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형 기계가 가능할까?
02/03/2021
/ 박평종

언밸런스,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쪽 발이 길거나 짧으면 절뚝거리고, 젓가락 한쪽이 길거나 짧으면 젓가락질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고기만 먹거나 채소만 먹으면, 요컨대 균형 잡힌 식단을 유지하지 않으면 건강을 장담할 수 없다. 이처럼 균형의 중요성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나 실상 온전한 균형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신의 균형도 중요하다. 어른에게는 예절 바른데 아이에게 예의가 없다면 그 또한 언밸런스다.

학습의 불균형도 문제다. 법전을 달달 외워 법조인이 된 사람들이 ‘비상식적’ 판단을 내리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고교동창 의사 친구가 ‘고등학생처럼’ 말을 하는 걸 보고 한참 웃었던 적이 있는데 같은 이유다. ‘고매한’ 인문주의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플라톤에서 데리다까지 섭렵한 철학자들 중에는 카카오뱅크에 어떻게 가입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지식의 분화가 극단화된 현대사회에서 균형 잡힌 학습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맞다. 그래도 정도는 필요하다. 오래 전 컬투쇼에 소개됐던 에피소드 중 남자 친구와 헤어진 여인의 일화가 기억에 남아있다.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남자친구가 서신으로 진지하게 프로포즈를 했는데 그게 문제였다. 서신의 마지막 대목은 “내 평생의 반려자가 되어주오, 당신의 반남자로부터”였고, 이 ‘반여자’는 ‘반남자’의 무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이별을 선언했다는 얘기다.

AI의 탁월함은 특정 분야를 집중적으로 학습하여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었다는 데 있다. 알파고보다 바둑을 더 잘 두는 인간은 없고, 다른 분야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 ‘탁월함’은 ‘무능함’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알파고는 바둑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가까운 미래에 등장하게 될 수많은 AI, 요컨대 현재도 존재하지만 향후 더욱 ‘인간에 가까워질’ 지능형 비서나 자율주행차, AI 판사나 의사 등은 해당 분야에서 인간보다 뛰어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AI 판사는 고열 환자에게 해열제를 처방해야 한다는 상식조차 알지 못할 것이다. 그 점이 큰 문제는 아니나 ‘종합적 판단’이 요구될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판사가 법전만 알아서는 안 된다는 말 속에 그 이유가 담겨있다.

그럼에도 이 ‘탁월한’ AI에게 모든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일단 자율주행차는 운전만 잘 하면 되고 AI 의사는 검진만 잘 하면 된다. 손흥민에게 야구까지 잘 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실상 AI에 비해 ‘비교적’ 균형을 유지하는 인간도 모든 면에서 언밸러스다. 난해한 하이데거는 이해하나 미적분은커녕 일차방정식도 풀지 못하는 철학자가 부지기수다. 드라마 스타트업에 나오는 프로그래머 ‘남도산’은 알고리즘 개발의 귀재지만 수익모델에 대한 아이디어를 전혀 내놓지 못한다. 물론 드라마 속 얘기지만 현실도 비슷하다.

지식의 분화가 진행되기 이전 이상적인 인간상은 이른바 르네상스형 인간, 말하자면 다양한 분야의 여러 지식을 고루 갖춘 ‘균형 있는’ 인간이었다. 원근법의 고안자로 알려진 알베르티는 회화와 건축은 물론이고 법학, 수학, 시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에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음악과 운동에도 뛰어났다. 한마디로 다재다능했다. 르네상스형 인간의 전형으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박식이 미친 분야는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렵다. 이 ‘통합적’ 지식은 19세기까지도 유효해서 유럽 귀족층의 필수교육 과목은 그 종류도 많았다. 그런데 이후 지식의 분화가 시작되고 전문 분야의 지식이 고도화되면서 사정은 바뀌었다. 박식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아는 바보가 됐다. 한 우물만 파라는 말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든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갖추기란 불가능하므로.

AI를 한마디로 인간의 사고과정을 모방한 기계로 정의한다면 어떤 사고를 모방할 것이냐가 문제다. 현재의 모델은 한 우물만 집중해서 파는 기계다. 그런데 르네상스형 인간의 사고를 모델로 삼는다면 어떨까. 물론 기술적으로는 어려울 게다. 허나 기술은 항상 한계를 극복해 왔다. 그렇다면 르네상스형 AI가 언젠가는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