts)

공공미술이란 공공적 성격을 띤 미술 전반의 행위를 말한다. 미술 작품이 만들어진 다음 개인 컬렉터의 벽이나 창고 또는 미술관으로 들어가 일반 시민과 단절되어 버리는 현상에 대한 반성의 차원에서 등장했다. 또 미술과 공공성이라는 개념을 결합해서 또 다른 예술적 경험과 가능성을 발휘하려는 시도에서 비롯한 제도이다. 공공의 열린 장소에 작품을 설치해서 소통하는 개념도 있고, 물리적 장소가 아닌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의 공간 속에서 떠다니고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도 있다.

공공미술은 그 개념이 등장한 이후 예술가를 위한 공공사업(Public Works for Artists), 건축 속의 미술(Arts in Architecture), 공공장소의 미술(Arts in Public Places), 도시 재생의 수단으로서 미술(Arts as Urban Revitalization), 새로운 미술 장르로서 공공미술(Public Arts as New Genre) 등 그 영역을 확대해 가면서 현대미술의 종요한 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체적으로 단순한 장식의 차원에서 작가의 행동가적 역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해당 지역의 주민 참여를 기반으로 과정 중심의 예술 활동을 통해 지역 공동체의 일상의 삶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⑨ 제도로서 미술의 장르

미술의 장르를 나누는 것은 예술 행위 간의 경계를 설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많은 논란을 야기하는 시도이다. 오늘날처럼 통섭과 소통 그리고 경계 허물기가 지식사회의 대세로 잡은 상황에서 이런 시도는 무의미하게 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록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용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서 분류는 매우 중요하며 정당성을 갖는다. 이 글에서는 전 세계의 다양한 예술 아카이브 기관들과 미술관의 분류 기준을 준용해서 간략히 미술의 장르를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관리 목록을 중요하게 참조했다.

  •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장르로서 벽화(프레스코화 및 스테인드글라스 포함)
  • 한국 국적을 지닌 자가 그린 전통 동양화적 양식과 소재들을 채택하는 서화 및 회화로서 한국화(서예 포함)
  • 어떤 지지체나 공간에 각종 안료를 써서 형상을 표현한 작품으로서 회화(Painting)
  • 나무나 금속, 돌 등의 면에 형상을 그려 판을 만든 다음 거기에 잉크나 물감 등을 칠해 종이나 천 등에 인쇄한 것으로서 판화(실크스크린 포함)
  • 공간 속에서 삼차원적인 입체 형상을 창조해내는 시각적인 작품으로서 조각 및 설치(Sculpture & Installation)
  • 카메라를 이용하고 유제를 바른 건판ㆍ필름ㆍ인화지 등의 위에 가시광선ㆍ적외선ㆍ자외선ㆍX선ㆍ감마선ㆍ전자선 등 각종 반사광선을 작용시켜 물체의 영상을 만들어내는 방법으로서 사진(Photography, 포토그램과 포토몽타주 포함)
  • 텔레비전, 비디오, 컴퓨터, 디스플레이 장치, 신문 등 매체를 복합해서 작품의 재료로 이용하고 전시하는 미디어예술(Media Art)
  • 실용적 가치와 미술적 가치를 겸해서 가진 조형 작품으로서 공예(Crafts)
  • 모든 조형 활동 중에 용도를 중요시 하고 사용 가치를 높이려는 의도로 계획하고 설계하는 디자인(시각, 산업, 제품, 환경 등)
  • 건물의 의의나 목적을 이상적인 표현의 내용으로 하고 각종 형식 원리와 상식에 의해 공간형성에서 예술적 효과를 부여하는 것으로서 건축(설계도 및 모형 포함)
  • 예술적 가치를 갖는 만화 및 일러스트레이션

이상의 제도가 운영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흔적을 미술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그 자체는 미술관의 영역이나 작품을 둘러싼 모든 제도의 기록은 아트아카이브의 영역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아카이브는 미술의 제도이면서 이 모든 제도를 대상으로 하는 메타-제도라고 말할 수 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

미술아카이브(Art Archives)의 유형

미술아카이브(Art Archives)의 유형

미술아카이브(Art Archives)의 유형
01/22/2020
/ artachives1

미술의 역사는 창작 활동 전반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어떤 한 사회의 미술 활동의 자취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미술아카이브의 설립이라 할 수 있다. 미술아카이브는 ‘특정한 예술 활동을 통해 생성된 원형적 지식의 축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특정한 활동이라 함은 창작, 지원, 연구 활동을 포함하는 일반적인 모든 미술 활동을 의미하며 원형적 지식이란 재활용을 목표로 하는 예술적 가치가 검증된 지식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축적이라 함은 앞서 이야기한 원형적 지식을 수집, 평가, 보관하고 서비스하는 아카이브의 기본적 역할을 뜻한다.

일반적인 아카이브는 개인이나 조직이 사적으로 또는 공적으로 생산하거나 접수한 기록 중에서 역사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거나 증거로서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선별된 기록을 전문적으로 보존하는 조직 혹은 이를 위한 시설 및 장소를 말한다. 그러므로 미술아카이브는 아카이브(기록보존소 또는 기록관)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일반 아카이브의 소장품 안에 예술과 관련된 기록들이 있었다. 하지만 도서관과 박물관이 전문화되면서 미술관련 기록들을 전문적으로 보존하는 미술아카이브가 생겨났다.

사실 인류사에서 미술아카이브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며, 미술과 관련된 여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구 각국이 일반 아카이브로부터 분리된 미술아카이브를 설립, 운영하면서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역사 연구의 목적이 가장 컸다고 볼 수 있다. 미술의 역사는 작품에 대한 비평적 접근과 함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증거를 토대로 기술해야하기 때문에 이러한 필요는 절대적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미술아카이브는 설립의 목적과 형태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미술 관련 기관 소속의 아카이브(Single-agency or Institutional Archives)이다. 이 형태는 예술 관련 제도 즉 도서관(Art Library), 미술관(Museum), 예술대학(Academy), 경매회사(Auction), 출판사(Publisher)와 같은 기관에 소속되어 해당 기관의 기록물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곳으로, 전통적 의미의 아카이브 기능을 수행한다. 즉, 기관의 목적에 의해 이루어진 제반 활동 중 보관해야할 가치 있는 – 법적 증거자료이거나 역사적 가치를 지닌- 기록들을 수집, 보존, 제공하며, 이러한 활동을 체계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현행업무상 필요 없는 비현용의 과거의 자료를 이관하는 절차와 시간, 규정을 마련해서 이루어지는 일반 아카이브의 절차를 따른다. 

둘째로는 별도의 독립적 기관으로 운영되는 다원수집아카이브 (Multiple-Collection Archives)이다. 미래 연구나 전시를 위해 가치 있는 다양한 기록을 수집, 보관하는 형태이다. 공공성, 모(母)기관의 사명, 역사적 목적을 위해 운영되며 공익을 위해 미술에 관련한 기록물을 수집, 보존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모기관의 소장품과 관련된 주제 하에 다양한 기록 자료를 수집, 보존한다. 이 형태의 미술아카이브는 대형 예술도서관, 대규모의 미술관 등에 소속되어 운영될 수도 있지만, 그 성격상 기관의 이해에서 벗어나 독립성이 유지되도록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수집품 및 소장품의 종류와 형태에 따라서도 크게 세 가지 종류의 미술아카이브로 유형을 나눌 수 있다. 먼저 예술가, 기획자, 수집가, 화상, 비평가, 출판인, 미술 관련 출판 작가와 미술관, 예술가들이 조직한 협회, 화랑 등 미술관련 기관의 원본 기록 자료를 보관하는 미술아카이브이다. 이 유형은 작품을 제외한 기타의 원본기록들, 즉 왕래서신, 일기, 메모, 소품, 재무서류, 비평문과 전시 및 공연 카탈로그, 포스터, 초청장, 사진 등의 행사 관련 기록, 그리고 관련된 인물의 인터뷰나 증언 등을 수집하고 보존한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갤러리 아카이브(Tate Gallery Archives)와 미국 워싱턴에 있는 미국미술아카이브(Archives of American Art)가 이 유형의 대표적 사례이다.

또 하나의 유형은 준 작품적 성격의 자료를 소장하는 미술아카이브이다. 회화, 조각, 건축, 산업디자인을 위한 스케치, 원본 삽화 등 작품 자체에 준하는 기록물을 수집하는 기관이다. 이러한 자료들은 예술적 가치에 따라서 작품으로까지 평가받을 수 있는 기록물이지만, 엄밀하게 작품 자체는 아니다. 흔히 작가가 본(本) 작품을 위해 제작한 다량의 습작이나 모형물, 대본 등은 때에 따라서 본 작품에 준하는 예술적 가치를 가질 수도 있으며,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자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유형의 기관은 예술작품이나 공연에 사용한 무대 장치나 의상 등을 소장한 박물관의 성격이라기보다는 아카이브의 성격에 가깝다. 이 유형은 캐나다 온타와에 있는 국립아카이브(National Archives)의 미술부(Picture Division)와 같은 공공 기관에서부터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아카이브(Frank Lloyd Wright Archives)와 같은 사립 기관까지 다양한 유형으로 운영된다. 매뉴스크립트 관리기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마지막 유형은 참고, 연구 및 교육의 목적을 위해 수집된 작품과 관련 자료를 기록한 2차 기록물인 사진, 인쇄물, 필름 등을 소장하는 미술아카이브가 있다. 이런 소장 자료는 상업적 복제, 유통에 적극 활용되기 때문에 이 유형의 미술아카이브는 공공의 성격을 띠긴 하지만 빈번하게 상업적 성격을 띠기도 한다. 이런 소장품은 예술적 가치를 갖지는 않지만, 정보적 가치를 가져서 연구, 출판, 복제를 위해 주로 사용한다. 유네스코의 국제 예술작품 사진아카이브 목록(International Directory of Photographic Archives of Works of Art)은 87개국 600만개가 넘는 관련 사진기록물을 보유하고 있다. 

그 외에 다른 유형의 미술아카이브도 있는데, 대부분 상업적 목적에 의해 운영되는 아카이브들이다. 이들은 전 세계 출판사, 광고대행사, 복제품 제작회사 등을 대상으로 예술관련 기록을 제공, 판매한다.

 

* 이강렬, 2004, 「일본 공연예술자료관의 실태와 운영」, 『공연과 리뷰』 47, 현대미학사, p.190.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

미술아카이브의 기능과 특성

미술아카이브의 기능과 특성

미술아카이브의 기능과 특성
01/16/2020
/ artachives1

미술아카이브는 몇 가지의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정의할 수 있는데, 이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연구와 학술적 기능이다. 미술아카이브는 창작과 연구를 위해 필요한 원천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미술의 역사나 이론 연구자에게는 작품의 역사와 과정의 자료를 제공해주고, 예술가에게는 다른 작품의 정보를 제공해주는 기능을 한다. 또 일반 시민에게는 미술에 대한 이해의 수준을 고취시키고, 저변의 확대와 수용 문화를 확산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

② 교육적 역할이다. 미술사적으로 가치 있는 기록을 수집, 관리하여 이용자에게 미술의 발전사를 알려주고 예술가의 사유 과정과 창작의 방법 등을 인지하도록 만들 수 있다. 최근에는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의 일환으로 미술을 교육하는 과정이 늘어나고 교육기법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아카이브는 교육자와 수강생에게 다양한 교육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③ 문화유산의 보존과 계승의 역할이다. 한 세대의 예술적 성과와 문화를 동시대 또는 미래의 세대들에게 전수하여 과거와 현재가 소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고, 미술의 새로운 창작의 단서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④ 미술 관련 학문과 다른 영역에 파급되어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만드는데 필요한 원천 재료를 제공하는 기능이다. 이는 문화콘텐츠의 개념에서 만들어진 O.S.M.U. (One-Source Multi-Use)의 기능으로, 하나의 작품이 출판콘텐츠, 영상콘텐츠 등으로 새롭게 탈바꿈되어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창조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이 경우 작품 자체보다는 관련 기록물이 콘텐츠 소스로 더 적합하며, 미술아카이브의 큰 기능이자 장점이기도 하다. 

⑤ 미술관련 기관 및 제도의 투명한 경영과 책임행정을 유도하는 기능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반 기록 관리의 가장 큰 기능은 업무 과정의 책임성과 투명성의 제고이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공기관의 효율적, 개방적 운영의 기틀이 된다는 점이다. 소수에 의해 정보가 독점되는 폐단을 막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왕성하고 다양한 업무와 연구를 촉진시켜 심도 깊은 지식과 성과를 양산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 관련 기관도 예외가 아니다. 

⑥ 이러한 미술기록을 모은 아카이브는 공공성의 목적을 실현하는 기관으로 시민에게 미술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미술의 발전에 기여하는 기능을 한다. 미술문화의 토대가 되어 지적 자산의 역할을 하므로 지식기반경제 사회에서 지역의 경쟁력을 향상 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한편 미술아카이브는 위에서 말한 사회적 기능을 잘 구현하기 위해서 다음 여섯 가지 정도의 특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공익성·비시장성·공정성·독립성(자율성)·전문성·협력성 등으로서 세계 유수의 미술아카이브들이 갖고 있는 성격이기도 하다. 

⓵ 미술아카이브는 문화유산을 기록으로 보존하여 예술의 역사를 올바로 정초하며, 예술문화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학문연구를 지원함으로써 사회의 공공이익에 기여한다. 해외 여러 나라에서는 개인의 차원으로부터 학회, 협회, 사설박물관 등의 비영리 조직과 지방, 중앙정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체에 의해 미술아카이브가 설립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미술아카이브가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널리 보급함으로써 공공에 이익이 된다는 인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⓶ 미술아카이브는 투자비용 대비 적정규모의 시장을 가질 수 없는 ‘비시장성’의 특성을 갖는다. 즉, 미술아카이브의 설립 및 운영을 위한 자금을 시장으로부터 취득하기에는 시장규모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미술아카이브는 각 분야의 전문 인력들과 함께 보존을 위한 설비, 정보제공을 위한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인력과 시설을 갖추는 데는 많은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술아카이브가 이용자에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얻는 이익이란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미술아카이브는 ‘비시장성’의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미술아카이브의 비시장성과 공익성 때문에 미술아카이브는 공공부문이나 민간부문의 비영리분야에서 설립·운영된다. 

⓷ 미술아카이브는 미술사를 정초한다는 의미에서 공정성의 특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미술자료를 평가하고 선택적으로 취득한다는 점에서 공정성이 필요한 조직이다. 역사를 기록하여 보존하는 기관은 특히 공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역사는 왜곡될 것이며, 일부 권력을 가진 집단에 의해 조작되고 진실이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미술아카이브는 투명한 경영과 함께 소속 임직원의 윤리의식이 중요한 조직이다. 

⓸ 미술아카이브는 공정성 때문에 독립성(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는 조직이다. 미술아카이브가 독립성과 자율성을 잃어버리고 돈이나 권력 혹은 이익집단으로부터 압력을 받거나 조정 당한다면, 미술아카이브는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음은 물론 미술아카이브 자체가 무의미 할 수 있다. 따라서 독립성과 자율성은 제대로 된 미술아카이브의 설립과 운영을 위한 기본 전제가 되는 성격이다. 

⓹ 미술아카이브는 전문적인 조직이다. 해당 분야에 관한 해박한 지식, 기록보존을 위한 지식, 평가 및 분류를 위한 판단, 정보제공을 위한 기술, 기록관리 경험 등 다양한 전문성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미술아카이브가 제대로 설립 운영되려면, 이에 종사하는 전문 인력이 양성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⓺ 미술아카이브는 사회에서 다양한 협력을 필요로 한다. 작가·비평가·화상 등과 화랑·미술관·미술협회·경매회사·대학·지방자치단체 등과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며, 이와 함께 정보제공을 위해서도 지역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 유사기관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상의 특성들은 ‘미술아카이브가 어떠한 형태로 설립되고 운영되어야 하는가?’라는 논제에 있어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 본 장의 내용은 황동열, 「예술아카이브의 현황과 도입방안 연구」, 『한국무용기록학회지』제12권, 한국무용기록학회, 2007. 에서 발췌, 정리한 것이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

아카이브와 미술

아카이브와 미술

아카이브와 미술
01/08/2020
/ artachives1

기록은 어떤 물체에 문자 또는 기호로 사실을 적는 행위, 또는 적어둔 매체를 뜻한다. 이러한 기록물(records)은 인간의 삶(life cycle)과 같이 수없이 생성되고 또 소멸해 버린다. 이렇게 명멸하는 기록물 중에는 단 한번 사용으로 생명이 끝나는 것도 있고 필요와 가치에 따라 보존, 관리되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이를 대상으로 조직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관리뿐만 아니라 생산, 수집, 평가, 분류배열, 목록기술, 참고봉사, 자동화업무, 이용, 전시홍보, 기록윤리, 기록관계법, 그리고 보존 등의 전반적인 원리와 운영기법을 연구하는 학문 또한 존재한다. 바로 ‘레코드와 아카이브 연구 분야’ 즉 ‘기록관리학’이다.

일반적으로 아카이브는 (1) 공공 기록물이나 역사상 중요한 문서들(historic documents)이 보존되어 있는 장소, (2) 그 때문에 보존된 역사에 관한 기록(historical records)이나 문서‘라고 정의한다. 기록학 용어사전에 아카이브(Archives)는 지속적 가치 때문에 단체나 조직들이 사용하지 않게 된 ‘비현용기록물’을 보존해 온 ‘장소’이자, ‘보존 기록’ 또는 ‘보존 자료’라는 의미로서 낱장 서류, 필름, 사진, 소리나 영상 기록테이프, 컴퓨터 디스켓 등과 같이 정보로 전환될 수 있는 물리적인 매체를 지칭한다. 따라서 아카이브는 보존 자료의 선별과 평가 그리고 보존하는 것을 책임지고, 보존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처리하는 행위나 작업 일정을 의미하며, 기록보존을 책임진 부서나 기록과 자료를 보존한 건물이나 장소를 지칭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하게 정의되는 아카이브에 대해 현대 기록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쉘렌버그(T. R. Schellenberg)는 “여러 나라의 아키비스트들이 아카이브라는 용어를 각 각 다르게 정의했다는 점에서 볼 때, 누구도 변경할 수 없고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여 인정되어야 하는 아카이브라는 용어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정의는 없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카이브 = 영구기록물’ 또는 ‘아카이브 =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이라는 정도는 모두 합의할 수 있는 개념이다. 이런 개념을 중심에 두고 나면, 요즘 디지털 시대의 아카이브에 대해서는 다양한 변주의 가능성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아카이브는 기본적으로 도구이며 다른 모든 도구들과 마찬가지로 이용하기 위해 관리한다”라는 주장도 있다. 즉 기록관리가 특정 개인이나 기관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공공이 활용(Public Use)하는 것을 지향하는 온라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시대인 요즘, 결국 아카이브는 ‘영구적인 가치를 지닌 기록물이자, 그 기록물이 여러 가지 목적으로 지속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관리, 보존하는 기록관리기관’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미술의 역사 또한 미술창작활동 전반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어떤 한 지역의 미술 활동의 자취를 전체적으로 알기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미술아카이브의 설립과 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과 더 나아가 건축, 디자인 등의 시각예술을 모두 포함하는 미술아카이브란 ‘미술이라는 특정 활동을 통한 원형적 지식의 축적’인 것이다. 여기서 ‘특정 활동’이라 함은 창작, 지원, 수용, 연구 활동을 포함하는 일반적인 모든 미술 활동을 의미하며 원형적 지식이란 재활용을 목표로 하는 미술사적 가치가 검증된 지식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축적이라 함은 앞서 이야기한 원형적 지식을 수집, 평가, 보관하는 일련의 아카이브의 역할을 뜻한다. 아트아카이브 즉 미술아카이브란 ‘미술사 측면에서 정보적 가치와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는 각종 미술 관련 기록물을 매체에 구분 없이 수집, 평가, 분류, 보존하여 문화공공성의 차원에서 그것을 이용하려고 하는 시민과 연구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제도 또는 인간 활동의 한 영역으로서 미술은 인류의 역사 그 자체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활동 중 가장 오랜 방법이기도 하다.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의 방법과 달리 자체의 독자적 미학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의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미술의 창작, 생산, 지원, 연구, 보급 등 전반적인 과정과 맥락을 보존하고 이를 재활용하도록 해서 인류의 삶에 기여하는 일은 국가 또는 지역 사회의 의무라고 본다. 물론 창작의 결과물인 작품의 경우는 이를 수집하고 보존하며 서비스를 하는 박물관 또는 미술관이 있지만, 그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과 맥락 그리고 사회와의 소통 과정 등에서 발생하는 각종 기록물과 자료의 보존과 관리 또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작품을 둘러싼 전 과정의 이해가 있을 때 원형의 파악과 재현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미술아카이브의 필요와 요구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미술기록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일은 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작품의 컬렉션과 마찬가지로 취향의 문제이자 즐거움을 추구하는 취미 활동의 일환이다. 또 예술가의 경우에는 자기 삶의 흔적을 남기려는 기본적인 생존 욕망의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개인 차원의 컬렉션을 모아서 제도적 차원의 아카이브를 구축하면 그 의미가 달라진다. 단순한 차원의 개인 자료를 넘어서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갖게 되고, 공공적 성격의 문화유산과 자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개인 또는 기관이 실행하는 미술 행위의 결과와 흔적은 작품이란 형태로 완결되며, 대부분의 예술가와 관객은 작품 자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관심의 초점을 맞춘다. 사실 공연예술이건 미술이건 작품을 감상하고 즐기는 일은 일회적인 행위이고, 이 행위들의 반복이 하나의 문화이다. 하지만 이런 문화가 집단적 감동과 반복으로 이어져 사회 전체의 유산으로 전환되면 역사가 되고, 역사가 되는 한 재현과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또 작품 자체를 감상하는 일에서 한걸음 나아가 작품이 만들어진 전 과정 그리고 사후의 반응과 평가를 살펴서 더 깊은 이해와 감동에 다가가려고 한다.

아키비스트가 필요해지는 것은 이 부분에서 부터이다. 미술 작품이 개인의 기억과 감동의 차원을 넘어 집단 혹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재현과 이해의 대상이 되면, 이 일이 가능하도록 작품의 생산 전 과정에서 파생된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고 활용하도록 만들어야할 사회적 제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효율적으로 중개하는 인력이 바로 미술기록의 관리 전문가 즉 아트아키비스트이다.

미술이 갖고 있는 본연의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더 나아가 작품 또는 행위의 생산과 확산의 맥락을 직시하며 이를 적절하게 보존하고 관리해서 활용 가능하도록 만드는 전문가가 바로 아키비스트이다. 그래서 미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아키비스트는 우선 미술의 현상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맥락 자체에 대한 이해와 식견이 있어야 한다. 또 미술 전반의 장르와 제도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갖추어야 하고 연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기존의 미술사나 기록학 그리고 역사학 등 인접 학문의 연구 성과를 흡수해서 업무에 활용하려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 너무도 다양해지고 난해해진 현대 미술의 상황이 만든 역설은 예술은 무엇이라고 특정할 수 없으며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고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따라서 아키비스트는 미술의 현상과 제도 자체에 대한 깊은 존중을 가져야 하지만 동시에 매체와 장르, 제도 등에 항상 열린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

근대 사회와 아카이브

근대 사회와 아카이브

근대 사회와 아카이브
12/11/2019
/ artachives1

아카이브는 철저하게 근대(Modern)의 산물이다. 물론 근대 이전에도 아카이브의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나 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어원 또한 라틴어의 아키비움(archīvum)에서 비롯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원과는 관계없이 철학적 기반과 실질적 기능이 달랐기 때문에 같은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일반 기록학에서는 근대적 의미의 아카이브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는 쿠덴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의 등장과 이로 인한 인쇄술의 발전 및 도서의 증가 현상이었다. 이로 인해 책을 중점적으로 수집하고 서비스하는 도서관과 원본문서를 관리하는 아카이브가 분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문자의 보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생산되는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또 이를 해독할 수 있는 인구가 급증한 현상이었다. 이에 따라 고급 정보를 담은 문서를 따로 분리해서 공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할 필요가 생긴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사회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속성을 가진 근대 국가의 탄생과 성장 또한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정보와 지식을 독점하고 이를 가공해서 보급하는 과정에서 사회를 통제하고자 하는 근대 국가의 속성이 아카이브를 성립시킨 중요한 이유였다. 

계몽철학을 국가적 차원에서 실천하고자 했던 근대 국가의 시스템은 지식을 생산하는 보급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대학과 연구소 같은 곳에서 생산한 정보와 지식을 축적하고 관리하며 보급하는 기관과 시스템을 다양하게 구축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시스템 세 가지가 바로 도서관(Library), 박물관(Museum), 기록관(Archives) 등이다. 그리고 세 기관의 차이는 소장품을 ‘분류’하는 방법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분류 방법의 차이는 각 기관의 성격과 목적, 소장품의 특성에 따른 것으로 서로 다른 전통에 의해 만들어져 왔기 때문이었다. 

우선 Library 즉 도서관은 백과사전식으로 미리 결정한 주제 중심의 ‘분류체계’에 따라 개별 항목으로 분류, 기술하는 특징이 있다. 이는 다수로 생산하고 발행한 책과 같은 인쇄물 중심의 소장품을 주로 관리하는 기관의 특징을 반영함과 동시에, 가공한 지식을 축적하고 이를 서비스하는 과정에서 일반 시민의 교양을 함양하려는 계몽적 성격으로 출발한데서 비롯했다.

 Museum 즉 박물관 또는 미술관은 인류를 구성해온 물리적 흔적으로 구성된 문화재, 유물, 작품 등의 소장품을 각각의 개별 ‘프로그램’에 따라 분류하고 기술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는 원본성을 중심으로 소장품의 인류학적, 역사적, 미학적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기관의 특징을 반영한 것이다. 또 수집, 보존, 조사, 연구를 중시하는 기관의 전통과 문화적 유산에 대한 공중의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자 하는 목적에 기인한다. 

이에 반해 Archives 즉 기록관은 전통적으로 기관이 수집한 ‘소장품의 기원과 출처에 따라 분류하고 기술하는 특징이 있다. 이는 신뢰성을 중심으로 컬렉션의 증거적 가치를 중요시 해 온 전통에 기인한다. 역사적 기록물을 보존하고 관리해서 해당 분야의 전문 연구자 및 정책결정자 등에게 정보와 증거를 제공하고자 했던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근대 사회로 진입하면서 도서관과 분리해서 아카이브가 탄생한 직접적인 계기는 근대의 가시적 표상으로 모습을 드러낸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대혁명 기간 혁명을 주도한 세력으로 구성된 신생 의회가 생산한 법령과 포고령 등의 문서를 기탁하고 보존 관리할 필요성이 등장한 것이다. 당시까지 기록의 보존과 관리는 귀족 계급의 전유물이었고, 기록이 곧 역사가 되었기 때문에 그간의 역사는 귀족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발상이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혁명을 통해 근대 국가 건설의 기초를 닦았고, 자연히 혁명에 기여한 주체들의 개인 기록을 국가 유산으로 간주해서 공공기록으로 다루게 되었다. 

과거 왕실이나 성직자 및 귀족 등의 기록은 역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사적 기록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근대적 국가가 등장하면서 부터는 사적 기록이 공적 기록으로 전환되면서 공공기록물의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기록에서도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분화하기 시작한 것이고, 기본적으로는 사적 기록일 수밖에 없는 근대를 이끈 주체의 기록은 선별과 평가를 거쳐 공적 기록이 된 것이다. 그래서 개인 기록물 퐁의 국유화 및 선택적 폐기 절차, 평가 기준과 판단 문제라는 이슈가 등장했고, 기록학의 중요 절차 하나가 마련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철학적 배경에서 탄생한 프랑스의 아카이브가 제도화 되는 과정에는 네 번의 중요한 변곡점이 있었다. 1789년 9월 12일 프랑스 혁명의회가 만든 시행령에 의해 국가기록관(Archives Nationales)가 창설되었고, 1796년에는 지방정부의 기록을 관리할 지방기록관(Archives Départmentales) 설립 시행령이 발효되었으며, 1808년에는 국가기록관의 기록물 분류 체계를 ‘백과사전식 계통(주제별)분류 방식’으로 채택하는 법령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기록물 맥락정보의 해체라는 문제가 발견되자 1841년 계통분류의 한계를 극복한 ‘출처’ 또는 기록의 기원을 존중하는 ‘respect des fonds’의 원칙을 유일한 분류 기준으로 삼는 법령이 제정되었다. 기록학에서 흔히 말하는 ‘원질서 존중의 원칙’에 근거한 ‘출처중심주의’가 법적 강제 사항으로 확립된 것이다. 

한편 기록물 덩어리 즉 ‘fonds’의 기초 단위인 ‘documents’를 사용 가치와 생애 주기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는 원칙도 성립되었다. 먼저 기록 생산자의 일상적 활동이나 업무를 위해 사용되는 기록물을 ‘현용기록’으로, 기록 생산자의 일상적 활동이나 업무를 위해 가끔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기록물은 ‘준현용기록’으로 보고, 원칙적으로 기록 생산자에게는 사용 가능성이 없는 기록물은 ‘비현용기록’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아카이브는 ‘비현용기록’ 중에 평가를 통해 보존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는 ‘기록물을 다루는 기관 또는 기록물 덩어리’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오늘날 기록학 또는 기록관리 연구의 영역 (Records and Archives Studies)은 앞서 말한 것처럼 기본적으로 프랑스 ‘국가기록관’이 만들어지고 50여년이 지나 백과사전식 분류의 한계를 폐기 1841년 프랑스 기록관리법에 명시한 ‘respect des fonds’ * 원칙에서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현대 기록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미국 NARA(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의 아카이브 부장으로 있던 테오도르 쉘렌버그 (Theodore Roosevelt Schellenberg)가 1956년 출판했던 ‘Modern Archives: Principles and Techniques (University of Chicago Press)’란 책에서 천명한 ‘Records and Archives Managements’의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 생산, 수집 단계에서부터 기록물의 보존과 활용을 염두에 두고 관리하는 방식을 제안한 이론이었다. 

현대 아카이브 이론의 기본 원칙으로서 ‘Principle of Provenance’는 이상에서 말한 두 가지의 역사적 성과를 기반으로 성립한 분류, 기술 방식의 기준이다. ICA가 국제표준으로 제안하고 있는 Fonds(Record Groups) – Series – Files – Items – Documents 등으로 이어지는 계층 레벨 구성 방식의 분류기술 표준인 ISAD(G)가 이 원칙을 바탕으로 만든 대표적 사례이다. 또 최근에는 기록물 생산 조직 및 기관 변화와 부침에 대응하기 위한 ‘기능출처주의’가 등장하기도 했다. 출처가 다르거나 바뀌었어도 그 기능이 같다면 동일한 출처로 취급해야한다는 견해이다. 

 

* respect des fonds : 당시 프랑스 국립기록원 행정기록물 부장으로 있던 나탈리스 드 바이(Natslis de Wailly, 1805-1886)가 기안했으며, 의회의 동의를 얻어 법적 강제력을 부여한 기록물 분류 및 기술의 대 원칙이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

미술품 위작 사건 사례를 통해 본 미술아카이브의 위상과 권위

미술품 위작 사건 사례를 통해 본 미술아카이브의 위상과 권위

미술품 위작 사건 사례를 통해 본 미술아카이브의 위상과 권위
11/26/2019
/ artachives1

미술아카이브의 기록물을 위조하는 방식으로 벌어진 희대의 미술품 위작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1986년부터 1994년에 걸쳐 영국에서 발생한 <드루에 & 마이어트> 사기 사건의 전말이다. 미술 관련 기록물 컬렉션을 취급하는 기관인 미술아카이브의 역할과 사명 그리고 그 관리 업무의 가치와 중요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영국의 화가 존 마이어트(John Myatt)는 영국의 수그날(Sugnall)이라는 마을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중 아내와 사별했다. 남겨진 두 명의 어린 자식들을 돌보기 위해 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집안일에 전념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마음먹은 마이어트는 <Private Eye>라는 격주간 시사 잡지에 “19세기와 20세기 회화 모조품 제작을 해드림. 1점에 150파운드부터”라는 광고를 게재하였다. 광고가 게재된 후 꽤 많은 사람들에게서 주문이 들어왔고, 근대미술 대작들의 모조품을 그려주었다. 네 번째 광고가 게재된 1986년 3월, 마이어트에게 자신을 핵물리학자 존 드루에(John Drewe) 박사라고 소개한 사람이 찾아왔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자신을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도록 신분과 직업, 인품을 꾸며낸 사기꾼이었다. 

두루에는 처음에 마이어트에게 자신의 집을 장식하기 위해 마티스(Matisse)풍의 작품을 그려 달라고 주문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파울 클레(Paul Klee)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의 작품들과 17세기 네덜란드 거장풍의 작품을 포함한 또 다른 그림들을 주문했고, 이렇게 단골 고객이 되었다. 아홉 번째 그림을 제공한 직후 드루에는 마이어트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마이어트는 언제나 입체파의 그림을 직접 그려 보고 싶어 했고, 알베르 글레이즈(Albert Gleizes)의 <군의관의 초상>을 모방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바로 이 그림이 모방화가 위작으로 탈바꿈한 시발이 되었다. 드루에는 이 그림을 진본이라고 믿은 경매회사 크리스티(Christie’s Auctions)과 접촉해서 2만5천 파운드(당시 환율로 약 4천5백만 원 정도)를 받고 팔아 넘겼다. 드루에는 마이어트에게 이익금의 절반을 나누어 주었다. 미술품 위작범으로 이들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근대 미술 시장은 엄청나게 성장했다. 심지어는 상대적으로 그리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경우도 경매에서 작품이 판매되면 순식간에 유명인사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분위기는 마이어트의 그림이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마이어트는 조르주 브라크(George Braque),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르 코르뷔제(Le Corbusier),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같은 근대 미술 작가들의 위작을 그렸다. 드루에는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 등의 경매회사와 테이트갤러리 산하의 ‘현대미술연구소(Institute of Contemporary Art)’와 같은 주요한 연구기관, 규모가 크고 믿을만한 갤러리들, 대서양 연안의 민간 딜러들에게 마이어트가 그린 위작들을 1만파운드에서 2만 5천파운드 사이의 금액에 팔아서 수입을 챙겼다. 마이어트가 위조 작업을 하면서 두루에로부터 챙긴 총수입은 거의 10만 파운드에 달했다. 소더비의 영국회화부의 전임 부장으로 재직했던 신망 높은 미술딜러이자 고미술 로드쇼 전문가 피터 나훔(Peter Nahum)을 비롯한 당시 유럽 미술계의 유력인사들도 이 위작들에게 속아 넘어갔다.

드루에와 마이어트의 미술작품 위조 행각은 작품에 대한 가짜 프로비넌스(provenance) 즉 관련 원본기록을 만들어 권위 있는 미술아카이브에 끼워 넣는 방식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다른 미술품 위조 사건과는 전혀 다른 경우였다. 훗날 경찰에 체포된 마이어트의 자백에 따르면, 자기가 그린 그림들은 위작임을 식별하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마이어트는 1960년대에 처음으로 제조되기 시작한 유화 물감을 사용했는데, 대가들의 작품이 제작된 연대가 그보다는 훨씬 앞서는 것이었기 때문에 과학적인 테스트를 단 한차례 시행하기만 했어도 그것이 위작이라고 금세 탄로 날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게다가 대다수의 작품들은 그 질적인 수준에서도 의문투성이였다. 대부분의 미술품 위조범들이 결함 없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데 자신들의 힘과 재능을 쏟아 붓는 것과는 달리 드루에는 그림이 형편없어도 적절한 곳에서 제공하는 공신력 있는 서면 기록만 있으면 진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최근의 인터뷰에서 마이어트는 “대부분의 그림이 그리 잘 그려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조 프로비넌스가 작품들이 진본임을 보증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드루에는 미술사에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었지만 미술계와 미술시장이 작동되는 원리는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마이어트가 그린 그림을 팔기 위해서 꽤 많은 분량의 가짜 프로비넌스를 만들기까지 했다. 특히 자신이 그림의 소유자인 것처럼 행세하거나 또는 자신이 약점을 잡고 있거나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지인들을 가상의 그림 소유자로 만드는 데 이용했다. 드루에는 위조한 편지가 진짜처럼 보이도록 디테일을 확보하기 위해 대상 작가들의 유족을 만나기도 했다. 다른 편지를 훔치거나 편지지의 헤더를 복사하고, 당시의 타자기를 사용해서 인보이스를 만들고, 인감과 봉인을 위조하기도 했다. 진본임을 입증하는 문서를 함께 확보하고 있는 위조 작품은 아주 이례적인 경우였다. 드루에는 진짜 원본기록물을 소장한 적당한 미술아카이브를 물색해서 접근하고, 그림의 진본성을 보증하기 위해서 날조된 문서를 거기에 몰래 끼워 넣는 수법이었다.

영국의 유수한 갤러리나 미술관들이 위작 문서를 유명 미술관의 아카이브에서 “찾아낸” 것이라고 이야기 하면 위조 프로비넌스를 세밀하게 조사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핏 보아서 진짜인 것처럼 보이는 이 위조 문서기록들에 힘입어서 마이어트의 그림은 곧바로 진본으로 인정이 받을 수 있었다. 젠킨슨(Jenkinson)에 따르면 “기록의 신빙성은 의심을 받아본 적이 없음을 알기 때문에” 위조 범죄자들은 “시대를 망라해서” 공공아카이브에 위조문서를 반입하기 위해서 꽤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한다. 드루에가 아카이브에 위조문서를 잠입시킨 첫 번째 인물은 아니지만, 그 기록 잠입의 범위와 정교함은 주목받을 만한 것이었다. 

미술아카이브에 접근하기 위해 드루에는 기관의 성격에 따라서 접근 방법을 달리했다. 1989년에는 Victoria & Albert Museum의 산하의 ‘국립예술도서관’의 회원으로 가입하기 위해서 “핵물리학자 존 코켓(John Cockett) 박사” 명의로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고, 별 어려움 없이 회원증을 발급 받았다. 코켓은 10대 무렵에 바꿨던 드루에의 실명이었고, 기입한 주소도 실제 자신의 작업실이었다. 예상대로 심사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심사평에는 “존 드루에는 성실한 사람이고”라고 시작해서 그가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작성되어 있다. 같은 해 드루에는 르 코르뷔제와 자코메티의 작품(물론 이 또한 위작이다)을 테이트 ‘현대미술연구소’에 기증했다. 미술관 발전기금 조성을 위한 경매에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선의를 바탕으로 한 행동으로 보이도록 만든 다음 드루에는 자신이 연구소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이야기해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드루에는 아무런 제한이나 감시 없이 영국 최고 권위의 ‘V&A 예술아카이브’와 ‘테이트갤러리 미술아카이브’에 언제든지 출입할 수 있었다. 

1990년에는 본격적으로 테이트갤러리의 관장과 큐레이터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는 테이트갤러리가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있던 비시에르(Roger Bissiere)의 작품 두 점을 기증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작가의 아들이 작품에 사용된 재료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자 곧바로 제안을 취소했다. 대신 테이트 미술아카이브 관련 부서 책임자를 점심식사에 초대해서 아카이브의 목록 작성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2만 파운드를 기증하겠다고 제안했고, 실제 기증이 이루어졌다. 테이트 아카이브의 베스 휴턴(Beth Houghton)은 기증이 “아마도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 같습니다. 컬렉션과 관련해서 특별한 지위를 확보하고, 해당 기록 컬렉션의 목록 작업을 앞당기고, 그래서 자신의 나쁜 목적에 활용할 수 있도록 아카이브에 출입하는 것을 보장 받으려”고 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드루에는 “특히 1951년에서 57년까지 런던의 ‘하노버갤러리’와 ‘ICA (International Council on Archives, 국제아키비스트협의회)’ 사이의 협력”이 자신의 연구 주제라고 밝히고 무상출입을 허가받았고, 1991년 여름에는 정기적으로 아카이브를 방문하면서 자신을 대신해서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감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드루에는 경비 대상에서 제외되는 특혜를 누렸다. 아무의 감시도 받지 않는 상태로 아카이브 내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잡았을 때, 마이어트의 그림을 특정할 수 있는 위조한 인보이스, 서신, 사진과 같은 모든 것들을 적당한 기록물 파일 속에 끼워 넣었다. 아카이브에서 경매 카탈로그, 그 가운데에서도 테이트아카이브가 소장하고 있던 지금은 사라진 하노버와 오하나갤러리의 경매 카탈로그를 없애버리고 위조 작품의 목록과 대체이미지가 포함된 복제품으로 바꿔버렸다. 1996년에 경찰이 드루에의 집을 급습했을 때, 프로비넌스를 위조하기 위해서 사용하던 여러 가지 도구와 재료들이 함께 발견이 되었다.

마이어트의 그림은 작품의 연대기적인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재료들을 사용해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조사가 이루어졌더라면 쉽사리 위작이라고 밝혀질 수 있는 아주 허술한 것이었다. 이와는 달리 드루에는 위조 프로비넌스를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과 주의를 기울였다. 수많은 연구소 아카이브에 광범위하게 유포시킨 엄청난 기록들을 만들기 위해서, 10년 가운데 6년 이상을 해당 시기에 사용하던 종이와 잉크를 사용하기도 했다. 테이트와 V&A의 관장이 모두 인정한 것처럼, 현재도 그가 행한 아카이브 기록물 변조의 전모를 파악할 수는 없다. 

이 사건의 수사가 시작되고 전모가 드러난 것은 1995년 드루에와 파국을 맞아 헤어진 동거녀의 신고 덕분이었다. 그녀는 테이트갤러리와 경찰에 접촉했고, 경찰이 집을 급습하자 드루에는 수많은 기록물의 위조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을 집안에 남겨 둔 채 도망쳤다. 충분한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판단한 관계 당국이 우선 마이어트를 체포했다. 마이어트는 자신이 작품 위조에 가담했고, 드루에의 행각을 도왔다고 자백했다. 1996년 4월 6일 결국 사기꾼은 체포되었고, 절도, 분식회계, 문서위조의 세 가지 혐의로 기소되었다. 재판은 1998년 9월에 시작되었다. 드루에는 자신이 국제 “무기를 위한 미술(art for arms)”단의 일원이라고 주장하는 등의 치밀한 변론을 이어갔고, 재판은 거의 6개월을 끌었고 판결이 나왔다.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고 공범자에게 불리한 증거를 제시한 마이어트에게는 징역 12개월이 선고되었고, 실제로 4개월 만에 출소했다. 드루에는 7가지 기소 항목 가운데 6개가 유죄로 인정돼서 징역 6년이 선고되었지만, 고작 2년 만에 출소했다. 드루에가 체포된 후 10년이 지났지만, 거의 200여개에 달하는 마이어트의 위조 작품 가운데 고작 여덟 개가 발견되었을 뿐이다. 마이어트는 출소 이후에 그의 웹사이트를 이용해서 “모작”을 그려서 판매하고 있다. 런던에서 몇 차례의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원조 마이어트’를 위조한 작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현재 영국의 미술아카이브들은 드루에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어떤 종류의 기록물들을 자기네 아카이브에 끼워 넣었는지를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고, 드루에는 이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의 인터뷰에서 마이어트는 “대부분 내가 그림이 그리 정교하게 잘 그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조 프로비넌스가 작품들이 진본임을 보증하는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드루에는 그림이 형편없어도 적절한 곳에서 제공하는 공신력 있는 문서 기록만 있으면 진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고 한다. 진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록이 갖는 권위와 영향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이 사건의 내용은 Rodney G. S. Carter, 「Tainted Archives : Art, Archives, and Authenticity」, 『Archivaria 63』, 2007. 논문을 요약, 재구성한 것이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