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의 답사 스케치24 – 퇴계 선생의 귀향길 따라
05/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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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안동 도산서원까지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꼬박 아흐레를 걸었다.

지난 4월 15일 오후 경복궁을 출발해, 4월 24일 저녁 안동 도산서원에 도착했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의 마지막 귀향길 700리를 따라 걸었다.

경복궁 사정전, 동호 두모포, 봉은사, 아차산 광나루, 남양주 미음 나루, 덕소, 팔당, 운길산, 두물머리, 양평 한여울, 여주 이포보, 여주보, 관아와 청심루, 강천섬, 원주 흥원창, 충주 가흥창, 중앙탑, 관아, 단양, 죽령, 소백산, 풍기 관아, 영주 관아, 안동 도산서원.

걷는 일의 육체적인 힘듦은 스틱을 집고 진통제로 견디며, 4월의 국토 풍광을 만끽했다. 퇴계 선생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린다. 우리나라 땅, 국토의 봄날 자연변화가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열흘 내내 걸으며, 셔터를 눌러댔다. 하루에 500여 점씩 디카에 이미지를 담았다. 여느 답사 때보다, 몇 배를 더 찍은 것 같다.

열흘 동안 새벽과 저녁 자투리 시간도 덤으로 주어졌다. 최근 몇 년 새 일과로 정착된, 스케치에도 열중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그날 본 풍경을 되새겨 그렸다. 또 새벽마다 머물렀던 현장을 사생해 가니, 드로잉이 50여 점 넘게 쌓였다. 첫 그림은 출발지 광화문 앞에서 본 저녁 인왕산에 초승달이 지는 모습을 담았다. 출발 전야가 마침 음력 삼월 삼짇날인 터라, 어스름한 하늘에 노란 조각달이 처연한 풍경화를 만들어 주었다. (도 1)

내가 걸었던 길은 2019년 길 이름을 지은 도산서원이 처음 열었고, 올해에 책으로 발간되었다. (이광호 외,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 푸른역사, 2021) 퇴계 이황은 홍문관(弘文館)과 예문관(藝文館)의 대제학을 겸직하며 명종실록(明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다, 1569년 음력 3월 이조판서(吏曹判書)로 발령받았으나 사양하고 낙향하였다. 69세 때였다. 그리고 다음 해 세상을 떠났으니 마지막 귀향길인 셈이다. 물론 퇴계는 배를 타고, 말을 타고 내려갔다.

이를 기리는 올해 두 번째 “퇴계선생 귀향길 걷기”는 4월 15일 퇴계가 마지막 관직을 지낸 경복궁 사정전 마당에서 진행되었다. 나는 광화문부터 두모포까지 그 일행과 첫날을 같이했다.

나는 이 퇴계 길을 연결하는 데 크게 일조한 지리학자 이기봉 박사를 따라나섰다. 이 박사는 국립중앙도서관 고문헌실에서 학예연구사로 근무하는 중이다. 평소 만남이나 답사길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여정에도 그에게 많은 걸 배우고 익혔다.

이 박사의 도시와 마을, 그 변화의 역사, 풍수, 지도학, 문명론 등은 우리시대 지리학자로 최고라는 확신을 지니게 한다. 특히 익숙한 것에 대해 새롭게 해주기에, 이기봉 박사와 만남은 늘 즐겁다. 그리고 내가 ‘대탄(大灘)’이라 하면 ‘한여울’이라고 부르라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역설할 때면 정말 존경스럽다. 물푸레여울, 배개나루, 흔바우나루, 똥뫼 등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불렀거나 지금도 부르는 땅이름을 발품 팔아 확인해온 점 탓에 더욱 그러하다.

남한강을 따라가는 충주까지 길은 나에게도 익숙한 편이다. 최근 여기 연재물에서 지우재 정수영의 사생화와 그림의 현장을 소개한 바도 있기 때문이다. (이태호, 답사스케치 3~8회, 2019) 나는 잘 아는 경치를 소개하며, 이기봉 박사에게 뒤돌아봄을 권했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공유하곤 했다.

덕소에서 팔당 강물 위로 전개되는 도성의 북산경, 양평 용문산과 추읍산의 세모꼴 형태미, 이포보의 해지는 낙조, 신륵사의 일출, 소백산의 녹음이 물드는 산 변화 등을 온몸으로 즐겼다. (도 2) 주자가 무이산에 은거하며 남긴 ‘무이산수쾌락(武夷山水快樂)’이 떠올랐다.

걸으며 다가오고 지나치는 한강-남한강도 해가 뜨고 지는 짧은 시간 못지않게 변화했다. 여울지는 봄 강의 아침, 물안개 지는 풍광은 걸음마다 바뀌는 게 신비롭기까지 했다. 남한강대교에서 강원도 원주와 충청북도 충주 사이, 그 강 풍경을 사생했다. (도 3) 이기봉 박사는 이 부론 지역의 여울을 남한강에서 눈과 귀로 살필 수 있는 가장 으뜸이라 한다.

단양에서 풍기로, 충청도서 경상도로 죽령을 넘으며, 아름다운 마을로 꼽히는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3리에서 여근곡을 발견하였다. 유명한 경주 여근곡보다 소규모지만, 형태는 더 선명했다. 마을 위 매바위골에는 남근석이 음양의 조화를 짝맞추었기에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미술로 본 한국의 에로티시즘(여성신문사, 1998) 저자로서 신발견이었다. (도 4, 5)

죽령을 넘어 경북 풍기 땅 사과밭 위로 솟은 소백산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한두 시간, 일이십 분 간격으로 뒤를 돌아보며 셔터를 눌렀다. 산 아래에서 연녹색이 황갈색조의 정상으로 번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뒤돌아볼 때마다 녹음이 스물스물 산정상으로 기어오르는 게 보이는 듯하였다. (도 6, 7)

4월 24일 해 질 무렵 안동 도산서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퇴계길을 나도 완주했다는 포만감보다, ‘괜히 걸었나’라는 생각이 먼저 스쳤다. 내내 산하의 풍경미를 최고로 즐기고 무릎과 허리의 통증을 감내하면서, 틈틈이 떠올랐던 화두이기도 했다. 걷는 열흘이 전체 인생의 노정이려니 했으니, 그 끝에 가면 ‘괜시리 살았나’ 하지 않을까 싶다.

어둑해진 도산서원 마당을 둘러보니, 죽어가는 듯하다 새잎을 늦게 내는 삼사백 살이 넘었다는 왕버들 두 그루가 눈에 들어 한그루를 그렸다. (도 8)

5월 5일부터 7일까지, 4월에 걸으면서 촬영이 미흡한 주요 장소를 차로 이동하며 보완했다. 해가 진 뒤에 도착해 사진을 못 찍은 양평 옛 관아 터로 솟은 용문산, 용문산과 추읍산이 떠오른 여주보, 섬강이 남한강에 합류하는 원주 흥원창을 다시 들렀다. 직행하다 빠트린 곳인 원주 법흥사 터, 청풍호, 청풍 의림지, 중원 고구려비, 창동 마애불 등을 찾았다.

여주보에서 볼 때, 강물 위로 솟은 삼각형 추읍산과 병풍을 친 듯한 용문산은 오후 실루엣의 겹겹이 여전하였다. (이태호, 답사스케치 7회, 2019) 양평대교에서 연출된 남한강 일몰, 강하에서 새벽에 본 용문산 일출도 큰 울림을 주었다. 청평 나루에서 케이블카로 비봉산 정상에 올라가 전망대에서 굽어본 청풍호는 정말 장관이었다. 물에 떠서 굽이굽이 너울대는 수변 산세와 남쪽으로 뾰족뾰족 봉우리의 유난한 월악산 경관 등은 우리 ‘내륙의 산하가 이러하지!’ 하는 감탄이 절로 토해졌다. (도 9)

 

4월 ‘퇴계 선생 귀향길 걷기’에는, 응원을 와서 한나절 같이 걸었던 무우수아카데미 이연숙 원장의 후원이 있었다. 또 이 도보여행에는 나와 자주 답사해오던 티제이 김과 홍석근 평사리출판사 대표, 최민욱 씨가 일부 구간을 빼고 동행했다. 5월 차량 이동 답사에는 이 원장과 홍 대표, 그리고 양효주 씨가 함께했다.

 

이태호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