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정의 삶과 문화 5 : 우리는 남이다!
09/16/2020
/ 신수정

“우리가 남이가!”

한때 정치권을 비롯하여 우리 사회 전반에서 유행했던 구호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엮인 네트워크 사회를 살아가는 생존 지침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나와 남을 구분하고 내가 속한 집단의 대의를 익히는 것으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떼게 된다.

윤종빈 감독의 대표작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가 문제적인 영화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관습을 풍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 최민식이 분한 부패한 세무공무원 최익현이 조폭 두목 최형배(하정우 분)에게 소개되는 장면을 보라. “너그 아부지, 우리 형님의 할부지의 구촌 동생의 손자가 바로 익현씨인 거라”라는 형배 숙부의 저 유명한 대사는 우리 사회의 밑바닥까지 널리 퍼져있는 ‘끼리끼리 문화’의 잔영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그전까지 아무런 인연이 없다 못해 적대적인 관계에 처해있기조차 했던 두 남자는 ‘경주 최씨 충렬공파 35대손’으로 대동단결하여 마침내 ‘대부님’이라는 호칭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이후 이들의 ‘가족 사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의 망토를 두른 두 남자는 막대한 재물을 축적하고 사회적 명성과 더불어 신분 상승을 감행한다. 이른바 ‘나쁜 놈’들이 ‘전성시대’를 맞이했던 시대의 이야기다. 물론 마지막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블랙 코미디로 진행되는 ‘경주 최씨’ 가문의 이야기가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직장 생활의 풍경이 달라져서 적절한 예가 되지 못하는 감이 있지만, 얼마 전까지도 부하 직원들과 함께 하는 회식 자리에서 ‘우리가’를 선창하고 ‘남이가’를 외치기를 요구하는 상사야말로 최대 꼴불견 인물로 꼽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의 동질적 정체성에 대한 집착은 최근까지도 식지 않는 현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미묘하게나마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젊은 층의 대오 이탈이 꽤 두드러져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혼밥’이나 ‘혼술’이 하나의 사회적 키워드가 된 지 오래고 그것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점차 사라져가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미래와 관련하여 새로운 정체성의 구성을 요구하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코로나 19’ 사태가 이런 현상을 촉발하고 자연스럽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모든 일이 그러하듯 ‘반동’ 역시 없지 않은 모양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둘러싼 어떤 기류는 우리 사회가 초래하고 있는 변화의 조짐에 눈을 감고 과거의 구호에 연연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당명을 따르지 않은 한 개인에게 ‘제명’이라는 형태의 페널티를 부과함으로써 ‘더불어’란 ‘나’와 같은 동질성의 집단에게만 허용되는 용어임을 만천하에 일깨워준 이 행위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남이가’의 정신과 그리 구별되지 않아 보인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지만, 순수하고 동질적인 ‘우리’에 대한 집착은 ‘우리’가 아닌 ‘남’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통해 집단의 신화를 가공하고 확산하고자 한다. 그것은 항상 이탈자를 억압하고 단속하는 한편, ‘사회의 시인들’, 즉 규범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침묵시키고자 하는 형태로 집단의 동질성을 유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방법밖에 없는 걸까? 배제와 침묵을 넘어서 새로운 공존의 가능성을 시도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남의 나라의 오래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1970년대 미국의 도시 생활과 개인의 정체성 모델을 고민해온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의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에 따르면, “인간애에 대한 기대나 사회 전체를 위해 만들어진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애정의 공동체” 같은 건 앞으로 없을 것으로 믿어도 좋다. 그런 공동체에 대한 기대가 ‘우리가 남이가’ 류의 동질성과 유대의 신화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확인하고 기억해야 할 이야기는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남이가!’의 구호가 아니라 ‘우리는 남이다!’라는 인식 같기도 하다. “어떤 원대한 전망을 위해 자신의 작은 존재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 인간들” 말하자면 “스스로 전체가 되려고 하지 않는 인간들”의 양심에 내포된 윤리가 우리 사회를 새롭게 업그레이드할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공동체는 세넷도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많은 불만과 훨씬 더 많은 고독을 수반하는 사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들이 고통 없는 조화라는 신화를 만들지 않고도 정직하게 살 수 있을 만큼 현실적”(『무질서의 효용』, 다시봄, 2014)인 모델이 될 수는 있을 것 같다. 6.25의 폐허 위에서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꿈꾼 우리의 젊은 시인들, 김경린, 김수영, 박인환, 양병식, 임호권 등이 꿈꾸어온 공동체 역시 여기에서 멀지 않았다. 그들의 상상력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본 글은 세계일보 2020년 6월 5일자 오피니언/외부칼럼 카테고리에 “[삶과문화]”우리는 남이다!”로 연재된 글입니다>

 

신수정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