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

박주석의 사진잡학사전 6 –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의 초상사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조선 정부는 일본에 수차례 수신사절단을 보냈습니다. 전에 일본에 파견하는 사신은 통상 ‘통신사(通信使)’라고 했으나, 이때부터 파견한 사절단은 두 나라가 동등한 입장에서 사신을 교환한다는 의미로 ‘수신사’라고 명명했습니다. 급진적 개화파였던 김옥균(金玉均, 1851~1894)은 3차 수신사절단의 일원으로 1882년(고종19) 일본 방문에 나섰고, 도쿄의 사진관을 방문해 전신 초상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사진이 영국인 컬렉터인 테리 버넷(Terry Bennett)의 ‘사진컬렉션’에 있습니다. 테리가…

박주석의 사진잡학사전 5 – 사진에 부과한 특별행위세

1948년 7월에 창간해서 6.25전쟁 직전까지 <조선사진문화사>가 발행했던 『사진문화』는 해방 후 한국 최초의 사진전문 잡지였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의 해방공간에서 『사진문화』가 창간됨으로서 한국의 사진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사진에 관한 담론을 신문지면에 비정기적, 단편적으로 발표하던 한계를 벗어났고, 정기적으로 사진 분야의 최신 소식을 전하고 담론을 발표하며 심도 있는 논의와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 잡지에는…

박주석의 사진잡학사전4 – 천연당사진관과 외상값

우리나라 사진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관은 대한국사진사(大韓國寫眞師)이자 유명 서화가(書畵家)였던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이 1907년 처음 설립한 ‘천연당사진관(天然堂寫眞館)’일 것입니다. 지금의 서울 중구 소공동과 태평로 2가 및 을지로 1가에 걸쳐있던 석정동(石井洞)에 살던 김규진은 자신의 집 사랑 뒤 정원에 사진관을 설립했습니다. 당시 서울에 있던 대부분의 사진관은 청일전쟁 후 진출한 일본인 사진사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한국인 사진사로는 거의 유일하게 김규진과 그의…

박주석의 사진잡학사전 3

최초의 국산 35mm 필름카메라 베릭스(VERIX)를 아십니까? 오늘날 아날로그 시절의 필름카메라는 거의 박물관용 유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다만 2~3 m 규모의 대형 사진작업을 하거나 은염 흑백사진을 계속하는 소수의 전문작가들 정도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8x10inch 정도의 시트필름을 사용하는 대형카메라를 쓰는 작가들은 여전히 상당수 있지만, 35mm카메라를 갖고 롤필름을 사용해서 작업을 하는 작가는 제가 알기로 국내에 5명 정도를 넘지 않을 것입니다.…

박주석의 사진잡학사전 2

지난 소식에 이어 ‘사진으로 돈을 벌려면’이란 칼럼에서 소개한 1969년도 당시 기사의 내용을 이어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섯 번째로 하는 권고는 ‘수염을 길러라’는 내용입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여성 사진가가 거의 없던 남자들이 주로였던 시절의 이야기이니 웃어넘길 수밖에 없습니다. 핵심은 수염을 정성스럽고 보기 좋게 잘 기르면 매우 점잖아 보이고 클라이언트의 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