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샷 시대

인증샷 시대

인증샷 시대
10/02/2019
/ 박평종

유명 관광지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구글에서 에펠탑 이미지를 검색하면 수백만 장의 사진이 나오는데 뭐 하러 또 찍는단 말인가! 게다가 촬영 포인트도 좋고 근사한 배경의 ‘수려한’ 이미지가 많아 그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니 구태여 민폐 끼쳐가며 여행 시간을 낭비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그들을 이해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찍어 놓은 ‘멋진’ 사진이 아니라 내가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초점이 잘 맞지 않아도 상관없고, 에펠탑이 작게 나오더라도 무방하다.  그 사진을 통해 내가 에펠탑 앞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모든 사진은 그 점을 보증한다. 소위 인증샷이다.

수많은 종류의 인증샷이 있다. 투표 인증샷이나 불매운동 참여 인증샷이 있고, 체중감량 성공 인증샷도 있으며, 심지어 일부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자해 인증샷도 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결혼사진이나 졸업사진도 일종의 인증샷이다. 인증, 어떤 행위를 공적으로 입증한다는 뜻이다. 일종의 증명서라 하겠다. 따라서 인증샷은 증명서 역할을 한다. 이유와 목적을 떠나 사진은 이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리고 사진의 인증력은 롤랑 바르트의 표현을 빌자면 재현력을 능가한다. 사진의 인증력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허구로 간주될 만큼 기이한 장면을 찍은 사진에서조차도 그 확실성을 의심할 수 없다. 바르트는 자신을 촬영한 사진에 대해 언제, 어디서 촬영됐는지 기억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사진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모두가 경험하는 일이다.

디지털 기술의 등장으로 사진의 시대는 저물고 후기 사진, 이른바 포스트 포토그래피의 시대에 진입했다는 주장이 있다. 아날로그 사진이 도큐먼트, 기록, 실재와 같은 개념들에 의지하고 있었다면 디지털 사진은 간단한 조작과 합성 등을 통해 시물라크룸, 가상, 허구와 같은 개념들에 의존하게 됐다는 것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인공지능과 접목한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원본 없는 가상 이미지의 생산을 더욱 탁월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날로그 사진의 ‘탁월함’으로 평가받아 왔던 인증 기능은 디지털 사진에서도 동일하게 발휘되고 있으며, 나아가 그 영역도 넓어지고 있다. 사진의 인증력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물론 사진 못지않게, 사진보다 뛰어나게 인증 기능이 탁월한 수단도 있다. 공항 입국장에서 활용되는 지문 인식이 그 예다. 실상 지문은 여권에 붙어 있는 사진보다 인증력이 뛰어나다. 홍체인식이나 음성인식도 그렇다. 그런데 모든 인증 수단은 완벽하지 않다. 위변조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비슷한’ 개별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인증의 어려움은 바로 이 ‘유사성’에서 온다. 여러 가지 인증 수단을 함께 사용하는 까닭은 이 유사성으로부터 오차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사실 사진은 개별자의 식별을 목적으로 한 인증, 말하자면 내가 나임을 확인하기 위한 인증 수단으로는 부적합하다. 나와 닮은 사람이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진은 내가 그 곳에 있었음을 인증하는 수단으로는 탁월하다. 사진 속의 인물이 나 자신임이 명백할 경우에만 그렇다. 그런 점에서 SNS에 범람하는 인증샷은 신원 확인이 전제로 깔려있다. 유명 맛집에 갔다 왔다는 인증샷을 보고 사진 속 인물이 바로 그 사람임을 ‘이미’ 알지 못한다면 그 사진은 인증샷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증과 식별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제 사진은 더 이상 식별의 수단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인증의 수단으로만 활용된다. 그리고 사진의 인증력은 법적 실효성도 갖지 못한다. 다만 네트워크상에서 정보의 공유나 ‘놀이’의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다. 인증샷은 이제 그 정도의 의미밖에는 갖지 못한다. 하지만 그 가치는 확장성이 크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

 

 

사진관이 살아있다

사진관이 살아있다

사진관이 살아있다
05/09/2019
/ 박평종

어린 시절, 그러니까 1970년대 초반 무렵 목포역 오거리 인근에 허바허바사장이 있었다. 근처를 지날 때마다 나는 ‘사장님이 외국인인가?’, 이렇게 생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사장이 직위를 뜻하는 단어가 아니라 사진관을 뜻하는 사장(寫場)임을 알게 됐지만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그 때도 사진관이라는 명칭이 훨씬 보편적이긴 했다. 요즘도 그렇다. 전통적인 이름의 사진관이 다수지만 포토 스튜디오도 있고, 특정 분야를 전문화시킨 베이비 스튜디오나 웨딩 스튜디오 등 다양한 이름이 혼재하고 있다. 이들의 이름은 달라도 목적은 같다. 모두 사장, 그러니까 사진 찍는 장소다. 그런데 거기서는 사람 얼굴만 찍는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자면 초상사진관이다.

잘 알려져 있듯 사진술은 발명 초기부터 초상 제작에 활용됐다. 심지어 지젤 프로인트는 사진이 값비싼 초상화를 대체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명됐다는 ‘과장된’ 견해를 펴기도 했으나, 초상이 사진술을 활용하여 생산하는 이미지 중 가장 보편적인 대상임에는 틀림이 없다. 초상사진의 전성기였던 ‘명함판 사진’ 시대에 디스데리가 운영하던 사진관의 고객은 일일 평균 200여명이었고, 1861년 파리의 경우 사진관에 종사하던 사람이 33,000여명이었다는 통계가 있으니 그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어쨌든 사진관은 사람의 얼굴을 찍는 특별한 곳으로 존속해오고 있다. 과거의 사진관이 특별했던 데는 까닭이 있다. 아무나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고가였고, 조작도 어려웠으며, 특히 현상과 인화에는 고도의 기술이 요구됐다. 소형 카메라가 대중화되고 현상소가 출현하면서 상황은 달라졌지만 그래도 사진관은 여전히 특별했다. 사진의 대중화는 곧 초상사진의 질적 저하를 수반했기 때문이다. 그럼 현재는 어떨까?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 특히 휴대폰 카메라의 성능 향상으로 사진의 물리적 품질은 저절로 보장된다. 현상, 인화를 하지 않더라도 고품질 데이터를 모니터로 볼 수 있고 저장과 전송도 용이하니 굳이 사진관에 가서 초상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다. 사진사의 요구에 따라 억지로 웃거나 포즈를 취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거울 보듯 표정 바꿔가며 셀카를 찍을 수 있으니 사진관에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관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진관에서 찍으면 다른가?

앙드레 바쟁은 미라 콤플렉스가 조형예술의 기원이며, 그것이 이후 초상화에 대한 욕망으로 승화됐다고 주장한다. 이 욕망은 다시 둘로 갈린다. 하나는 인물의 외관을 보존함으로써 시간을 유예시키고자 하는 주술적 욕망,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미라 콤플렉스의 변형, 결국 외관의 유사성에 만족하는 그런 욕망이다. 다른 하나는 외형적 유사성을 넘어 이상적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 두 번째 욕망이 전자의 ‘외형적 리얼리즘’과 구분되는 ‘심리적 리얼리즘’이다. 바쟁의 주장을 초상사진에 적용하자면 자신의 초상에 대한 인간의 또 다른 욕망은 바로 ‘이상적 모습’으로 향하는 셈이다. 실제 모습과 다소 거리가 있더라도 자신이 욕망하는 이상적 모습을 초상사진에서 보고 싶어 한다고 할 수 있겠다. 19세기의 명함판 사진이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디스데리는 가장 광범위한 고객층이었던 부르주아 시민 계급이 정확히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허바허바사장 홈페이지에는 가족사진, 웨딩사진, 베이비 포토를 비롯하여 분위기 있는 인물사진 등이 카테고리로 구분돼 있다. 거기에는 화목한 가족, 로맨틱한 커플, 귀여운 아이의 모습 등이 상징으로 등장한다. 현실의 삶과 다를지라도 사진을 통해 보고 싶은 모습을 영속적인 이미지로 구현해 놓았다 하겠다. 사진관의 특별함은 그런 것이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

사진첩이 사라졌다

사진첩이 사라졌다

사진첩이 사라졌다
02/19/2019
/ 박평종

사진첩이 사라지고 있다. 아니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미 일상의 기념사진을 모아 앨범 속에 간직하는 행위는 찾아보기 어렵다. 졸업앨범을 만들거나 하는 ‘제도’로서의 사진첩은 남아있지만 의미는 크게 퇴색했다. 게다가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기 위해 그 사진첩을 들춰보는 이는 거의 없다. ‘기념사진’이 가족의 유대를 강화시켜 주는 수단으로 작용했다는 부르디외의 사회학적 진단은 이제 ‘낡은’ 학설이 됐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을까? 가족공동체가 약화됐기 때문일까? 하지만 가족과 상관없는 기념사진 영역, 예컨대 여행사진에서도 앨범은 사라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사진을 과거의 시간과 연계시켜 주어왔던 ‘물질성’의 박탈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말하자면 과거 사진첩의 형태로 보존해 오던 과거의 이미지들은 인화지라는 종이에 달라붙어 있었으나, 이제 그 이미지는 디지털 데이터로 바뀌었다. 그 ‘데이터 이미지’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려면 모니터를 켜야 한다. 키나 버튼을 누르면 과거는 복원되고 다시 누르거나 코드를 뽑으면 과거는 눈앞에서 사라진다. 그 이미지는 물질성을 갖지 못한 일종의 환영과도 같다.

실상 정보(소리, 글, 이미지 등)는 ‘어딘가에’ 저장되어야 확산과 발전이 가능하다. 문명의 발전은 바로 이 정보의 ‘저장’ 덕분에 가능했다. 이를 가능케 해 준 것이 바로 매체다. 매체의 핵심 기능은 정보의 전달(커뮤니케이션)에 앞서 저장에 있다. 캐나다 학파의 연구에 따르면 구술문화 시대에는 정보 저장 매체의 부재로 과거와의 단절이 있었고, ‘장소’에 묶여 있어 공간적 확산도 불가능했다. 문자를 최초의 매체로 규정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최초의 저장 매체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관건은 문자의 물질성이다. 물질을 매개로 문자 정보는 시간을 초월하여 광범위한 공간적 확산이 가능했다. 키틀러가 축음기를 가장 중요한 매체 중의 하나로 꼽는 이유도 그 정보의 저장 때문이다. 소리는 본래 발화와 동시에 사라지는 정보였지만 축음기는 그 한시적 정보를 ‘통째로’, 말하자면 과거의 시간과 더불어 저장할 수 있게 했다.

사진도 같은 맥락에서 탁월한 매체다. 축음기와 달리 비록 순간의 시간이지만 과거를 이미지 정보로 온전히 저장한 최초의 매체인 것이다. 저장 방식은 종이라는 물질을 통해서다. 물론 최초의 사진은 종이가 아니라 금속판(다게레오타입)이라는 물질을 활용했지만 곧 종이로 대체됐다. 하지만 이제 종이라는 물질은 사진 정보의 저장에서 더 이상 독점적인 지위를 지니지 못한다. 디지털 매체가 종이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으며, 범위는 상상을 넘어설 정도다. 아날로그 시대의 사진은 물질과 결합돼 있었다. 즉 종이라는 물질 자체가 사진이었다. 따라서 사진에 담긴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종이라는 물질을 보존해야 했다. 하지만 물질은 시간이 흐르면 훼손된다. 물질성을 지닌 정보를 보존하는 것이 힘든 이유다. 반면 물질성을 갖지 않는 디지털 데이터의 경우 사정은 전혀 다르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데이터가 변형되지 않는 까닭에 정보의 훼손과 변질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물질에 달라붙어 있지 않아 그 정보는 무한히 ‘가벼워’ 전달도 용이하다. 어떤 점에서 물질성을 떠난 디지털 사진은 ‘순수한’ 정보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사진의 정보는 종이라는 물질과 전혀 상관없는 가상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매체가 지닌 또 다른 특성은 정보의 호환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아날로그 매체의 경우 인간이 수용할 수 있는 정보들은 소리나 문자, 이미지로 구분돼 상호 호환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디지털 매체에서 각기 상이한 형태의 이 정보들은 모두 0과 1의 조합을 통한 데이터로 전환된다. 모두 숫자 정보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호환이 쉽다는 것은 저장된 정보의 처리, 즉 상이한 형태의 정보를 융합하기가 용이하다는 뜻이다. 물질의 장점은 분명하나 단점 또한 명확하다. 당연히 사진이 물질성을 떠나면서 생겨난 단점이 있는 반면 반대로 과거에 찾아볼 수 없었던 장점들 또한 눈에 띈다. 그 변화를 눈여겨 볼 때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

 

 

사진과 디지털 코드

사진과 디지털 코드

사진과 디지털 코드
11/28/2018
/ 박평종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사진에 생겨난 가장 큰 변화는 두말 할 나위 없이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지배다. 모든 정보를 0과 1의 조합으로 변환시켜 저장하는 디지털 기술은 사진의 생산과 유통, 소비 방식을 크게 바꿔놓았다. 그 변화는 때로는 더디게, 때로는 급격히 진행됐으며, 일상에서부터 예술에 이르기까지 삶의 다양한 영역을 파고들었다. 디지털 기술은 단지 물리적인 변화만을 초래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와 감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기술에 익숙한 세대에게 변화의 속도와 범위는 매우 빠르고 넓다.

눈에 띄는 변화는 우선 디지털 기술의 수혜자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은 광범위한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양산했고, 이제 누구나 우수한 품질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카메라의 성능이 향상됐을 뿐만 아니라 쉽고 간편한 인화 방식 덕분에 사진작가와 대중 사이의 경계는 매우 희미해졌다. 급기야 사진가는 대중의 사진과 자기 사진과의 차별성을 분명히 해야만 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무엇이 예술사진과 아마추어 사진의 차이인지, 예술 사진가와 아마추어 사진가는 왜 다른지를 스스로에게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작가’로서의 사진가는 존재의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 처지가 됐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이미 일상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삶의 깊숙한 곳에서 작동하고 있지만 실상 사진 문화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이 남아있다. 고품질의 인화를 원하는 사진가들은 여전히 아날로그 카메라를 사용해서 사진을 찍고 그것을 다시 디지털로 변환시키는 복잡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전시나 출판과 같은 형태의 유통 방식은 비록 디지털 프린트를 활용할지라도 아날로그적이다. 결과물은 인쇄의 형태로 독자와 만나기 때문이다. 디지털 코드에 근간을 둔 모니터를 통한 사진 유통은 오히려 컴퓨터나 휴대폰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말하자면 디지털 코드는 아직 사진의 유통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한 상태다. 이는 정보의 저장이 디지털 방식일지라도 사람은 결국 아날로그 방식으로만 정보를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날로그-디지털 패러다임은 아직 이동 중이다.

한편 사진의 수정과 변형, 합성은 아날로그 시대에 비해 훨씬 쉽고 간편해졌다. 한 장의 사진에 담긴 정보는 생산자의 의도에 따라 간단하게 조작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 결과 사진은 현실을 충실히 기록한 진실의 담지자라는 생각이 뿌리째 흔들리게 됐다. 물론 아날로그 시대에도 사진의 진실성에 대한 의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 사진과 현실을 동일시하는 태도는 고루한 사고로 치부된다. 사진의 수정, 변형 여부를 시각적으로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포토샵 기술은 꾸준히 발전하여 이제 사진 자체만으로는 정보를 신뢰할 수 없게 됐다. 반면 허구와 환영, 가상에 대한 작가들의 탐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아날로그 시대의 사진가들이 ‘현실’과 씨름했다면, 이제 디지털 시대의 작가들은 ‘가상’과 대결하고 있다.

사진이 기술(Technic) 모델에 의거한 이미지 생산 수단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발명 초기부터 줄곧 지속되어 왔던 사진의 예술논쟁은 사진은 기술이지 예술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를 통렬히 비판하면서 벤야민은 이미 1930년대에 사진의 예술논쟁이 철저하게 ‘반(反)기술적인’ 예술 개념에 근거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기술과 예술의 상호 영향관계는 매우 밀접하여 둘을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현재 이 지적은 다시금 성찰을 필요로 한다. 기계의 자동화는 19세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눈부시게 향상됐고, 로봇과 인공지능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술 패러다임은 미래를 향해서도 열려있다.

박평종(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

책, 벽, 모니터

책, 벽, 모니터

책, 벽, 모니터
10/17/2018
/ 박평종

사진의 수용과 유통방식이 바뀌고 있다. 전통적으로 사진은 책과 같은 인쇄물의 형태로 유통되다가 현대미술과 맞물리면서 벽에 걸리기 시작했으며,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모니터를 주 매체로 채택했다. 책과 벽, 모니터는 현재 사진의 수용과 유통을 지배하는 대표적인 매체다. 이 세 가지 방식이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고 있지만 상황이 달라질 것임을 예측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머지않아 모니터가 사진의 유통을 지배하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 물론 책과 벽은 여전히 사진의 유통에 중요한 매체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범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사진은 발명 직후부터 책과 친화력이 강했다. 복제가 불가능한 다게레오타입을 제외하면 ‘본래’ 사진술은 이미지 복제를 위해 탄생했다. 니에프스의 엘리오그라피가 그 기원이고 탈보트의 칼로타입도 본래 복제 기술로 출발했다. 초상화를 대체하면서 명맥을 유지했던 다게레오타입은 오래 존속할 수 없었다. 복제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후 대부분의 사진은 복제 이미지로 유통됐다. 사진인쇄가 중요했다. 관건은 잉크다. 말하자면 은염 감광물질을 입힌 인화지를 대량으로 복제하려면 경제성이 낮았기 때문에 잉크 인쇄를 사진 복제에 적용시켜야 했다.
이를 위해 개발한 방법이 제판법이다. 금속판에 은염 유제를 발라 원판의 사진 이미지를 복제한 후 산으로 부식시켜 홈에 잉크를 묻혀 여러 장을 인쇄하는 방법이다. 제판법이 등장하면서 사진은 대량으로 인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판법의 문제는 활자와 사진을 동일 지면에 인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사진제판은 오목판, 활판은 볼록판이었기 때문이다. 활자와 사진을 동일지면에 인쇄할 수 없었던 탓에 활자를 인쇄한 지면에 제판법으로 인쇄된 사진을 오려 붙이는 방법을 활용하기도 했다. 활자와 사진을 함께 인쇄하는 방식은 망판법이 상용화되면서 일반화됐다. 신문, 잡지에 사진이 대량의 복제 이미지로 유통되는 것이다. 당연히 책에도 망판인쇄를 통한 사진이 등장한다. 이른바 인쇄매체의 시대다.
현대미술이 사진을 수용하면서 ‘예술사진’의 시대가 열린다. 미술 제도가 사진을 수용하기 전까지는 지면이 ‘거의’ 배타적인 사진의 유통 매체였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예술작품으로서의 사진은 지면 대신 미술관 벽면에 걸리는 것이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전통적인 인쇄매체가 위축되는 현상과도 관계가 있다. 인터넷 환경의 정착과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인쇄매체에 사진을 공급했던 이미지 생산자들은 난관에 봉착했다. 지면이 급속히 줄어드는 상황에서 그들은 벽면을 찾아다녀야 하는 지경에 처하게 됐다. 그렇다면 모니터는 어떤가?
신문, 잡지와 같은 ‘전통적인’ 지면은 디지털 매체에 점차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우리는 이미 PC 모니터나 휴대폰 액정화면을 통해 대부분의 시각 정보를 수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장단점은 있다. 우선 모니터는 시각 정보를 ‘물질적으로’ 보존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면이나 벽면에 비해 다른 많은 풍부한 장점을 갖고 있다. 우선 디지털 데이터는 아날로그 데이터에 비하면 복제에 소요되는 시간과 자본의 양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 원본 이미지와 복제 이미지의 품질에도 차이가 없다. 물론 고품질 데이터 경우는 사정이 다르지만 말이다. 디지털 이미지를 유통시키는 매체에 대한 접근성도 훨씬 좋다. 인쇄매체와 달리 인터넷 매체에 이미지를 유통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한히 열려있다. 물론 모니터는 종이에 비해 훨씬 고가지만 누구나 크고 작은 모니터 한 두개씩은 갖고 있는 시대다. 그렇게 모니터의 시대가 왔지만 여전히 지면과 벽면도 우리 곁에 있다. 책과 벽, 모니터가 지닌 장단점을 면밀히 따져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할 때다.

박평종(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

누가 창작을 하든 무슨 상관인가?

누가 창작을 하든 무슨 상관인가?

누가 창작을 하든 무슨 상관인가?
07/31/2018
/ 박평종

창작자의 개념이 모호해지고 있다. 수많은 저작권 분쟁 사례들이 그 점을 입증한다. 그에 따라 창작자를 ‘법적으로’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저작권을 어디까지 보호할 것인지도 골칫거리다. 특히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는 시대가 오면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이른바 ‘생각하는 기계(Thingking machine)’가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면 그를 창작자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

현행 저작권법은 저작권자를 독창성의 원천으로서의 창작자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 범위를 ‘인간 저자’만으로 한정한다. 예컨대 2011년 사진작가 데이비드 슬레이터가 인도네시아에서 멸종 위기종 원숭이 사진을 찍다가 카메라를 빼앗겨 발생한 사건을 보자. 사진작가의 카메라를 빼앗아 달아난 원숭이는 여러 장의 셀카를 찍었는데, 사진작가는 자신이 찍은 사진과 원숭이가 찍은 사진을 섞어 작품집으로 출간했다. 슬레이터는 2014년 원숭이가 찍은 사진을 무단으로 게재한 위키피디아에 사진 삭제를 요구했고, 이에 저작권 소송이 진행됐다. 법정은 비록 원숭이는 저작자가 될 수 없지만 사진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25%를 멸종 위기종 원숭이 보호에 사용하라고 판결했다. 여기서 관건은 인간만이 저자일 수 있으며 동물이나 로봇은 저작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것이다.
본래 저자(author), 창작자(originator) 개념은 저자가 저작물의 소유자임을 법적으로 보호하려는 소유 개인주의(possessive individualism)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저자가 자신이 생산한 저작물에 대해 배타적 권리를 가지려면 타인의 그것과 명확히 구분되는 독창성(originality)이 있어야 했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저작권 분쟁에서 결정적 기준이 되는 요소가 그것이다. 그런데 법적으로 보호받는 창작자들의 작품이 그 ‘독창성’이라는 것을 진정 갖고 있는가?
알고리듬과 머신러닝을 활용하여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인공지능 ‘창작기계’는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인간 예술가들보다 훨씬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독창성의 차원에서 기계는 인간을 능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무엇이 ‘없었던 작품’인지 쉽게 가려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의 ‘창작기계’, 예컨대 넥스트 렘브란트와 같은 인공지능은 화가의 화법을 머신러닝 학습으로 분석하여 그와 유사한 그림을 그리는 차원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관건은 이 기계들을 ‘어떻게’ 프로그램 할 것인가에 있다. 만약 프로그래머가 전혀 새로운 알고리듬을 적용하여 규칙에서 벗어난 작품을 산출하도록 프로그램 한다면 사태는 달라질 수 있다. 그렇게 생산된 ‘작품’의 저자는 누가 될 것인가? 이미 예술가와 프로그래머의 적극적인 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들은 그에 따른 작품의 공동저자다. 컴퓨터가 저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힘입어 카메라의 성능은 나날이 고도화되고 있어 이제 ‘누구라도’ 물리적 품질이 뛰어난 사진을 생산할 수 있다. 심지어 원숭이도 셀카를 찍고, 카메라를 도둑맞은 사진작가는 원숭이가 ‘대충’ 찍은 그 사진을 모아 작품집으로 출간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보다 고도의 복합적인 사고가 가능한 기계가 카메라를 잡는다면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인간 사진가의 작품보다 훨씬 ‘창의적인’ 사진을 그가 생산해 낼 날이 멀지 않았다. 이미 인공위성이나 드론, CCTV 카메라는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인간을 따돌린 지 오래다. 창의성의 척도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재고할 때가 됐다. 그리고 인간만이 저자일 수 있다는 뿌리 깊은 통념에 대해서도 반성해 보아야 한다. 하나의 저작물이 진정 가치 있다면 누가 생산하느냐는 부수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