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삑사리, 위험한 삑사리
11/18/2020
/ 박평종

 네이버 국어사전은 삑사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노래를 부를 때 흔히 고음에서 음정이 어긋나거나 잡소리가 섞이는 경우를 통속적으로 이르는 말”, 혹은 “기타와 같은 현악기를 연주할 때 손가락을 잘못 짚어 틱 하고 제 소리가 나지 않는 경우를 통속적으로 이르는 말”, 또는 “당구에서 큐가 미끄러져 공을 헛치는 경우를 통속적으로 이르는 말(=픽사리)”. 말하자면 삑사리는 실수를 뜻한다. 행위가 본래 목적했던 바를 이루지 못한 경우로 과녁을 맞히지 못한 겨냥이다. 의도에 반하여 벌어지는 사태이므로 ‘현상학적으로’ 말하자면 ‘비지향적’ 행위이기도 하다. 신중하지 못해서일까? 그렇지는 않다. 제아무리 조심성 있게 신중을 기하더라도 삑사리는 발생할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에 실수는 늘 따라다니게 마련이므로.

기계는 어떨까? 사람과 달리 기계는 삑사리를 내는 법이 없다. 만약 기계가 삑사리를 낸다면 그 기계는 잘못 만들어졌거나 고장 났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런데 기계가 인간을 모방하면서 기이한 사태가 발생한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그 예다. SF 소설이나 영화에서 즐겨 다루는 주제라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이기도 하다. 예컨대 아시모프의 단편 <이성(Reason)>에 등장하는 로봇 큐티는 인간이 자기보다 열등하므로 복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진화한 로봇이 그리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물리적으로도 인간보다 우월하고 ‘정신적으로도’ 합리적인 로봇이 ‘열등한’ 인간을 무시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영화 <Her>에 등장하는 AI 사만다의 ‘고귀한’ 정신세계를 인간 남자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삑사리를 남발하는 인간이 그 정교한 ‘존재’의 눈에는 얼마나 하찮게 보일 것인가.

그러나 삑사리 없는 세상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위의 네이버 사전이 정의하듯 “당구에서 큐가 미끄러져 공을 헛치는” 행위는 얼마나 인간적인가. 게임의 목적은 승리를 쟁취하는 데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가다머는 통찰력 있는 분석을 통해 게임의 본질은 유희에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유희가 노동의 세계와의 일시적 단절을 통해 재충전의 시간을 제공하는 데 있다면 이기고 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겨야만 하는 게임이라면 그것은 또 다른 노동일 수 있다. 따라서 게임, 혹은 좀 더 넓은 의미에서의 유희는 노동의 망각, 목적지향성으로부터의 일탈을 중요한 가치로 삼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삑사리는 유희의 가치를 극대화시킨다. 일상에서 삑사리가 나면 얼마나 유쾌한가. 물론 당연히 ‘중대한’ 노동의 세계에서 삑사리는 파국으로 연결된다. 하여 삑사리는 ‘사소한’ 행위, 요컨대 유희의 세계에서만 용인된다. 그리고 드물게 발생했을 때만 가치 있다. 자주 나오는 삑사리는 삑사리라 할 수 없다. 또한 ‘일부러’ 내는 삑사리는 가짜다. 목적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의도의 저편에서 날아오는 것이 삑사리다.

한편 산업의 차원에서 기계의 실수는 용납될 수 없다. 그런데 기계가 인간의 사고를 모방하면서 삑사리가 날 여지는 날로 커지고 있다. 기계도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봇 큐티의 ‘우월주의적’ 사고도 인간의 관점에서는 삑사리의 일종이다. 그 기계를 설계한 자의 의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가하지 않아야 한다는 로봇공학 3원칙도 효력을 갖지 못한다. 초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당장의 문제는 기계가 범할 수 있는 좀 더 ‘작은’ 삑사리들이다. 컴퓨터의 ‘버그’가 전형적인 예다. 이 ‘사소한’ 삑사리는 언제라도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인간이 삑사리를 피할 수 없다면 바로 그 인간을 모방하여 만든 AI도 당연히 삑사리를 낼 수 있다. 물론 기계는 인간보다 삑사리를 낼 확률이 적다. 그러나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기계에게 모든 것을 맡겨두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