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의 답사 스케치17 – 대관령 아래 강릉 능가사의 법관 스님 작업공간
10/07/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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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8월 말과 9월 초에 강릉시 구정면 남밭길 능가사에 다녀왔다. 평론을 써달라는 선승(禪僧) 화가 법관 스님의 요청으로 작업실과 갤러리를 찾았다. 법관 스님은 최근 단색화 내지 포스트 단색화 작가로 꼽히며, 개인전이나 단체전, 옥션이나 아트페어 전시장에서 가끔 만나던 작가이다. 아래 내 글에도 밝혔지만, 작업공간과 갤러리를 갖춘 능가사는 대관령 능선이 품어 안은, 명당으로 꼽을 만하였다. 8월 처음 방문했을 때, 그 대관령을 스케치해두었다. (도 1, 2) 9월 두 번째 방문 후에는 경포대 아래 강문 바닷가 진또배기 마을을 들렀다. 오래간만이었는데, 마을 수호신인 솟대를 나무와 쇠 등으로 엄청나게 많이 제작해 늘어놓아 그야말로 솟대공원을 조성해놓았다. 다행히도 긴 장대 끝에 오리 세 마리를 얹은 진또배기는 그런대로 원형을 갖추고 이었다.다시 그려 봐도 현대 조각 같은 그 단순미가 여전하였다. (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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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의 수행과 작품 활동을 통합한 법관의 회화예술
강릉 능가사楞伽寺에서 일구고

 

이태호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초빙교수/서울산수연구소장

 

군청색 화면은 고요하다. 짙푸른 하늘이나 깊은 바다를 연상시킨다. 연한 청색 붓질 위로 중간 톤의 색이 쌓이고, 그 위로 종횡으로 그어댄 짙퍼런 선묘 흔적이 가득하다. 가로세로로 반복한 선들은 간격이나 기울기가 일정치 않고 대여섯 줄씩의 리듬을 타 있다. 붓질이 화면 가득하면서도 정연하다. 언뜻 보면 직물류 짜임새처럼 보기 십상이나, 가까이 대하면 얼기설기한 세선(細線) 묘사에 흥과 신명이 넘친다. 간간이 찍은 붉은 색 점도 유난하다. 

이러한 최근 법관의 단색조 그림은 그야말로 ‘긋기(畵)와 칠하기(繪)’, 회화(繪畵)의 근원에 해당하는 행위이다.

 이들 법관의 작업은 불규칙하면서 자연스런 붓질과 색깔, 화면의 질감이 독특하다. 근래 몇 년 새 자주 눈에 들던, 기억에 남는 법관의 회화 스타일이다. 글쎄, 미술사조로는 동어 반복으로 화면을 채운 전면회화(全面繪畵), 곧 all over painting으로 보인다. 선묘와 점 찍기를 반복해 가득 채운, 이 퍼런색 캔버스 작품은 법관(法觀)이 2017년에 완성한 <선(禪)>이라는 작품이다. (도 4)

 이처럼 상업화랑은 물론이려니와, 개인전과 옥션, 아트페어 전시장에서도 크고 작은 법관의 <선(禪)>이라는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고, 법관이 승려라는 점이 더욱 관심을 두게 했다. 법관의 회화 형식이나 <선(禪)>의 작업과정에 대한 표현을 들어보면, 최근 부상한 단색화 작가들이 내세운 도가의 도(道), ‘무위(無爲)’나 무위자연, 불가의 ‘선(禪)’이나 ‘무상(無相)’, 혹은 무아(無我)의 경지, 구도자적 자세 등과 무관하지 않아서 그랬다. 이와 연계되는 사조로 구미의 미니멀리즘 작가들이 심플의 단순미를 강조하는 예술관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탓에 법관(法觀)의 최근 7~8년 새 작품 <선(禪)>은 단색화 혹은 후기 단색화로 분류되기도 한다. 실제 2015년에는 부산국제아트페어 ‘단색화 특별전’에 초대되었고, 2018년에는 ‘후기 단색화’ 전에 초청되면서, 그 위상이 자리매김 되기도 했다. (윤진섭, 「후기 단색화 예술」, 『THE POST DANSAEKHWA DF KOREA 한국의 후기 단색화』 초대전, LEEAHN GALLERY 리안갤러리 서울, 대구, 2018.) 그런데 법관은 이 단색화나 미니멀리즘 작가들과 출발을 달리한다.

불교나 도교의 동양 사상과 연계해 현대미술이라 칭해 온 점에 비해, 작업과정을 “선(禪) 수행에서 나온다.”라고 말하듯이 법관이 선승(禪僧)이라는 점에서 차이진다. 어찌 보면 한국현대회화에서 법관의 출현은 반갑다. 우리 시대의 승려로서 자기 정체성을 표출한 화가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법관은 자신의 작업에 대해 승려로서 수행과 일상을 쏟아낸 행위라 말하곤 한다. 먼저 직접 법관의 작품 이야기를 들어보자. 

승려로서 수행, 사람으로서 일상,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생활이 모두 내 정체성을 표현하려고 했던 거 같네요. 헌데 저는 작가 내지는 화가라는 이런 의식이 거의 없습니다. 잘 하든 못하든 승려 생활 중 그림은 그 일부라고 봅니다. 마치 내가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법당에서 목탁을 치고, 참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림도 내 삶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근래 들어 부쩍 그림 그리는 작업에 몰입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내는 편이지요. 그러니까 내게 시간이 주어졌을 때, 그림에 가장 최선을 다한 거 같아요.

어떤 잡념도 없이, 심지어는 스케치나 에스키스도 없으니까, 적어도 그림 그리기 이전까지는 무의 상태지요. 그림을 시작하면서 구도도 느낌도 색깔도 그렇고, 모든 것을 동시에 쏟아내게 됩니다. ‘즉심(卽心)’으로 이루어지다 보니까, 삐뚤어져도 반듯한 거 같고, 반듯해도 삐뚤어진 거 같고, 늘 살아있는 느낌으로 작업 했던 거 같네요. 그림은 많이 그리면 스스로가 터득하겠구나, 자기대로 표현하는 법을 가지고 있으면 되겠구나, 그리고 그것이 오랫동안 하다 보면 다른 사람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겠다 싶네요. (2020년 8월 25일 인터뷰, 한성희 정리)

그림은 본래 자기의 성품을 잘 드러내야 하고 그 성품은 수행을 통해 간결하고 욕심 없는 가운데 즉심에서 나와 모자람과 어리석음을 넘어 부족함이 없는 가운데서 오롯이 모든 것을 능히 담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간결하고 맑아야 하며 어린아이처럼 천진하여야 하고 고졸함이 잘 다듬어진 인품을 담은 노인네와 같아서 가만히 보고 있기만 하여도 감동을 주어야 한다. 또한 수행을 통해 얻은 바를 드러내되 잘 정제되어야 하고 단조로운 가운데 단조롭지 아니하고 복잡하더라도 어지럽지 아니 하여야 하며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드러나야 하고 불완전한 듯하면서도 변화를 주어야 하지만 지극히 안정되어야 한다. 모든 것을 안으로 품고 있어 밝고 은은함이 속으로부터 비쳐 나와 마치 잔잔한 호수를 보는 것 같아야 하며 그 바탕은 우리 일상 삶에 두어야 한다. (법관 메모에서, 2020. 8)

촘촘히 엮어진 그물망 같은 선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그려져 변화를 이끌어 내고 수많은 점들은 찍었을 때 확장하려는 힘과 막으려는 선들의 충돌에서 생기는 작은 에너지들을 만들어 시선을 좀더 오랫동안 머물 수 있도록 하면서 공간확장을 통해 무수한 여백을 만들기도 한다. 밤하늘의 별빛과 먼 도시의 불빛을 연상케 하는 정형화되지 않은 화면은 담담하면서도 무한한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선(禪) 수행으로부터 오는 긴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기도 한다. (법관 작가 노트, 『선』, 올미아트 스페이스, 2019.)

나는 그림을 그릴 때 균형적인 아름다움과 변화된 자유로움의 조화, 그리고 고졸하면서 내적으로 힘을 담아낸 부드러운 선, 여백으로 드러낸 여유로운 禪의 세계와 수행에서 얻어진 정신세계를 현대적 조형 감각으로 풀어내기 위한 작업을 하려고 노력한다. (법관의 메모에서)

 이 같은 법관의 예술과 정신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작업실을 찾았다. 무더위 말미인 8월 말과 9월 초 두 번, 강릉에 있는 능가사(楞伽寺)를 방문했다. 강릉시 구정면 제비리 남밭길 안쪽에 위치한다. 북쪽 마을 앞으로 남대천이 흐르고, 솔밭이 빙 둘러 아늑하다. 서쪽으로는 대관령 준령이 병풍처럼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작업과 수행, 예배와 일상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자연환경이 안성맞춤이라 생각 들었다.

이곳에 터전을 잡은 게 1999년이니, 벌써 20여 년 전이란다. 법관이 최선의 공간을 발견하고 사원을 조성한 것이다. 동해 고속도로가 지나고 케이티엑스 철길이 놓이며 주변이 크게 변했음에도, 솔밭 절은 무관하다. 명당 터를 만나지 않았나 싶다. 이에 걸맞게 얼마나 정성을 다해 가람을 꾸몄는지, 솔밭 마당 곳곳에는 법관의 엄격한 계율과 불심이 여실히 묻어난다.

 그리고 수행과 예배의 공간이자 회화의 창조공간인 절 이름, ‘능가사(楞伽寺)’는 승려로서 법관의 예술 의지와 아우러져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능가사는 한자 뜻 그대로는 ‘모퉁이에 있는 절’이란 의미지만, 능가경(楞伽經)에서 따온 이름이다. 능가경은 대중에게 조금 생소한 이름이지만, 석가모니가 능가산 능가성(楞伽城)에서 대혜(大慧) 보살에게 설법했다는 대승불교의 주요 경전으로 꼽힌다. 달마와 혜가(慧可)가 심인(心印)으로 전승되었다 하여 선종 불교의 뿌리로 여기는, ‘마음’의 세계를 논리적으로 밝혀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불교에서 원효대사가 ≪능가경소(楞伽經疏)≫, ≪능가경요간(楞伽經料簡)≫, ≪능가경종요(楞伽經宗要)≫ 등을 저술했다고 전하며, 가장 즐겨 인용한 불경으로도 유명하다.

능가경은 ‘마음’을 가운데 두고 진정한 깨달음 각(覺)을 무분별(無分別)이나 무아설(無我說)에 둔다. “중생은 미혹(迷惑)으로 대상에 집착하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쌓아온 습기(習氣)로 말미암아 모든 현상이 ‘스스로의 마음(自心)’에 의해서 나타난 것임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의식(意識)의 본성에 의지하여 모든 현상이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바임을 철저하게 깨닫는다면 집착하는 자(能取)와 집착하게 되는 대상(所取)의 대립을 떠나서 무분별의 세계에 이를 수 있다.” 따라서 ‘무분별을 스스로 체험하는 철저한 깨달음에 의해서만 진리의 전개를 획득할 수 있다’는 ‘성스러운 지혜’의 작용을 강조한다. (남회근, 신원봉 역,『능가경 강의』, 부키, 201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기영,『불전해설』, 한국불교연구원, 1978.) 

이처럼 능가경의 법통을 그리게 하는, 법관의 능가사는 여느 사찰과 다름없으면서도 조촐하다. 터의 크기에 적절하게 금강문이나 사천왕문 없이 작은 암자처럼 꾸민, 법관다운 사원 배열이 돋보인다. 대관령 능선을 향해 배치한 두 불전과 승방, 그리고 법관의 작업실과 생활공간, 전시실인 고암(古巖) 갤러리 등으로 정갈하게 꾸려진 가람(伽藍)이다.

솔밭언덕을 배경 삼으며 이단 석축을 쌓고 지은 삼칸의 대웅전과 단칸의 삼성각은 건물조차 단출하다. 3층석탑 마저 대웅전 중앙이 아니라 아래단 석축 왼편에 치우쳐 세운 점도 색다르다. 좁은 터에 마당을 살린 배려로 보인다. 대웅전에 모셔진 불상 가운데 주불은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한, 최근의 것이면서도, 고려말~조선초 형식을 따른 점이 눈에 띈다. 조선 후기 문화재급으로는 대웅전의 작은 석불이 방해석으로 만든 19세기 조성한 것으로 보이며, 삼성각의 산신도가 갑술년(1873년 추정)에 그려진 불화이다.

20년간 하나하나 짓고 조성하며 작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춘 모양이다. 이로써 능가사는 법당에 작가의 창작과 전시공간을 함께한 법관의 터전으로 완성되었다. 정말 축하할 일이다. 

법관의 작업 공간은 법당 마당 아래 배치되어 있다. 보통 절의 경우 보제루나 만세루가 들어서는 예배처인즉, 부처에게 예를 올리는 자리이다. 철근 구조물로 조립한 단층에 반은 수장고이고, 나머지는 차실(茶室)과 화실(畫室)로 칸을 나누어 사용하고 있었다.

먼저 들른 차실에는 차 도구들과 좋아하는 도예가들의 작품들, 그리고 법관의 최근 그림들이 가득하면서도, 안정되게 꾸며져 있었다. 100호짜리 청색 추상화 <선>이 중앙을 차지하고, 왼쪽 벽면에는 전통적인 선화 스타일의 수묵 서화 작품 족자와 붉은 색조의 다완 그림이 그러했다. 그중에서 “禪 아님이 있는가”라는 어눌한 붓글씨가 법관의 화두(話頭)인 듯해 눈길을 끌었다. (도 5)

법관은 이처럼 전통 선종화나 선배 승려 화가 중광(重光)을 멘토 삼아 먹그림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법관 회화의 뿌리인 셈이다. 법관은 강릉 능가사에 정착한 3~4년 새 선승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2002년 강릉에 있는 화랑 선아트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고, 2004년 서울전으로 이어지며 대중이 사는 세상에 나온 까닭이다.

“산사에서 정진중에 필묵이 좋아 가까이 두고/문득/그리고 싶은대로 그냥 그렸습니다”(‘빈손으로 왔다 가네’ 선화전에 붙여, 우림화랑, 2004)라고 피력한 것처럼 달마며, 탑이며, 화로며, 찻잔이며, 세한이며, 난초며 어눌한 솜씨 그대로 선보였다. 또 정감이 넘치는 묵서 글씨를 몇 차례의 개인전에 곁들였다. (2018, 2012년 등) 몇 작품 먹글씨와 먹그림을 차실에 걸어두고 지내듯이, 꾸밈없는 손맛대로 표현하는 일을 지금도 즐겨 다루며 경지에 오른 것 같다. ‘재주 없어 그저 즐긴’ 자연스러운 붓길 흐름에 법관다운 개성미가 유연하다.

“내 회화는 선(禪) 수행으로부터 오는 긴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는 일이다.” 이 같은 법관의 마음이 쌓인 공간을 보자.

 차실 옆방 그림 그리는 화실은 대관령을 향해 작은 창을 낸, 선방(禪房)이었다. 고요한 정와(靜窩)처럼 느껴졌다. 현재 작업 중인 대소의 캔버스들이 벽에 기대어 정돈되어 있고, 화면 왼쪽과 아래에 수직 수평의 긴 흰 선을 남긴 검은 색조의 대작이 막 끝낸 듯하였다. 뎅그러니 놓인 작업대에는 법관이 이 작품을 완성하며 내뿜는 열기로 가득했다. 무념의 붓질 소리를 상상하고 남음 직했다. 능가경의 말씀대로 마음자리이자 집착을 벗는 작업의 결과물로 수긍되었다.

법관의 블루 작품을 바탕 판으로 삼아 만든 시계가 벽에 걸려 있어 인상적이었다. 시간 알림은 정확했다. 작업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니, 하루에 꼬박 15시간가량, 혹은 그 이상 몰두한단다. 그 바람에 달인의 경지에 오른 듯하다. 100호의 선묘 작업이 초기에는 한 달씩 걸렸는데, 요즈음은 열흘 정도면 완성한다고 한다. 붓을 들기보다 놓기가 어렵다고 할 정도이다.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완성해야 하는 법관의 마음새로 보인다. 살면서 몸과 마음이 겪은 체험을 쏟는 그림 작업에 대하여, 법관은 ‘대단한 것 아님’을, 그러나 ‘온 마음으로 최선을 다함’을 강조한다.

화실 왼편이 수장고였다. 문을 열자마자 ‘으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흐트러진 듯 제법 정리가 잘된 창고에 법관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지난 35년 열정으로 쏟아낸 ‘마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승려가 되었지만, 1995년경 무작정 만진 유화 그림부터 법관이 천부로 타고난 화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 낡은 상자에서 꺼낸, 몇몇 처음 그린 유화들을 보며 그랬다. 서구 유럽에서 개발되어 발달한 “유화란 뭐냐”며 유화물감 칠하기를 60일가량 미친 듯이 몰입했던 결과란다.

굵은 텃치의 박고석 화풍 엇비슷한 산 그림이며, 후안 미로 그림을 연상케 하는 선조의 <노래하는 새>며, 심지어 둥근 레코드판에 그린 동물인 듯 사람 얼굴인 듯한 표현주의 화풍이나 흰색 추상화까지, 법랍 유년기 법관의 순정스럼이 고스란했다. 또 내 것이 나올 때까지 집착한 법관의 화두(話頭) 정진을 읽는 것 같았다. 언젠가 누군가 법관 회화를 망라하는 회고전을 기획할 때, 백여 점의 다채로운 초심 오롯한 소품들을 어떻게 평가할지도 흥미롭게 떠올려 봤다. 

수장고 중간에는 붉고 푸른 색조의 크고 작은 캔버스들이 첩첩해 있었다. 건물의 절반을 차지한 이 작품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그렸다고 한다. 산과 나무 풍경, 달, 달항아리, 꽃, 나비, 새 등등 반추상 혹은 순수 기하학적 추상화이다. 화면구성에는 불화나 민화의 소재나, 그가 좋아하는 분청자의 무늬 등이 화면에 등장해 있다. 전통적 회화 안료인 석채(石彩)를 쓰면서도 아크릴 물감 등 혼합해 그리기도 했다.

절 생활에서 늘 익숙한, 단청 이미지에 근사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건축물 장식에서 적색은 주황색으로, 초록색을 대신해 푸른 색조로 자기화시켰다. 그림에 자신감이 붙어 “산사 생활 정진 중에 내 속에 있는 생각들을 화면에 그대로 옮겨 보았습니다.”(2006년 ‘심상 심류’전에 붙여, 서울 윤갤러리)라고 시작해, ‘비산비수’전(서울 인사아트센터, 2007.), ‘禪으로 부터’전(서울 인사아트센터, 2009.), ‘선-2011’전(서울 인사아트센터, 2011.), ‘선-2013’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013.) 등을 통해 유명해졌다. 법관의 작품들은 여러 단체전에 초대되었고, 아트페어나 옥션에 등장하였다. 신항섭, 윤진섭, 박영택, 이병인, 윤양호, 고연수 등 유명 평론가나 작가의 글이 전시 도록에 곁들여진 것만 보아도, 그 위상변화가 짐작된다.

수장고 문 입구 쪽에는 근래의 대작들이 채곡채곡 쌓여 있었다. 이 글의 서두에 소개한, 군청색을 중심으로 선을 반복해 겹겹히 그으며 화면구성을 시도한 작품들이었다. 이들 <선(禪)> 작품은 2011년 싸인부터 보였다. 선승화가의 진면목이며, 동시에 법관의 마음이 충만한 회화는 후기 단색화로 규정짓게 했다. 그리고 법관 그림이 대중과 소통하는 인기도 얻었는데, 이렇게 많은 양이 보관되어 있어 놀랐다. 얘기를 들어보니, 김환기나 여타 화가의 그림과 유사하게 나온 것들을 오해 소지 탓에 세상에 내놓지 않은 것이라 한다. 수긍은 되었지만, 이들도 가까운 후일 어떻게 재평가될지 기대를 해본다.

또 최근의 단색조 대작들은 대웅전 아래 외쪽 벽돌 건물로 ‘문화공간 고암(古巖) 갤러리’에 진열되어 있기도 하다. 들어서니, 개인 미술관으로도 훌륭한 전시공간이었다. 붉은 화면 한 점, 검정 화면 한 점 외에는 모두 블루 색감 작품들이다.

이들 작업은 법관의 브랜드로 자리 잡게 했다. 국내에서는 2010년대 중반부터 개인전과 단체전, 아트 페어에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작품들을 선보였다. 뉴욕 Able Fine Art, NY Gallery(2016년)를 비롯해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해외에 진출하였다.

고암 갤러리 전시공간에는 법관이 좋아하는 도예가들의 작품들이 어울려 있었고, 문 오른쪽에 그늘진 목기와 조각품이 눈길을 끌었다. 조선 후기 목기로 중앙에 둥근 쇠장식 달린 수직 구성의 여닫이 장은 간결한 추상미가 돋보였다. 그 위에 놓인 테라코타 인물 흉상은 흙을 주물러 만든 얼굴 이미지의 손맛이 좋아 물으니, 법관이 조각한 거란다. 법관의 눈썰미와 손재간이 탁월함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도 6)

 법관은 재주 없음에 그저 즐겼을 뿐인데, 작가나 화가로 불리는 것이 영 짐스럽고 부담스럽다.”라고 만날 때마다 토로한다.

강렬한 불길처럼 지펴낸 지난 35년의 작업을 돌아보니, 우리시대 작가로 꼽아도 손색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구도자의 길에서 참선하다 만난 회화를 선(禪)과 동일시한 것뿐이라며 손사래 친다. 하다 보니 평생 숙제가 되었다고 한다. “시행착오 끝에 마음에 집중해 열정을 쏟았고, 온마음 들어내기에 최선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법관의 눈빛은 세차기 그지없다.

“내 생각을 담는 내 방식 찾기에 수많은 시간 할애해 최선을 다했고, 내 것 만들기 몰두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모르고 그리던 초심처럼 열정이 식지 않고, 머리 속을 비우며 천진한 마음을 익혀내는 좋은 그림이 나오고, 대중과 더불어 나누고 싶다고 피력한다.  

나는 무엇을 특별히 그리려 하지 않는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것들 어차피 정답도 없다 지금껏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 정의할 수 없는 무엇을 선과 점으로 찍고 긋고 겹치면서, 경계와 질서가 허물어진 자유로운 균형으로 모두의 마음속에 따뜻하고 평화로운 선의 세계가 전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법관의 메모에서)

 

이태호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