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의 《 사진·문학·인문학의 카르텔 4 》 : 포스트 사진과 디지털 환영

김혜원의 《 사진·문학·인문학의 카르텔 4 》 : 포스트 사진과 디지털 환영

김혜원의 《 사진·문학·인문학의 카르텔 4 》 : 포스트 사진과 디지털 환영
04/28/2021
/ 김혜원

디지털의 등장으로 멀티미디어와 정보의 광야를 유목하며 자신이 원하는 음성, 문자, 영상 등의 정보를 자유자재로 채집하고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아티스트(Artist)’를 넘어 ‘크리에이터(Creator)’라는 이름을 획득하는 시대가 되었다. 시청각 기술과 컴퓨터의 통합이 세상을 기록하고 해석하고 소통하는 방식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와 이른바 포스트 사진(post-photographic)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포스트 사진 시대의 이미지는 이미지를 실제 세계의 사물에서 인과적으로 생성된 진실한 기록으로 간주하던 기존의 화학적 아날로그 사진에서 벗어나고, 단순히 비가시적이고 초현실적인 장면을 구성하고 조작했던 사진들로부터도 벗어난다. 즉 사진의 역사 초창기에 시도되었던 오스카 레일랜더(Oscar Rejlander)의 합성 사진이나 존 하트필드(John Heartfield)의 포토몽타주, 초현실적 이미지로 외부 현실의 등가물이 없는 자율적 시각을 추구했던 모더니즘 사진이나 이미지 요소들을 자르고 붙이고 인용하고 결합하는 디지털 ‘전자브리콜라주(electrobricolage)’의 세계를 모두 뛰어넘는다. 포스트 사진 시대의 이미지는 모든 감각 매체의 광범위한 전환과 무수한 융합(convergence)을 가능케 한 유비쿼터스의 세계에서 과거와는 다른 감각으로 가상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디지털 환영을 추구한다.

   의자가 쑥쑥 자라고

   의자의 아래에

   자란 만큼의 깊은 우물이 생긴다

   우물 층층이 보관되었던 옷들이 나와

   사람과 물고기가

   한 몸이 되었던 오랜 자국을 털어낸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털어낼 수 있는 자국만을

   의자는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털어낼 수 없는 자국은

   의자 아래로 감추어져

   의자는 쑥쑥 자라고

   사람과 물고기는 의자 위에서만 산다

   사람의 몸이던

   물고기의 몸이던

 

   -박강우, 「합성사진 혹은 더빙」 전문

소아과 의사이면서 시집 『앨리스를 찾아서』에서 뉴미디어와 관련한 시를 다수 발표한 바 있는 박강우의 「합성사진 혹은 더빙」은 가상 세계를 디지털 영상처럼 보여주고 있는 시이다. 이 시는 “합성사진 혹은 더빙”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시각 매체와 청각 매체가 융합된 한 편의 디지털 영상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시는 “자라고” “생긴다” “나와” “털어낸다” 등 현재진행형 동사를 수반하는 묘사를 통해 이 “합성사진”이 스틸 이미지가 아니라 “더빙”을 얹힌 동영상 이미지임을 암시한다. 또한 이 시는 의미의 유기적 연관성이라는 전통적인 독법을 무시한 채, 자동화된 인간의 지각 방식을 흔드는 변형되고 왜곡된 이미지 속에서 초현실 혹은 가상현실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쑥쑥 자라”는 “의자”, “의자의 아래에” 생겨나는 “우물”, “사람과 물고기가/한 몸이 되었던 오랜 자국을 털어”내는 “옷들”, “의자 위에서만” 사는 “물고기” 등의 신화적 이미지들은 실제와 허구,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에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흔들고 초현실의 낯선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이는 박강우가 이들 이미지들을 연결할 고리를 가상과 현실이 혼재하고 융합되는 유비쿼터스의 세계 속에서 찾았기 때문이었다.

 

김호성, 유령 도시, 뉴욕_N1402, Pigment Print, 140×210cm, 2014

김호성, 유령 도시, 뉴욕_B1415_Pigment Print, 75×75cm, 2014

김호성의 《유령 도시, 뉴욕》은 초상권을 보장하기 위해 모호하게 이미지를 왜곡해 놓은 구글 어스의 거리뷰 이미지를 캡처하여 재구성한 사진들이다. 김호성은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이미지로 부유하는 뉴욕 풍경을 통해 현대인의 욕망과 집합 무의식을 표상하는 환등상(幻燈像)으로서의 대도시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모호하게 뭉개진 개인이나 인물 군상들은 메트로폴리스에서 살아가는 도시인의 익명성과 소외감을 더욱 극대화한다. 그러나 김호성의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사진이 기록성이라는 사진의 본질적 특성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이다. 미디어의 발달로 동시 편재(遍在)적 시공간을 체험하게 되면서 뉴욕 도심에 발을 딛지 않고서도 뉴욕 웨스트 53번가의 바람에 나부끼는 성조기와 쇼핑가를 활보하는 뉴요커들을 ‘찍을’ 수 있었던 그의 사진은 포토그램(photogram)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대상물을 매개로 존재했고 대상물을 직접 지시하는 특성으로 ‘그때 거기’에 있었음을 인증해 온 사진의 본질을 돌아보게 한다.

마틴 리스터(Martin Lister)는 「전자 영상 시대의 사진」에서 1990년대 이래 화학적 아날로그 처리법을 대체하고 암실에서 해방된 전자적 디지털 사진, 나아가 컴퓨터와 시청각 매체가 정지 사진과 융합된 디지털 영상이 주요 문화 산업으로 발전하면서 사진의 본성 자체를 뒤흔들고 사진의 존재론적 지위에 도전했다고 말한다. 박강우는 다매체의 혼성적 이미지를 시적 장치로 활용한 실험적인 시를 통해 이미 존재하는 ‘무언가(something)’에 대한 재현의 문제, ‘실재(the real)’를 정의하고 이해할 새로운 방법으로서의 가상현실의 문제를 제기한다. 김호성은 실제 대상물이 없는 웹(web)에서 뉴욕 거리의 ‘유령’ 같은 이미지를 ‘채집’한 ‘이미지 속 이미지’를 통해 ‘그때 거기’에 있지 않고서도 ‘지금 여기’를 제시할 수 있는 포스트 사진의 현 상황을 보여준다. 포스트 사진 시대의 시각 체계의 변화, 즉 보는 방식과 이미지 제작 방식의 변화를 초래한 디지털의 세계는 새로운 상상력과 리좀적 사유로 멀티미디어와 정보의 광야를 자유롭게 유목하는 이들에게 디지털 환영을 창조하는 유비쿼터스 세계에서의 ‘크리에이터’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 『열린정신 인문학연구』 제19권 제1호에 게재한 논문 일부를 인용, 재구성하여 쓴 글입니다.

 

김혜원(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연구교수, 사진가)

김혜원의 《 사진·문학·인문학의 카르텔 3 》 : 암실의 추억

김혜원의 《 사진·문학·인문학의 카르텔 3 》 : 암실의 추억

김혜원의 《 사진·문학·인문학의 카르텔 3 》 : 암실의 추억
04/07/2021
/ 김혜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자신이 쓴 사진론 제목을 ‘어두운 방(camera obscura)’이 아니라 ‘밝은 방(camera lucida, 원제 La Chambre claire)’으로 붙일 정도로, ‘카메라 옵스큐라’에서의 프로 사진가가 찍은 세련된 기호로서의 예술 사진보다 ‘카메라 루시다’에서처럼 아마추어 사진가가 찍은 원초적인 이미지를 더 편애하였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사진은 무수한 아마추어들의 원초적 이미지들을 양산하며 포토샵으로 대표되는 건식 명실(明室)에서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아날로그 사진은 ‘촬영(shooting)-현상(developing)-인화(printing)’라는 일련의 ‘프로세스(process)’를 거치며 습식 암실(暗室)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사진 이미지가 광학 장치를 통해 상(像)을 형성하는 물리적인 작용뿐만 아니라 물체에 닿은 빛에 대한 할로겐화은(AgX)의 감응이라고 하는 화학적인 작용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사진의 영상화 과정에서 중요한 물리적 요소는 빛과 어둠이고, 암실은 이 빛과 어둠이 변증하는 시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사진기 몸통 속의 세계,

   보라, 이 어둡고 한정된 공간 속으로

   새어들어오는 빛의 눈부심을

   나는 별빛의 렌즈를 통해, 움직이는 매혹

   그 존재의 신비를 희미하게 목격할 뿐이다

 

   난 넋을 미치도록 쥐어짜, 發光한다

   저 무심한 우주의 필름 속에, 살아 펄떡대는

   이 호흡하는 순간의 관능을 새겨놓기 위하여

   문득, 몸 안에 저장된 태양빛의 기억이

   투명한 강물의 인화지로 나를 이끈다

   마음을 놓아두고 강물에 안겨버린

   그림자, 욕망이 떠나버린 내 현생의 폐허

 

   나는 홀로 태어났고 홀로 죽어갈 것이다

   삶이란 외마디 발광,

   죽음 앞에서 미칠 수 없다면

   이 생명의 황홀한 빛은 나를 맛보지 못하리

   흐르는 물비늘 위의 은빛 정지,

   고독한 자들은 시를 찾아 떠돌고

   우주는 그들을 위해 영원의 오르가슴을 예비한다

 

   난 잠시 죽음을 놔두고 그림자 숲속으로 간다

 

   -유하, 「사진기 속의 우주」 전문

유하의 「사진기 속의 우주」는 우주라는 세계를 인식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암실’에서의 사진 제작 과정에 비유하여, ‘사진기’로 구현되는 영상 매체의 예술 세계를 지향하는 자신의 예술관을 드러내고 있는 메타시이다. 그것은 시로 등단하기 이전 단편 영화를 제작한 영화감독으로서의 유하가 사진의 제작 공정 및 사진 이미지에 의미가 생성되는 방식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둡고 한정된 ‘카메라 옵스큐라’ 안의 ‘렌즈’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통해 존재의 신비를 목격하는 ‘눈’에서 출발하여 그의 예술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사진 제작 ‘프로세스’에 따라 전개해 나간다. 즉 ‘태양빛의 기억’이 ‘현상액’과 ‘정지액’이라는 ‘투명한 강물’ 속 ‘흐르는 물비늘’의 ‘교반(agitation)’ 과정을 거쳐 ‘은염’이 발린 ‘인화지’ 위에 ‘은빛 정지’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그림자[影]’라는 환영(幻影)의 세계를 지향하면서 우주의 ‘필름’ 속에 살아 호흡하는 순간의 관능을 새겨놓고 세계와의 동일화, 그 ‘영원한 오르가슴’을 꿈꾸는 높은 예술적 이상과 쓸쓸한 작가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Richard Nicholson, darkroom series, 2013

리처드 니콜슨(Richard Nicholson)의 <암실 시리즈(darkroom series)>는 사라져가는 습식 암실을 촬영하여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이미지 제작 방식의 변화를 상기시키고 있는 메타사진이다. 벽으로부터 반사된 빛이 필름이나 인화지에 닿지 않도록 까맣게 칠해 놓은 벽이 매우 인상적인 이 암실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사진이라는 매체의 물질성이다. 두 대의 테이블 위에는 각각의 확대기가 놓여 있다. 오른쪽 테이블 모퉁이에는 빛의 기억을 저장해 놓은 현상된 필름이 놓여 있다. 이 네거티브 필름을 확대기의 캐리어에 끼우고 초록상자 속 후지 인화지나 흰색상자 속 일포드 인화지에 노광(露光)을 한 후 현상액과 정착액의 화학적 처리 과정을 거치면 인화지 위에 상(像)이 정착되는 것이다. 리처드 니콜슨은 사진 발명 이래로부터 포토샵이 등장한 1990년까지 150여 년간 지속되어 온 기술적 복제 과정이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물질성과 프로세스에 기반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카메라가 디지털카메라로, 필름이 메모리카드나 하이드라이브로, 습식 암실과 광학 확대기가 컴퓨터의 이미지 조작 소프트웨어의 알고리즘으로 대체되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유하의 시나 리처드 니콜슨의 사진은 빛과 어둠이 변증하는 시공간으로서의 ‘암실’과 ‘확대기’와 ‘프로세스’가 이진 코드 0과 1이 증폭하는 시공간으로서의 ‘모니터’와 ‘포토샵’과 ‘프로그램’으로 바뀐 오늘날 이미지 제작 환경에서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즉 이들의 시와 사진은 아날로그 사진 영상의 제작 원리에서 절대적 의미를 갖는 ‘암실’의 역할을 새삼스레 환기시킨다. 다만 유하는 ‘암실’의 작업 과정을 통해 작가의 창조적 정신성을 더 강조하였고, 리처드 니콜슨은 ‘확대기’나 ‘필름’이나 ‘인화지’와 같은 사진 매체의 물질성을 더 강조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작가의 창조적 정신성과 매체의 물질성이 바로 모더니즘을 이끌어 온 핵심 축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진론 『밝은 방』을 저술하면서 구조주의 이론가에서 후기구조주의 이론가로 전향하여 ‘저자의 죽음’을 선언하고 ‘독자’의 지위를 부상시켰던 바르트가 ‘어두운 방’이 아니라 ‘밝은 방’을 편애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열린정신 인문학연구』 제19권 제1호에 게재한 논문 일부를 인용, 재구성하여 쓴 글입니다.

 

김혜원(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연구교수, 사진가)

김혜원의 《 사진·문학·인문학의 카르텔 2 》 : 사진에 관한 각서

김혜원의 《 사진·문학·인문학의 카르텔 2 》 : 사진에 관한 각서

김혜원의 《 사진·문학·인문학의 카르텔 2 》 : 사진에 관한 각서
03/16/2021
/ 김혜원

카메라(사진)는 발명 당시부터 대중의 열광을 받은 히트 상품이었고, 18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새로운 모델이 출시될 때마다 지속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핫한 상품이다. 1939년 사진술이 공표되었을 때 다게레오타입을 보러 운집한 군중의 열광이나 사진 발명과 함께 회자되는 서구 예술가들의 열띤 사진 담론처럼, 외래품으로서의 카메라를 수입한 식민지 조선의 예술가들에게서도 사진 담론은 다양하게 펼쳐졌다. 동아일보 사진부장으로 일장기말소사건을 주도한 신낙균(申樂均)은 사진을 신문, 서적, 잡지, 의학계, 경찰계, 과학 등 응용 범위가 광대하여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학술’로 보았고, 특히 사진이 ‘국가의 안위’를 지배하는 기술임을 강조하였다. 일제 강제 해산 직전의 카프(KAPF) 영화부 책임자였던 전평(全平)은 사진을 정치나 경제나 사회학에 대한 ‘이론체계’와 ‘교육’이 필요한 기계적 예술로 보았다. 친일로 전향한 주지주의 문학이론가 최재서(崔載瑞)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카메라-아이’로 대상을 관찰하는 방식의 리얼리즘 소설론을 펼친 반면, ‘일제 감시 대상 인물 카드’에 2점의 범죄자 신상기록용 사진을 남긴 임화(林和) 등 마르크스주의 문학인들은 사진술을 단순한 모방 행위로 간주하여 사진기적 재현은 리얼리즘이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정세와 전황에 따라 근대 과학 기술이자 문화 예술인 사진을 십분 활용한 일제의 지배 전략에 굴종해야 하면서 그에 저항해야 했던 이들에게는 사진에 대한 매혹과 우려의 양가감정이 더 미묘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1 + 3

3 + 1

3 + 1  1 + 3

1 + 3  3 + 1

1 + 3  3 + 1

3 + 1  1 + 3

3 + 1

1 + 3

 

선상의점 A

선상의점 B

선상의점 C

 

A + B + C = A

A + B + C = B

A + B + C = C

 

<중략>

 

(태양광선은, 凸렌즈때문에수렴광선이되어일점에있어서혁혁히빛나고혁혁히불탔다, 태초의요행은무엇보다도대기의층과층이이루는층으로하여금凸렌즈되게하지아니하였던것에있다는것을생각하니낙이된다, 기하학은凸렌즈와같은불장난은아닐른지, 유우크리트는사망해버린오늘유우크리트의초점은도처에있어서인문의뇌수를마른풀과같이소각하는수렴작용을나열하는것에의하여최대의수렴작용을재촉하는위험을재촉한다,사람은절망하라, 사람은탄생하라, 사람은절망하라)

 

-이상, 선에 관한 각서 2」 부분

이상(李箱, 1910~1937)의 「선에 관한 각서 2(1931)는 카메라에 관한 우려와 각성의 목소리가 드러난 시이다. 7편의 연작시 「삼차각 설계도 중 하나인 이 시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카메라 렌즈의 형상과 기능이다. 1연의 ‘1+3’ 혹은 ‘3+1’의 조합은 오른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카메라 렌즈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 ‘凸렌즈(볼록렌즈)’의 기능은 ‘태양광선’을 한곳에 모으는 ‘수렴작용’에 있다. 그런데 선을 의미하는 1과 공간을 의미하는 3의 차원에서, 선상의 점 A와 B와 C가 동일한 한 점을 향해 직선으로 ‘수렴’되는 현상은 바로 카메라 옵스큐라가 완성한 데카르트적 원근법의 세계이다. 따라서 이상은 한 점으로 ‘수렴’하는 이 볼록렌즈의 기능을 지속적인 동일성의 원리로 ‘수렴’을 ‘재촉’하는 유클리드 기하학과 동일시한다. 즉 이상은 이 기하학을 선원근법을 낳은 과학기술의 정수로서의 볼록렌즈와 같은 ‘불장난’으로 여기고 인류가 근대 서구 문명을 상징하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위험’에서 벗어나 ‘인문의 뇌수’, 인문 정신의 정수를 추구하며 ‘절망’의 끝에서 다시 ‘탄생’해야 함을 촉구하고 있다.

 

신칠현_자화상_1926

일제 강점기에 서울 종로에서 사진관을 운영한 영업사진사이자 경성사진사협회 창설 멤버로 활동한 신칠현(申七鉉, 1900∼1992)의 <자화상>은 직업사진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사진이다. 삼각대에 받친, 어깨 높이의 카메라를 다루며 촬영에 열중해 있는 모습에는 카메라라는 근대 문물의 메커니즘을 체득한 선각적 사진가로서의 자부심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 <자화상>이 더 의미 있는 것은 이 사진이 카메라 옵스큐라가 완성한 데카르트적 원근법의 질서를 해체하고 당당히 시각 주체를 선언하고 있는 사진이기 때문이다. 이성과 합리성에 기초하여 세계를 카메라 렌즈로 수렴되는 기하학적 공간으로 인식하는 데카르트적 원근법에는 시선의 주체와 시선의 대상이라는 이분법적 위계질서가 내재해 있다. 따라서 신칠현은 자신을 피사체로서의 원근법적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이미지를 능동적으로 재현하는 원근법적 주체로 전면화한다. 특히 대형카메라를 다루는 힘찬 주먹과 카메라를 주시하는 시선은 카메라라는 기계를 사진적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인식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시 핫한 박래품으로서의 카메라 수용 시기의 사진 담론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식민 제국과 식민지 조선의 관계에서 식민화의 도구로 작동하는 카메라 기능에 대한 식민지적 무의식 혹은 의식적 공포나 경계가 조선인들에게 내재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경성고등공업학교(현 서울대 공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건축 기사로 근무했던 이상의 경력은 카메라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개발 정책을 위한 테크놀로지로 기능했던 당시의 상황을 연상시킨다. 『조선시론』의 의뢰로 일반 사진가로 참여하여 순종(純宗)의 국장을 기록한 신칠현은 순종 인산 시 공포된 ‘국장 촬영규정’이 암시하듯, 시각적 주체와 시각적 재현의 메커니즘을 둘러싼 관(官)과 민(民)의 헤게모니 싸움을 추측케 한다. 결국 이상의 시나 신칠현의 자화상은 식민 지배 시각 체제로서의 제국의 렌즈에 대응하기 위한 사진에 관한 각서였고, 이는 곧 식민지 조선인들의 엄숙한 실존적 메시지가 투영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김혜원(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연구교수, 사진가)

김혜원의 《 사진·문학·인문학의 카르텔 1 》 : 카메라 옵스큐라 안에서의 사색

김혜원의 《 사진·문학·인문학의 카르텔 1 》 : 카메라 옵스큐라 안에서의 사색

김혜원의 《 사진·문학·인문학의 카르텔 1 》 : 카메라 옵스큐라 안에서의 사색
02/24/2021
/ 김혜원

1839년 8월 19일, 사진은 그 특허권으로 자신의 생년월일을 법률상에 올린 유일한 예술이다. 사진의 발명은 이미지 제작을 인간의 손이 아니라 기계가 맡게 되었음을 알린 혁명적인 사건이었지만, 암실 벽에 반사된 상(像)을 얻기 위해 바늘구멍을 통해 빛을 집중시켜 사진 이미지를 얻는 원리는 중국의 묵자 시대나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도 이미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발명된 카메라의 기원은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어두운 방)이다. 이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한 순수한 우리식 명칭은 정약용이 명명한 ‘칠실파려안(漆室玻瓈眼)’이다. 칠실(漆室)은 검은 옻칠을 한 것처럼 컴컴한 방이나 공간으로, 이는 카메라 옵스큐라에 해당하는 말이다. 파려안(玻瓈眼)의 파려는 파리(玻璃)로, 이는 오늘날의 유리나 수정 일종의 렌즈를 가리키는 말이다.

 

   벌레들이 정지문에 구멍을 내놓은 거다 그 구멍 속으로 빛이 들어오면
   아궁이 그을음이 낀 벽에 상이 맺혔다
   나비가 지나가면 나비 그림자가, 마당에 뿌려놓은 햇싸라기를 쪼아 먹는 새 그림자가
   살강의 흰 그릇들에 거꾸로 맺히곤 하였다
   손가락으로 밀면 까무스름 묻어나던 그을음은
   불에 탄 짚들이 들판과 하늘을 잊지 못하고 벽에 붙여놓은 필름,
   그 위로 떠가는 상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어둠을 더 편애하게 된 것이 아닐까

   <중략> 

 

   영사기 필름처럼 차르르 돌아가던 풀무질 소리 뚝, 끊어진 어디쯤일까
   그사이 암실벽 노릇을 하던 정지벽도 까무룩 사라져버렸고
   상할머니 곰방대처럼 뽀끔뽀끔 연기를 뿜어 올리던 굴뚝도 사라져버렸다.
   이제는 스위치를 올리면 바퀴처럼 단박에 어둠을 내쫓는 한 평 반의 부엌
   싸늘한 불빛이 거리를 떠돌다 온 胃를 쓸쓸히 맞이할 뿐이다
   문을 닫은 채 웅크려 빛을 빨아들이는 벌레 구멍을 숨구멍처럼 더듬는 밤
   하늘에 난 저 별은 누가 갉아 먹은 흔적인지,
   구멍 숭숭한 저 별이 빨아들이는 빛은 어느 가슴에 가서 맺히는지
   이런 적적한 밤 나는 아직도 옛날 정지를 잊지 못해서
   하릴없이 낡은 밥상을 끌어안고 시를 쓰곤 한다
   밥상이 책상으로 둔갑하는 줄은 까맣게 모르고 새근거리는 식구들,
   그들 곁에서 쓰는 시가 비록 꼬들꼬들하게 익은 밥알 같은 것이 될 수는 없겠지만
   할머니의 아궁이에서 올라온 그을음이 부엌강아지 젖은
   콧등에 까뭇이 묻어날 것 같아선
   애벌레처럼 사각사각 연필을 깎으면서
   살강의 흰 그릇처럼 정갈하게 놓여 있는 종이 위에
   어룽거리다 가는 말들을 찬찬히 베껴 써보곤 하는 것이다 

 

   – 손택수, 「바늘구멍 사진기」 부분

 

손택수의 「바늘구멍 사진기」는 서양의 카메라 옵스큐라나 정약용의 ‘칠실파려안’의 원리를 일상생활 속에서 포착해 낸 시이다. 이 시에서 손택수가 체험한 카메라 옵스큐라는 시골집 정지문이 달린 재래식 부엌이다. 정지문에 난, 벌레들이 뚫어놓은 구멍 속으로 빛이 들어와 살강의 흰 그릇들에 나비와 새의 상(像)이 맺히는 모습을 보고 쓴 이 시에서 구멍은 렌즈 즉 ‘파려안’이고 아궁이 그을음이 낀 벽은 필름이며 어둠 속의 부엌은 카메라 옵스큐라 즉 ‘칠실’이 된다. 그런데 이 카메라 옵스큐라 안에서 손택수가 사로잡힌 것은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이 벽의 그을음 위로 떠가는 상들, 즉 영사기 필름처럼 돌아가던 환영이었다. 따라서 손택수는 카메라 옵스큐라의 환영적 특성에 근거하여 거꾸로 맺히곤 하였던 나비 그림자나 마당에 뿌려놓은 햇싸라기를 쪼아 먹는 새 그림자의 아우라를 놓치고 싶지 않아 시를 쓰곤 한다고 고백하며, 문학이 ‘어두운 방’에서 만들어지는 내면적이고 허구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작업임을 밝히고 있다.

 

조현택_빈방-0번방-나주시 금계동 57_Inkjet Print_80×120cm_2015

조현택의 <빈방> 시리즈는 어두운 빈방을 거대한 카메라 옵스큐라로 만들어 방안에 비친 시적이고 서정적인 영상을 포착해 낸 사진 작업이다. 이 <빈방> 시리즈는 도시를 재생하는 과정에서 철거가 예정된 빈집의 빈방에 들어가 벽이나 지붕에 구멍을 내고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을 따라 그 맞은편 마당 풍경이 상하좌우가 전도된 상태로 벽에 비친 영상을 촬영한 사진 이미지들이다. 노란 유채꽃이 핀 바깥 풍경이 텅 빈 방안으로 들어와 빈집의 내력이나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금계동’의 빈방 사진처럼 조현택은 실제와 환영이 공존하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삶에서 죽음으로 이행하고 있는 빈방의 아우라와 소멸되는 시간을 필름에 누적시켰다. 그리하여 죽음의 방부제로서의 사진의 본질을 이해한 그의 사진은 파괴되고 소멸될 공간을 풍화되지 않을 기억으로 보존하면서 지상의 사라져가는 존재에 대한 애도의 정을 더욱 인상적이고 개성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카메라 루시다』에서 ‘코드 없는 메시지’와 ‘코드 있는 메시지’가 공존하는 사진의 특성을 사진의 역설로 파악한 바 있다.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 밝은 방)에 의해 물질과의 직접적인 접촉으로 이루어지는 ‘코드 없는 메시지’로서의 사실적 이미지와 카메라 옵스큐라의 조리개 구멍에 의해 절단된 시각에서 이루어지는 ‘코드 있는 메시지’로서의 허구적 이미지를 구별했던 것이다. 이에 손택수와 조현택은 옛 부엌이나 빈방의 카메라 옵스큐라 안에서 나비나 새나 유채꽃이라는 ‘실물/실체’보다 나비 그림자나 새 그림자나 유채꽃 그림자, 그 ‘그림자[影]’들이 어룽대는 환영(幻影)적 이미지가 그들이 추구하는 이미지임을 말한다. 그들의 예술이 지상의 사라져가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을 추구하는 허구적 세계임을 보여준다. 나아가 손택수와 조현택의 이미지들은 카메라 옵스큐라가 빚어내는 허상, 또는 실상과 허상이 만화경처럼 어룽대는 환영 속에서 긴 사색에 잠기고 싶은 이들에게 지금 아파트 창문에 암막커튼을 드리우고 그 커튼 사이로 낸 작은 바늘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따라 맞은편 실내에 맺히는 황홀한 바깥 풍경을 음미해 보기를 부추기고 있다.

 

* 『열린정신 인문학연구』 제19권 제1호에 게재한 논문 일부를 인용, 재구성하여 쓴 글입니다.

 

김혜원(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연구교수,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