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진에서의 휴머니즘과 인간 가족전의 수용 (1) The Intersection of Humanism and the Reception of the Family of Man in 1950s Korean Photography
09/01/2021
/ 오혜리

한국 사진에서의 휴머니즘과 인간 가족전의 수용 (1)

The Intersection of Humanism and the Reception of the Family of Man in 1950s Korean Photography(각주 1)

 

신선회는 그룹의 길지 않은 활동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리얼리즘 사진이라고 알려져 있는 생활주의 사진의 개념과 비전을 이해하고 사진적 활동으로 실현시키려는 노력을 한 단체라는 점에서 1950년대 한국 사진사에서 그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각주 2)

1956년에 설립된 신선회는 이형록, 조규, 이안산, 손규문, 정범태, 이해문, 한영수, 안종칠 등을 포함한 19인의 리얼리즘 사진가들을 회원으로 조직되었다.(각주 3) 당시 전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공통된 영향력 있는 사상의 흐름 중 하나는 리얼리즘이었다. 1950년대 당시 한국에서도 리얼리즘이라는 담론은 다양한 사회 문화 공간과 예술 제도권에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한국의 역사적 경험, 즉 식민 시대와 한국 전쟁, 그리고 권위주의 정치 체제를 경험한 사진가 및 예술가들이 그 역사적 상황을 통해 노정된 사회 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리얼리티를 반영하려는 한국 사진가들의 사진의 지향점은 일제 강점기의 주된 사진 경향이었던 감상주의적이며 회화적인 사진의 경향을 극복하려는 노력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했으며, 사진계 뿐 아니라 식민지 근대성에 도전하는 사회 각 분야의 반식민이라는 정치, 사회, 문화적 합의와 역사적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신선회에 소속된 사진가들은 고양된 리얼리즘 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적 현실에 관심을 보였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 속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고 인간 삶의 자취를 흑백 사진 이미지를 통해 재현하였다. 그러한 그들의 의도는 1957년 4월 동화 백화점 (현재 신세계) 화랑에서 열린 신선회 창립전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총 2부로 구성된 전시에서 1부는 자유 주제를 2부는 “시장의 생태”라는 테마로 우리의 일상과 근접한 시장을 소재로 새벽, 정오, 밤 풍경을 담은 작품들이 전시되었다.(각주 4)

 

Fig.1 이해문 (1922-1981), 순대국집, 1950년대, 젤라틴 실버 프린트, 사진 컬렉션 지평

물론 1950년대의 한국적 리얼리즘 사진을 추구해 가는 과정에 있어 그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일제 시대에 사진을 시작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자연의 서정성이나 조형적인 스타일을 강조한 회화적 사진 경향을 주도한 매스미디어, 전시, 그리고 공모전에서 제시한 규범에 직간접적으로 익숙해져 있었다. 그 이전과는 달라진 시대적 배경이나 사회적 담론, 사진가의 의식을 그러한 회화적 사진 스타일과 주제로는 충분히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은 사진가 스스로에게는 한계이며 극복할 문제로서 인식된 것이 사실이다.(각주 5)

그러나 1950년대에 임응식은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개념적 카테고리를 생활주의 사진이라는 용어를 통해 정의함에 있어 생활주의 사진이 한국 전쟁 후의 시대 상황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사진 주제에 접근하고 과장됨 없이 사회적 ‘진실’과 인간의 관심사인 일상생활을 객관적으로 재현해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하였다.(각주 6) 사진가인 이해선 또한 리얼리즘을 지향하는 사진은 인간의 생활을 재현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휴머니즘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인간의 본질을 담아내기 위해 사진 매체의 기술과 사진가의 예술적 창의성 뿐 아니라 인간의 삶을 공감하고 정서적으로 이해하며 포착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각주 7)

사실 이러한 휴머니즘에 대한 중요성은 한국 뿐 아니라 세계 대전 이후 전 세계의 공통적인 관심이었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 하에서 1957년 4월 3일부터 28일까지 한국의 경복궁 갤러리에서 인간 가족전 전시가 성공리에 개최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하겠다.(각주 8) 사진가 임응식은 인간 가족전이 휴머니즘에 대한 한국 사진의 관심을 실현시키는 방향을 제시한 원형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였다.(각주 9) 또한 사진가 이형록과 정범태 등 당시 한국의 리얼리즘 사진가들은 인간 가족전을 통해 다큐멘터리 사진이 지향하는 정신적 가치를 발견하고 사진 활동에 있어 중요한 영감의 근원이었다고 평한다.(각주 10) 그렇다면 인간 가족전이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역사적 맥락(context; historical contingencies)은 무엇이었는지, 전 세계 질서의 재편 속에 휴머니즘이 주된 담론으로 중요성을 획득한 이유는 무엇인지, 또한, 한국의 특수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한국의 리얼리즘 사진가들은 인간 가족전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수용했는지 등에 대해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Fig.2 이형록, 형제, 1958, 젤라틴 실버 프린트, 사진 컬렉션 지평

인간 가족전은 뉴욕 Museum of Modern Art (MOMA)의 사진부 디렉터였던 에드워드 스타이켄 (Edward Steichen, 1879-1973)이 기획한 전시로 1955년 1월 24일부터 5월 8일까지 MOMA에서 개최되었다. 이 전시는 미국 정보국 (USIA: The US Information Agency)이 후원을 통해 깊이 개입했으며 영국, 독일, 벨기에, 이태리, 프랑스, 일본, 이란, 버마, 인도네시아, 호주, 베네수엘라, 칠레, 한국 등 전 세계 순회 전시가 이루어졌다. 사진의 근, 현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지구촌 곳곳의 사진 문화에 영향력을 행사한 전시라는 것은 수치상으로도 그대로 드러난다.

Fig.3 인간 가족전 전시장 모습, 뉴욕, Museum of Modern Art, 1955, 롤프 피터슨 사진. MOMA 아카이브

1955년부터 1959년까지 미국과 캐나다 두 국가에서만도 1,200,000여 명, 그 이외 여타의 국가들에서는 7,500,000여 명의 관객이 전시를 관람하였다. USIA의 기록에 따르면 한국에서 열린 인간 가족전에는 420,0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인간 가족전 전시 카탈로그는 1956년에서 1979년까지 2,777,000권이 판매 되었다.(각주 11) 전시를 위해 스타이켄이 전 세계에서 2백만 장의 사진을 제출 받았으며 당시 포토저널리즘의 대표적인 잡지였던 Life, Look 과 더불어 Magnum의 수많은 사진 아카이브를 검토하였고(각주 12) 최종적으로 68개국 273명의 사진가들의 작품 503장을 전시하는 사진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전시회였다.

(2편에 계속)

1 이 글은 필자의 “Photography, Technology and Realism in 1950s Korea,” in Future Yet To Come: Body, Life, and Sociotechnical Imaginaries in Modern Korea, edited by Sonja M. Kim and Robert Ji-song Ku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21)의 소부분을 이 컬럼을 위해 편집, 번역, 개정하였다. 총 3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2 이형록, 정범태, 한영수는 한국의 리얼리즘 사진의 전개에 있어 신선회의 역할을 중요한 것으로 평가한다. 임영균, 사진가와의 대화: 한국 사진을 개척한 원로 사진가 8인과의 대담3 (서울: 눈빛, 1998) 참고.

3 박주석, “해방 후 1950-1960년대 한국 사진의 전개와 성과”, 한국 현대 사진 60년, 1948-2008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20쪽.

4 조명원 (편집부), “신선회 사진평-제1회 발표전을 보고”, 사진 문화, 1957년 4월, 89쪽.

5 임영균, 사진가와의 대화, 78쪽.

6 임응식, “한국 사진계의 현황-작화 경향을 중심으로,” 서울신문, 1950년 8월; “사협전을 보고-생활직시,” 주간 희망. 1957년 12월. 임응식의 글은 임응식 회고록: 내가 걸어온 한국 사단 (서울: 눈빛, 1997), 277쪽과 287쪽에 포함되어 있다.

7 대담 아마추어의 진로-이해선 (사연) 임응식 (사협),” 사진문화, 1957년 1월, 49-50쪽.

8 서울신문, 1957년 3월 28일 “인간가족 사진전” 기사에 따르면 USIA에 의해 원래는3월 28일부터 열릴 예정인 전시가 준비 지연 문제로 4월 3일부터 개최된다고 전하고 있다.

9 “인간 가족전 (Family of Man)을 보고서-좌담회,” 사진 문화, 1957년 4월, 40-44쪽.

10 임응식, 이형록, 최민식, 이경모 등은 임영균 과의 인터뷰에서 인간 가족전이 미친 영향에 대해 언급한다. 임영균, 사진가와의 대화.

11 위의 관객 동원과 도록 판매 수치 등은 뉴욕 현대 미술관 아카이브의 자료를 참고하였다.

12 Monique Berlier, “The Family of Man: Readings of an Exhibition,” in Picturing the Past: Media, History and Photography, ed. Bonnie Brennen and Hanno Hardt (Urban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99), 213.

 

오혜리

Ph.D.,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Binghamton

전 Indiana University of Pennsylvania 조교수

현재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