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의 《 사진·문학·인문학의 카르텔 8 》 : 노에마 그 쓸쓸함에 대하여
08/25/2021
/ 김혜원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 있다. 강물이 그렇고 시간이 그렇다. 모든 죽음이 그렇고 때론 사랑마저 그렇다. 다행히 지시대상의 물리적 현존인 사진은 그 지표(指標, index)적 특성으로 그것들이 한때 존재했었음을 보여준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이를 ‘노에마(noèma)’라 부르며, ‘존재 증명과 부재 증명’으로서의 ‘노에마’를 사진의 본질로 보았다. 즉 그는 ‘존재했던 것’만을 다루는 사진에 시간의 문제를 연결하여, 사진에는 과거와 현재의 두 시제가 결합되어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그것은-존재-했었음(ça-a-été)’을 통해 대상이 현실적인 것(그것은-존재-했음)이었음을 인증하면서 동시에 지금은 그 대상이 죽어버린 것(그것은-여기에-없음)임을 증명한다. 그 결과 단지 ‘그것이 있었다’라고만 말하는 이 ‘노에마’로서의 사진은 우리의 경험을 입증하고 그 사진적 진실로 이미지에 권위를 부여하게 된다. 나아가 과거의 실재성을 현재 시점에서 보여주는 과정에서 시간의 흐름을 증언하면서 다가올 미래를 예상하게 한다.

나를 보고 있다, 카메라를 쳐다보는 순간 정지되어 있는 나를, 스물두살에서 정지된 내 나이를, 48킬로그램에서 정지된 내 몸무게를, 아직도 30년 전의 짜장면을 소화시키고 있는 내 배를, 무엇이 즐거운지 이빨이 다 보이도록 벌어져 있는 내 웃음을, 웃음 때문에 증오가 조금 지워지고 있는 내 표정을, 웃음 속의 내 치석을

 

<중략>

 

나를 보고 있다, 찬물에 빨랫비누로 머리 감은 나를, 빵구난 양말을 구두로 가리고 있는 나를, 누런 냄새 나는 속옷을 양복으로 가리고 있는 나를, 겁 많은 눈을 어색한 웃음으로 가리고 있는 나를, 자폐적인 수줍음을 겸손처럼 보이는 침묵으로 간신히 가리고 있는 나를, 빛에 낱낱이 드러났는데도 여전히 사진 속에서 숨을 곳을 찾는 나를
 
내가 보고 있다, 소닭돼지를 열심히 씹어 비듬과 무좀으로 만들고 있는 내가, 옆머리를 빗어올려 가까스로 가린 대머리로 무언가를 생각하려고 애쓰는 내가, 건조되고 있는 안구로 자꾸 무얼 보려는 내가, 뒤꿈치에서 각질이 벗겨지는 발로 어딘가를 부지런히 가고 있는 내가, 아직도 수염에서 슬픔과 두려움이 자라고 있는 내가

 

-김기택, 옛날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부분

관찰 대상의 세부를 마이크로렌즈로 접사하듯 사실적이고 즉물적으로 묘사하는 기법으로 시와 사진의 상호텍스트성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시인 김기택의 「옛날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은 두 장의 ‘Before-After’ 사진을 통해 자신이 한때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었는지’를 증언하고 있는 시이다. “나를 보고 있다”로 시작하는 1연과 3연에 제시된 두 장의 사진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된 시적 자아의 모습이 세밀히 묘사되어 있다. “스물두살”에 찍은 ‘Before’ 사진에서 시적 자아는 “카메라를 쳐다보”며 “이빨이 다 보이도록”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다. “증오가 조금 지워”질 정도의 밝은 웃음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 찍은 ‘After’ 사진에서 그는 “겁 많은 눈을 어색한 웃음으로 가리”고 “자폐적인 수줍음을 겸손처럼 보이는 침묵으로 간신히 가리”며 “사진 속에서 숨을 곳을 찾”고 있다. “스물두살에서 정지된” “나”보다 불안한 모습이자 위선과 가식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이렇듯 두 장의 “옛날 사진”은 인물의 인상을 왜곡 없이 즉각적으로 전달하면서, 과거에 ‘존재했었던’ 그러나 현재는 찾아볼 수 없는 지난 모습을 증언하는 물리적 현존으로서의 ‘노에마’로 작용하고 있다.

 

니콜라스 닉슨, 브라운 자매, 1975

니콜라스 닉슨, 브라운 자매, 2000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시퀀스 방식으로 가족이나 주변 인물의 삶을 지속적으로 기록해 온 니콜라스 닉슨(Nicholas Nixon)의 《브라운 자매(The Brown Sisters)는 그의 아내 베베의 네 자매를 43년 동안 매년 한차례씩 촬영하여 8×10인치 대형 포맷의 섬세한 밀착인화로 보여준 43장의 연도별 연작 사진이다. 현재 MoMA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이 시리즈는 1975년 첫 사진 이후로 2017년 마지막 사진까지 인물의 순서(왼쪽부터 둘째 헤더, 막내 미미, 첫째 베베, 셋째 로리)를 바꾸지 않고 자연스럽고 꾸밈없는 모습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게 하여 시간 앞에서 인간의 모습이 어떻게 변모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1975년 첫 사진에서 껄렁한 포즈의 앳된 자매들은 자신들 앞에 놓인 삶을 마주하며 당당하게 살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죽었다. 2000년도 사진에서 노년을 바라보는 자매들은 세월의 흐름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앞으로 더 늙을 것이고, 죽음에 한 걸음씩 더 가까워질 것이다. 이렇듯 오랜 시간이 퇴적된 초상 사진은 삶의 무상함을 불러일으키고 자매의 죽음까지 예견케 하며 삶과 죽음과 한 세대의 냉혹한 소멸을 생각하게 하는 ‘노에마’로 기능하고 있다.

바르트의 ‘노에마’ 역시 ‘존재 증명 부재 증명’의 인증 기능을 넘어 육체와 죽음과 사랑을 말한다는 데 핵심이 있다. 바르트에게 ‘노에마’는 지시대상이 육체의 죽음처럼 치명적일 때, 자신과 사랑의 관계로 이어져 있을 때 더 강력한 푼크툼(punctum)으로 다가온다. 김기택과 니콜라스 닉슨 또한 육체에 스며든 시간과 미래에 닥칠 죽음을 극복하는 힘을 자기애나 가족애로 보여준다. 김기택은 “옆머리를 빗어올려 가까스로 가린 대머리”나 “건조되고 있는 안구” 등 시적 자아의 육체를 미세현미경으로 클로즈업하여 해부학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무력하게 늙어가는 왜소한 자신을 부정하는 이 냉소적이고 자기 환멸적 묘사는 자기애를 찾고자 하는 자아 성찰의 과정이었다. 닉슨은 시간에 의해 변화되는 육체의 개별적 형태뿐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이어져 변하지 않는 혈연의 관계성까지 보여준다. 각각 떨어져 도도하게 서 있던 네 자매는 세월이 흐를수록 서로를 향해 다가서고 끌어안고 기대면서 점점 끈끈해진 가족애를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한 장의 사진에는 죽음을 가리키는 절박한 기호가 각인되어 있고, 우리는 미래에 닥칠 우리의 죽음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속절없이 봄날은 지나갈 것이고, 예고 없이 죽음은 도착할 것이다. 사진의 ‘노에마’는 강물 같은 시간의 흐름 앞에서 누군가 부재의 흔적을 소환하여 그의 실존을 되찾고자 할 때, 그 쓸쓸함을 견뎌낼 수 있는 유력한 조건이 탯줄처럼 단단하게 결속된 ‘사랑’임을 일깨우고 있다.

 

* 『열린정신 인문학연구 제19권 제1호에 게재한 논문 일부를 인용, 재구성하여 쓴 글입니다.

 

김혜원(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연구교수,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