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석의 사진살롱 45 – 김규진 조상(照相) : 고종황제 어사진(御寫眞)
01/27/2021
/ 박주석

김규진, <고종황제 어사진>, 대지에 부착한 채색 알부민프린트,
35.0×42.8cm, 나무상자(37.2×46.0× 3.5cm), 1905, 뉴어크미술관 소장.

지난 2015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뉴어크미술관(The Newark Museum of Art)이 소장한 구한말 고종황제의 초상 사진을 발굴해서 발표했습니다. 1905년 대한제국을 방문한 미국인 사업가 에드워드 해리먼(Edward Harriman)이 10월 2일 고종 황제를 알현했을 때 하사받은 사진입니다. 해리먼은 당시 철도와 선박 관련 사업을 했던 재벌이었는데, 사업 확장을 위해 동아시아를 방문하면서 한국에도 왔습니다. 이 사진은 해리먼 사후인 1934년 유족이 미술관에 기증했고,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고종의 어사진 중에는 가장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빨강 비단으로 덧댄 윗 뚜껑을 있는 나무 상자에 담겨 있습니다. 하사받은 상태 그대로입니다. 사진은 흑백 알부민프린트(Albumin Print)이고, 옷과 옷깃 부분은 채색을 했습니다. 황제의 상징인 황룡포(黃龍布)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종이 대지 위에 채색한 사진을 붙였고, 오른쪽 윗부분에는 ‘대한황제 진 광무9년 재경운궁(大韓皇帝 眞 光武九年 在慶運宮)’이라고 적혀 있고, 아래쪽에는 ‘김규진 조상(金圭鎭 照相)’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1905년 지금의 덕수궁에서 해강(海岡) 김규진(金奎鎭, 1868~1933)이 찍은 고종황제의 어사진이라는 뜻입니다. 

해강이 일본에 가서 사진을 배운 때가 1901년이고, <천연당사진관>을 개업한 것이 1907년입니다. 그 사이에는 황실의 궁내부(宮內府) 관리로 일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청와대 비서관쯤 되는, 황제를 측근에서 보필하는 자리였습니다. 대한제국 황실이 필요로 하는 사진을 찍고 만드는 일도 김규진의 업무 중 하나였습니다. 현재 알려진 고종의 사진 중 김규진이 찍은 사진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가 영친왕의 서화 스승이었고 동시에 황실 사진가였다는 사실도 그저 구전으로 전해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뉴어크미술관의 사진이 발견됨으로써 황실 사진가 김규진의 정체가 분명해졌습니다. 따라서 이 사진 외에도 1902년부터 1906년 사이 만들어진 고종과 순종의 사진들은, 비록 사진가의 이름은 없지만, 김규진이 찍은 것일 개연성이 높습니다. 

사진 용어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유물에 따로 있습니다. 대지 아래에 적힌 ‘金圭鎭 照相’이라는 문장입니다. ‘김규진 사진’이라고 적지 않고 중국식 용어인 조상(照相)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당시 조선의 선비들도 사진(寫眞) 또는 어진(御眞)이란 말을 사용했고, 한국에서 활동했던 일본인 사진사들도 사진이란 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했던 때였습니다. 일본에서 사진을 배운 김규진이 이런 단어를 몰랐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 사진 또는 촬영이란 말 대신에 ‘조상(照相)’이란 말을 썼을까요? 

일단 중국에서는 사진(寫眞)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사진을 뜻하는 중국 말은 경우에 따라 여러 단어가 사용됩니다. 먼저 조상(照相, 자오시앙, zhào xiàng)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사진 찍는 사람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피사체가 카메라의 유제에 스스로 담긴다는 뜻입니다. 조편(照片, 자오피엔, zhào piàn)으로 쓰기도 합니다. 박조(拍照, 파이자오, pāi zhào)라는 말도 있습니다. 손으로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를 뜻하는 말이고, 다른 사람이 카메라를 잠시 주고 찍어 달라고 했을 때 주로 쓰입니다. 중국의 사진 전문가들은 섭영(攝影, 세잉, shèyĭng)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사진가가 어떤 의도를 갖고 대상에 접근해서 사진을 생산하는 주체적인 행위를 말할 때 쓰입니다. 사진가, 사진작가, 예술가 등이 작품을 만드는 행위와 그 결과물을 말합니다. 그래서 중국사진의 역사는 ‘中國攝影史’로 표기합니다. 

이쯤이면 김규진이 조상(照相)이란 단어를 사용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고 만드는 행위의 주체가 사진가인 자신이 아니라 피사체인 고종 황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힌 것입니다. 군주제 국가에서 감히 황제의 모습을 자신이 주도적으로 박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설치한 카메라 앞에 선 고종 황제가 스스로 렌즈를 통해 유제에 담겼다는 뜻을 담았기에, 감히 자신의 이름을 써넣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통적인 어진에서는 어느 도화서의 화원도 누릴 수 없었던 영광입니다. 대한제국에 와서 근대가 상당히 진전되고 있었다는 사실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사실 사진이란 단어는 사진가의 주체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말입니다. 사람의 외관과 본질 즉 진(眞)을 또 한번 있도록 사(寫)하는 행위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섭영(攝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림자를 당긴다는 뜻입니다. 학문적 차원에서는 영어에서도 사진 자체는 Photographs로 표기하지만, 사진 행위의 주체가 사진가이면 피사체를 모델(Model)이라 칭하고, 반대로 피사체가 우월하게 주도하면 씨터(Sitter)라고 분명하게 구별해서 사용합니다. 김규진의 용어 사용에 관한 해박함과 주도면밀함을 느껴봅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