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석의 사진살롱 48 – 샤를 보들레르의 사진시녀론
04/14/2021
/ 박주석

나다르, 《샤를 보들레르의 초상》, 알부민프린트, 1855.

전설의 인물사진가 나다르(Gaspard-Félix Tournachon, 1820~1910)가 찍은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샤를 보들레르의 초상사진입니다. 작가의 사인(sign)을 찍은 대지 위에 알부민프린트 사진을 붙였습니다. 당대 프랑스 문화예술에 서슬이 퍼런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낸 시인답게 인상이 참 고약하게 생겼습니다. 보들레르는 흔히 사진을 비하하고 비난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사진 찍는 일을 엄청 즐겼습니다. 나다르에게서뿐만 아니라 다른 파리의 사진가들에게서도 자신의 인물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거의 모든 관련 출판물에 많이 쓰이는 제일 유명한 보들레르의 사진은 에티엔느 카르자(Étienne Carjat, 1828~1906)가 찍은 것입니다.

에티엔느 카르자, 《샤를 보들레르의 초상》, 알부민프린트, 1861.

최근 포스텍의 미술사 교수인 우정아의 칼럼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사진의 예술성을 증명한 ‘황제의 사진가’」라는 제목의 글에서입니다. 보들레르의 사진에 관한 평가에 관한 뿌리 깊은 오해의 단면이어서 소개합니다.

 

“평론가 샤를 보들레르는 사진이란 단지 ‘예술과 과학의 시녀일 뿐’이라고 주장했고, 당대 최고 화가였던 앵그르는 ‘사진에 반대하는 미술가들의 연대’를 만들었다.” (『조선일보』 2020. 12. 01.)

이러한 오해의 단초는 보들레르의 비평이 제공했습니다. 사진이 발명되고 초상사진이 크게 유행하던 1859년 보들레르는 「1859년 살롱 : 근대의 공중(公衆)과 사진」이란 비평문에서, 당시 사진의 유행 트렌드를 분석하면서, 사진은 예술과 과학을 보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글을 인용해 봅니다.

 

“만약 사진의 어떤 성격이 있어 미술을 대체할 수 있도록 용인한다면, 사진은 자신의 동맹군인 우매한 대중의 힘을 빌려 머지않아 미술의 자리를 차지하고 미술의 품격을 망가트릴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사진은 과학과 예술을 보조하는 본래의 역할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문자의 인쇄나 속기 같은 기능이 문학을 대신하거나 또는 문학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 Charles Baudelaire, 「The Modern Public and Photography」, 중에서

 

대부분 사진가나 미술가들은 여기까지만 읽고, 보들레르가 사진을 ‘예술과 과학의 시녀’로 취급했다고 주장합니다. 전 세계 사진사 연구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는 버몬트 뉴홀(Beaumont Newhall, 1908~1993)의 평가가 문제였습니다. 사진예술에 대한 뉴홀의 영향력을 극대화한 저서 『The History of Photography』에서, 그는 보들레르가 사진의 예술성에 대한 지극히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고, 사진에 혹독한 비판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로 뉴홀의 견해는 많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비판 없이 받아들여졌고 인용되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글의 다음 문장을 보면 이런 해석이 많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하여금 여행자의 앨범을 풍부하게 채우고, 부족한 기억력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고, 박물학자의 자료실을 꾸미고, 미생물을 확대해서 보여주며, 천문학자의 가설을 입증하는 자료로써 기능하게 하자. 요컨대 사진은 비서나 서기의 일처럼 전문적인 연구나 자료 수집, 정보의 기록 등의 역할을 정확하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말이다.” – Charles Baudelaire, 「The Modern Public and Photography」, 중에서

 

사진의 기록학적 가능성을 성찰한 대목입니다. 1850년대 당시 프랑스 사진의 상황이나 글의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버몬트 뉴홀의 주장은 보들레르의 견해를 곡해한 결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예술은 기록보다 우위에 있다는 편견에 불과할 뿐입니다. 보들레르의 주장은 당시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프랑스 대중의 고약한 악취미에 아부해서 신고전주의 회화와 똑같은 초상사진을 양산했던 사진사들에 대한 비판이었고, 사진의 예술성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기록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지식을 창출하는 사진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활용하라는 촉구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근대의 지식 수집과 이를 확신시키는데 필요한 기록으로서 사진의 가능성에 방점을 찍은 것이었습니다. 기록사진의 가능성을 예견한 말이기도 했습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