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의 《 사진·문학·인문학의 카르텔 5 》 : 사진, 나비, 바니타스 혹은 메멘토 모리
05/18/2021
/ 김혜원

하이데거는 현존재를 태어나자마자 죽음 앞에 던져진 유한한 존재로 보고 이를 ‘죽음에 이르는 존재(Sein zum Tode)’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미 동서양에서는 유한자로서 갖게 되는 죽음의 공포나 인생의 허무함을 극복하고자, 삶을 경고하는 메시지로서의 여러 알레고리를 개념화해 놓았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알레고리는 장자가 나비되어 날아다닌 꿈, 인생무상을 뜻하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이다.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과 결부된 이 ‘호접지몽’의 교훈은 오랫동안 동양 문화 예술의 전통 속에서 반복 재생산되어 왔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에서 유래하여 허무, 무가치, 공허를 뜻하는 ‘바니타스(vanitas)’나 ‘오늘을 즐기라’는 뜻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포함하여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역시 그 대표적인 알레고리이다. ‘바니타스’와 결부된 ‘메멘토 모리’ 사상은 중세의 기독교적 사유에 편입되었고, 이는 하나의 철학적 개념이 되어 16,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나 그 후 유럽 예술 전반에 파급되어 사진 예술로까지 계승되었다.

 

구본창, 굿바이 파라다이스, 1993

구본창의 《굿바이 파라다이스(Goodbye Paradise) 연작은 인간에게 삶을 박탈당한 연약한 생명체를 통해 덧없는 삶에 대한 연민과 인간 욕망의 부질없음을 드러내고 있는 ‘바니타스’ 작품이다. 구본창은 자연사박물관이나 곤충체험관에서 이용하는 박제나 표본 형식을 자신의 작업 방식으로 차용하였는데, 이 작품은 박제된 나비를 클로즈업한 후 이를 감광유제를 바른 한지에 한 장 한 장 인화하여 곤충 채집박스 형식에 맞게 핀으로 꽂아 구성한 입체물이다. 그는 나비뿐만 아니라 잠자리 등의 곤충과 물고기, 새, 사슴 등의 동물을 소재로 야생의 ‘파라다이스’에서 자유롭게 숨 쉬며 살았던 생명의 주체가 인간의 연구와 실험과 관찰의 객체가 되어 생을 잃고 오브제로 전락한 ‘실낙원(失樂園)’의 상황을 ‘굿바이 파라다이스’로 역설화(逆說化)하였다. 즉 그는 박제로 안치되어 전시되는 동물이나 표본으로 분류되어 진열되는 곤충을 통해 인간 역시 박제가 될 운명임을 시사하며 자연 파괴와 생명 경시 현상을 비판하였는데, 이는 인간 삶의 무상함과 인간 욕망의 허무함을 강조하며 현대 사회의 물질문명을 성찰하고 자연 생태와 환경을 파괴하는 현상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 ‘바니타스’ 예술의 주제와 동일한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

   사진기, 그 작은 상자 속의 끝 모를 우주

   그녀, 잡을 수 없는 나비의 율동은 섬광처럼

   나의 컴컴한 내부를 꿰뚫고 지나 어디론가 사라지고

   굳어버린 나비의 날개, 한때의 나른한 미소만이

   무심히 인화된다 시간은 완벽하게 증발하고,

   별은 오래 전에 플래시처럼 폭발한다

   죽음의 공포를 한입에 삼킨, 살아 있음의 엑스터시

   현실이 빠져나간 시간의 바깥에서

   그녀의 표정은 행복한 별빛의 벽화로 붙잡혀 있다

 

   내 망막 저편에 움직이는 그녀 느낌의 지느러미,

   혹은 그녀가 감춘 외설의 나비 율동,

   난 내 감각의 바늘로 그 보이지 않는 피사체들을

   고정시키고 싶다 오, 내가 열망한 건 미이라의 언어

   모든 피사체들은 렌즈 속에서 불멸하는 죽음을 산다

 

   죽음이라는 방부제가 모든 삶의 절실한 이미지들을

   그대로 보존시켜줄 것이다

   난 마음의 셔터를 누른다, 덧없이 사라질 이 순간

   모든 매혹의 풍경들을 종이 피라미드에 미이라로 가두길 꿈꾸며

 

   -유하, 「사진 속엔 그녀가 살지 않는다 부분

유하의 시 「사진 속엔 그녀가 살지 않는다」는 ‘메멘토 모리’ 철학을 빌려 덧없이 사라질 인간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성찰하고 있는 시이다. 이 시에서 유하는 거대한 세계 속 자신의 욕망의 대상으로 “외설의 나비 율동”을 “감춘” “그녀”를 전면화한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그녀”는 ‘죽음에 이르는 존재’로서의 유한자이다. “덧없이 사라질” ‘바니타스’의 상징물 “나비”와 같이 포획하는 순간에 사라져 “벽화”나 “종이 피라미드” 위에 “이미지”로 남게 될 허무한 대상인 것이다. 한편 대상이 사라진다는 것은 삶의 욕망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하는 ‘카르페 디엠’ 의식으로 “살아 있음의 엑스터시”를 추구한다. 욕망으로 표상되는 이 거대한 세계에서 자신의 욕망과 그 대상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을 순간의 황홀로 치환한다. 또한 “사진 속에는 그녀가 없다”며 사진의 본질이 ‘죽음’임을 인식한 유하는 “모든 피사체들은 렌즈 속에서 불멸하는 죽음을 산다”고 하면서 “사진”의 ‘메멘토 모리’를 상기한다. 유하는 이 ‘메멘토 모리’를 통해 죽음과 소멸로 치닫는 것들과의 관계를 복원하고 현존 의지를 다지며 죽음의 불가피성을 초월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구본창이 ‘바니타스’를 표현하고 유하가 ‘메멘토 모리’를 체감하는 방식은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언급한 ‘사진’의 특성을 통해 이루어졌다. 모든 사진을 ‘메멘토 모리’로 규정한 손택은 사진이 순간을 정확히 베어내 꽁꽁 얼려 놓는 방식으로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증언해 준다고 하면서 사진을 한때 존재했던 사람들의 유물로 묘사하며 죽음의 순간을 방부 처리하는 사진의 특성에 주목한 바 있다. 구본창은 ‘나비’의 실제 ‘박제물’ 대신 ‘나비’를 찍은 ‘사진’을 작품의 형식으로 이용하며 ‘박제’와 ‘사진’을 동일시하였다. 유하 역시 죽음을 마주한 자의 언어가 “미이라의 언어”임을 확인하며 “감각의 바늘로 그 보이지 않는 피사체들을/고정”시키는 ‘사진’과 “죽음이라는 방부제”로 보존될 ‘미라’를 동일시하였다. 이처럼 이들이 모두 ‘사진’과 ‘박제’와 ‘미라’를 죽음을 동결한 영원불멸의 이미지로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사진의 ‘메멘토 모리’가 삶의 절실한 이미지들을 영원히 살아 있는 것으로 현존시키기 위한 죽음의 초월 장치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곧 바스러져 사라질 연약한 날개로 인해 ‘바니타스’ 도상이 된 아름다운 ‘나비’는 필멸의 시간성 앞에 내던져진 한시적인 인간 존재의 다른 이름이었다.

 

* 『열린정신 인문학연구 제19권 제1호에 게재한 논문 일부를 인용, 재구성하여 쓴 글입니다.

 

김혜원(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연구교수,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