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석의 사진살롱 47 – D.O.P.와 P.O.P. 인화
03/24/2021
/ 박주석

퍼시벌 로웰, 《창덕궁의 후원 풍경》, P.O.P. 방식의 알부민프린트, 12.0×19.0cm, 1884, 보스턴미술관 소장.

숲속에 원래의 지형을 그대로 활용한 조선 정원의 전형적인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1883년 조선 고종이 정궁으로 사용했던 <창덕궁> 후원의 풍경입니다. 미국의 천문학자이자 외교관이었던 퍼시벌 로웰(Percival Lawrence Lowell, 한국명 노월魯越, 1855~1916)이 1883년 12월부터 1884년 봄까지 서울에 체류하면서 촬영했습니다. 현재 이 사진은 미국의 <보스턴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본업은 화성(Mars)을 주로 연구한 천문학자였지만 아마추어사진가로도 활동했던 로웰은 조선에서 4개월 동안 체류하며 고종의 어사진을 비롯한 다양한 서울의 모습을 찍었습니다. 같은 해 고향인 보스턴으로 돌아간 로웰은 사진 전시회를 열고 조선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을 공개했으며, 당시 보스턴 사진계를 떠들썩하게 했다고 합니다. 실제 <보스턴아마추어사진가협회>는 로웰의 전시회를 1884년의 가장 우수한 전시라는 평가와 함께 최우수상을 수여했습니다. 로웰은 전시 후 <보스턴미술관> 소속 사진도서관(MFA Photograph Library)에 사진 전작을 기증했고, 비록 1970년 도서관은 폐쇄되었지만, 로웰의 사진은 2003년 미술관으로 이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진을 소장한 <보스턴미술관>의 기술(discription)에 따르면 로웰은 P.O.P.(Printing Out Paper) 프로세스의 알부민(Albumen, egg white)을 용제로 하고 질산은을 감광제로 하는 인화지를 사용해 사진을 만들었습니다. P.O.P 방식의 인화는 기본적으로 밀착인화 방식입니다. 그래서 당시 사용한 유리원판 네거티브의 크기가 곧 사진의 크기입니다. 따라서 로웰이 사용한 카메라는 유제 면이 가로 19cm, 세로 12cm 정도인 당시로는 비교적 소형의 뷰카메라(View Camera) 종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네거티브 유리원판의 현상과 인화는 사진을 찍은 서울에서 했는지 아니면 미국으로 돌아간 다음 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미술관 소장의 사진은 전시에 걸었던 것으로서, 보스턴에 돌아가 현상과 인화를 했을 개연성이 크다고 봅니다.

여기에서 P.O.P. 방식이란 말이 등장합니다. 로웰의 사진을 소장한 미술관 측의 설명입니다. 사진의 역사에서 P.O.P. 방식은 1860년대에 등장해서 1940년대까지 전 세계적으로 폭넓게 사용되었던 인화 방식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흑백사진 인화 방식인 D.O.P.(Developing Out Paper) 방식의 반대 개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D.O.P.방식은 확대기에 필름을 걸고 네거티브 이미지를 확대해서 인화지에 잠상(潛像, Latent Image)을 만들고, 인화지를 현상액에 담그면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을 거칩니다. 반면 P.O.P.방식은 유리원판 네거티브를 인화지 위에 밀착시키고 빛을 주면 인화지 상에 직접 이미지가 형성되는 원리입니다.

P.O.P.를 사용하면 사진가가 빛을 쏘이고 인화지 위에 이미지가 서서히 올라오는 과정을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적당량의 빛을 받아 원하는 이미지가 나타나는 시점에 이르면 곧바로 정착 과정으로 들어가고 완성하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인화할 때는 암실이 필요하지 않았던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P.O.P.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흑백이라기보다는 대개 자줏빛 나는 갈색 즉 퍼플블랙(Purple Black)으로 토닝(Toning)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로웰의 사진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P.O.P.방식은 밀착인화만 가능했기 때문에 사진의 크기가 한정될 수밖에 없었고, 20세기에 들어와서 확대 인화가 가능한 D.O.P. 방식이 상용화되면서 사라졌습니다.

P.O.P. 방식의 인화지에는 다양한 감광유제가 사용되었습니다. 인화 종이에 이미지가 나타나도록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은(Ag) 화합물입니다. 하지만 종이 위에 질산은(AgNO3)이나 브롬화은(AgBr)과 같은 은화합물을 도포하려면 이를 접착시켜줄 용제(溶劑)가 필요합니다. 바로 젤라틴, 알부민, 콜로디온 같은 끈적한 물질입니다. 흔히 ‘젤라틴실버프린트(Gelatin Silver Print)’ 또는 ‘젤라틴은염사진’이라는 말은 종이에 바른 감광유제가 젤라틴에 섞인 은염이었다는 말이고, 이를 통해 이미지를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P.O.P. 시대에는 달걀의 흰자를 이용하는 알부민프린트(Albumen Print), 알코올과 니트로셀룰로오스의 화합물인 콜로디온을 이용하는 콜로디온실버프린트(Collodion Silver Print) 등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물론 젤라틴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사이에 만들어진 빈티지 사진은 이미지의 색조나 농담이 매우 다양합니다. 용제의 종류에 따라 이미지가 다르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확대가 가능한 D.O.P.방식이 유행하면서 현상액에 오래 담가도 안정적인 젤라틴 용제가 대세를 이루었고, 밀착 전용의 젤라틴 가스라이트지(Gaslight Paper)가 나오면서, 알부민과 콜로디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