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지 않)은 얼굴
05/12/2021
/ 박평종

낸시 버슨(Nancy Burson)의 1986년 작 <나이 든 마릴린 먼로(Aged Marylinn Monroe)>, 1962년에 작고한 할리우드 여배우의 ‘늙은’ 얼굴을 합성한 작품이다. 1926년에 태어났으니 36세에 세상을 떠났고 86년이면 환갑의 나이다. 이 ‘늙은’ 얼굴이 얼마나 진짜에 가까운지는 입증할 수 없다. 만약 살아있었더라도 병에 걸리거나 보톡스를 많이 맞거나 했다면 버슨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얼굴일 수 있다. 그래도 그 이미지는 영락없는 먼로다. 나이 들어 사진 찍히면 보통 흉측하다고들 한다. 그래서 좀처럼 카메라 앞에 서려 하지 않는다. 젊을 때 많이 찍어놓을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마릴린 먼로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버슨에게 당한 셈이다. 누구였던가, 프랑스의 어느 여배우는 나이 든 이후 한 번도 카메라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중의 환상 속에 남고 싶었던 것이다. 어쨌든 20세기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잊지 못하는 이들은 ‘나이 든’ 먼로의 얼굴이 보고 싶었을 것이다. 애정이 깊어서인지, 호기심 탓인지 알 수 없으나 이 ‘보고 싶은 얼굴’의 다른 버전도 많이 나와 있다.

컴퓨터의 사진 합성 기술이 조악했던 시절 버슨의 작품은 신선했다. 그런데 이제 이 ‘나이 든 얼굴’의 합성은 너무도 간단한 기술이 됐고, 품질도 좋아졌다. GAN 알고리즘 덕이다. 2017년에 발표된 FA GAN(Face Aging GAN), 이걸 개량한 PFA GAN(Progressive Face Aging GAN) 등은 한 장의 얼굴사진으로부터 나이대별로 노화하는 얼굴 이미지를 합성해 내는 알고리즘이다. 게다가 새로 생성된 이미지는 원래 인물의 정체성(identity)을 유지한다. 방법은 CGAN(Conditional GAN)의 활용에 있다. 본래 GAN은 생성자와 판별자의 대립구도를 통해 원본과 유사한 가짜 데이터를 산출하는 데 특화된 생성모델이다. 이 때 생성자는 데이터를 무작위로 산출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의 이미지를 얻어낼 수 없다. 예컨대 마릴린 먼로의 사진에서 나이 든 오드리 햅번이 나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미지의 방향을 통제하기 위해 잠재변수에 조건을 부여한다. 여기서 잠재변수는 원본과 유사한 가짜 데이터를 얻기 위해 픽셀 값의 편차를 만들어내는 요소다. 그리고 FA GAN에서 이 조건은 인물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이 알고리즘의 개발자들은 인물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미래의 얼굴’이 대단히 중요한 과업이라고 주장한다. 연령을 초월한 인물 식별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도 실종된 아이를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 한 인물이 미래에 어떤 모습을 하게 될지 예견하는 데도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 주장처럼 이 알고리즘의 효용가치는 높다. 대부분의 과학기술이 그렇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런 긍정성과는 별개로 ‘나이 든’ 모습을 미리 본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굳이 미리 보지 않아도 언젠가는 보게 될 테니까. 가능하면 시간을 유예시키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인데 일부러 미래를 앞당겨 보려 하는 짓궂은 짓을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어릴 때는 시간이 빨리 흘러 어른이 되고 싶고, 나이 들면 시간이 더디 흘러 지금에 멈추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에서 부모는 기쁨을 느끼지만 반대로 부모의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여 가는 모습에 사람은 마음 아파하지 않던가. 젊은 시절에 찍었던 기념사진을 보면 내게도 저런 모습이 있었나 싶을 때가 있고, 가까운 지인들의 모습에서도 마찬가지다. 별로 보고 싶지 않은 ‘늙은’ 얼굴을 일부러 ‘만들어서’ 볼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그래도 그 기술이 유익하게 쓰일 수 있다면 별 수 없지만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미래의’ 얼굴은 ‘전통적인’ 관념에 비추어 볼 때 사진이라 할 수 없다. 그 관념에 따르면 카메라 앞에 ‘존재하는’ 대상을 찍어낸 이미지만이 사진이기 때문이다. 실상 과거는 ‘이미’ 없고, 미래는 ‘아직’ 없다. 늘 ‘지금, 여기’만, 말하자면 현재만 있다. 그래서 사진은 과거도, 미래도 찍지 못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든 사진은 항상 ‘이미’ 없는 과거만 보여준다. 그리고 이제 ‘아직’ 없는 미래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놀라운 일이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