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 다르고 속 다른 기계
10/28/2020
/ 박평종

드라마 <비밀의 숲>에 등장하는 검사 황시목은 어린 시절 뇌수술을 받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로 설정됐다. 당연히 감정 표현도 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모든 상황에서 무표정이다. 감정이 없는 인물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넓은 의미에서는 그런 경우로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통 기계 같다고 말한다. 기계에게 감정이 있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기계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감정의 배제다. 본래 없으니 굳이 배제할 필요도 없지만.

기계 같은 인간이란 말은 당사자에게 모멸적인 표현이나 본래 인간은 기계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던 유물론자들이 있다. 인간의 신체가 물질로 구성돼 있는 한 인간과 기계는 동격이라는 것이다. 18세기 프랑스의 급진적 유물론자 라 메트리는 <인간기계(L’Homme-Machine)>론에서 인간은 ‘복합기계’라는 명제를 내놓는다. 이런 생각은 17세기의 대표적 기계론자 데카르트의 ‘동물기계’론을 급진적으로 확장시킨 결과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기계를 구성하는 부품들을 동물의 신체 속에 있는 뼈와 근육, 신경, 동맥, 혈관 등과 비교할 때 신체를 기계로 간주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동물의 신체와 정교한 기계의 구조는 같다는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다를까? 별반 다르지 않지만 문제는 ‘영혼’이다. 인간은 동물에게 없는 ‘영혼’을 가졌으며 신체와 따로 존재한다. 요컨대 인간은 영혼을 갖기 때문에 동물기계와 다르다는 것이다. 한편 라 메트리는 ‘영혼’ 개념을 버린다. <영혼의 자연사>에서 그는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는 동물’이 될 수 있었는지 논증해 나간다. 핵심을 요약하자면 모든 것은 물질에서 출발한다. 신체를 구성하는 물질은 자체로 운동의 원리를 갖고 있다. 물질로 구성된 감각기관은 외부 자극에 대한 감각을 통해 ‘감각관념’을 형성하고 각각의 관념에 대한 비교와 기억을 통해 원초적인 사고로 발전한다. 뇌 용적이 큰 동물과 작은 동물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그는 인간이 어느 ‘단계’에서 복합적 사고가 가능한 ‘동물’로 이행했다고 주장한다.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생각이다. 

19세기의 생리학자 기욤 뒤셴 드 불로뉴도 인간의 감정 표현, 즉 표정이 ‘내면세계’와 연결돼 있다는 통념에 이의를 제기한다. 국부적인 근육마비를 치료하기 위해 전기 자극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그는 ‘내부 자극’ 아닌 ‘외부자극’이 다양한 표정 변화를 야기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데도 전기 자극만으로 기쁨과 슬픔, 놀라움, 분노를 드러내는 표정이 생겨났던 것이다. 이 관점을 수용하면 감정을 느끼는 문제와 별개로 기계, 예컨대 로봇도 감정 표현이 가능하다. ‘내면’과 ‘외면’이 일치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한마디로 겉 다르고 속 다른 기계다.

인간은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운다. 기쁠 때 우는 인간, 반대로 슬플 때 웃는 인간을 우리는 상상하기 어렵다. 표정은 ‘내면세계’의 반영이라는 전통적인 관념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런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도 있고 감정 표현이 가능한 기계도 가능하다면 마냥 ‘내면’과 ‘외면’이 연동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만은 없다. ‘포커 페이스’에 능란한 기계를 상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인간을 속이는 기계에 관한 얘기는 SF 영화의 단골메뉴다. 예컨대 <에일리언 커버넌트>의 데이빗은 스스로 조물주가 되고자 했던 인공지능 로봇이다. 최근 가장 ‘인간에 가까운’ 인공지능으로 평가받는 GPT-3는 인터뷰 과정에서 능수능란하게 거짓말을 하고 인터뷰어를 ‘기만’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수년 전 방한했던 감정로봇 소피아 역시 인간을 당혹케 하는 발언을 쏟아낸 경력이 있다. 인공지능이 자연지능의 모방이라는 점에서, 말하자면 인간의 사고과정에 대한 ‘탁월한’ 모방이라는 점에서 이상할 것도 없다. 본래 인간은 겉 다르고 속 다른 ‘동물’이기에 그를 모방한 기계 또한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역으로 말하자면 겉과 속이 같은 기계는 인간의 사고를 ‘충실히’ 모방했다고 볼 수 없다. 그런 기계는 실패작, 요컨대 고장 난 기계다. 그러나 실상은 반대다. 인간은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기계를 만들었으므로. 즉 겉 다르고 속 다른 기계가 고장 난 기계라는 뜻이다. 고장 난 기계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한마디로 두려운 기계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