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석의 사진살롱 41 – 해방 직후 조선의 사진기자들
09/23/2020
/ 박주석

현일영. <취재기념사진>. 젤라틴실버프린트.
1945년 10월 20일. CP컬렉션.

이 사진은 1945년 해방 직후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광화문 조선총독부 건물을 배경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던 사진가들의 기념사진입니다. 뒤로는 건물 원기둥들 사이로 태평양전쟁의 승전국으로 한국에 들어온 미국, 중화민국(대만), 소련(러시아), 영국의 국기가 걸려있고, 가운데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습니다. 1945년 9월 9일 서울에 진주한 미군은 일제의 조선총독으로부터 항복문서를 받고 이 건물을 인수했으며, <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 즉 <미군정청>의 청사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미군은 자신들이 전쟁 연합군의 일원으로 조선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청사 전면의 벽에 전쟁 동맹국의 국기와 우리 태극기를 나란히 걸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까지 약 3년간 이곳은 한반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의 중심지였습니다. 자연히 이곳은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들의 주 출입처였습니다. 미군 당국에는 당연히 기자들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공보관이 있었고, 한국의 기자들과도 자주 어울렸을 것입니다. 1945년 10월 20일 중앙청 앞에서 열린 서울시민 주최 ‘연합군환영대회’에 조선의 사진기자들이 사진취재를 위해 몰려들었고, 기자들은 미군 공보관과 더불어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미군 복장을 한 두 번째 인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양복을 차려입고 목에 카메라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진기자들입니다. 당시 현장에 갔던 사진기자 중 한명이었던 현일영 선생이 남긴 자전적 기록물 덩어리에 남아있는 사진입니다. 이곳에 있던 당시 사진기자들의 면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맨 왼쪽의 중절모를 쓴 분이 일제 시기 한국사진의 중견 작가로 활동했고, 훗날 한국사진에서 가장 독자적인 미학을 개척했던 현일영(玄一榮, 1903~1975) 선생입니다. 당시 서울에는 해방을 맞아 다양한 신문들이 창간해서 경쟁을 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특별하게 어느 신문에 소속되지 않고 프리랜서 형태로 활동했습니다. 현일영 선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문 사진기자는 아니지만 6.25전쟁 때는 <합동통신사> 기자를 지냈고, 1956년에는 <경향신문사>에서 촉탁으로 기자 생활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사진 잘 찍기로는 조선 제일로 꼽히던 현일영 선생에게 격변하는 혼란기에 사진취재 요청은 많았습니다. 당시 찍은 사진 한 장을 소개합니다.

현일영. <서울시민 연합군환영대회>. 1945.
젤라틴실버프린트. 주명덕 인화. 1986. CP컬렉션.

왼쪽에서 세 번째 인물이 골초 사진기자로 유명했던 김정래(金貞來, 1913~1989) 선생입니다. 선생은 일제 때인 1926년 동아일보에서 수습기자로 언론사에 발을 들였고, 1927년부터는 조선일보 사진기자로 활동했으며, 1935년부터 39년까지는 같은 신문의 사진부장을 지낸 전형적인 사진기자였습니다. 또 1942년에는 사진실력을 인정받아 조선총독부 기관지의 성격을 갖고 있던 매일신보(每日申報)의 사진부장으로 발탁되어 일했습니다. 매일신보에서 같이 일하던 조선인 기자들과 함께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 5일 『자유신문(自由新聞)』을 창간했고, 사진부장으로 활동했습니다. ‘연합군환영대회’가 열린 날이 10월 20일이니까 신문사 소속으로 취재를 나온 사진기자였습니다. 

김정래 선생 옆에 네 번째로 서있는 분은 일제 시기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했던 백운선(白雲善, 1910~?) 선생입니다. 1936년 5월 신낙균(申樂均) 선생이 부장으로 일하던 당시 동아일보 사진부에 입사하면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고, 1940년 8월 동아일보가 일제의 강압으로 폐간할 때까지 사진부장 등을 거치며 일했습니다. 입사해서 처음 근무하던 첫해인 1936년 <동아일보일장기말소사건>의 해당자로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해방 후 1945년 12월 1일 복간한 동아일보에서 다시 사진부장을 지내다가 6.25전쟁 때 납북당하고 말았습니다. 뒤로는 소식을 모릅니다. 동아일보의 복간이 12월이니까 위의 사진이 찍힐 때는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 옆으로 오른쪽에서 두 번째로 서있는 건장하고 인물 좋은 사진가는 임석제(林奭濟, 1918~ 1994) 선생입니다. 1948년 해방 후 처음 열린 개인 작가의 사진전이었던 《第一回 林奭濟 藝術寫眞 個人展》을 개최했던 분입니다. 일제 시기 사진관에서 도제로 사진을 배워 공모전 등에 입상하는 등 활동을 했고, 해방 직후에는 1945년 9월 6일 서울에서 창간한 영자신문인 『서울타임스(The Seoul Times)』 사진기자로 일했습니다. 그래서 선생의 첫 개인전 팸플릿에도 후원사로 명기되어 있습니다. 사실 임석제 선생의 첫 개인전에 걸린 작품 대부분은 『서울타임스』 기자로 취재를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이었습니다. 위의 기념사진을 찍을 때는 영자신문의 기자였고, 그래서 미군 공보관도 각별하게 대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마지막 맨 오른쪽의 사진가는 아직 누구인지를 모르는 분입니다. 가장 최근에 돌아가신 김정래 선생이나 임석제 선생께 물어보면 금방 아실 텐데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국사진사 연구가 좀 늦었던 문제입니다. 혹시 이 분이 누구신지를 아시는 분이 있다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후손 중에 아시는 분이 있기를 고대해 봅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