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정의 삶과 문화 3 : 미래는 항상 먼저 도착해 있다
07/09/2020
/ 신수정

카메라에 잡힌 그의 얼굴은 너무도 평범했다.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얼굴. 혼잡한 퇴근 시간 지하철이나 늦은 밤 편의점 카운트에서 마주쳤다 한들 무심코 지나쳤을 행색. 그는 강의를 마치고 나온 학생들로 붐비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큰 소리로 동료들에게 피씨방에 가자고 부추기던 남학생 가운데 하나였을 수도 있고, 인근 술집 앞에 빙 둘러선 채 담배를 물고 욕설 섞인 수다를 늘어놓으며 드나드는 여자들을 힐끔거리던 술꾼 일행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그를 어떻게 ‘악마’라고 할 수 있겠나.

소위 ‘n번방 사건’을 접하며 가장 끔찍했던 사실은 바로 그 점이었다. ‘그’가 도무지 낯설지 않다는 것. 우스꽝스러운 사진을 오려 붙여 기괴한 형상을 만들어놓고 특정 정치인을 조롱하던 짓거리부터 ‘김치녀’니 ‘된장녀’니 각종의 멸칭으로 여성을 향한 혐오를 무차별적으로 발산하는 행태에 이르기까지 지난 십여 년 간 그와 유사한 여러 남성 집단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지나치게 익숙한 풍경이 되어 버렸다.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인구에 회자하고 있는 ‘일베’ 혹은 ‘소라넷’ 같은 온라인 사이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보수적 정치 성향과 여성 혐오로 악명 높은 그들의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의 여성 피해자를 애도하는 사람들에게 엽기적인 조롱을 삼가지 않던 그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 시간 편견으로 가득 찬 성차별 의식을 누적해온 우리 사회가 자신을 ‘악마’로 서사화하는 ‘그’에게 놀라움을 표명할 자격은 없어 보인다. 그는 결코 괴물이 아니다. 다만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일 뿐이다.

‘그’는 어디에나 있고 또 어디에서나 다시 나타날 것이다. “재혁은 자신을 찍는 여러 대의 카메라를 올려다보며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오래전부터 꿈꿔온 풍경이었다. 자살하려는 모습을 중계하는 쓰레기 같은 뉴스 카메라. 그가 사랑하는 호러 영화에나 나올 법한 디스토피아였다. TV 뉴스 채널이 쓸데없이 많아졌을 때 재혁은 그가 꿈꾸던 장면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젊은 여성 작가 박민정의 단편 「버드아이즈 뷰」는 바로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적시한다. 이 작가에 따르면 ‘카메라의 시선’에 함축되어있는 관음증적 충동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그’를 생산해내는 주요한 기제 가운데 하나다. 공부만 잘할 뿐 남성 또래 집단에선 ‘찐따’로 따돌림당하던 소설의 주인공은 ‘카메라’를 장착하고 여성들의 ‘몰카’를 남발하면서 한순간 온라인상의 유명인물로 돌변한다. 카메라가 없었더라면 그는 그저 조금 “쪼다 같은” 남자로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메라가 제공하는 ‘버드아이즈 뷰’의 마력은 그를 더이상 평범한 삶에 만족할 수 없는 인물로 만들어버린다. 환호를 유지하기 위해 그는 점점 더 왜곡된 관음증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침내 이 남자는 자신의 죽음을 소재로 한 자살 소동을 벌임으로써 이 어처구니없는 역할극에 마침표를 찍고자 한다. “쓸데없이” 많아진 “TV 채널”이 다시 한번 그를 ‘찐따’에서 ‘영웅’으로 돌변시켜주기를 기대하며.

비단 소설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호러 영화에나 나올 법한 디스토피아”는 이제 지금 이곳의 현실이 되었다. ‘그’에 관한 선정적인 추정, 피해자의 인권에 개의치 않는 무분별한 노출, 문제의 원인에 대한 자성 대신 근엄한 도덕적 훈계로 일관하는 위선적인 질책 등 우리는 그를 괴물로 만들어놓고 그의 서사를 굶주린 자처럼 소비하고 있다. 이 ‘디스토피아’를 벗어날 방법에 대한 절박한 관심의 촉구는 이미 우리의 손을 떠난 듯도 하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우리 사회 성원 모두 관음증의 노예가 되어버렸다고 해도 좋겠다. 노예들의 몰카, 몰카의 노예들! 「버드아이즈 뷰」의 주인공은 자신의 자살을 종용하는 듯한 TV 카메라 앞에서 마지막 멘트를 남긴다. “미래는 항상 먼저 도착해 있다. 엿 같은 모습으로.” 때론 허구가 가장 현실에 근접한다.

 

<본 글은 세계일보 2020년 4월 3일자 오피니언/외부칼럼 카테고리에 “[삶과문화]미래는 항상 먼저 도착해있다“로 연재된 글입니다>

 

신수정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