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석의 사진살롱 37 – 9.28 수복 당시 중앙청 태극기 게양의 진실
07/02/2020
/ 박주석

대한민국정부 공보처, 서울 수복 기념 태극기 게양 재연, 1954, 국가기록원 소장.

지난주에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았습니다. 전쟁 초기 일방적인 북한의 우세를 일거에 역전시킨 사건이 바로 1950년 9월 15일에 시작한 ‘인천상륙작전’입니다. 이 날 인천에 상륙한 미군을 비롯한 UN군이 수도 서울을 탈환한 날이 바로 9월 28일입니다. 서울 수복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상징하는 사진이 한 장 있는데, 바로 한국군이 당시 중앙청 앞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사진입니다. 아니 그렇다고 알려져 있는 사진입니다. 웬만한 6.25전쟁 관련 책자에는 단골처럼 등장합니다. 심지어 우표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9.28 수도탈환 15주념 기념 우표(1965년)

문제는 이 사진이 전쟁을 상징하는 유명한 장면이지만, 실제 한국전쟁 중에 촬영한 사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당시 탈환작전은 미 해병대가 주도했고, 한국군 중에는 유일하게 육군 17연대가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 때 한국 사진가로는 유일하게 상륙부대를 따라 종군한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당시 국방부 정훈국 ‘사진대’ 대장으로 있던 임인식(林寅植, 1920~1998) 대위였습니다. 9.28수복 때 실제 17연대와 같이 움직이면서 사진을 찍었고, 지금도 몇 장의 사진이 남아 있습니다. 그 분의 생전 증언에 따르면 9월 28일 서울은 국군이 태극기를 게양할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84년 7월 25일 사진역사가인 최인진 선생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임인식 선생은 “9,28수복 당시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했다고들 하는데, 그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여하튼 9월 28일 촬영한 사진도 있는데, 당시의 작전 진행으로 봐서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고 전합니다. 9월 28일 미군이 먼저 서울에 입성하고 육군 17연대도 따라 입성하는데, 남아있는 북한군 잔당 소탕작전으로 긴박감이 흐르는 숨 가쁜 상황인데 여유롭게 태극기를 게양하는 일 자체가 가능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태극기를 게양하는 사진 또한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임인식 선생은 당시의 서울을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28일 남산에 올라가 내려다보았더니, 낮에는, 퇴계로 쪽에 태극기가 조금 나부끼고, 멀리 종로나 그쪽에는 빨간색 인민군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올라가 태극기를 꽂는, 그런 작정을 할 수 없었다. 아직도 서울 시내에 인공기가 나부끼고, 인민군이 여기저기에 잡복하고 있던, 위험한 시기였다. 중앙청으로 진격했을 때, 중앙청 국기 게양대에 인민군기가 하나 걸려있었던 것으로 생각나는데, 중앙청에 올라가기가 굉장히 힘들어, 그. 인공기를 올라가서 뗄 수 없었다. 사진대로는 우리가 맨 처음 중앙청에 도달했는데, 9월 28일 촬영한 사진은, 중앙청으로 진격하는 그런 것밖에 없었다.”

그럼 도대체 우리가 알고 있는 ‘태극기 게양’ 사진은 무엇일까요. 임인식 선생 증언에 따르면 서울을 완전히 탈환한 후인 11월경 성공한 탈환 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행사를 한국군 차원에서 진행했고, 중앙청 앞 국기 게양대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장면을 연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휴전 이후에도 매년 서울수복 기념행사를 했는데, 관례처럼 태극기 게양 연출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같거나 비슷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구도인데 태극기가 나부끼는 방향과 각도, 게양하는 군인들의 포즈와 얼굴 각도가 조금씩 다른 여러 장의 사진들이 같은 사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사진의 정체는 휴전 다음해인 1954년 9월 28일 정부 차원의 수복 기념행사에서 태극기를 게양하는 장면을 ‘공보처(지금의 문화체육관광부) 사진반’ 소속 사진가가 찍은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기록입니다. 그래서 정부 기록을 이관 받아 관리하는 기구인 <국가기록원>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서야 제대로 검증하고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한 장의 사진은 사진가, 장소, 일시, 소장처 같은 맥락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해야 비로소 역사적 증거가치를 갖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화’가 되고 맙니다. 

임인식 선생은 평안북도 정주(定州)에서 출생했고, 해방 직전인 1944년 서울로 상경해 정착했으며, 해방 직후인 1945년 서울 용산의 삼각지에서 <한미사진기점>을 운영하면서 본격적인 사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47년에는 <조선사진예술연구회>에 가입했고, <대한사진예술연구회>로 이름을 바꿀 당시 간사로 활동했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국군을 증설하는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모집한 <육군사관학교> 8기 생도로 임관해서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육군 장교 김점곤(金點坤, 1923~2014)의 권유로 입학했는데, 사진기록을 담당할 장교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합니다. 1950년 시작한 6.25전쟁 동안 전쟁의 사진을 담당하는 국방부 정훈국 ‘사진대’를 이끌었고,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 무렵인 1952년 육군 대위로 예편했습니다. 이후 다시 사진가로 활동했습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