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경이
08/19/2020
/ 박평종

갈라파고스

갈라파고스

알고리즘 기반의 이미지 생산 방식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스스로’ 이미지 정보를 생산한다는 뜻인데, 이는 거창하게 말하자면 ‘문명사적’ 변화다. 본래 이미지는 자연 속에서 저절로 생성된다. 부러진 나뭇가지가 땅에 떨어져 남긴 흔적이나 동물 발자국 등이 그 예다. 이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기호라 불렀다. 선사시대 동굴 벽화처럼 사람이 ‘의도’를 갖고 생산한 이미지도 있다. 소위 ‘그림’이라 부르는 기호다. 인류가 생산, 축적해 온 이미지의 대부분이 그것이다. 19세기에 사진이 발명되면서 이미지 생산의 ‘혁명’이 시작됐다. 속도와 양의 측면에서 사진은 그림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했으나 정작 이미지 생산 과정에 사람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대폭 줄어들었다. 기계가 찍기 때문이다. 그런데 컴퓨터 프로그램이 그 자리를 대체하면서 다른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프로그램은 사전에 정해놓은 규칙을 뜻한다. TV프로그램이 앞으로 방영될 방송목록들을 미리 알려주듯이 말이다. 프로그램에 없는 내용이 방영되면 규칙 위반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의 제약은 훨씬 까다롭다. 프로그램은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명령어들의 집합인 까닭에 규칙을 위반하면 오작동 한다. 버그가 그 예고, 바이러스는 오작동을 일으키기 위해 프로그램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수단이다. 말하자면 프로그램은 시키는 대로만 하며, 역으로 시키지 않는 것은 하지 않는다. 이것이 프로그램 이론의 기본 뼈대다. 컴퓨터의 창의성에 관한 논의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즉 프로그램에 따라 정보를 처리하는 컴퓨터가 시키지 않은 새로운 정보를 생산할 수 있을까?

당연히 양 진영으로 나뉜다. 가능성을 믿는 자들의 실험적인 시도가 있다. 예컨대 MIT 미디어랩의 컴퓨터 공학자 칼 심스(Karl Sims)는 1990년대 초반부터 진화 알고리즘(Evolutionary algorithm)을 활용한 예술 창작에 몰두해 왔다. <팬스퍼미아(Panspermia)>(1990), <진화한 가상생명(Evolved virtual creature)>(1994), <갈라파고스(Galapagos)>(1997) 등이 대표적이다. 주제와 논리는 유사하므로 <갈라파고스>를 통해 작품의 요지를 살펴보자.

갈라파고스

팬스퍼미아

다윈의 진화론을 암시하는 제목의 이 작품은 12개의 컴퓨터 모니터로 구성된다. 각 모니터 화면은 유전 알고리즘(Genetic algorithm)에 따라 무작위로 산출된 인공생명체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관람자는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선택할 수 있고 선택받은 개체(인공생명)는 살아남아 가상공간에서 진화해 나간다. 진화는 교배와 번식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후손에게 물려주면서 진행된다. 반대로 선택받지 못한 개체는 도태된다. 즉 소멸한다. 이 과정에서 관람자와 컴퓨터 프로그램의 역할이 나뉜다. 관람자는 아름다운 개체를 선택함으로써 미적인 정보의 공급자가 된다. 한편 컴퓨터는 그렇게 제공된 정보를 바탕으로 인공유기체의 유전자를 결정하고 성장과 번식 등 진화 과정 전체를 조율한다. 이 때 알고리즘은 이전에 산출됐던 개체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 말하자면 <갈라파고스>를 주도하는 유전 알고리즘은 항상 새로운 개체를 산출한다. 칼 심스가 유전 알고리즘의 창의적 가능성을 주장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요컨대 자연의 생물학적 진화가 ‘본질적으로’ 새롭다면 이를 시뮬레이션 하는 인공 진화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움이 늘 예술의 창의성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새로워도 창의적이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낡은 것이 창의적일 때가 있다. 문제는 새로움(혹은 낡음)이 그 공간의 규범 속에서 어떻게 수용되느냐에 달려있다. 또 다른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실상 <갈라파고스>는 끊임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산출하고 선택을 통해 ‘진화’하지만 무수한 그 이미지들 사이에는 어떤 시각적 유사성도 없다. 요컨대 스타일이 없다. 예술가의 스타일을 중시하는 현재의 패러다임 속에서 이 새로운 이미지들은 단지 ‘우연’의 산물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실험적 작업의 미래는 열려있다. 엄밀한 규칙들의 집합인 알고리즘이 예측 불가능한 ‘새로움’을 산출할 수 있다는 사실은 프로그램 기반 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