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의 시대가 올까?
09/09/2020
/ 박평종

[도판1] 넥스트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

예술교육 무용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교육이 창의적인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교육은 새로운 사고를 펼쳐나가는 데 방해만 될 뿐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한마디로 축약하면 ‘아는 것이 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럴 듯한 말이다. 이런 주장은 예술작품의 가치를 ‘독창성’에서 찾는 소위 모더니즘 예술 패러다임의 틀 속에서 나온 것이다.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사고, 새로운 감성을 제안하고자 할 때 지식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발상이다. 이 ‘독창성’ 패러다임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며 우리 시대 예술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견고한 틀이다. 이런 사고의 틀 속에서는 남과 달라야만, 나아가 ‘특이해야만’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도판2] 딥드림이 생산한 이미지

인공지능이 예술작품 생산에 개입하면서 이 ‘독창성’ 패러다임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시기다. 이미 인공지능이 생산한 예술이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실상 인공지능은 무수한 데이터, 말하자면 과거의 예술작품을 학습하여 결과물을 산출한다. 예컨대 넥스트 렘브란트는 렘브란트의 그림을 딥러닝으로 ‘학습’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즉 이 기계 예술가의 그림은 렘브란트의 화법, 요컨대 렘브란트 스타일을 모방한 것이다. 구글의 딥드림 역시 유명 화가들의 화법을 학습하여 주문자의 요구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제공한다. 고흐 스타일이나 모네 스타일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미술사가나 평론가들은 이렇게 생산된 ‘작품’은 결코 예술이 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유명 화가들의 스타일을 모방했기 때문이다. ‘독창성’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시대니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실상 이 ‘독창성의 제국’은 19세기에 와서야 시작됐다. 이전에는 ‘모방’ 패러다임이 예술작품의 가치를 결정했다. 미의 이상형이 있고 그것은 이미 고전주의 시대에 완성돼 있었다. 더 정확히는 그에 대한 ‘규범’이 있었다. 따라서 이후의 예술은 이 ‘결정된’ 이상형을 충실히 모방함으로써 충분했다. 제대로 모방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 패러다임에서는 교육과 학습이 중요했다. 그리고 충실한 모방을 위해서는 반복적인 훈련을 요구했다. 미술 아카데미의 규범이 있고, 그 규범을 따라야만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거장’들의 아뜰리에에서 그 규범을 학습하는 것이 예술가들에게 요구됐던 주요 덕목이었다. 이 패러다임은 19세기에 와서야 해체됐다. 말하자면 ‘독창성’이 ‘모방’을 대체했다. 모방은 예술의 가치를 저해하는 요소로 금기시됐다. 그런데 이제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이 ‘독창성의 제국’에 균열을 낼 조짐이다. 물론 아직 ‘독창성’ 규범을 고수하는 이들은 학습을 통해 모방을 일삼는 이 ‘모방기계’의 생산물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이 차이를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할까? 실상 예술가들은 과거 예술가들이 구축해 왔던 무수한 규칙과 질서를 학습한 후 그것을 새롭게 이해하고 또 재구성함으로써 자기만의 규칙을 세워나간다. 그것이 예를 들면 렘브란트의 스타일이나 고흐의 스타일이다. 그런 점에서 모방과 학습은 창의성의 전제 조건일 수 있다. 말하자면 모든 문화적 생산물은 기원이 있고 따라서 파생적이다. 그렇다면 학습량이 많은 기계가 창의적인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개연성도 커진다.

우리 시대의 독창성 패러다임이 인공지능 예술의 등장으로 무너지고 다시 모방 패러다임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자가 영속적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또한 현재의 ‘모방기계’가 진화를 거듭하여 언젠가는 ‘인간예술가’보다 창의적인 작품을 생산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알파고 이후 프로바둑 기사들은 인공지능이 찾아내는 ‘최선의’ 수에 담긴 창의성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는 형편이니 말이다. 기계가 바둑을 더 잘 둔다고 바둑게임이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기계가 예술작품을 생산한다 해서 크게 달라질 일은 없을 것 같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