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의 《 사진·문학·인문학의 카르텔 7 》 : 사진의 수사법, 은유와 환유
06/30/2021
/ 김혜원

우리는 은유(隱喩, metaphor)라고 하면 김동명의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시구와 함께 ‘A=B’라는 등가 원리를 쉽게 들먹인다. 그러나 환유(換喩, metonymy)라고 하면 그 개념을 선뜻 떠올리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가 모더니즘의 중심축을 이루었던 은유나 상징 논리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진은 본질적으로 환유적 속성을 갖는다. 그것은 사진이 존재론적으로 지표(指標, index)적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사진을 실제의 자국, 흔적, 즉 지표로 보는 사진 인덱스론은 ‘자동 생성'(앙드레 바쟁), ‘복사광선의 보고'(롤랑 바르트), ‘빛의 낙인'(존 버거), ‘사진적 사실주의'(필립 뒤부아)와 같이 표현의 방점만 달리하면서 그 계보를 함께해 왔다. 특히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사진이 손가락의 지문이나 모래밭의 발자국, 데스마스크나 와이셔츠에 묻은 키스자국처럼 실제 대상을 직접 등사하듯 그대로 대고 찍어낸 인덱스임을 근거로 사진을 ‘코드 없는 메시지’라고 불렀다. 따라서 사진은 해석의 코드 없이 물질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인접한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지시하는 환유 체계를 갖는다는 점에서 은유나 상징 체계로 코드화된 담론을 갖는 문학이나 회화와는 차별화된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이퀴벌런트, 1929

물론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가 이퀴벌런트(Equivalent, 등가물)라고 이름 붙인 이 ‘구름 사진’ 시리즈는 은유 원리에 의해 제작된 사진들이다. 로만 야콥슨(Roman Jakobson)에 의하면 은유는 유사성의 원리에 의해 선택과 배제로 이루어지는 수사 기법이다. 스티글리츠는 이 사진에서 ‘구름’을 ‘나’의 객관적 상관물, 곧 엘리어트(T. S. Eliot)의 시학 용어인 등가물(等價物)로 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심리적 풍경과 구체적인 사물 ‘구름’을 오버랩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 ‘A=B’의 은유 기법에서 ‘구름(B)’이 ‘구름(B)’ 자체가 되지 못하고 원관념인 ‘나(A)’의 심리적 풍경을 위해 복무하는 보조관념으로 존재하게 된다는 점이다. 또한 원관념 ‘나’와 보조관념 ‘구름’은 중심과 주변으로 명백한 위계를 형성한다. 즉 은유 기법에서의 사물은 사물 자체가 되지 못하고 특정한 주체에 의해 특정한 의미로 왜곡되거나 변형되는 것이다. 스티글리츠 역시 주체중심주의적 시각으로 ‘구름’이라는 지시 대상을 선택하고 ‘구름’ 아닌 대상을 배제하면서 ‘구름’을 ‘나’의 심리적 풍경이라는 특정 의미에 종속시키며 세계를 중심과 주변으로 구분하고 있다.

   당신이 앉았던 의자와

   당신이 턱을 고였던 창틀과

   당신이 마셨던 찻잔과

   당신이 사용했던 스탠드와

   벽시계와 꽃병과 슬리퍼를 모아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중략>

 

   두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두 장의 사진은 꼭같습니다 꼭같은

   의자와 창틀과 찻잔과 스탠드와

   벽시계와 꽃병과

   슬리퍼가 있습니다

   당신의

   나의

 

   아닙니다 의자의

   아닙니다 창틀의

   아닙니다 찻잔의

   스탠드의

   벽시계의

   꽃병의

   슬리퍼의 기념 사진입니다

   아닙니다 당신과 나의……

   

   -오규원, 「두 장의 사진 부분

오규원의 「두 장의 사진은 인접성 의해 구조화되는 환유 원리를 공간 구조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시이다. 야콥슨에 의하면 환유는 인접성의 원리에 의해 결합과 통합으로 이루어지는 수사 기법이다. 오규원은 ‘당신’과 ‘나’가 함께 사용하는 방안의 소품들, 즉 서로 인접해 있는 ‘창틀’과 ‘찻잔’과 ‘스탠드’와 ‘벽시계’와 ‘꽃병’과 ‘슬리퍼’를 열거하며 ‘당신’의 시선이 이들에 주목하게 한다. 그리고 ‘아닙니다’라는 부정어를 반복하며 방안에서 찍은 두 장의 사진이 ‘당신’과 ‘나’만의 사진이 아니라 ‘창틀’과 ‘찻잔’과 ‘스탠드’와 ‘벽시계’와 ‘꽃병’과 ‘슬리퍼’의 사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처럼 환유 기법은 인접성에 의해 ‘A와 B’로, 나아가 ‘C와 D와 E……’로 동등하게 결합되거나 통합된다. 즉 환유 기법은 인간의 의도나 해석, 판단과 평가를 배제하고 사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주체와 객체라는 인식론적 사고와 중심화의 논리에서 벗어나게 한다. 오규원은 사물과 사물의 수평적 관계를 보여주는 사진의 환유 원리를 빌려 중심과 주변이라는 위계를 무너뜨리고 세계의 평등 관계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상과 함께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환유 논리는 언어의 수사법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 탈근대적 사유 체계로 중요하게 재조명된다. 세계는 추상적 관념이 아니며 굳어 있는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특정한 코드의 은유 체계로 사물의 존재를 왜곡하여 규정해 왔다. 따라서 세계에 직접 접촉하여 그것을 정확하게 복사해 내는 인덱스나 ‘코드 없는 메시지’로서의 사진은 인간의 시선으로 의미를 고정하는 관념의 독재성에서 벗어나 생생하게 살아 있는 세계의 실체에 다가서게 하였다. 또한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전체와 부분, 상하 관계의 수직 구조가 아니라 개체와 집합, 상호 관계의 수평적 구조로 되어 있는데도 우리는 은유 체계를 통해 세계를 선택하거나 배제하며 그것들을 차별해 왔다. 그러나 인접성에 의한 결합과 통합으로 이루어진 사진의 환유 체계는 주체와 타자로 위계를 구분하지 않고 세계 전체를 평등한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처럼 인간중심주의의 수사 체계였던 은유의 수직축을 버리고 타자 중심적 수사 체계인 환유의 수평축으로 중심축을 옮긴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유에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인덱스로서의 사진의 환유적 속성은 1980년대 이후 사진 매체가 현대 예술 사조에서 각광받을 수 있었던 명백한 근거가 되었다.

 

* 「오규원 시의 창작 방식 연구-포스트모더니즘 기법을 중심으로의 일부를 인용, 재구성하여 쓴 글입니다.

 

김혜원(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연구교수,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