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의 《 사진·문학·인문학의 카르텔 2 》 : 사진에 관한 각서
03/16/2021
/ 김혜원

카메라(사진)는 발명 당시부터 대중의 열광을 받은 히트 상품이었고, 18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새로운 모델이 출시될 때마다 지속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핫한 상품이다. 1939년 사진술이 공표되었을 때 다게레오타입을 보러 운집한 군중의 열광이나 사진 발명과 함께 회자되는 서구 예술가들의 열띤 사진 담론처럼, 외래품으로서의 카메라를 수입한 식민지 조선의 예술가들에게서도 사진 담론은 다양하게 펼쳐졌다. 동아일보 사진부장으로 일장기말소사건을 주도한 신낙균(申樂均)은 사진을 신문, 서적, 잡지, 의학계, 경찰계, 과학 등 응용 범위가 광대하여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학술’로 보았고, 특히 사진이 ‘국가의 안위’를 지배하는 기술임을 강조하였다. 일제 강제 해산 직전의 카프(KAPF) 영화부 책임자였던 전평(全平)은 사진을 정치나 경제나 사회학에 대한 ‘이론체계’와 ‘교육’이 필요한 기계적 예술로 보았다. 친일로 전향한 주지주의 문학이론가 최재서(崔載瑞)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카메라-아이’로 대상을 관찰하는 방식의 리얼리즘 소설론을 펼친 반면, ‘일제 감시 대상 인물 카드’에 2점의 범죄자 신상기록용 사진을 남긴 임화(林和) 등 마르크스주의 문학인들은 사진술을 단순한 모방 행위로 간주하여 사진기적 재현은 리얼리즘이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정세와 전황에 따라 근대 과학 기술이자 문화 예술인 사진을 십분 활용한 일제의 지배 전략에 굴종해야 하면서 그에 저항해야 했던 이들에게는 사진에 대한 매혹과 우려의 양가감정이 더 미묘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1 + 3

3 + 1

3 + 1  1 + 3

1 + 3  3 + 1

1 + 3  3 + 1

3 + 1  1 + 3

3 + 1

1 + 3

 

선상의점 A

선상의점 B

선상의점 C

 

A + B + C = A

A + B + C = B

A + B + C = C

 

<중략>

 

(태양광선은, 凸렌즈때문에수렴광선이되어일점에있어서혁혁히빛나고혁혁히불탔다, 태초의요행은무엇보다도대기의층과층이이루는층으로하여금凸렌즈되게하지아니하였던것에있다는것을생각하니낙이된다, 기하학은凸렌즈와같은불장난은아닐른지, 유우크리트는사망해버린오늘유우크리트의초점은도처에있어서인문의뇌수를마른풀과같이소각하는수렴작용을나열하는것에의하여최대의수렴작용을재촉하는위험을재촉한다,사람은절망하라, 사람은탄생하라, 사람은절망하라)

 

-이상, 선에 관한 각서 2」 부분

이상(李箱, 1910~1937)의 「선에 관한 각서 2(1931)는 카메라에 관한 우려와 각성의 목소리가 드러난 시이다. 7편의 연작시 「삼차각 설계도 중 하나인 이 시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카메라 렌즈의 형상과 기능이다. 1연의 ‘1+3’ 혹은 ‘3+1’의 조합은 오른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카메라 렌즈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 ‘凸렌즈(볼록렌즈)’의 기능은 ‘태양광선’을 한곳에 모으는 ‘수렴작용’에 있다. 그런데 선을 의미하는 1과 공간을 의미하는 3의 차원에서, 선상의 점 A와 B와 C가 동일한 한 점을 향해 직선으로 ‘수렴’되는 현상은 바로 카메라 옵스큐라가 완성한 데카르트적 원근법의 세계이다. 따라서 이상은 한 점으로 ‘수렴’하는 이 볼록렌즈의 기능을 지속적인 동일성의 원리로 ‘수렴’을 ‘재촉’하는 유클리드 기하학과 동일시한다. 즉 이상은 이 기하학을 선원근법을 낳은 과학기술의 정수로서의 볼록렌즈와 같은 ‘불장난’으로 여기고 인류가 근대 서구 문명을 상징하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위험’에서 벗어나 ‘인문의 뇌수’, 인문 정신의 정수를 추구하며 ‘절망’의 끝에서 다시 ‘탄생’해야 함을 촉구하고 있다.

 

신칠현_자화상_1926

일제 강점기에 서울 종로에서 사진관을 운영한 영업사진사이자 경성사진사협회 창설 멤버로 활동한 신칠현(申七鉉, 1900∼1992)의 <자화상>은 직업사진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사진이다. 삼각대에 받친, 어깨 높이의 카메라를 다루며 촬영에 열중해 있는 모습에는 카메라라는 근대 문물의 메커니즘을 체득한 선각적 사진가로서의 자부심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 <자화상>이 더 의미 있는 것은 이 사진이 카메라 옵스큐라가 완성한 데카르트적 원근법의 질서를 해체하고 당당히 시각 주체를 선언하고 있는 사진이기 때문이다. 이성과 합리성에 기초하여 세계를 카메라 렌즈로 수렴되는 기하학적 공간으로 인식하는 데카르트적 원근법에는 시선의 주체와 시선의 대상이라는 이분법적 위계질서가 내재해 있다. 따라서 신칠현은 자신을 피사체로서의 원근법적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이미지를 능동적으로 재현하는 원근법적 주체로 전면화한다. 특히 대형카메라를 다루는 힘찬 주먹과 카메라를 주시하는 시선은 카메라라는 기계를 사진적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인식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따라서 당시 핫한 박래품으로서의 카메라 수용 시기의 사진 담론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식민 제국과 식민지 조선의 관계에서 식민화의 도구로 작동하는 카메라 기능에 대한 식민지적 무의식 혹은 의식적 공포나 경계가 조선인들에게 내재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경성고등공업학교(현 서울대 공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건축 기사로 근무했던 이상의 경력은 카메라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개발 정책을 위한 테크놀로지로 기능했던 당시의 상황을 연상시킨다. 『조선시론』의 의뢰로 일반 사진가로 참여하여 순종(純宗)의 국장을 기록한 신칠현은 순종 인산 시 공포된 ‘국장 촬영규정’이 암시하듯, 시각적 주체와 시각적 재현의 메커니즘을 둘러싼 관(官)과 민(民)의 헤게모니 싸움을 추측케 한다. 결국 이상의 시나 신칠현의 자화상은 식민 지배 시각 체제로서의 제국의 렌즈에 대응하기 위한 사진에 관한 각서였고, 이는 곧 식민지 조선인들의 엄숙한 실존적 메시지가 투영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김혜원(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연구교수,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