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사진, 축음기
03/10/2021
/ 박평종

파트릭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는 사람의 체취를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망상’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르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다. 90년대 초에 출간된 이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고 나중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널리 회자된 바 있다. 소설의 부제는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문자 그대로 이 픽션은 인간의 ‘향기’를 보존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잔혹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주인공은 장 밥티스트 그루누이로, 그루누이(Grenouille)는 프랑스어로 개구리를 뜻한다. 몰골이 흉측해서 사람들로부터 경멸의 대상이 된 가련한 인물이다. 어쨌든 천부적인 후각 덕분에 이 ‘개구리’ 인간은 향수 제조의 달인이 되나 살아있는 사람의 냄새를 저장하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자신만의 비법을 찾아 나선다. 문제는 향수를 만들려면 대상의 ‘정수’를 모조리 뽑아내야 한다는 것, 예컨대 꽃의 향기를 저장하게 되면 꽃은 죽는다. 불가능한 욕망에 사로잡힌 그루누이는 결국 인간의 ‘정수’를 뽑아 향수를 만들고 목숨을 희생시키는 선택을 한다. 그렇게 살아있던 인간의 체취가 ‘천상의’ 향수로 저장된다.

감각정보를 저장하는 문제는 문명사의 오랜 숙원이었다. 시각정보는 이미지, 요컨대 그림으로 저장 가능했으나 왜곡이 발생했다. 정보가 왜곡되면 가치는 반감된다. 사진은 왜곡 없이 시각정보를 저장하는 탁월한 방법으로 1839년에 발명됐다. 청각정보는 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포노그래프(phonographe)를 통해 저장과 재생이 가능하게 됐다. 이른바 축음기의 탄생이다. 이 두 매체는 19세기가 거두어들인 가장 놀라운 성과들이다. 시각정보와 청각정보는 문자 그대로 ‘왜곡 없이’ 저장될 수 있었다. 말하자면 현실에서 발생하는 정보가 바로 그 시간 자체와 더불어 ‘통째로’ 기록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입증’의 힘이 발생한다. 나아가 이 저장된 정보는 언제라도 다시 원형 그대로 재생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후각정보는 어떨까? 물론 향수가 있다. 그러나 향수는 사진이나 축음기와 전혀 다른 차원의 정보저장 수단이다. 두 후자는 개별적인 ‘모든’ 현상들을 정보로 기록할 수 있다. 정보가 발생하는 시간이 담긴다는 뜻이다. 반면 향수의 정보는 극도로 ‘추상적’이다. 향수에 담겨있는 바닐라향, 과일향, 초컬릿향, 가죽향 등에는 모두 그 향기를 추출했던 개별자의 정보가 누락되어 있다. 게다가 이 후각정보는 영속적이지 않다. 향수 뚜껑을 열어두면 향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싱글 몰트 위스키의 기본 향은 스코틀랜드 특유의 피트 향을 깔고 있는데, 거기에도 당연히 특정 시간과 장소의 피트 향은 없다. 단지 피트 향이라는 ‘보편’만이 있을 뿐이다. 오래 두면 당연히 향도 달아난다. <향수>의 그루누이가 절망했던 까닭도 그 때문이 아닐까싶다. 물론 픽션에 불과하지만 그는 ‘특정’ 여인의 향기를 영원히 보존하고 싶었던 것이다.
문자도 향수처럼 정보를 ‘추상적으로’ 보존하는 수단이다.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코로 맡은 것 모두 문자화될 수 있으며 영구적 보존이 가능하다. 나아가 그 정보를 받아들인 자가 죽어도 타인에게 전달될 수 있다. 문자는 그런 점에서 획기적인 정보 저장수단이다. 그러나 이 모든 문자 정보는 고도로 추상화된 형태라는 점이 문제다.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소믈리에가 미각과 후각으로 얻어낸 정보를 표현한 말들은 그저 멋진 수사일 따름이다. 실상 문자만큼 추상적인 정보도 드물다. 내가 눈으로 본 것을 문자로 제아무리 꼼꼼히 기록하더라도 원래 모습을 온전히 복원할 수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지 않던가. 그럼에도 문자는 다른 종류의 감각 정보들의 호환에 유리한 수단이다. 말하자면 문자는 시각정보를 비롯하여 청각정보, 후각정보 모두를 ‘비록’ 추상화시킴에도 저장할 수 있다. 반대로 청각정보를 카메라로 저장할 수 없고, 시각정보를 축음기로 저장할 수는 없다. 당연히 향기도 마찬가지다. 후각정보를 온전히 저장하는 기계장치는 아직 없다. 그것이 ‘본래’ 불가능한지, 아니면 아직 방법을 찾지 못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언젠가는 카메라나 축음기처럼 냄새를 ‘통째로’ 저장하는 기계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이런 여러 맥락을 고려해 보면 포토그래피와 포노그래프는 참으로 놀라운 발명품이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