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인, 너무나 기계적인
12/09/2020
/ 박평종

 

뷔리당(Jean Buridan)의 당나귀, 양과 질이 같은 두 건초더미 사이에서 아무 것도 선택하지 못해 결국 굶어죽는다는 우화다. 이성적으로만 생각하면 두 건초더미는 등가의 가치를 지니므로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취할 수 없다는 역설로, 이성적 판단의 무력함을 환기시키고자 프랑스의 스콜라 철학자가 제시한 ‘엉뚱한’ 가설이다. 이성적 판단에만 의존할 때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인간은 비이성적이어서 양과 질이 같은 두 개의 밥그릇을 끌어안고 굶어죽지는 않는다. 이와 좀 다른 맥락에서 좀처럼 선택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햄릿증후군, 소위 결정 장애라 부르는 경우다. 의학적으로 검증된 합당한 용어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를 축약하면, “짜장이냐 짬뽕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쯤 되겠다. 햄릿증후군에 속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어려운 선택이긴 하다. 하여 ‘영악한’ 인간들은 짬짜면을 내놓았다. 그러나 짬짜면은 결국 성공하지 못했고 믿거나 말거나 그릇만 많이 팔렸다고 한다.

추천 알고리즘이 진화하면서 선택을 망설이는 이들의 고민을 덜어주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어떤 옷을 살지 고민할 때, 넷플릭스에서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주저할 때 추천 알고리즘은 대단히 ‘정확하게’ 우리의 취향을 간파하여 해당 품목을 제시한다. 추천 알고리즘의 ‘기술적’ 문제를 논할 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이 알고리즘은 나와 유사한 타인의 취향을 분석하거나, 이미 내가 선택했던 품목을 데이터로 활용해 그와 비슷한 목록을 작성하여 알려준다. “당신은 이런 취향이잖아”라고 말하는 셈이다. 한마디로 백발백중의 ‘취향저격자’다. 쇼핑몰의 알고리즘은 장바구니를 학습 데이터로 활용하고, 넷플릭스는 내가 ‘찜했던’ 목록에서 시작하여 한번 봤던 영화나 드라마를 근거로 나의 취향을 알려준다. 유튜브에서 동영상 한편을 클릭하면 같은 범주의 영상이 끝도 없이 밀려온다. 편리하긴 하다.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나아가 나도 몰랐던 내 취향을 기계가 알려주니 고맙기까지 하다.

실상 데이터는 대단히 정확해서 나의 판단보다 기계의 판단을 믿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데이터에 대한 신뢰는 공공기관을 비롯하여 기업이나 연구소 등 각 분야에서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유발 하라리는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고 또 일반화되면 ‘데이터교’라는 신흥종교가 출현할 것이라고 풍자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데이터교’까지는 아니더라도 데이터 분석에 따라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내어 적용하는 사례는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이미 보편적인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럼 데이터를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인간의 불확실한 판단보다는 분명 낫다. 그러나 편향적인 데이터로 학습한 기계는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위험하다.1) 따라서 데이터 편향을 경계해야 한다.

 역으로 다른 문제가 또 있다. 추천 알고리즘이 제안하는 선택 목록들은 은연중에 우리를 기계화시키고 있다. 나의 장바구니에는 항상 비슷한 물건들만 쌓여있고, 유튜브 목록에는 늘 보아왔던 영상이 가득하다. 애써 검색하지 않아도 클릭 한번으로 내가 원했던 세계가 바로 열리므로 귀찮게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이는 이른바 확증편향과도 관계있다. 항상 접해왔던 정보를 반복해서 수용하다 보면 다른 정보는 믿지 않는 것이다. 정보를 기계적으로 수용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진정 가치 있는 정보란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기계가 퍼 날라주는 정보만 수용하다보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런 질문 앞에서 뷔리당의 당나귀는 대답을 할 수 없겠지만 인간 아이는 “할머니가 좋아”라고 질문을 비틀 수 있다. 기계의 제안을 의심하고 회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쉽게도 추천 알고리즘의 편리함에 인간은 너무 쉽게 익숙해져 버렸다. 기계적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1) 인공지능의 편향(Bias) 문제에 대해서는 필자의 다른 칼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다룬 바 있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