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트릭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는 사람의 체취를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망상’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르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다. 90년대 초에 출간된 이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고 나중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널리 회자된 바 있다. 소설의 부제는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문자 그대로 이 픽션은 인간의 ‘향기’를 보존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잔혹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주인공은 장 밥티스트 그루누이로, 그루누이(Grenouille)는 프랑스어로 개구리를 뜻한다. 몰골이 흉측해서 사람들로부터 경멸의 대상이 된 가련한 인물이다. 어쨌든 천부적인 후각 덕분에 이 ‘개구리’ 인간은 향수 제조의 달인이 되나 살아있는 사람의 냄새를 저장하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자신만의 비법을 찾아 나선다. 문제는 향수를 만들려면 대상의 ‘정수’를 모조리 뽑아내야 한다는 것, 예컨대 꽃의 향기를 저장하게 되면 꽃은 죽는다. 불가능한 욕망에 사로잡힌 그루누이는 결국 인간의 ‘정수’를 뽑아 향수를 만들고 목숨을 희생시키는 선택을 한다. 그렇게 살아있던 인간의 체취가 ‘천상의’ 향수로 저장된다.
감각정보를 저장하는 문제는 문명사의 오랜 숙원이었다. 시각정보는 이미지, 요컨대 그림으로 저장 가능했으나 왜곡이 발생했다. 정보가 왜곡되면 가치는 반감된다. 사진은 왜곡 없이 시각정보를 저장하는 탁월한 방법으로 1839년에 발명됐다. 청각정보는 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포노그래프(phonographe)를 통해 저장과 재생이 가능하게 됐다. 이른바 축음기의 탄생이다. 이 두 매체는 19세기가 거두어들인 가장 놀라운 성과들이다. 시각정보와 청각정보는 문자 그대로 ‘왜곡 없이’ 저장될 수 있었다. 말하자면 현실에서 발생하는 정보가 바로 그 시간 자체와 더불어 ‘통째로’ 기록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입증’의 힘이 발생한다. 나아가 이 저장된 정보는 언제라도 다시 원형 그대로 재생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