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석의 사진살롱 51 – 신미양요 150주년과 사진
06/16/2021
/ 박주석

사진1, 펠리체 베아토, 《수자기 앞의 미군 병사》, 알부민프린트, 1871, Terry Bennett Collection.

지난 6월 10일은 조선과 미국 사이에 일어났던 이틀간의 짧은 전쟁인 ‘신미양요(辛未洋擾)’ 15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한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구한말 외세 침략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만, 사진의 역사에서는 외국인 사진가가 조선을 찍은 첫 사건으로 기록된 날이었습니다. 일본의 요코하마에서 출항한 5척으로 구성한 미군 함대에 당시의 유명한 여행 사진가 펠리체 베아토(Felice Beato, 영국명 Felix Beato, 1832~1909)와 그의 조수 울렛(H. Woollett)이 승선했고, 미군 측 종군 사진가로 참전했습니다. 이들이 강화도 광성보에서 벌어진 전투와 강화도의 모습 그리고 조선 정부의 사신단과 포로 등을 찍은 약 50여 점의 사진이 현재 남아 있습니다.

펠리체 베아토는 사진 초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여행사진가이자 전쟁사진가였습니다. 많은 사진 역사서에도 이름을 올린 인물이기도 합니다. 1856년 크리미아전쟁에 참전한 것을 시작으로 사진가로서 이력을 시작했습니다. 1858년에는 인도 럭크나우(Lucknow)에 가서 세포이항쟁(Sepoy Mutiny/Indian Rebellion) 현장을 취재했으며, 1860년에는 중국에 가서 2차 아편전쟁에 종군했습니다. 1863년부터는 일본으로 건너가 요코하마에 거주하면서 시모노세키전쟁(下関戦争)을 비롯한 다양한 근대의 사건을 촬영해서 유럽의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했고, ‘F. Beato& Co’라는 이름의 사진 스튜디오를 세워 다양한 사진첩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경력이 있었기에 미군의 요청으로 조선 원정에 종군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은 미국 측의 공식 기록으로는 현재 사진가를 밝히지 않은 채 종군 사진반이라는 익명으로 미국 국가기록원(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베아토는 당시 찍은 사진 전체를 인화해서 한 부를 미군 측에 납품했고, 유리건판을 따로 갖고 상해로 넘어가 사진들을 재 인화해서 사진첩으로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팔린 사진은 당시 홍콩에서 발행되던 영문 계간 잡지 『The Far East』 에 「조선의 전쟁」이란 제목의 특집 화보로 실리기도 했습니다. 또 30~40여 점으로 구성된 여러 권의 사진첩으로 만들어 유럽에 팔았고, 현재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한국사진 수집가인 버넷(Terry Bennett)이 2종의 사진첩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베아토가 촬영한 사진 중에는 미군이 약탈한 노획물 배경으로 자랑스럽게 포즈를 취한 병사들의 사진이 있습니다. 그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사진은 강화도 광성보 전투에서 노획한 조선군 사령관 어재연(魚在淵, 1823~1871) 장군의 장군기 즉 수자기(帥字旗)를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 지휘관을 상징하는 수(帥)자를 큼직하게 새긴 가로와 세로 모두 4.5m 크기의 깃발을 주함인 콜로라도호 함상에 걸어놓고 그 앞에서 찍었던 것입니다. 신미양요에 참가했던 미군 장교 맥클레인 틸톤 대위는 원정 중이던 1871년 6월 27일 작약도(芍藥島) 연안에서 그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사진을 찍은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나는 우리 해병대가 점거한 강화도의 성채(城砦) 광성보(廣城堡)의 조선군 사령부(朝鮮軍 司令部)에 높이 게양되었던 대형 황색기(黃色旗) 사진을 동봉해서 보내는 바이오. 이 기의 중앙에는 총사령관(總司領官, Generalissimo)을 뜻하는 글자가 쓰여있소. 한자(漢字)로 수(帥)자이오. 사진가가 깃발을 배경으로 일등병 퍼비스(Private Purvis), 상병 브라운(Corporal Brown), 그리고 나 세 사람이 함께 세우고 사진을 촬영했는데, 우리 세 사람이 수자기(帥字旗)를 내려서 탈취했다오.”(김원모, 『近代韓美交涉史』, 홍성사, 1979, 263쪽에서 인용)

이 기념사진은 서양 사회에 제국주의의 우월성을 시각적으로 각인하는 대표적인 이미지였습니다. 적군의 지휘관을 상징하는 깃발의 노획은 전쟁의 승리를 확고하게 증명하는 일이었기에, 미군 병사로서는 자부심을 느꼈겠고 자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비극적인 회한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지만 말입니다.

참고로 이때 미군이 가져간 수(帥)자기는 미국 아나폴리스(Annapolis)에 있는 ‘미국해군사관학교(United States Naval Academy)’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정부에서 반환을 요구했지만 ‘승전 기념으로 획득한 전리품은 반환할 수 없다’는 미국 법의 규정에 따라 거부했습니다. 다만 ‘장기임대’ 형식으로 돌려줄 수 있다고 해서 2007년 고향인 강화도에 돌아왔습니다. 현재 ‘강화역사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