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의 《 사진·문학·인문학의 카르텔 3 》 : 암실의 추억
04/07/2021
/ 김혜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자신이 쓴 사진론 제목을 ‘어두운 방(camera obscura)’이 아니라 ‘밝은 방(camera lucida, 원제 La Chambre claire)’으로 붙일 정도로, ‘카메라 옵스큐라’에서의 프로 사진가가 찍은 세련된 기호로서의 예술 사진보다 ‘카메라 루시다’에서처럼 아마추어 사진가가 찍은 원초적인 이미지를 더 편애하였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사진은 무수한 아마추어들의 원초적 이미지들을 양산하며 포토샵으로 대표되는 건식 명실(明室)에서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아날로그 사진은 ‘촬영(shooting)-현상(developing)-인화(printing)’라는 일련의 ‘프로세스(process)’를 거치며 습식 암실(暗室)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사진 이미지가 광학 장치를 통해 상(像)을 형성하는 물리적인 작용뿐만 아니라 물체에 닿은 빛에 대한 할로겐화은(AgX)의 감응이라고 하는 화학적인 작용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사진의 영상화 과정에서 중요한 물리적 요소는 빛과 어둠이고, 암실은 이 빛과 어둠이 변증하는 시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사진기 몸통 속의 세계,

   보라, 이 어둡고 한정된 공간 속으로

   새어들어오는 빛의 눈부심을

   나는 별빛의 렌즈를 통해, 움직이는 매혹

   그 존재의 신비를 희미하게 목격할 뿐이다

 

   난 넋을 미치도록 쥐어짜, 發光한다

   저 무심한 우주의 필름 속에, 살아 펄떡대는

   이 호흡하는 순간의 관능을 새겨놓기 위하여

   문득, 몸 안에 저장된 태양빛의 기억이

   투명한 강물의 인화지로 나를 이끈다

   마음을 놓아두고 강물에 안겨버린

   그림자, 욕망이 떠나버린 내 현생의 폐허

 

   나는 홀로 태어났고 홀로 죽어갈 것이다

   삶이란 외마디 발광,

   죽음 앞에서 미칠 수 없다면

   이 생명의 황홀한 빛은 나를 맛보지 못하리

   흐르는 물비늘 위의 은빛 정지,

   고독한 자들은 시를 찾아 떠돌고

   우주는 그들을 위해 영원의 오르가슴을 예비한다

 

   난 잠시 죽음을 놔두고 그림자 숲속으로 간다

 

   -유하, 「사진기 속의 우주」 전문

유하의 「사진기 속의 우주」는 우주라는 세계를 인식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암실’에서의 사진 제작 과정에 비유하여, ‘사진기’로 구현되는 영상 매체의 예술 세계를 지향하는 자신의 예술관을 드러내고 있는 메타시이다. 그것은 시로 등단하기 이전 단편 영화를 제작한 영화감독으로서의 유하가 사진의 제작 공정 및 사진 이미지에 의미가 생성되는 방식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둡고 한정된 ‘카메라 옵스큐라’ 안의 ‘렌즈’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통해 존재의 신비를 목격하는 ‘눈’에서 출발하여 그의 예술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사진 제작 ‘프로세스’에 따라 전개해 나간다. 즉 ‘태양빛의 기억’이 ‘현상액’과 ‘정지액’이라는 ‘투명한 강물’ 속 ‘흐르는 물비늘’의 ‘교반(agitation)’ 과정을 거쳐 ‘은염’이 발린 ‘인화지’ 위에 ‘은빛 정지’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그림자[影]’라는 환영(幻影)의 세계를 지향하면서 우주의 ‘필름’ 속에 살아 호흡하는 순간의 관능을 새겨놓고 세계와의 동일화, 그 ‘영원한 오르가슴’을 꿈꾸는 높은 예술적 이상과 쓸쓸한 작가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Richard Nicholson, darkroom series, 2013

리처드 니콜슨(Richard Nicholson)의 <암실 시리즈(darkroom series)>는 사라져가는 습식 암실을 촬영하여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이미지 제작 방식의 변화를 상기시키고 있는 메타사진이다. 벽으로부터 반사된 빛이 필름이나 인화지에 닿지 않도록 까맣게 칠해 놓은 벽이 매우 인상적인 이 암실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사진이라는 매체의 물질성이다. 두 대의 테이블 위에는 각각의 확대기가 놓여 있다. 오른쪽 테이블 모퉁이에는 빛의 기억을 저장해 놓은 현상된 필름이 놓여 있다. 이 네거티브 필름을 확대기의 캐리어에 끼우고 초록상자 속 후지 인화지나 흰색상자 속 일포드 인화지에 노광(露光)을 한 후 현상액과 정착액의 화학적 처리 과정을 거치면 인화지 위에 상(像)이 정착되는 것이다. 리처드 니콜슨은 사진 발명 이래로부터 포토샵이 등장한 1990년까지 150여 년간 지속되어 온 기술적 복제 과정이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물질성과 프로세스에 기반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카메라가 디지털카메라로, 필름이 메모리카드나 하이드라이브로, 습식 암실과 광학 확대기가 컴퓨터의 이미지 조작 소프트웨어의 알고리즘으로 대체되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유하의 시나 리처드 니콜슨의 사진은 빛과 어둠이 변증하는 시공간으로서의 ‘암실’과 ‘확대기’와 ‘프로세스’가 이진 코드 0과 1이 증폭하는 시공간으로서의 ‘모니터’와 ‘포토샵’과 ‘프로그램’으로 바뀐 오늘날 이미지 제작 환경에서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즉 이들의 시와 사진은 아날로그 사진 영상의 제작 원리에서 절대적 의미를 갖는 ‘암실’의 역할을 새삼스레 환기시킨다. 다만 유하는 ‘암실’의 작업 과정을 통해 작가의 창조적 정신성을 더 강조하였고, 리처드 니콜슨은 ‘확대기’나 ‘필름’이나 ‘인화지’와 같은 사진 매체의 물질성을 더 강조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작가의 창조적 정신성과 매체의 물질성이 바로 모더니즘을 이끌어 온 핵심 축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진론 『밝은 방』을 저술하면서 구조주의 이론가에서 후기구조주의 이론가로 전향하여 ‘저자의 죽음’을 선언하고 ‘독자’의 지위를 부상시켰던 바르트가 ‘어두운 방’이 아니라 ‘밝은 방’을 편애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열린정신 인문학연구』 제19권 제1호에 게재한 논문 일부를 인용, 재구성하여 쓴 글입니다.

 

김혜원(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연구교수,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