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석의 사진살롱 50 – 삼문출판사(三文出版社)와 고종 어사진
05/27/2021
/ 박주석

1890년대 배재학당 본관과 삼문출판사 건물(사진 왼쪽)

삼문출판사(三文出版社)는 1890년 미국 감리교회 선교부가 기독교 포교와 근대 지식을 조선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서울에 설립한 출판사 겸 인쇄소였습니다. 한글, 한문(漢文), 영어 등 세 가지 언어의 텍스트를 인쇄하고 출판할 수 있었기에 삼문(三文)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근대 교육기관인 배재학당(培材學堂) 부설로 학당 내에 공장이 있었기 때문에 흔히 ‘배재학당인쇄소’로 불렸다고 합니다. 조선의 정부 기구로 인쇄를 담당했고 『漢城旬報를 발행했던 ‘박문국(博文局)’이 있었지만 1888년에 문을 닫았습니다. 그래서 삼문출판사는 당시 국내 유일의 민간 출판사이자 근대식 인쇄공장이었습니다.

한국사진의 역사에서 삼문출판사는 무척 큰 가치와 의미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최초로 사진인쇄를 가능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이미 사진이 도입되었고 일본인 사진관들이나 한국인 사진사들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만 개개인의 초상사진을 찍어주는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사진을 볼 수 있는 사람들도 한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쇄술은 사진의 대량복제와 배포를 가능하도록 합니다. 사진이미지의 확산과 시각정보의 대규모 유통은 사실성을 중시하는 근대적 세계관을 끌어내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전회에 소개한 『그리스도신문』은 사진이미지를 지면에 실어 불특정 다수에게 유포한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신문』이 지면에 사진을 실을 수 있었던 것은 ‘삼문출판사’의 인쇄 기술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1890년대에 들어 삼문출판사는 근대식 활판인쇄로 찍어낸 종교소설 『천로역정(天路歷程)』을 출판하는 등 다양한 기독교 서적을 선보였습니다. 한편 여러 신문사나 기관들이 만든 신문이나 도서의 인쇄공장 역할도 했습니다. 초기에는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납 활자로 한글과 영문, 한자 등을 주조하여 문자를 인쇄했고, 주로 성경 등 종교 서적을 만들었습니다. 1896년부터는 신문까지 인쇄할 수 있을 정도의 대형 인쇄소로 면모를 일신했습니다. 1892년 창간한 월간 선교잡지 『The Korean Repository』도 이곳에서 찍었고, 『조선그리스도회보』, 『독립신문』, 『대한매일신보』와 같은 신문사들의 인쇄도 한동안 이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최초로 사진을 지면에 실은 『그리스도신문』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곳 인쇄소가 목판, 활판, 석판 등의 다양한 인쇄 기술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897년 7월 15일자 『그리스도신문』에는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등극한 고종황제의 ‘어사진’을 석판으로 인쇄해서 경품으로 증정한다는 광고가 실렸습니다.

“그리스도 신문이 각처에 퍼져 많은 사람이 보아 유익하게 하는데 월 전에 신문 사장 원두우 씨가 대군주 폐하께 대군주의 사진 뫼 실 일로 윤허하심을 물어 월 전에도 말했거니와 한 달 후에 이 사진을 뫼실 터인데 일 년을 이어 보는 사람에게 한 장씩 주기로 하였으나 지금부터 일 년을 보려 하는 사람에게도 주겠노라. 그러나 우리 조선이 몇 백 년 이래로 어사진 뫼시는 일은 처음일뿐더러 경향 간 인민들이 대군주의 천안(天顔)을 뵈온 사람이 만분의 일이 못 될 터이니 신문을 보아 문견을 넓히는 것도 유익하거니와 각각 대군주 폐하의 사진을 뫼시는 것이 신문된 자에게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어찌 다 측량하리오. 경향 간 어떠한 사람이든지 이 사진을 모시려거든 일 년을 이어 보시오.”

『그리스도신문』의 창간 발행인인 언더우드(Underwood, H. G. 한국명 元杜尤)가 대한제국 황제인 고종의 허락을 받아 어사진(御寫眞)을 특별판각으로 인쇄해서 일 년 정기 구독자에게 배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조선 사람이 임금의 초상을 집에 직접 걸어두는 일은 처음 있는 일로서, 대군주 폐하의 사진을 모시는 일은 일생의 영광이라는 설명이 있었고, 신문의 독자라면 신분의 여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임금을 가까이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광고였습니다. 특별판각은 신문의 호외 형태로 발행했으며, 삼문출판사의 석판인쇄술(lithography)로 복제한 일종의 포스터였던 것입니다. 아쉬운 점은 이렇게 배포된 고종의 어사진이 어떤 것이고, 누가 찍은 사진인지를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연구과제 중 하나입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