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의 답사 스케치25 – 고구려를 그리다
08/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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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6일부터 27일까지 인사동 사거리의 무우수 갤러리에서 ‘고구려를 그리다’라는 개인전을 가졌다. 면지에 그린 수묵담채화 40점을 2부로 나누어 꾸몄다. 전시는 두 층으로 나누어진 갤러리 공간에 맞추었다.

아래층에는 고구려 산수화를 따라 그린 그림들을 중심으로, 고분들이 있는 고구려 땅 풍경화를 배열했다. 고구려 산수화의 첫 그림이라 할 덕흥리벽화고분 앞간 천정 수렵도의 배경으로 등장한 <산악도>와 평양의 서쪽 진남포 무학산 아래 조선된 덕흥리벽화고분의 풍경 스케치를 나란히 걸었다. (도 1, 2) 한 열을 지어 늘어선 산악 능선과 듬성한 나무들의 고졸한 맛이 물씬한 장면이다. 대우산 아래 나란한 무용총과 각저총의 경치는 무용총 수렵도의 주름진 산악 표현과 잘 비교되었다. 여기에 2019년 10월 고구려 답사 때 스케치 한 호태왕릉과 압록강, 백두산 풍경 스케치도 곁들였다. 진파리1호분의 북벽 소나무와 강서대묘의 동서 천정 받침 산수도, 강서중묘의 청룡 백호 주작과 호남리사신총의 현무 등 사신도와 상상의 도상들, 연꽃이나 인동꽃 장식문양 같은 고구려 고분벽화를 따라 그린 그림들이다. 산수표현은 1978년 석사학위 논문 주제여서 감회가 별스럽다.

위층에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따라 그린 연화문, 사신도, 해와 달, 구름무늬, 괴면, 봉황, 물고기 등을 배열해놓았다. 공간 가득 엷은 붉은 색조와 갈색, 청녹색 등의 색채감이 화사하며, 그림 소재에 따라 고구려벽화의 설화적 신비감을 살리려 했다. 현무나 연꽃 그림 아래 수면이나 몇몇 산수도의 하늘을 보라색으로 처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진파리1, 4호분의 연화나 인동초 문양이 동시기 백제와 너무 닮아 무녕왕릉(526/529년)의 전돌 연화무늬를 그려 비교해보았다. (도 3, 4) 고구려 고분벽화의 장식 무늬들은 고려, 조선 시대 회화 도자공예 불화나 민화 등에 이르기까지 전해진 한국미술사의 큰 원류이자 전통의 뿌리인 셈이다. 이를 알 수 있는 고려 산수, 조선 후기 청화백자의 봉황문이나 목어 등을 모사한 그림도 곁들였다.

이번 전시에는 블록체인 스타트업 벤처 기업으로, 명지대 미술사학과 졸업생인 신수철 군이 다니는 ‘커먼 컴퓨터’에서 고구려가 매력적이라며 NFT로 작업을 시도해 보자는 제안이 들어와 수용했다. 강서대묘의 동서 천정 받침 산수화 <강바람 일고>(도 5)와 <하늘 바람 내리고>, 진파리1호분 북벽 현무도 좌우 <소나무 1, 2>(도 6), 각저총 천정의 <해와 달>(도 7), 호남리사신총 북벽 <현무도>(도 8) 등 고구려사람들의 자연관이나 문화사적 의미를 두고 선정했다. 전시 기간에 이들 4점에 ‘큐알 코드’를 설치했다.

 

월간 『민화 잡지 김송희 기자가 전시 소감을 묻기에 이렇게 답했다.

“이번 개인전은 지난 3년간 그린 고구려 그림을 모은 것이기도 하고, 15년 작업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대 설화와 자연이 조화를 이룬 고구려고분벽화야 말로 한국화의 뿌리이자, K-art를 재창조할 원동력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벽화의 조형미는 세계적인 현대예술과 당당하게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관람객분들의 반응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김송희, 「고구려의 기세氣勢를 되살리다」, 월간 『민화』, 2021. 7.)

전시실에 비치한 방명록에는 “고구려 재발견, 고구려는 민족의 미래”(김영호 전 산업자원부 장관) “고구려가 살아나다”(화가 김봉준) “아득하지만, 우리 피 속에 흐르는 신묘한 고구려의 기운을 불러내 준 전시”(시인 나해철) “인문정신과 고졸미가 화폭 가득”(화가 이종구) “(필치에) 호흡이 느껴집니다”(화가 이경희) “판타스틱”(연세대 교수 김진영, 러시아문학) 등이라고 써놓은 글들이 눈길을 끌었다.

뉴시스 박현주 기자가 「미술사가 이태호, 세번째 개인전…’고구려를 그리다’로 전시소개를 이끌어주었다. (NEWSIS, 2021. 6. 2.) 대한경제 이경택 기자의 「수묵·석채로 되살려낸 고구려 정신」은 내 인생에 가장 너른 면적의 지면을 할애받은 것이었다. (e대한경제, 2021. 6. 3.) 조선일보의 「조용헌 살롱」 “미술사학자 이태호의 글과 그림”(「조용헌 살롱」 1302호, 조선일보, 2021. 6. 21.)에서는 글 잘 쓰는 화가 김환기, 천경자, 김병종 등에 이어, 나를 글쟁이가 그림도 그리는 새 ‘쌍권총’으로 소개해주었다. ‘고구려의 원색적이고 야생적 신기를 자기식으로 표현했다’라는 조용헌 선생의 짧은 작품 평 덕분에, ‘고구려 기를 받으러 왔다’라며 전시실에 오래 머물고 가는 이들을 여럿 만났다.

 

팜프렛에 실은 내 글 고구려 화가의 기세(氣勢)를 배우며를 아래에 소개한다.

1.

나는 석사 논문으로 ‘한국의 고대 산수화’에 대해 썼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산과 나무 그림을 살피며 미술사 공부를 시작했다. 이번 ‘고구려를 그리다’ 전시를 위해 산과 나무를 따라 그리다 보니, 내 미술사연구 첫 논문을 다시 열어보기 같다. 인물풍속의 배경이거나 장식으로 산수표현이 등장하던 6~7세기 동아시아 미술사에서 고구려가 가장 산수화다운 회화 형식을 완성했다. (「한국의 고대 산수화-고구려 고분벽화를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1978) 덕흥리벽화고분이나 무용총 수렵도의 산악과 수목 표현에서 발전한, 진파리1호분 현무도 좌우의 두 그루 소나무 그림이나 강서대묘의 동서 천정 받침에 각각 등장하는 산수도가 대표적인 예이다.

 

고구려 수도권의 답사가 불가능하던 시절을 거쳐, 논문을 쓴 지 20년 만에 고구려 유적을 실견하는 행운이 왔다. 1998년 8월 금강산 답사길에 덕흥리벽화고분, 강서대묘와 중묘 세 고분을 처음 관람했다. (이태호, 『조선미술사 기행1』-금강산, 천년의 문화유산을 찾아서, 다른 세상, 1999) 2006년 5월에는 안악3호분 덕흥리벽화고분 수산리벽화고분 진파리1호와 4호분 호남리사신총 강서대묘와 중묘 등 평양지역의 고구려 고분벽화 8곳에 대한 남북공동 조사팀에 합류했다. (이태호, 「평양지역 8기의 고구려 벽화고분―벽화의 내용과 화풍」, 『남북 공동 고구려 벽화고분 보존실태조사보고서』, 국립문화재연구소·남북역사학자협의회, 2006) 이때 촬영이 가능한 대로 디지털카메라에 담아 두었다.

 

2.

그로부터 15년 뒤인 2020년 9월 중순 고구려 벽화 사진을 모아 책을 출간했다. (이태호, 『고구려의 황홀, 디카에 담다』-평양지역 고구려 고분벽화의 디테일, 덕주, 2020) 작년 9월 내가 찍은 벽화 자료들을 살피니, 새삼 그때 실제로 대한 감명이 밀려왔다. 스케치북을 펼쳐 눈길 닿는 대로 그리기 시작했다. 책 출간에 맞춰 고구려 벽화를 방작(倣作)한 전시가 가능할까 싶어서, 책 편집이 진행되는 기간에 그리기 쉬운 문양이나 도상들을 먼저 시도해 보았다. 물론 매일 해오던 대로 붓펜으로 그린 수묵 드로잉이었다. 전시는 여건이 되지 못해 미루었다. 대신에 정년 이후 일기처럼 산과 꽃 등을 스케치해 오던 일과에서, 2020년 코로나 기간, 실견한 8곳 고분 외에 화집을 통해 간간이 고구려를 드로잉 하며 지냈다.

 

4~7세기에 집중해 그려진 고구려 고분벽화는 정말 황홀하다. 고분의 캄캄한 내부에 불빛이 들때, 선명한 무덤주인의 생전 생활 장면과 장식들이 그러했다. 붉은색과 초록색, 분홍색, 노랑색, 갈색 등이 흰색이나 먹선, 색채가 아름답고, 여러 신분의 사람들과 갖가지 동물, 신선과 용봉 같은 상상의 세계, 해와 달과 별의 하늘 세계, 연꽃이며 인동초 꽃이며 구름 등의 상서로운 문양들은 활기차다. 특히 후기 사신도나 장식무늬의 이미지들은 세련되고 정치한 회화성을 뽐낸다. 실제로 지구 전체 세계미술사에서 4~7세기에 고구려 만큼 그림다운, 수준 높은 회화 유산을 남긴 지역이나 나라를 찾기 쉽지 않다.

 

이러한 벽화를 따라 그리며 고구려를 다시 맛보았다. 덕분에 고구려의 색채와 선묘를 신바람나게 익혔다. 그릴수록 벽화들이 표현주의로, 추상주의로 다가왔다. 구름무늬나 장식화들은 천오백년 전의 고구려 고분벽화가 곧바로 현대미술로도 손색없지 싶었다. 고구려의 회화가 우리 민족예술 형식의 근원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너무나 현대적인 이미지여서 자랑스러웠다.

무엇보다 고구려 화가의 기세를 배우게 돼 좋았다. 무덤 현장에서 눈에 들었던 채색의 화려함 과 더불어, 탄력 넘치는 선묘가 가장 흥겨웠다. 후기 사신도 벽화의 경우는 웅혼한 형상에 섬세한 디테일을 조화시킨 기량이 일품인즉, 내 솜씨로는 턱없이 부족함으로 다가왔다. 호남리사신총의 현무, 진파리1호분의 주작, 강서중묘의 청룡과 백호를 그려보니 그러했다.

 

대신에 고구려 후기 벽화의 유려하고 우아한 감수성이 백제 미의식과 연관을 재확인하였다. 나는 일찍부터 고구려 후기 사신도 배치나 연화문 같은 도상이 백제의 영향이었음을 주장했었다. (이태호, 「삼국시대 후기 고구려와 백제의 사신도 벽화―회벽화와 석벽화의 표현 방식을 중심으로」, 고구려연구회 편, 『고구려 벽화의 세계』, 고구려연구 16집, 학연문화사, 2003 ; 「고구려 진파리1.4호분의 벽화와 삼국시대 후기 산수표현」, 『고구려 고분벽화』, 한국미술사연구소 출판부, 2012. ) 공주 송산리6호분 사신도나 무녕왕릉(623년/626년) 출토 금관 장식과 무덤 내벽을 쌓은 벽돌문양에 그 연원이 있음을 진파리1, 4호분 벽화 문양을 그려보며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3.

40여 점으로 꾸민 이번 ‘고구려를 그리다’ 전시는 2부로 구성된다.

 

1부는 앞서 거론한 고구려 고분벽화 따라 그리기이다. 그림 내용은 크게 산과 나무그림의 산수화,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도(四神圖)와 괴수나 상상의 수호 신상, 삼족오의 해와 두꺼비의 달, 연꽃과 인동초꽃 무늬, 구름무늬 등이다. 이들 벽화는 무덤 내부를 장식한 그림이지만, 도상이나 문양은 당시 고구려인들이 생각하던 사후 영생과 관련된 상징물이다. 살아생전의 부귀나 화복, 장수 등 상서로운 길상(吉祥) 도안들이고, 악귀를 막아달라는 벽사(僻邪)의 수호신을 의미한다. 조선 후기 이후 생활 장식 그림인, 이른바 민화(民畵)가 이를 잘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2부는 고구려 정서를 계승한 도상과 고구려 땅 스케치이다.

2006년 평양지역 조사 때 디카와 눈에 담아온, 고구려인이 살았던 산하의 풍경화들을 곁들였다. 덕흥리벽화고분과 무학산경, 동명왕릉 솔밭의 노송과 산풍경, 강서대묘 앞의 두 버드나무 등이다. 여기에 2019년 10월 무우수아카데미에서 고구려 고분벽화 강좌 때, 중국 길림의 고구려 유적을 답사하며 사생한 백두산과 고구려 유적 풍경화를 포함한다. 무용총과 각저총에서 본 대우산 정경, 호태왕릉, 왕릉에서 굽어본 압록강 등이다. 이번 개인전은 지난 3년간의 고구려 그림을 모은 것이고, 15년의 작업 결과라 볼 수 있겠다.

 

또 벽화를 따라 그리기 시작한 이후 고구려의 영혼이 깃든 고려나 조선 시대 작품을 만나면, 그려댔다. 그중에서 사찰에 모셔졌던 나무 물고기 목어(木魚) 조각, 조선 후기 청화백자 항아리의 봉황 그림, 고려 법천사지 지광국사 탑비의 산악도 음각 새김 등 몇 점을 전시에 포함했다. 여기에 인왕산과 북악산 설경도 고구려 산수화풍으로 골격을 표현해 보았다.

 

 

4.

이들을 드로잉 하며 전시를 꾸며볼까 생각할 즈음, 미술사 공부하며 눈에 익은 ‘우리 종이의 수묵채색화’나 50년 전 대학 시절 사용해봤던 ‘유화 그림’을 떠올려도 보았다. 둘 다 엄두가 나지 않아 시도하지 못했다. 프로 화가가 되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최근 6~7년 동안 습관을 들여온 대로, 내 손에 편한 순면지를 썼다. 안료는 고구려 벽화와 유사한 수묵과 석채(石彩)를 선택했다. 서양 종이에 우리 전통 물감이 선명하고 명랑하게 나름 어울리는 것 같다.

 

이번 전시는 작년 9월에 출간한 『고구려의 황홀』 재판을 계기로 기획되었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덕주출판사 대표이자 무우수아카데미 원장이신 이연숙 님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다시 감사드린다.

 

이태호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