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정의 삶과 문화 7 :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11/25/2020
/ 신수정

오랜만에 산에 올랐다. 백두대간 선자령. 강원도 평창의 대관령 휴게소에서 출발하여 중간 지점의 전망대를 지나 정상에 오른 뒤 양떼목장 쪽으로 하산하는 코스였다. 완만한 능선을 자랑하는 코스라 초심자들에게도 무리가 없다는 소문에 너덧 시간의 산행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섰다.

그러나 웬걸, 코로나 19로 바깥출입을 하는 빈도가 워낙 적어서 그런지 그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 아름다운 코스를 등반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도 않았다. 아직 본격적으로 휴가가 시작되기 전 주중의 산행이라고 해도 잘 만들어놓은 등산로가 텅 비어 있는 것은 역시 코로나 탓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좁은 등산로에서 간혹 서로 비껴가게 될 때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접촉면을 적게 하려고 노력하는 등반객들의 모습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상의 일부가 된 듯도 하다.

물론 코로나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바꿔버린 것은 아니었다. 산은 여전히 그곳에 건재하고 있었고 물은 오늘도 어제와 다름 없이 계곡 아래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무가 우거지고, 새가 노래하며, 산들바람이 불었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면 어느새 또 다른 풍경이 다가서고 막다른 길인가 하면 좁은 틈 사이로 청량한 여름 햇살이 스며드는 산의 정경은 여전했다. 나무 잎사귀가 눈부신 색채를 뿜고 야생화 무리가 거친 바위틈 사이로 살랑거렸다. 어쩌면 하나도 특별하지 않고 놀랍지도 않은 그 사실들에 관한 확인이 산행 내내 새삼스럽게 가슴을 적시며 풍경을 압도했다.

굳건하게 자신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그 무언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지친 시간을 보상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던 때문일까?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서로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힘을 내라고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인사와 격려는 네다섯 시간의 산행을 견디는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앞서가는 사람의 기척을 따라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다다르기도 했다. 정상에서 잠시 쉬면서 처음 본 사람들과 빵을 나눠 먹기도 했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거절하던 그들도 편의점에서 산 빵을 그 어떤 고급 음식보다 더 달게 먹어 주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이 정도라면 인류라는 이름의 종족이 지구라는 이름의 행성에서 여전히 살아갈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자고 나면 예상치도 않은 각종 사건 사고 소식이 가뜩이나 답답한 코로나 19의 일상을 덮어버리는 나날이다. 박원순 서울 시장의 느닷없는 죽음 앞에서는 당혹을 넘어 망연자실해지는 순간도 없지 않았다. 어떤 허구도 이즈음의 각종 사건 사고 보도보다 놀랍지 않으리라는 참담함을 되새기는 이즈음이다. 박 시장의 죽음을 둘러싼 애도와 비판 사이에서 다양한 매체들이 전해주는 소식들에 눈과 귀를 열어두고 스펀지처럼 그 잔향을 받아들이다 보면 그만 세상이 싫어지고 사람이 미워지기도 한다. 그가 생전에 이룩한 업적들을 모른 척하지 않는 것과 피해자를 상대로 한 2차 가해는 분명 구분되어야 하는 일 아닐까. 그는 훌륭한 사회 지도자이자 민주 투사였지만 어쩌면 피해자에게 가해를 입히고 그에 대해 용서를 구할 생각도 하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다. 아직도 사람들이 살아갈 희망이 남아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제일 먼저 착수해야 할 일은 한 사람이 함축하고 있는 이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인지하고 그를 수락하는 일 같기도 하다.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힘들게 잡아두면 또 올라오는 세상의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들에 분노하고 또 그것에 대항해 힘들게 싸우다 지칠 때,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럴 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혹시 자연이란 것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그러한’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 그냥 그대로 여전히 그러하다는 것, 그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세상과 사람들을 다시 한번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때때로 세상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사실을 내가 아는 어떤 것과 동일시하고자 하는 열망에 불탈 때, 그리고 그 열망이 구체적인 현실을 자꾸만 기만적인 환상과 구별되지 않는 것으로 유도할 때,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저기 자연이 있는 그대로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고 있음을. 어떤 것은 그냥 그 자체라는 것, 그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 자연이 일깨우는 이 무심한 수락이야말로 편향과 분노를 넘어 객관적인 사실 그대로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갈 수 있는 최후의 보루 같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잊지 말자.

 

<본 글은 세계일보 2020년 7월 31일자 오피니언/외부칼럼 카테고리에 “[삶과문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로 연재된 글입니다>

 

신수정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