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석의 사진잡학사전4 – 천연당사진관과 외상값

우리나라 사진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관은 대한국사진사(大韓國寫眞師)이자 유명 서화가(書畵家)였던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이 1907년 처음 설립한 ‘천연당사진관(天然堂寫眞館)’일 것입니다. 지금의 서울 중구 소공동과 태평로 2가 및 을지로 1가에 걸쳐있던 석정동(石井洞)에 살던 김규진은 자신의 집 사랑 뒤 정원에 사진관을 설립했습니다. 당시 서울에 있던 대부분의 사진관은 청일전쟁 후 진출한 일본인 사진사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한국인 사진사로는 거의 유일하게 김규진과 그의…

박주석의 사진잡학사전 3

최초의 국산 35mm 필름카메라 베릭스(VERIX)를 아십니까? 오늘날 아날로그 시절의 필름카메라는 거의 박물관용 유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다만 2~3 m 규모의 대형 사진작업을 하거나 은염 흑백사진을 계속하는 소수의 전문작가들 정도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8x10inch 정도의 시트필름을 사용하는 대형카메라를 쓰는 작가들은 여전히 상당수 있지만, 35mm카메라를 갖고 롤필름을 사용해서 작업을 하는 작가는 제가 알기로 국내에 5명 정도를 넘지 않을 것입니다.…

오경석의 사진과 매휘립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 1831~1879) :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원거(元秬), 호는 역매(亦梅)·진재(鎭齋)·천죽재(天竹齋) 등을 썼고, 서울 출신이다. 아버지는 당상역관이며 지중추부사를 지낸 오응현(吳膺賢)이고, 아들은 3·1운동 33인의 한 사람인 오세창(吳世昌)이다. 조선 말기의 개화사상의 비조라 할 수 있다. 이상적(李尙迪)의 문하에서 한어(漢語)와 서화를 공부했고, 가학(家學)으로 박제가(朴齊家)의 실학을 공부했다. 1846년(헌종12) 역과(譯科)에 합격해 역관으로 활동했고, 1853년(철종4) 4월 북경 행 사신의 역관으로 청나라를 방문한 이래…

박주석의 사진잡학사전 2

지난 소식에 이어 ‘사진으로 돈을 벌려면’이란 칼럼에서 소개한 1969년도 당시 기사의 내용을 이어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섯 번째로 하는 권고는 ‘수염을 길러라’는 내용입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여성 사진가가 거의 없던 남자들이 주로였던 시절의 이야기이니 웃어넘길 수밖에 없습니다. 핵심은 수염을 정성스럽고 보기 좋게 잘 기르면 매우 점잖아 보이고 클라이언트의 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