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의 답사 스케치20 – 포천 금수정 : 조선 후기 문인화가 정수영의 사생 여정을 따라, 아홉 번째
01/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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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21년 새해 첫날에 포천 영평천의 명승인 <금수정 일출>을 그렸다. (도 1) 금수정(金水亭)이 안동김씨 고택지에 세워져 ‘김씨 집안의 물가 정자’쯤으로 여겼는데, 멀리 관음산 능선으로 솟는 아침 해돋이가 장관이다. 영평천이 물안개와 더불어 누런 금색으로 물드니, ‘金水亭’이라 이를 만하다. 벌써 조선 후기 문인으로 안산의 15학사로 꼽히던 저암 신택권(樗庵 申宅權, 18세기 후반)이 일출 광경을 보았는지, 금수정을 읊은 7언시에 ‘금파(金派)’, 곧 금물결이라고 표현하였다. 

꽃 둑에 비 지나가니 푸른 풀 무성한데 芳堤過雨綠蕪平

난간 아래 금물결이 아주 맑다네. 攔下金派徹底明

다소의 긴 여정 왕래하는 나그네 多少長程來去客

내달리다 느린 행보 누구 위한 행차인가! 橫馳緩踏爲誰行

(申宅權, 「金水亭 次揚蓬萊尊巖韻」, 『국역 저암만고(樗庵漫稿)』上, 양평문화사, 2016)

 

금수정에서 새해 첫날 영평천 금색 물결을 그리고 

코로나로 전국의 새해 해돋이 명소 탐방이 막혀있던 터에, 동쪽을 향한 금수정이 떠올라 불쑥 다시 찾았다. 다섯 번째쯤 되는가보다. 이곳까지 차를 몰아준 티메카코리아의 김태진 대표 덕분에, 인적이 없는 새벽 영평천 금물과 밝아오는 강변 평야의 여명을 오롯이 즐겼다. 실제 김대표와 이 풍광을 본 날은 작년 말 12월 30일~31일 일박이일로 포천을 답사한, 31일이다. 마침 30일이 음력 11월 16일이었다. 보름 다음날인 기망(旣望) 월출(月出)을 영평천에서 만났다. 본디 보름보다 기망 달이 더 가득 찬다. 31일 아침 둥근 달이 금수정 서편 창옥병과 보장산 능선 너머로 지고 있어 냉큼 사생해보았다. (도 2) 노랬던 새벽달이 산 능선 가까이 내려오자, 해 뜨며 흰 달로 변해 겨울 추위만큼 상큼하게 졌다.

금수정은 평야 지대를 흐르는 강물 굽이의 벼랑에 세워져 있다. 본래 이곳 지명인 ‘우두연(牛頭淵)’에 따라 소머리 정자, ‘우두정’이었다고 전한다. 지난번 살펴본 창옥병에서 동으로 2km가량에 위치한다. 옛사람들은 ‘3리 떨어져 있다’라고 했다. 현 지명은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이다. (이원호 외, 「포천 금수정 일원의 입지와 공간구성에 관한 연구」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24-3, 한국전통조경학회, 2006. ; 최동원, 「조선 후기 경기 북부 경승지의 현황과 인식 변화」, 『한국학 논총』 48, 2017.) 

금수정 입구에는 안동김씨 고택의 연원이 되는 고려 후기 문온공 김구용(文溫公 金九容, 1338~1384)의 묘단(墓壇)이 가까이 있고, 금수정 마당에는 커다란 시비가 세워져 있다. 여기에는 김구용의 아버지 상락군 김묘(上洛君 金昴), 할아버지 영창군 김승택(永昌君 金承澤)의 묘단도 함께한다. 모두 근래 새로 복원해 현창한 설치들이다. 이들 위에는 ‘산신제단(山神祭壇)’이 모셔지고, 제단 언덕에서 창옥병으로 지는 기망 달을 보았다. 또 이 집안의 사위였던 봉래 양사언(蓬萊 楊士彦, 1517-1584)과 관련된 유적지여서, 김구용 시비 옆에는 양사언의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는… ” 유명한 시조의 시비도 자리한다.

정자 아래 벼랑에 양사언이 썼다는 해서체 바위글씨 ‘금수정(金水亭)’(도 3)이 전한다. 양사언의 ‘경도(瓊島)’(도 4)와 <증금옹시(贈琴翁詩)>(도 5) 초서체 바위글씨도 강물 바위에 있다. 한국서예사에서 가장 초서(草書)를 잘 쓴 솜씨답게 그 흘림이 유려하다. 금수정 아래 강변 암벽에는 누구의 서체인지 개성이 뚜렷하지 않은 ‘무릉(武陵)’이라는 행서체 바위글씨도 확인된다. 무릉 바위에서 영평천과 들, 그리고 북쪽으로 금수정의 병풍 격인 불무산이 어울린 무릉도원 풍경을 옛 산수화의 편파구도(偏頗構圖) 방식으로 그려보았다. (도 6) 

금수정은 지난 호에 살펴보았던 <사암서원>의 사암 박순(思庵 朴淳, 1523~1589)이 강변로를 따라 즐겨 찾던 곳이기도 하다. 영평 8경 중 으뜸으로 꼽히며, 조선 시대 경기 북부지역 최고 풍류 공간으로 사랑을 받았다. 특히 금강산을 여행할 때, 철원·금화로 진입하는 길목이자 쉬어가는 장소로 유명했다. 양사언, 박순, 이덕형, 이민구, 신흠, 박세당, 김창협, 정약용 등 유명 문인 묵객들이 찾아 금수정 시문을 남겼다. 당시 한양에서 이틀 정도의 걸리는 가까운 명승지로, 지금은 서울 북부지역에서 차로 한 시간이면 도착하는 근거리이다.

 

정수영의 <금수정> 그림

지우재 정수영은 《한·임강명승도권(漢·臨江名勝圖卷)》(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서 1797년 가을 <백운담(白雲潭)>과 <사암서원(思庵書院)>(지난 호에 소개)에 이어 남쪽 영평천 굽이, 바위 언덕의 <금수정>을 그렸다. 어리숙하고 가벼운, 갈필 수묵 선묘와 연한 담채의 정수영다운 개성적 남종산수화풍 그림이다. 화면 왼편 강 건너 벼랑언덕에 ‘창옥병(蒼玉屛)’이라 썼고, 아래 바위에 술그릇이라는 뜻의 ‘준암(罇巖)’이라 써넣었다. (도 7) ‘금수정’ 제목 왼편에는 강관이 아래의 제발을 남겼다. 

“금수정은 예전에 듣기로 평평하게 흐르는 곳에 점지했다는데, 지금 보니 암벽 위에 있다. 그린 자의 오류가 아니라면, 필시 이 모습이 명백할 게다. (金水亭曾聞占地平衍 今却在巖壁上 若非畵者之誤 必是此說之爽)”

현장을 가보지 못한 강관이 말로만 들었던 얘기도 맞다. 금수정에서 관망하는 영평천 주변의 평야가 상당히 넓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수영은 금수정 동쪽 강 건너에서 그렸기에 벼랑 위의 금수정이 되었다. 정수영이 금수정을 바라본 위치에 서니, 벼랑언덕이 좌우로 상당히 퍼져 길다. (도 8) 정수영은 이 바위 언덕을 좁혀 표현한 것이다. 금수정이 선 벼랑을 전통 산수화 방식으로 변화시켰으며, 높은 느낌이 들도록 과장했다.

강 왼편 언덕에 ‘창옥병’이라 지명을 써넣은 것은 큰 오류이다. 앞서 산신제단에서 내가 그린 <창옥병으로 기망 달 지고>(도 2)처럼, 창옥병은 금수정 북서쪽에 위치하니 정수영이 금수정을 그린 장소에서는 그림처럼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도 정수영의 부정확한 묘사력이 확인된다. 경쾌한 미점(米點)의 후경 산세는 종현산(해발 584m) 줄기인 셈이다.

그림의 왼편 아래 바위에 써넣은 ‘준암(罇巖)’이 눈에 띈다. 바위에 새겨진 글씨가 아닐까 싶어 이곳을 답사할 때마다 유심히 살피곤 했었다. 이번에 강이 꽁꽁 얼어 강 가운데의 바위들을 모두 조사할 수 있었는데, 결국 ‘준암(罇巖)’이라는 글씨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는 옥 같은 섬이라는 뜻의 ‘경도(瓊島)’ 바위를 지칭한 것으로, 정수영이 붙인 듯하다. (도 9)

양사언의 초서 ‘경도(瓊島)’ 바위 위에 오르니, 글씨 왼편으로 술그릇 같은 오목 공간이 존재한다. (도 4) 술 담을 공간에는 얼음이 꽉 얼어 있었다. ‘준암(罇巖)’임을 쉽게 수긍할 수 있었다. 경도는 지난 호에 소개한 <사암서원> 아래 백운계 개울 가운데 ‘와준(窪尊)’의 술통 바위와 마찬가지로 조선 문인들이 자연에서 술을 어떻게 즐겼는지, 그 풍류 문화를 상상하게 해준다. 

정수영의 <금수정>과 유사한 19세기 화원 김하종(金夏鍾, 1793~?)의 <금수정> 작품도 흥미롭다. (도 10) 김하종은 김홍도의 선배로 교분이 도타웠던 김응환의 셋째 아들이고, 김홍도 화풍을 따른 사실적인 금강산 사생화로 유명하다. 그런데 김하종은 금수정을 정수영식으로 포착했다. 김하종의 <금수정>은 정수영 그림보다 회화적인 짜임새나 묘사 기량이 낫지만, 정수영의 구도를 참작한 점이 눈길을 끈다. 두 화가 사이에 60년 넘게 시대가 흘렀으면서도, 조선 사회가 크게 변하지 않은 양상을 읽게 해주기에 그렇다.

이 <금수정>은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 1865년 가을 금강산을 여행하고 쓴 ‘풍악유기(楓嶽遊記)’와 기행 시문에 김하종이 58점의 금강산 명승도를 첨가해 4권으로 꾸민, 《풍악권》의 도입부에 포함된 그림이다. 이유원은 백사 이항복의 후손이고, 조선 말 제물포조약에 참여해 외교관으로 활약한 문신이자 개화파 인사이다. 《풍악권》은 19세기에 유행한 금강산 시화첩으로 손꼽히며, 내가 1999년 일민미술관의 금강산도 기획전에 객원 큐레이터로 참여해 발굴한 것이다. (이태호, 「일만이천봉에 서린 꿈 – 금강산의 문화와 예술 300년」, 『몽유금강 – 그림으로 보는 금강산 300년』, 일민미술관, 1999.) 

정수영은 <금수정>에서 북쪽으로 발길을 옮겨 포천 명승 <화적연(禾積淵)>을 그렸다. 물론 김하종도 따라 그렸다.

 

이태호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