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석의 사진살롱 39 – 한국과의 깊은 인연 : 마가렛 버크-화이트
08/12/2020
/ 박주석

마가렛 버크-화이트, <거실의 물레 옆에서 독서중인 마하트마 간디>, 1948.

 

위 사진은 버크-화이트를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독립을 이끈 인도의 국부 마하트마 간디’를 찍은 사진입니다. 영국으로부터 인도의 독립을 이끈 간디의 ‘비폭력평화주의’ 노선을 상징하는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이 사진 한 장이 『LIFE』에 실려 세상에 알려지면서 간디의 소탈한 성정과 함께 버크-화이트는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가가 되었습니다. 앞선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1957년 한국에서 열린 <인간가족전>에서 당시 한국정부의 요청에 의해 삭제한 두 장의 사진을 찍은 사진가가 바로 미국의 전설적인 여류사진가 마가렛 버크-화이트(Margaret Bourke-White, 1904~1971)이었습니다.

버크-화이트는 6.25전쟁 때 종군해서 한국을 왔었고, 1958년 『LIFE』의 의뢰를 받고 다시 한국에 취재를 왔습니다. <인간가족전>이 열린 직후여서 한국사진계에서는 이 사진가에 대한 관심이 무척 컸을 것입니다. 이때 당시 유일한 사진전문 잡지인 『사진문화』에서 인터뷰를 진행했고, 잡지에 게재했습니다. 1958년 7월 1일 발행한 『사진문화』 제11호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통해 당시 미국인들이 한국에 갖고 있던 인상과 사진가들의 관심사항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진행은 당시 편집인이었던 조명원 선생이 맡았습니다. 인터뷰 전문을 편집해 소개합니다. 먼저 잡지는 마가렛 버크-화이트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마가렛 버크화이트 여사는 사진계의 여왕이라고도 한다. 근대사진이 시작된 이래의 거장의 한 사람이며, 그 업적은 남녀의 성별을 넘어설 정도로 위대하다. 동 여사의 보도사진은 가장 이론적이고 포토에세이는 여하한 논문보다도 정확하다. 1904년 탄생, 콜롬비아대학에서 미술과 사진을 공부, 미시간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다음 코넬대학을 졸업하여 학위를 얻었다.”

사진문화 : 6.25전쟁 종군 때의 기억에 남는 일은?

“거제도의 포로수용소에 들렸을 때 포로들이 각종의 물품을 만들고 있는데, 그 솜씨가 아주 훌륭한데 놀랐다. 또 사진을 찍다가 공비들에게 포위되어 살해될 뻔했는데 다행히 도망한 일도 있었으며, 제가 어느 장소에서 사진을 찍느라고 우물우물하며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타부대가 먼저 산상에 이르렀을 때 북한군이 대기하고 있다가 팡팡 쏘았으나 저는 사진을 촬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일도 있었다.”

사진문화 : 이번 방문에서 무엇을 촬영했는가? 

“일반 사람은 한국이 전쟁으로 파괴되어 아주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전연 파괴되지 않은 아주 아름다운 마을이든가 거리가 상당히 많이 남아있었다. 나는 옛날의 한국과 현재의 한국을 비교하기 위하여 특히 이 점에 주의하여 촬영하였다. 『U. S 카메라연감』에 유진 스미스(Eugene Smith) 씨의 <스패니시빌리지(Spanish Village)>가 나와 있는데, 그 농촌의 풍경을 보았을 때 나는 곧 한국을 연상하였는데, 한국 체류 중 항상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사진문화 : 한국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한국에는 아주 흥미 있는 풍속이든가 습관이 있었다. 제일 감명 깊은 것은 장례식인데 몹시 흥미가 있기에 한 장례식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촬영한 일도 있었다. 세계의 각처에서 아직 외국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퍽이나 유쾌한 일인데 여기에서도 그것을 새삼스러이 느꼈다. 그리고 한국에선 아직 흙벽으로 지어진 집이 있고 온돌이라는 것이 있는데 따스하고 아주 편리하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구라파 문명의 안식을 가진 나로선 몹시 흥미를 느꼈다.”

사진문화 : 또 다른 인상이 있다면?

“한국문화의 특징은 가난함이다. 삶을 위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쌀을 얻기 위하여 싸우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감득할 수 있었다. 이 테마를 위해 헬리콥터에 편승하여 저공으로 비행하여 수확하고 있는 농민의 사진을 아주 많이 찍었다. 마침 이 사진을 촬영하고 있을 때 돌연 태풍이 불어와서 못처럼 수확한 벼가 있는 곳에 해수가 침범하여 농민들의 밤잠도 자지 않고 이것을 막느라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장면에 부닥치어 이것 역시 많이 촬영하였다. 미군들도 쌀이 한국인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인식하였는지 이틀 밤이나 농민들과 함께 해수가 논에 들어오지 못하게끔 노력하고 있었다.”

사진문화 : 한국 사람에 대한 인상은 어떠한가?

 “한국에서 많은 지식층을 접촉하였는데, 시골 사람에 비해 성질이든가 성격이 아주 판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느낀 것은 소수의 사람이 힘을 잡고 있기에 많은 사람이 가난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도 역시 저의 촬영의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또 하나는 이 나라의 여자나 남자나 아주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한다는 점이다. 부녀자들이 등에 어린아이를 업고도 머리 위에 많은 짐을 지고 다니는 것이든가, 그것이 나뭇가지였을 경우엔 무슨 큰 수풀이 움직이는 감이 날 정도였다.”

사진문화 : 촬영하면서 편한 점과 불편했던 점은 무엇인가? 

“한국에 체류하는 중 내가 여자였기 때문에 편리하였던 것은, 친구들은 한국은 남자의 나라이지 여자의 나라가 아니라고 자주 말하였지만, 역시 남자들은 여러 가지 많은 무거운 짐을 날라주었으며, 침구 같은 것도 모두 타인이 운반하여 주워서 저는 항상 베개만 들고 다니는 처지였다. 가장 곤란하였던 일은 전화가 없다는 것이다. 전쟁으로 모두 파괴되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으러 가기위하여 사전에 연락하여야 하겠는데 이것이 제일 곤란하였다.” 

요즘 용어로 조금 바꾸기는 했지만, 잡지에 실린 원문 그대로 소개했습니다. 버크-화이트의 답변을 찬찬히 곱씹으면, 1958년 당시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과 한국인의 생활상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편견도 있을 것이고, 잘 몰라서 오해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여러 단면을 느끼게 해주는 대답입니다. 역시 저널리스트로서 역량을 갖춘 사진가의 안목이 돋보입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