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

정기세미나의 의미

강용석, 선전촌 사진, 2000-2006   “2019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정기세미나”를 맞아 행사의 목적과 의미 등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세미나는 ‘2019년 4월 24일 오후 3시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위치한 명지대학교 행정동 3층 대회의실’에서 개최합니다. 사진작가 두 분을 초대해서 발표를 듣습니다. 헌데 세미나에 ‘왜’ 작가일까요? 오늘날 사진은 ‘단지’ 일개 매체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현대미술은 사진을 이미 동시대의 가장 중요한 예술…

박주석의 사진살롱 14 – 명성황후 사진의 실존과 진위 논란 1

일제 치하에 있던 1935년, 『조선일보』의 1월 1일자 신년호에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사진 두 장이 간단한 설명과 함께 실렸습니다. 60년 전 설날을 지내는 풍습을 다룬 특집 기사 중 하나였습니다. 두 장 모두 ‘명성황후’의 모습인지 여부로 지난 몇 십년간 숱하게 논쟁을 불러일으킨 사진들입니다. 당시 신문의 기사를 요즘 말로 번안해서 그대로 옮겨봅니다. 「규중에 숨은 고운 각시들」…

박주석의 사진살롱 13 – 우리나라 두 번째 여성사진사 이홍경

여인의 초상-경성사진관-1920년 추정 1919년에서 1921년 사이에 당시 종로 인사동에 있던 <경성사진관>에서 찍은 여성의 초상사진입니다. 현재 <한미사진미술관>의 소장품이고, 1998년 <한국사진사연구소>가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주최한 ‘한국사진역사전’에서 처음 소개한 사진입니다. 한복을 차려입고 웃는 모습으로 포즈를 취한 젊은 조선여성의 사진으로, 대지에 인화한 사진을 붙였고 이래 부분에는 사진관 이름과 사진사 이름이 박혀 있습니다. 우측에는 인사동 <경성사진관>이란 이름이 영어와 한자로 있고, 전화번호가…

박주석의 사진살롱 12 – 비운의 주인공 『카메라예술』의 발행인 천재성(天再成)

카메라예술 창간호 1967년 10월호 근대사회는 본질적으로 각자가 맡은 바 사회의 제 영역에 걸친 다양한 직업들로 이루어지고, 각 직업은 그에 따른 가치와 윤리가 있습니다. 그 가치와 윤리는 상호 보완적일 수도 있고, 상호 충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급박한 화재의 현장에 있을 때 소방관은 불을 끄고 인명을 구조하는 역할을 사명감을 갖고 성실히 수행함이 그 직업의 윤리이고, 현장의 사진기자는 불을…

박주석의 사진살롱 11 – 사진잡지 『寫眞藝術』의 편집인 조명원(趙明元)

사진예술 창간호, 1966년 8월 조명원 선생이 앞의 글에서 소개한 『’66 한국사진연감』을 발행한 것은 1966년 6월 30일이었습니다. 발행처는 50년대 『寫眞文化』를 냈던 <한국사진문화사>입니다. 잡지는 1957년 이후 나오지 않았지만 선생이 출판사 등록과 이름은 그대로 갖고 있었고, 단행본을 출판하는 일은 계속했습니다. 사진에 관한 전문 교육기관이 전혀 없었고 마땅한 입문 교재도 없던 시절에 사진술의 저변 확대를 위해 출판 사업은 계속했던…

박주석의 사진살롱 10 – 조명원(趙明元) 1 – 사진사료 『’66 Korea Photo Almanac 한국사진연감』의 발행인

66한국사진연감 표지 앞 소식에서 전한 <한국사진문화사>가 1956년에 창간한 『사진문화』의 발행인은 조명원 선생이라는 분이었습니다. 작가로서는 딱히 명성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948년부터 나왔던 『寫眞文化』 잡지 창간호와 9호의 표지에 사진을 게재했을 정도로 실력은 남달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본 칼럼 「사진잡학사전5-사진에 부과한 특별행위세」의 서두에 실린 잡지표지 사진의 작가였습니다. 하지만 6.25전쟁 후에는 잡지나 책을 만들고 글을 쓰고 사진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

박주석의 사진살롱 9 – 사진잡지 『寫眞文化』에 대하여

경기도 파주에 가면 ‘출판문화도시’가 있습니다. 이 출판단지를 성사시킨 주역은 미술 전문 출판사로 유명한 <열화당>의 이기웅 대표로 출판을 평생 업으로 살아온 분답게 <열화당책박물관>을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의 컬렉션 중에는 아주 귀한 1956년에 발간한 사진전문 잡지인 『寫眞文化』 창간호가 있습니다. 출판사는 <한국사진문화사>, 발행인은 ‘조명원’으로 되어 있고, 발행일을 1948년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 잡지에 대한 도서소개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寫眞文化(사진문화)』…

박주석의 사진살롱 8 – 사진기자의 신년인사

설빔차림의 아이들-문치장,1936 새해를 맞아 새로 만들어 입는 옷을 ‘설빔’이라고 합니다. 옷이 너무 흔해진 요즘은 설날을 맞았다고 특별히 새 옷을 구해서 입을 필요도 없고 그런 경우도 흔치 않습니다만, 조선 말기부터 1970년대까지의 궁핍했던 시절에는 신분의 고하나 생활 형편에 관계없이 신년을 맞아 설빔을 갖춰 입는 일은 중요한 풍습이었습니다. 설빔은 그야말로 새해맞이의 상징이었습니다. 왜정 때인 1936년 『조선일보』의 1월 1일자…

박주석의 사진살롱 7 – 소년 사진사(寫眞師) ‘백골사진사건’의 전말

왜정 때인 1930년대 말은 일제의 수탈이 심해지면서 우리나라 전체가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로 진입하던 시기입니다. 1937년 전면적인 중일전쟁이 시작되고 한반도의 정세가 태평양전쟁을 향해 가면서 모든 재화와 물자가 전쟁에 투입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연히 조선 민중의 삶은 궁핍해졌고, 다양한 생계형 범죄가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카메라와 렌즈는 엄청난 고가품이었고 당장 현금화하기 쉬운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범죄의 표적이 되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박주석의 사진살롱 6 –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의 초상사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조선 정부는 일본에 수차례 수신사절단을 보냈습니다. 전에 일본에 파견하는 사신은 통상 ‘통신사(通信使)’라고 했으나, 이때부터 파견한 사절단은 두 나라가 동등한 입장에서 사신을 교환한다는 의미로 ‘수신사’라고 명명했습니다. 급진적 개화파였던 김옥균(金玉均, 1851~1894)은 3차 수신사절단의 일원으로 1882년(고종19) 일본 방문에 나섰고, 도쿄의 사진관을 방문해 전신 초상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사진이 영국인 컬렉터인 테리 버넷(Terry Bennett)의 ‘사진컬렉션’에 있습니다. 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