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정의 삶과 문화 9 : 딸들을 위한 엄마의 제사상 레시피
02/18/2021
/ 신수정

엄마 제사를 한 번은 지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지 오래됐다. 돌아가신 지 오 년이 지났는데도 명절이 다가오면 지금도 늘 무언가 미진하고 숙제를 마치지 못한 기분이 든다.

스물셋에 시집와서 일흔둘에 돌아가신 우리 엄마는 거의 오십 평생을 제사와 함께 했다. 추석과 설, 그리고 시부모 기제사를 합치면 적어도 일 년에 서너 번, 엄마는 오십 년 동안 대략 이백 번의 제사를 치러낸 셈이다. 경험해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제사를 준비하고 제사를 마무리하는 이백 번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엄마는 병상에 누워서야 이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친족들이 모여 제사 대신 간단한 추도식을 치르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제사에 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 달라진 탓이 제일 크지만, 무엇보다도 엄마의 의지가 강력하지 않았더라면 쉽지 않았을 결정인 것만은 분명하다. 엄마는 제사와 관련된 고충은 자신으로 끝나길 바랐던 것 같다. 그것만이 그녀가 자식들에게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 결과 아이로니컬하게도 평생 제사상을 차려온 엄마는 정작 자신의 제사상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하게 되었다. 나의 고뇌는 여기서 나온다.

젊은 여성 작가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가 눈길을 끈 것도 그 때문이다. ‘심시선’이라는 여성 예술가의 삶을 그녀가 남긴 다양한 자료들, 예컨대 저서나 대담, 연설, 타인의 추도문 등을 통해 재구성하면서 그녀의 후손들에게 10주기에 맞추어 오로지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추모할 수 있도록 새로운 형태의 ‘제사’를 제안하는 이 작가의 목소리는 너무 담대하고 호쾌해서 역시 젊은 세대는 다르구나 하는 탄성을 연발하며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 속 3녀 1남 가족들은 ‘하와이’에서 휴가를 보내며 각자 엄마와 자신들의 추억을 상기시키는 물품을 찾아 그것으로 그녀의 제사상을 차릴 계획을 세운다. ‘하와이’라니, 제사의 배경부터 파격적이다. 심지어 그들이 제사상에 올리는 목록은 더하다. 해양쓰레기로 만든 재생 블록 탑, 말린 꽃, 화산석, 하와이를 배경으로 한 소설책, 새의 깃털, 가장 멋진 파도의 거품, 그녀의 이름을 붙인 산호 시리얼 증서, 프로젝트로 쏘아 올린 무지개 사진, 하와이에서만 맛볼 수 있는 팬케이크와 도넛, 과일, 그리고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커피까지! 그들은 이 물건들을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 많은 고민과 되새김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들의 과거와 미래의 삶을 고스란히 현전할 어떤 것들의 목록을 마련한다. 이런 종류의 제사상 레시피라면 제사를 “사라져야 할 관습”이라고 거부할 필요가 있을까.

이 젊은 작가의 상상력이 언짢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제사가 장난이냐고 일갈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제사는 동화 같은 판타지가 아니라고 무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으로부터 늘 ‘마녀’로 오해되고 경멸당해온 한 여성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복원하고 그녀의 목소리를 재생하는 과정이 이 엉뚱한 제사의 레토릭과 무관하지 않다면 이 젊은 여성 작가의 ‘시선’을 간단하게 물리칠 수는 없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한 제사를, 아들이 아니라 딸들이 기획하고 또 그것이 그 딸들의 딸들에게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를 북돋아 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이 제사는 그동안의 의례에서 배제되어온 여성들의 노고와 넋을 기리고 그들만을 위한 애도의 시간을 가능하게 하는 여성들의 통과의례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나긴 시간 제사를 독점해온 부계 혈통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란이 뜨겁다. 이 움직임은 앞으로 더 거세질 듯하다. 추석을 앞두고 우리 사회는 또 이 문제와 부딪칠 것이 틀림없다. 어쩌면 엄마의 제사를 고민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엄마의 제사상을 무엇으로 채울지 눈을 씻고 새로운 시선으로 찾아봐야겠다. 엄마를 추모하며.

 

<본 글은 세계일보 2020년 9월 25일자 오피니언/외부칼럼 카테고리에 “[삶과문화] 딸들을 위한 엄마의 제사상 레시피”로 연재된 글입니다>

 

신수정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