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으면 나오고 누르면 열릴 것이다
07/15/2020
/ 박평종

 휴대폰이 보급되기 전까지 전화번호를 기억하는 능력은 참으로 비상했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님에도 자주 쓰는 번호는 잊어버리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20-30년 전에 자주 걸었던 ‘특별한’ 전화번호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의 전화번호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개인정보 확인을 위해 내 전화번호는 또렷이 기억하나 다른 번호는 기억의 목록에 없다. 아내의 번호도 모르고, 정기적으로 문안인사 드리는 어머니 번호도 모르며, 일주일에 몇 번씩 통화하는 지인들의 번호도 알지 못한다. 뭐 119 같은 번호야 잊어버릴 일이 없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번호는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으며, 목록에서 찾지 않더라도 자주 거는 번호는 단축키만 누르면 되기 때문이다. 단축키가 아니어도 목록을 뒤져 터치만 하면 된다. 키가 핵심이다. 키(key)는 무엇일까? 키보드의 자판을 뜻하지만 그것만 가리키지는 않는다. 혹자는 단추, 버튼이라고도 부른다. 키의 역할이 중요하다. 키는 문자 그대로 열쇠를 가리키는데, 말하자면 여기서 저기로, 즉 여기서 보이지 않는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한 해결책이다. 간단한 동작 하나로 공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놀라운 힘이 키에 있다. 따지고 보면 공간 이동이라기보다 두 상이한 공간을 연결해 주는 장치라 할 수 있다. 단추가 그렇고 버튼이 그렇다. 고리 형이든 똑딱이 형이든 단추는 옷의 양쪽을 연결해주는 물건이고, 버튼은 본래 전류의 흐름을 연결하거나 차단하는 장치로 스위치와 같은 기능을 한다. TV나 컴퓨터의 on/off 버튼이 그 예다. 누르면 순식간에 새로운 공간이 열리고 다시 누르면 바로 닫힌다.

볼록한 형태의 키는 이제 휴대폰 액정화면의 평평한 키로 진화했다. 모양은 달라도 원리는 같다. 전자를 작동하려면 손가락의 압력, 손목의 근육이 필요하다. 무수히 키를 눌러대는 이들에게 ‘손목터널증후군’이라는 신종 장애가 생겨난 이유다. 평평한 키로 바뀌면서 그런 우려는 사라질 것 같다. 가벼운 터치가 ‘힘든’ 노동을 대체한 덕분이다. 그래도 어쨌든 키의 기능은 불변이다.

 

카메라 셔터도 일종의 키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셔터가 아니라 버튼이 키다. 사진을 촬영할 때 셔터를 누른다는 표현은 잘못이다. 셔터는 카메라 내부에서 빛을 차단하고 있다가 촬영 순간 빛이 렌즈를 통해 필름에 도달하도록 설계된 장치일 뿐이고, 이를 작동시키는 도구가 단추, 즉 버튼이다. 셔터는 차단이 목적이나 버튼은 개방을 위해 있다. 19세기에 카메라 대중화의 길을 처음 열었던 코닥의 광고 문구는 “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였다. 따라서 카메라를 작동시켜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이미지)를 연결시켜 주는 장치도 결국 키(버튼)다. 셔터의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이 세계와 저 세계의 접점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키를 누르는 ‘간단한’ 동작이 어떻게 ‘복잡한’ 정보를 대번에 저장할 수 있을까? 사전에 그렇게 설계됐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현실의 모습을 유사 이미지로 포착하게 돕는 광학이론(카메라)과 그 이미지를 감광물질 위에 저장하게 해주는 화학이론(혹은 디지털 기술)의 연합을 통해 프로그램 되어 있는 것이다. 버튼을 누르는 동작은 그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행위일 뿐이다. 그래서 사진을 생산하는 데는 ‘고도의’ 훈련이 필요 없다. 버튼을 누를 수 있는 힘과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니까. 그러나 ‘가치 있는’ 사진을 생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키를 눌러야 사진이 찍히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니라는 뜻이다.

오늘날 키는 정보 생산을 위한 가장 보편적인 통로가 됐다. 과거에는 눈으로 직접 보면서 쓰거나 그려야 했다. 선적인 행위, 요컨대 연속적인 행위다. 한편 키를 누를 때 우리는 무엇이 화면에 펼쳐질지 알지 못한다. 즉 자신이 생산할 정보를 보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생산 행위에 가담한다. 그리고 그 행위는 점을 찍듯이 불연속적이다. 찍는 행위는 사실 불확실성을 수반한다. 시험문제를 풀 때 모르면 찍는다고 하지 않던가. 알면 찍을 필요가 없기에. 모르면 찍는 수밖에 없다. 점쟁이의 예측도 실상 찍는 행위다. 요컨대 수많은 경우의 수 중 하나를 무작위로 선택할 때 찍는다고 말한다. 그렇게 보면 사진을 찍는다는 표현은 사진의 특성을 명쾌히 함축하고 있다. 카메라는 무수한 가능성 중 무작위로 하나를 ‘찍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이 나올지 몰라도 버튼을 눌러야 한다. 버튼은 본래 누르기 위해 제작됐으므로. 간단한 터치가 때로 파국을 불러올 수도 있다. 따라서 신중한 ‘터치’가 필요하며, 그것이 어떤 세계를 열어줄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