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진에서의 휴머니즘과 인간 가족전의 수용 (3) The Intersection of Humanism and the Reception of the Family of Man in 1950s Korean Photography

한국 사진에서의 휴머니즘과 인간 가족전의 수용 (3) The Intersection of Humanism and the Reception of the Family of Man in 1950s Korean Photography

한국 사진에서의 휴머니즘과 인간 가족전의 수용 (3) The Intersection of Humanism and the Reception of the Family of Man in 1950s Korean Photography
09/15/2021
/ 오혜리

한국 사진에서의 휴머니즘과 인간 가족전의 수용 (3)

The Intersection of Humanism and the Reception of the Family of Man in 1950s Korean Photography

 

지구촌 한 가족이라는 테마는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지닌 문화적 산물로서 기능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적 재현 매체라는 사진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와 휴머니즘적 주제가 정치 문화적 패권을 확장시키는데 어떻게 일조할 수 있는지 그 잠재성을 이해하는데 좋은 문화적 예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 가족전이 미국 이외에도 전 세계 수 십 개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 전시의 세계적 수용해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존 워커(John Walker) 가 역설 하였듯이, 어떠한 텍스트는 각기 다른 역사적 상황하에서 전달자의 의도가 그대로 전달 되기보다는 수용자의 필요에 따라 그 초점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각주 1) 즉 전시의 의미가 각국의 합의된 담론 체계와 각기 다른 필요에서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 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한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에게 1950년대라는 특수한 상황하에 인간 가족전은 어떠한 의미로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일까? 한국에서도 이 전시가 성공할 수 있었던 두 문화권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필요가 있었을까?   

이미 한국에서 전시가 개막되기 이전부터  다양한 매스 미디어를 통해 기획자인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이력 뿐 아니라 전시회에 대한 정보가 소개되었다. 한국에서는 기존의 미국 전시에서의 503장이 아닌 501장의 사진이 전시 되었다.(각주 2)

 

Fig.7 재건화보, “인간가족전”, 미국공보원 제 269호, 1957년 4월 16일.

미국 공보원에서 발행하는 재건화보의 인간 가족전 개막식에 관한 기사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지난 43일 미국대사 다우링씨 부처의 부축을 받아 대통령이 손수 테이푸를 끊음으로써 인간가족전 사진 전시회가 경복궁 미술관에서 개막되었다. 이것은 68개국에서 수집한 사진 200만점에서 선출 구성된 것이다. 사진은 동 전시를 서울 미국 공보원장 토마스 C.. 씨의 안내로 관람하는 대통령과 월터 다우링 대사 및 내외 귀빈들(각주 3)

사진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이승만 대통령과, 주한 미국 대사였던 월터 세실 다우링(Walter Cecil Dowling) 등이 미국 공보원장의 안내를 받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전시에 있어 미국 공보원의 깊은 연루와 정치권에서도 관심이 대단했음을 시사하는 보도 사진이다.  

한편, 한국에서의 리얼리즘과 휴머니즘에 대한 당시의 관심은 이미 인간 가족전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휴머니즘과 리얼리즘의 연관성을 강조하면서 평론가인 윤희순은 예술이 희망, 신념, 일상의 행복을 전달해야 한다고 보았다.(각주 4) 비슷한 맥락에서 사진 평론가인 이명동은 시각 예술의 핵심은 인간적인 가치의 이해가 우선해야 하며 사진은 인간의 생활과 즐거움, 슬픔, 사랑, 미움, 가난 등의 진실된 측면을 재현할 수 있는 이상적인 매체임을 강조한다.(각주 5)

세계 1,2차 대전의 트라우마 속에서 휴머니즘과 실존주의가 인간성을 회복하는 데에 철학적 지침으로서 서양의 각종 문화 사회적인 논의의 주제가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의 경험을 통한 아픈 경험을 치유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써 휴머니즘은 1950년대 한국에서의 주요한 문화적 담론으로서 인간 생활과 그 현실상에 관심을 보이고 표현하는 것을  예술의 주요 임무로 인식하고 있었다.(각주 6)

Fig.8 정범태, 서울 남산, 1955, 젤라틴 실버 프린트, 사진컬렉션 지평.

신선회 멤버였던 사진가 정범태는 인간에 관한 모든 사건은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언급하였다. 그 임무를 담당하는 사진은 그러한 이미지를 통해 희망과 행복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함과 더불어 사회적 합의와 동정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각주 7) 리얼리즘 사진과 휴머니즘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바탕으로 사진가들은 인간가족전 전시가 사진이 인간성 회복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믿는다. 임응식 또한 한국 사진가들의 휴머니즘에 대한 공통된 관심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 보여주는 분명한 모범으로서 인간가족전을 평가한다.(각주 8)

 

Fig.9 손규문, 서빙고 연작 (채빙) 1958, 젤라틴 실버 프린트, 사진컬렉션 지평.

인간 가족전 이후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인기가 더욱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각주 9) 각기 다른 문화권의 역사적 경험과 당위성을 바탕으로 한 휴머니즘에 대한 공통된 담론의 접합점이 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인간 가족전의 성공을 가져온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끝)

1 John A. Walker, “Context as Determinant of Photographic Meaning,” in The Camerawork Essays: Context and Meaning in Photography, ed. Jessica Evans (London: Rivers Oram Press, 1997), 56.

2 누락된 2장의 사진의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박주석 컬럼 사진살롱 38, 인간 가족전에서 사라진 사진 2”, 한국 이미지 언어 연구소 참고. http://visualanguage.org/archives/58830#

3 재건화보, 인간가족전”, 미국공보원 제 269호, 1957416일. 본문의 철자를 그대로 썼다.

4 최열, 한국현대 미술 비평사 (경기도 파주시: 청년사, 2012), 87쪽.

5 이명동 리얼리즘의 통일- 사진작가 협회 9회전을 보고, 동아일보, 1957, 1116일.

6 최열, 앞의 책, 149쪽, 154쪽.

7 임영균, 사진가와의 대화: 한국 사진을 개척한 원로 사진가 8인과의 대담 3 (서울: 눈빛 1998), 128-130쪽.

8 인간 가족전 (Family of Man)을 보고서-좌담회, 사진 문화, 19574월, 40-44쪽.

9 임영균, 앞의 책, 60쪽.

 

오혜리

Ph.D.,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Binghamton

전 Indiana University of Pennsylvania 조교수

현재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연구교수

 

한국 사진에서의 휴머니즘과 인간 가족전의 수용 (2) The Intersection of Humanism and the Reception of the Family of Man in 1950s Korean Photography

한국 사진에서의 휴머니즘과 인간 가족전의 수용 (2) The Intersection of Humanism and the Reception of the Family of Man in 1950s Korean Photography

한국 사진에서의 휴머니즘과 인간 가족전의 수용 (2) The Intersection of Humanism and the Reception of the Family of Man in 1950s Korean Photography
09/08/2021
/ 오혜리

한국 사진에서의 휴머니즘과 인간 가족전의 수용 (2)

The Intersection of Humanism and the Reception of the Family of Man in 1950s Korean Photography

 

3년의 준비 과정을 거쳐 1955년 1월에 전시는 마침내 대중에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503장의 사진은 인간 삶의 통과 의례 즉, 출생, 성장, 결혼, 죽음 등을 비롯하여 사랑, 신념, 행복, 희망 등 인간의 가장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삶의 가치를 시각화 한다.(각주 1)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는 종교, 혁명, 선거, 어린이들의 이미지에서, 낙관적인 미래와 평화는 전시 도록과 전시장 곳곳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피리를 부는 페루인의 모습과 일상 속 인간의 화합적 모습을 통해 강조되었다. ‘휴머니티의 장엄한 해연’(grand canyon of humanity)(각주 2)을 재현하겠다는 전시의 핵심 서사는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통하여 전세계 인류의 공통된 경험을 담아내며 가시화된다.

인본주의적 해석이 가능한 사진 이미지와 함께 성경, 노자, 토마스 제퍼슨, 셰익스피어, 제임스 조이스, 안네 프랑크의 일기 등에서 발췌한 인용구들은 관객에게 삶의 통찰력을 제시하며 전시의 근본적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장치로서 채택되었다. 이러한 기획을 통해 인간 가족전은 인종과, 국가, 역사, 사회적 배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관객의 감정과 정서에 호소력을 갖기에 충분했으며 의사소통의 가치 있는 중요한 도구로서 기능하였다.(각주 3)

 

Fig.4 인간 가족전 전시장 모습, 뉴욕, Museum of Modern Art, 1955, 롤프 피터슨 사진. MOMA 아카이브.

인간 가족전 전시 도록의 서문에서 칼 샌드버그(Carl Sandburg, 1878-1967)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There is only one man in the world

and his name is All Men

There is only one woman in the world

and her name is All Women

There is only one child in the world

and the child’s name is All Children.”(각주 4)

Fig.5 인간가족전 도록 표지, 1955.

이러한 전시 주제가 채택된 것에 대해서는 시대적인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시가 기획된 1950년대는 세계 2차 대전의 여파로 황폐화된 세계를 재건하는 시기였다.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서의 예술은 인간에게 정서적, 심리적, 지적, 사회적인 성장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첨예한 이데올로기의 대치와 미래가 불확실한 냉전 시기에 예술은 인간의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휴머니즘적 가치를 지지하는 사회 문화적 효용을 갖는다. 전 세계를 하나의 가족으로 통합하는 ‘인간 가족’(family)이라는 개념은 20세기 중반에 인류가 경험한 비극적인 과거를 치유하는 동시에 미래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고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의 회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Fig.6 인간 가족전 전시장 모습, 뉴욕, Museum of Modern Art, 1955, 롤프 피터슨 사진. MOMA 아카이브.

전시는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사진적으로 재현하였다는 점에서 세계의 관객은 열광했다. 그러나 대중적 상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비평가들로부터는 부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전시에 포함된 사진들이 본래의 의미를 갖는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맥락과 분리되어 피상적이며 감상적인 인간 가족이라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재구성 되었다는 것이다.(각주 5)

이같은 맥락에서 사진 비평가인 알란 세큘라(Allan Sekula, 1951-2013)의 사진에 대한 정의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세큘라에 따르면, 사진이 과학 기술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현실을 기록하는 매체임에는 분명하지만 사진은 보편성, 객관성이 아닌 특정 시대의 전세계를 지배하는 힘의 논리에 따른 의도적 결과물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각주 6)

사진은 그 자체로는 미완성된 언설이다. 사진의 의미와 가치는 사진 이미지 자체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 안에서 결정된다. 따라서, 사진의 효용 가치와 해석 또한 사회 문화적인 담론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 인간 가족전 또한 특정한 역사적, 정치적, 국제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한 담론의 산물이었다. 세계 양차 대전으로 황폐해진 유럽 등 여타의 서방 세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타격을 적게 받은 미국이 냉전 시대의 첨예한 대립 속에 새로운 세계 질서의 패권국이 되었고 뉴욕은 문화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 인간가족전의 세계 각지로의 순회 전시는 미국 정보국(USIA: The US Information Agency)의 후원으로 가능 했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USIA는 1953년에 국제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고 국제 관계와 해외 정책을 개발하는 임무를 가진 기구로서 설립되었다.(각주 7) 결국, 지구촌 인간 한 가족이라는 휴머니즘적 개념은 미국의 정치, 경제, 문화적인 리더쉽 하에 세계의 질서가 재편되는 시기에 미국의 정치, 문화적 패권을 가시화한 효과적인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3편에 계속)

1 Edward Steichen, The Family of Man (New York: Museum of Modern Art, 1955), 4–5; and “Photography: Witness and Recorder of Humanity,” Wisconsin Magazine of History 41, no. 3 (Spring 1958): 159–167.

2 Carl Sandburg, prologue to The Family of Man (New York: Museum of Modern Art, 1955), 3.

3 Monique Berlier, “The Family of Man: Readings of an Exhibition,” in Picturing the Past: Media, History and Photography, ed. Bonnie Brennen and Hanno Hardt (Urban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99), 218.

4 Carl Sandburg, prologue to The Family of Man (New York: Museum of Modern Art, 1955), 3.

5 Berlier, “The Family of Man: Readings of an Exhibition,” 221.

6 Allan Sekula, “Traffic in Photographs,” in Photography Against the Grain: Essays and Photo Works 19731983 (Halifax: Press of the Nova Scotia College of Art and Design, 1984), 96.

7 For details of the USIA, see Robert Elder, The Information Machine: The United States Information Agency and American Foreign Policy (Syracuse, NY: Syracuse University Press, 1968).

 

오혜리

Ph.D.,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Binghamton

전 Indiana University of Pennsylvania 조교수

현재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연구교수

 

한국 사진에서의 휴머니즘과 인간 가족전의 수용 (1) The Intersection of Humanism and the Reception of the Family of Man in 1950s Korean Photography

한국 사진에서의 휴머니즘과 인간 가족전의 수용 (1) The Intersection of Humanism and the Reception of the Family of Man in 1950s Korean Photography

한국 사진에서의 휴머니즘과 인간 가족전의 수용 (1) The Intersection of Humanism and the Reception of the Family of Man in 1950s Korean Photography
09/01/2021
/ 오혜리

한국 사진에서의 휴머니즘과 인간 가족전의 수용 (1)

The Intersection of Humanism and the Reception of the Family of Man in 1950s Korean Photography(각주 1)

 

신선회는 그룹의 길지 않은 활동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리얼리즘 사진이라고 알려져 있는 생활주의 사진의 개념과 비전을 이해하고 사진적 활동으로 실현시키려는 노력을 한 단체라는 점에서 1950년대 한국 사진사에서 그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각주 2)

1956년에 설립된 신선회는 이형록, 조규, 이안산, 손규문, 정범태, 이해문, 한영수, 안종칠 등을 포함한 19인의 리얼리즘 사진가들을 회원으로 조직되었다.(각주 3) 당시 전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공통된 영향력 있는 사상의 흐름 중 하나는 리얼리즘이었다. 1950년대 당시 한국에서도 리얼리즘이라는 담론은 다양한 사회 문화 공간과 예술 제도권에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한국의 역사적 경험, 즉 식민 시대와 한국 전쟁, 그리고 권위주의 정치 체제를 경험한 사진가 및 예술가들이 그 역사적 상황을 통해 노정된 사회 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리얼리티를 반영하려는 한국 사진가들의 사진의 지향점은 일제 강점기의 주된 사진 경향이었던 감상주의적이며 회화적인 사진의 경향을 극복하려는 노력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했으며, 사진계 뿐 아니라 식민지 근대성에 도전하는 사회 각 분야의 반식민이라는 정치, 사회, 문화적 합의와 역사적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신선회에 소속된 사진가들은 고양된 리얼리즘 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적 현실에 관심을 보였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 속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고 인간 삶의 자취를 흑백 사진 이미지를 통해 재현하였다. 그러한 그들의 의도는 1957년 4월 동화 백화점 (현재 신세계) 화랑에서 열린 신선회 창립전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총 2부로 구성된 전시에서 1부는 자유 주제를 2부는 “시장의 생태”라는 테마로 우리의 일상과 근접한 시장을 소재로 새벽, 정오, 밤 풍경을 담은 작품들이 전시되었다.(각주 4)

 

Fig.1 이해문 (1922-1981), 순대국집, 1950년대, 젤라틴 실버 프린트, 사진 컬렉션 지평

물론 1950년대의 한국적 리얼리즘 사진을 추구해 가는 과정에 있어 그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일제 시대에 사진을 시작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자연의 서정성이나 조형적인 스타일을 강조한 회화적 사진 경향을 주도한 매스미디어, 전시, 그리고 공모전에서 제시한 규범에 직간접적으로 익숙해져 있었다. 그 이전과는 달라진 시대적 배경이나 사회적 담론, 사진가의 의식을 그러한 회화적 사진 스타일과 주제로는 충분히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은 사진가 스스로에게는 한계이며 극복할 문제로서 인식된 것이 사실이다.(각주 5)

그러나 1950년대에 임응식은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개념적 카테고리를 생활주의 사진이라는 용어를 통해 정의함에 있어 생활주의 사진이 한국 전쟁 후의 시대 상황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사진 주제에 접근하고 과장됨 없이 사회적 ‘진실’과 인간의 관심사인 일상생활을 객관적으로 재현해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하였다.(각주 6) 사진가인 이해선 또한 리얼리즘을 지향하는 사진은 인간의 생활을 재현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휴머니즘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인간의 본질을 담아내기 위해 사진 매체의 기술과 사진가의 예술적 창의성 뿐 아니라 인간의 삶을 공감하고 정서적으로 이해하며 포착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각주 7)

사실 이러한 휴머니즘에 대한 중요성은 한국 뿐 아니라 세계 대전 이후 전 세계의 공통적인 관심이었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 하에서 1957년 4월 3일부터 28일까지 한국의 경복궁 갤러리에서 인간 가족전 전시가 성공리에 개최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하겠다.(각주 8) 사진가 임응식은 인간 가족전이 휴머니즘에 대한 한국 사진의 관심을 실현시키는 방향을 제시한 원형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였다.(각주 9) 또한 사진가 이형록과 정범태 등 당시 한국의 리얼리즘 사진가들은 인간 가족전을 통해 다큐멘터리 사진이 지향하는 정신적 가치를 발견하고 사진 활동에 있어 중요한 영감의 근원이었다고 평한다.(각주 10) 그렇다면 인간 가족전이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역사적 맥락(context; historical contingencies)은 무엇이었는지, 전 세계 질서의 재편 속에 휴머니즘이 주된 담론으로 중요성을 획득한 이유는 무엇인지, 또한, 한국의 특수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한국의 리얼리즘 사진가들은 인간 가족전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수용했는지 등에 대해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Fig.2 이형록, 형제, 1958, 젤라틴 실버 프린트, 사진 컬렉션 지평

인간 가족전은 뉴욕 Museum of Modern Art (MOMA)의 사진부 디렉터였던 에드워드 스타이켄 (Edward Steichen, 1879-1973)이 기획한 전시로 1955년 1월 24일부터 5월 8일까지 MOMA에서 개최되었다. 이 전시는 미국 정보국 (USIA: The US Information Agency)이 후원을 통해 깊이 개입했으며 영국, 독일, 벨기에, 이태리, 프랑스, 일본, 이란, 버마, 인도네시아, 호주, 베네수엘라, 칠레, 한국 등 전 세계 순회 전시가 이루어졌다. 사진의 근, 현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지구촌 곳곳의 사진 문화에 영향력을 행사한 전시라는 것은 수치상으로도 그대로 드러난다.

Fig.3 인간 가족전 전시장 모습, 뉴욕, Museum of Modern Art, 1955, 롤프 피터슨 사진. MOMA 아카이브

1955년부터 1959년까지 미국과 캐나다 두 국가에서만도 1,200,000여 명, 그 이외 여타의 국가들에서는 7,500,000여 명의 관객이 전시를 관람하였다. USIA의 기록에 따르면 한국에서 열린 인간 가족전에는 420,0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인간 가족전 전시 카탈로그는 1956년에서 1979년까지 2,777,000권이 판매 되었다.(각주 11) 전시를 위해 스타이켄이 전 세계에서 2백만 장의 사진을 제출 받았으며 당시 포토저널리즘의 대표적인 잡지였던 Life, Look 과 더불어 Magnum의 수많은 사진 아카이브를 검토하였고(각주 12) 최종적으로 68개국 273명의 사진가들의 작품 503장을 전시하는 사진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전시회였다.

(2편에 계속)

1 이 글은 필자의 “Photography, Technology and Realism in 1950s Korea,” in Future Yet To Come: Body, Life, and Sociotechnical Imaginaries in Modern Korea, edited by Sonja M. Kim and Robert Ji-song Ku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21)의 소부분을 이 컬럼을 위해 편집, 번역, 개정하였다. 총 3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2 이형록, 정범태, 한영수는 한국의 리얼리즘 사진의 전개에 있어 신선회의 역할을 중요한 것으로 평가한다. 임영균, 사진가와의 대화: 한국 사진을 개척한 원로 사진가 8인과의 대담3 (서울: 눈빛, 1998) 참고.

3 박주석, “해방 후 1950-1960년대 한국 사진의 전개와 성과”, 한국 현대 사진 60년, 1948-2008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20쪽.

4 조명원 (편집부), “신선회 사진평-제1회 발표전을 보고”, 사진 문화, 1957년 4월, 89쪽.

5 임영균, 사진가와의 대화, 78쪽.

6 임응식, “한국 사진계의 현황-작화 경향을 중심으로,” 서울신문, 1950년 8월; “사협전을 보고-생활직시,” 주간 희망. 1957년 12월. 임응식의 글은 임응식 회고록: 내가 걸어온 한국 사단 (서울: 눈빛, 1997), 277쪽과 287쪽에 포함되어 있다.

7 대담 아마추어의 진로-이해선 (사연) 임응식 (사협),” 사진문화, 1957년 1월, 49-50쪽.

8 서울신문, 1957년 3월 28일 “인간가족 사진전” 기사에 따르면 USIA에 의해 원래는3월 28일부터 열릴 예정인 전시가 준비 지연 문제로 4월 3일부터 개최된다고 전하고 있다.

9 “인간 가족전 (Family of Man)을 보고서-좌담회,” 사진 문화, 1957년 4월, 40-44쪽.

10 임응식, 이형록, 최민식, 이경모 등은 임영균 과의 인터뷰에서 인간 가족전이 미친 영향에 대해 언급한다. 임영균, 사진가와의 대화.

11 위의 관객 동원과 도록 판매 수치 등은 뉴욕 현대 미술관 아카이브의 자료를 참고하였다.

12 Monique Berlier, “The Family of Man: Readings of an Exhibition,” in Picturing the Past: Media, History and Photography, ed. Bonnie Brennen and Hanno Hardt (Urban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99), 213.

 

오혜리

Ph.D.,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Binghamton

전 Indiana University of Pennsylvania 조교수

현재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