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기와 카메라
08/05/2020
/ 박평종

타자수로 군복무를 마친 내게 타자기의 의미는 각별하다. 이등병 때 4벌식으로 타자를 배웠는데, 상병 무렵 부대 전체의 타자기가 2벌식으로 바뀌면서 적응에 애를 먹었다. 2벌식과 4벌식의 차이는 받침과 쌍자음, 이중모음의 처리방식에 있다. 자판 배열은 거의 같지만 받침을 처리할 때 4벌식에서는 새끼손가락으로 시프트키를 누른 상태로 자판을 눌러야 한다. 2벌식의 경우 시프트키를 누르면 잠금장치가 작동하여 손가락을 뗀 상태에서 자판을 누를 수 있고 자판을 누르는 순간 잠금은 자동 해제된다. 이 ‘구조적’ 차이가 몇 가지 다른 차이를 만들어 낸다. 첫째, 4벌식의 받침과 쌍자음은 시프트키를 누르는 새끼손가락의 압력에 따라 위치와 모양에 미세한 차이를 낳는다. 그에 비해 2벌식의 글씨 모양은 한결같다. 둘째, 시프트키의 잠금장치가 걸렸다 해제되는 영점 몇 초 정도의 순간이 타자를 아주 잘 치는 특급 타자수들에게는 다음 자판을 누르는 데 방해가 된다. 물론 그 정도로 타자를 빨리 치는 초일류 타자수는 흔치 않지만, 기계보다 빠른 손은 드물게 존재한다.

타자기가 나오기 전까지 글씨는 손으로 ‘그려서’ 써야했다. 그래서 손 글씨에는 글 쓰는 자의 개성, 낭만주의 시대의 표현으로는 ‘영혼’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손 글씨는 잘 쓰든 못 쓰든 캘리그라피, 말하자면 글이자 그림인 기호다. 한편 정형화된 활자를 기계적으로 찍어내는 타자기의 글씨는 개성 없는 타이포그래피, 즉 유형으로 굳어진 기호다. 손 글씨에 문자와 이미지의 특성이 혼재한다면 타자기는 후자를 추방함으로써 순수한 문자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정보를 생산하는 속도, 즉 정보량도 중요하다. 손 글씨로는 타자수의 글쓰기 속도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 독수리 타법으로 치는 이들은 예외지만…

카메라와 타자기는 여러모로 유사하다. 우선 정보를 생산하는 속도가 그렇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속도는 손으로 이미지를 그리는 데 걸리는 시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미지를 생산하는 자의 ‘개성’도 타자기가 그렇듯 카메라에 투사되지 못한다. 카메라는 대상을 ‘기계적으로’ 재현할 뿐이고, 찍는 자의 개성은 극히 제한적으로만 발휘될 수 있다. 물론 찍는 자의 ‘스타일’은 있다. 그래서 한 장의 사진으로 그를 이해할 수는 없다. 어쨌든 사진이 그림을 대체하면서 이미지 생산에 사람의 개성이 스며들 여지는 대폭 줄어들었다. 타자의 보편화로 손 글씨를 보기 힘들어진 것처럼 손 그림도 희귀해졌다.

 

이런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카메라와 타자기는 다르다. 전자가 이미지, 후자가 문자를 처리한다는 근본적인 차이 외에도 정보의 기록이라는 차원을 고려해야 한다. 실상 카메라는 사진이 발명되기 훨씬 전부터 ‘어두운 방(Camera obscura)’의 형태로 존재해 왔다. 사진은 이 ‘상자’에 맺힌 빛의 궤적을 감광물질을 통해 고정시킨 이미지다. 따라서 카메라만으로는 이미지를 ‘기록’할 수 없다. 한편 타자기는 자판과 연동된 활판이 먹끈(잉크리본)에 순간적인 압력을 가해 문자를 ‘찍어내는’ 구조다. 금속활자의 인쇄방식을 변형시킨 셈이다. 따라서 애초부터 타자기는 ‘순간인쇄’, 그리고 ‘단일인쇄’를 위해 고안된 기계다. 타자기의 먹끈은 아주 단순한 원리로 작동하나 실상 정보를 ‘무한히’ 기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먹끈은 두 개의 원반에 고정돼 있고 자판을 칠 때마다 규칙적으로 한 칸씩 이동하면서 한쪽으로 감긴다. 이렇게 활자를 기록하다가 끈이 모두 풀려 한계치에 이르면 다시 반대쪽으로 감긴다. 그리고 이 양방향 운동은 ‘이론적으로’ 무한히 계속될 수 있다.

카메라에 대한 문헌기록은 11세기 이슬람 학자 알하젠의 책에 등장하지만 이 시기의 장치는 먹끈 없는 타자기와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이미지 정보를 기록할 수 있는 감광물질이 19세기에 카메라와 ‘결합’하면서 비로소 사진이 발명됐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감광물질을 바른 필름은 값이 비쌌고 한번 이미지를 기록하면 ‘재활용’이 불가능했다. 말하자면 일회용이었다. 그런데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면서 정보를 ‘무한히’ 저장할 수 있게 됐다. 당연히 ‘재활용’도 가능하다. 실상 타자기도 워드 프로세서로 진화하면서 디지털 카메라와 비슷한 ‘혜택’을 입게 됐다. 두 기계가 생산하는 정보는 모두 동일한 형태의 데이터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귀결점은 컴퓨터다. 오늘날의 타자기와 카메라는 ‘거의’ 컴퓨터로 통합되고 있다. 워드프로세서와 디지털 카메라 기능을 장착한 휴대폰은 이름만 ‘전화기’지 실상은 모든 정보를 하나로 통합시켜 처리하는 컴퓨터다. 이런 환경에서 이미 타자기는 사라졌고 카메라도 비슷한 운명에 처해있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