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정의 삶과 문화 4 : 다시 백 년의 시간을 위하여
07/29/2020
/ 신수정

그 집은 한때 십여 년 이상 폐가로 버려져 있었다. 대지 300평의 화려한 일본식 서양 주택의 외양을 자랑하는 그 집이 해방 후 지역 명망가에 의해 붉은 벽돌집을 덧댄 한국식 난개발의 전형으로 개축되어 사용되다가 새로운 밀레니엄의 도래와 더불어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으로 버려지기까지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집을 손보기 전 이삿짐 트럭 두 차 반 분량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부터 시작했다는 이야기에서 거의 백 년에 육박하는 이 집의 흥망성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최근 방영된 EBS 프로그램 ‘집’의 ‘군산 양관’ 편은 우리들의 삶의 양태와 관련하여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해주었다. 군산 월명동 안쪽의 오래된 고택의 새 주인은 아날로그 흑백 사진 작업으로 널리 알려진 사진작가 민병헌 선생. 선생은 사진 작업을 하다 우연히 들른 군산 구도심의 풍경에 푹 빠져 십칠 년간 기거하던 양평의 작업실을 버리고 아무 연고도 없는 군산으로의 이주를 감행했다. 그리고 부동산 주인마저 구입을 만류한 그 집을 사서 수리를 시작했다.

그의 집짓기의 제일 원칙은 가능한 원형 그대로 살리기. 그는 싹 다 허물고 유명 건축가에 의뢰해 새로 멋진 집을 지으라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뒤로 한 채 별채 벽돌집에 기거하며 동네 목수를 불러 본인 스스로 집을 손보기 시작한다.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이 과정이 여간 만만치 않은 것이 아니다. 건축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혼자서 집을 짓겠다고 나섰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곤란한 일이 다 벌어진다.

목수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일이 손쉬워지는 것도 아니다. 가능한 옛것을 복원하고,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될 수 있는 대로 옛것에 가까운 것을 찾아 발품을 팔기를 마다하지 않는 선생의 태도는 자기 나름의 전문가적 원칙에 입각에 있는 목수의 눈으로 볼 때 너무나 비실용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투성이다. 목수는 목수대로 선생은 선생대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그 순간 그들의 협업은 불가능해진다. 집을 짓기 시작한 이래 TV에 방영될 때까지 몇 년의 시간이 흘렀건만 그의 집 이 층은 아직도 수리가 완료되지 않았다. 무거운 카메라를 맨 촬영팀 여럿이 올라와도 느긋하게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이 층이 수리되려면 그와 목수가 서로를 달래고 어르는 시간은 좀 더 연장되어야 할 것도 같다.

이 느리고 시대착오적인 집짓기의 과정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가 이 오래된 폐가에 들이는 공이 지금 그 어떤 사랑의 행위보다 절절하고 먹먹하게 다가온다면 그것은 어디에서 연원하는 것일까? 코로나 19 이후 자가격리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이동이나 접촉을 가능한 줄이고 제한하면서 집을 활동 반경의 최대치로 활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일까? 그 무엇이 되었든 선생이 폐가가 지니고 있던 본래의 아름다움을 복원해내는 데 당신의 미래를 기꺼이 저당 잡히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선생의 미래가 코로나 이후의 삶과 관련하여 하나의 약속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우리의 삶이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가기 어렵다면, 이제 우리는 국가와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지역과 지역을 가로지르는 개방의 시간을 뒤로하고 작고 사소한 일상 속에 깃들어 있는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내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집을 짓기 전 선생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는 지난 백 년간 우리 지구별에 무분별하게 쌓아올린 쓰레기, 트럭 두 차 분량으로는 도저히 치울 수 없는 그 쓰레기를 걷어내는 작업에서 출발해야할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다음에 우리의 삶에 내재해 있는 아름다움의 광채를 회복하기 위해 느리고 힘든 시간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일상의 불편은 다가올 백 년을 아름다운 시간으로 물들이기 위한 첫걸음일 수도 있겠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이 답답한 일상을 우리 모두 서로 달래고 어르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집짓기의 기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때다.

 

<본 글은 세계일보 2020년 5월 8일자 오피니언/외부칼럼 카테고리에 “[삶과문화]다시 백년의 시간을 위하여“로 연재된 글입니다>

 

신수정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