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의 답사 스케치14 – 부산 해운대 김종학 작업실과 부산시립미술관 김종학 회고전을 찾아
07/0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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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4일 부산에 다녀왔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김종학전(3월 6일~6월 21일)과 연계해 강의가 있었다. 80대 중반으로, 꽃 그림과 설악산 그림으로 유명한 원로 작가이다. 전시를 맡은 박진희 학예연구사와 새로 부임한 기혜경 관장의 강권으로 도록에 김종학 회화세계에 대해 글을 쓴 탓이다. 201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마련한 김종학 회고전 전시 도록에 작가론을 실은 게, 또 그 계기였다. (이태호, 「봄에는 봄을 그린다」, 『김종학 KIM CHONG HAK PETROSPECTIVE』, 국립현대미술관, 2011.) 이 논고의 부제였던 「김종학이 인사동과 설악동과 어울려낸 우리 색의 현란」을 제목으로 옛글 일부를 재활용하며 다듬고, 해운대 시대를 추가하여 부산시립미술관 김종학전 도록의 평문을 지난 1월 완성해 넘겼다. 코로나 사태가 이렇게 진행하리라 예상치 못하고 조금 일찍 원고를 넘겼다.

올해 들어 첫 대중강연인 데다, 거리 두기에 따라 제한한 청중들은 띄엄띄엄 배치된 터라 강의실 분위기가 좀 생소했다. 주제는 “설악과 인사동서 이룬 김종학의 회화예술, 새 미적 흥분으로 해운대 시대 열어”였다. (도 1) 내 강연요지는 도록의 글대로 ‘인사동에서 전통미에 취하다’ / ‘설악의 사계절, 가슴에 품다’ / ‘현란한 민족색, 생태 예술이 되다’ / ‘해운대에서, 미적 흥분 식지 않고‘로 진행했다. 특히 한국의 전통 색채미와 김종학의 회화세계와 연관성을 강조했고, 5년여 해운대에서 작업한 새로운 걸작에 대한 변화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내 말을 마친 뒤, 청중들의 진지한 질문으로 이어져 강의실 열기는 끝날 때까지 대단했다.

질문 가운데 “김종학이 가장 많이 그린, 그리고 가장 인기 높은 ’꽃‘ 그림이 표징하는 게 무엇이냐?”가 인상에 남았다. 질문자는 부산화랑협회 기획이사이자 ‘갤러리 포름’을 운영하는 김경선 대표였다. 그 자리에서 답하기가 조금 궁색했다. “꽃들이 모두 작가 김종학의 분신 아니겠냐”고 답하고 정리했다. 강연을 마친 후 서울역에서 동행했던, 미술시장 연구자 서진수 강남대학교 교수와 인사차 김종학 작업실을 방문했다. 뵙자마자 김종학 브랜드인 ‘꽃의 표징’에 대한 질문을 올렸더니, 단박에 “그냥 그렸지, 뭐!”라고 하신다. 예상했던 대로다. 김종학 회화에 대한 화두(話頭)로 남겨둔다.

달맞이 언덕에서 만난 달들

김종학 화백을 해운대로 모신 것은 조현화랑(대표 조현)이다. 30여 년 경력으로 국내외 최고의 작가들을 유치해 기획전을 마련해온, 부산은 물론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굴지의 화랑이다. 내가 해운대 달맞이길 언덕, 조현화랑이 마련해준 김종학 작업실을 처음 방문한 때는 작년 12월 19일이었다. 3층 작업실은 남쪽 창으로 드는 겨울 햇볕이 따뜻했고, 해운대와 부산 앞바다가 한눈에 드는 달맞이 언덕 최고의 공간이었다. 솔밭 넘어 오후 해거름의 실루엣 해변풍경이 좋아, 지난번에 이어 다시 한번 스케치해두었다. (도 2) 이곳에서 보는 부산 바다 해넘이도 장관이다. 이번에는 여름 해가 길어지는 바람에 보지 못했지만, 작년 겨울 일몰을 찍고 그렸다. (도 3, 4)

달맞이 언덕에서 달뜨는 장면을 관람한 것은 원고를 마무리하던 2020년 1윌 8일이었다. 유진화랑 진정호 대표의 안내로 달맞이길 명소라는 ‘비비비당’에 들렀다. 까페에 들어서자 해변경치와 더불어 요즘 가장 주목받는 도예가 권대섭 작가의 백자대호와 달항아리가 눈에 들어 반가웠다. 조선백자의 아름다움과 전통형식을 재창조한, 2014년에 만든 대작들이다. (도 5) 유리창 밖으로 움직이며 변하는 달과 높이 45cm가량의 유백색 항아리가 실내에서 한 쌍으로 그렇게 어울렸다. 또 누가 보든지 말든지 항시 그 자리에 떠 있는, 달맞이길의 명품 둥근 달인 셈이다. 확인해보니 까페가 작가의 사돈댁이란다. 딸 권연아 씨는 나도 인사동 골동가게나 고미술전에서 가끔 만나 잘 아는 사이였고, 고미술에 눈이 밝기로 정평이 나 있다.

까페 창밖으로는 장산 끝자락이 바다에 내려앉아 있었다. 마침 떠오른 둥그스레한 달이 눈에 들었다. 음력을 확인해보니 보름 전날이었다. 보름달보다 해지기 전에 조금 일찍 뜨는, 파란 하늘의 흰 달이었다. (도 6) 달맞이길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해운대 앞바다 아침 해도 그렸다. (도 7) 장산 끝자락 청사포를 산책하다, 구름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 장관을 오랜만에 본 것 같다.

해운대 시대 생동하는 김종학의 대작들

이번 ‘김종학전’은 부산시립미술관이 한국현대미술작가를 조명하는 세 번째 전시이다. 회고전 수준으로 작가가 60여 년 활동한 전시기 작품세계와 아카이브로 채워져 있었다. 2011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보다 낫다는 평으로 이어졌다. 전시장 마지막인 제5부 ‘기운생동으로’에 최근 2019~2020년의 해운대 시대 대작들이 펼쳐져 있었다. 모두 캔버스에 아크릴맄 물감 그림이다.

작업실에서 보았던 꽃그림 <Pandemonium>(10x6m)은 십 미터 길이여서 바닥으로 늘어뜨려 진열했을 정도이다. 그 좌우에도 2020년 설경그림 <겨울>(200x780cm)과 2019년 작으로 녹색 주조의 여름 <풍경>(260x800cm), 두 점을 배치했다. (도 8) 뒤편에는 2020년 신작으로 <바다>(300x800cm)를 걸었다. (도 9) 수평선에 불을 켠 배들이 늘어선, 해운대의 밤바다를 연상시킨다. 김종학의 화려한 색채와 복잡한 구성과 달리, 이같이 간결한 단색조도 곧잘 해오신 작품 경향이다. 설악산 시절을 계승한 이들 대작에는 노대가의 의욕이 넘쳐 난다.

2020년의 신작 <폭포>(162x114cm)가 이번 회고전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가운데 세찬 폭포 물줄기 앞 가느다란 잔가지에 앉은 새 한 마리를 담은 그림이다. (도 10) 폭포는 세번 가량의 붓질로 마무리한 후에 캔버스를 뒤집어, 흰 물감 덩어리진 부분이 아래에 놓이게 세웠다. 아래로 포말이 형성된 것처럼 설정한 셈이다. 폭포 앞 상단에는 무섭게 직하하는 물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표정한 새 한 마리가 배치되어 있다. 솔부엉이나 황조롱이 같은 어린 매를 닮은 듯하다. 순간에 떠오른 감정을 쏟아낸, 김종학 초기의 추상표현주의 풍의 붓 맛을 살리며, 구상 이미지를 매칭한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강의 시간에 새는 화가로 평생을 산 김종학 자신일 거라고 얘기하니 수강생들이 모두 웃으며 공감했다. 이들 모두 내가 도록의 글을 쓰고 난 뒤 마무리하신 작품이어서, 간소하나마 여기에 소개해보았다.

다음은 김종학전 도록의 내 논고이다. (이태호, 「김종학이 인사동과 설악동과 어우려낸 우리색의 현란」, 『김종학』-한국현대미술작가 조명 lll, 부산시립미술관, 2020.3.) 

 

 

김종학金宗學이 인사동仁寺洞과 설악동雪岳洞과 어우려낸 우리 색의 현란絢爛

이태호李泰浩 (서울산수연구소장/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초빙교수)

 

김종학金宗學(1937~ )은 현재 우리 화단에서 설악산 풍경과 꽃그림으로 유명해진 작가이다. 이 시대의 대표 화가로 꼽을 정도로 예술세계를 단단히 일구고 미술사적 위치를 확고히 다진 원로이다. 지난 50여 년간 그려낸 드로잉, 판화, 수채화, 수묵화, 유화 등으로 소화한 다채로운 소재의 작품들을 보면, 그 예술세계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먼저 한국의 피카소라 일컬어지기에 손색없이 작업량이 엄청나다. 적어도 현재까진 한국미술사를 통틀어서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로 기억될 법하다.

청년기엔 추상표현주의를 탐닉하며 서양미술과 시대사조를 따르기도 했다. 동시에 전통미에 일찍 눈을 떴고, 설악동에 정착한 이후 설악을 중심으로 우리의 자연과 교접交接했다. 이런 가운데 김종학은 설악산의 자연과 인사동의 고미술을 자신의 성정性情으로 버무려 민족 고유색의 현란함을 펼쳐 놓았다. 김종학의 회화세계는 그처럼 한국의 자연과 전통미가 만든 셈이다. 이를 대하노라면 새삼 자연이든 문화유산이든, 우리 것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다시 돌아보게 할 정도이다. 

인사동에서 전통미에 취하다

김종학의 회화예술은 미술계의 평가대로 조선의 전통미에 기반을 둔다. 고미술 수집은 경제력과 자신의 기호대로 목물류와 자수나 보자기 같은 생활 민속품에 집중되었다. 아래와 같이 수집의 변을 풀어놓은 적이 있다.

설악산에서 가끔 서울에 나올 때면 나의 유일한 소일거리가 골동상을 둘러보는 시간이다. 비싼 것 싼 것 가리지 않고, 내 마음에 드는 것을 멋대로 사다가 집에 그냥 쌓아 놓는다. 목기도 있고 민속품도 있고 도자기도 있고 잡동사니도 있다. 가짜를 사기도 하지만 간간이 현대적인 것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 우리 목기의 매력은 무엇보다 그 비례감에 있다 하겠다. … 목기 수집이 내 작업에 준 영향이라면 조형적 안목을 넓힐 수 있었다는 점이다. … 보자기의 색감과 비례감이 보여주는 현대감각에 감격했다. 몬드리안보다 훨씬 이전에 그렇게 기하학적이고 그렇게 창조적인 물건을 우리 조상들이 만들었음에 감탄했던 것이다. … 반면 우리 것은 자기 재주대로, 그저 멋대로, 바느질이 가는 대로, 마음가는 대로 만든 것이다. … 멋대로 놓아서 오히려 현대적인 것이 되고 만 것이 내 마음에 든다. … 골동만 사려고 골동가게를 출입하는 것은 아니다. 가게 주인과도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내 취향이다. 지식인하고 대화하는 것보다 그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가 훨씬 마음 편하다. …

김종학의 고미술품 수집은 약관 20대 후반부터 고 홍성하洪性夏(1898~1978) 선생에게 배웠다고 한다. 초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조선시대 회화 컬렉션으로 유명했던 수집가이다. 안목을 키우는데 최고의 교사를 만난 셈이다. 우리의 옛 문화유산에 남다른 심취와 이해는 강원대학교 교수 시절 한국미술사를 강의할 수준이었다.

목기류에 대하여는 벌써 30-40대에 상당한 걸작들을 골라내는 실력이었다. 1987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소장품들이 특별전으로 꾸며질 정도였다. 지금도 별도의 ‘김종학실’이 마련되어 있다. 간결하고 세련미 넘치는 사방탁자, 서안, 문갑, 연상 등 선비문인의 사랑방 꾸밈가구들이 특히 조선 목공예의 예술미를 한껏 자랑한다. 개다리소반과 찬탁, 의걸이장이나 약장 같은 생활가구도 나무무늬와 비례감이 시원한 눈맛의 명품들이다.

현대적인 심플한 덩치의 목물이나 석물류부터 촘촘한 무늬와 화사한 색상의 자수나 보자기, 의상, 배겟니 등 여성 생활품들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모았다. 그 가운데 염직 공예품류는 민화들과 함께 김종학의 현란한 꽃그림을 발전시키는데 영감을 주었다. 분방한 변형미와 화려한 색채미가 그러하였다. 조선 후기 문인석이나 돌부처 같은 석물류들, 그리고 목동자 조각상 등은 김종학의 인물화와 무관하지 않다. 다양한 남녀노소의 얼굴그림을 보면, 1980년대 민주화의 파고 속 한국인이 지녔던 무표정을 떠오르게 한다. 재혼할 때는, 소장하던 조선후기 민불형民佛形 돌부처 닮은 부인을 맞이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고서화 수집품도 김종학의 안목을 여실히 보여준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의 〈산해숭심山海崇深〉이나 〈죽로지실竹爐之室〉이라는 현판과 서첩을 모았다. 조선시대 최고의 붓 맛을 지닌, 개성이 강한 추사체를 지고의 스승으로 삼는다. 미수 허목眉叟 許穆(1595~1682),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1607~1689),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1705~1777) 등 개성미가 뚜렷한 글씨들의 수집품도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 그림 수집도 상당하다. 능호관 이인상凌壺觀 李麟祥(1710~1760)의 〈묵란도墨蘭圖〉는 간일한 문인화격을,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1745~1806?)의 〈파도와 물새〉나 북산 김수철北山 金秀哲(19세기)의 〈묵국도墨菊圖〉등은 풀어진 수묵의 농담이 작은 화면과 어울려 맛깔스럽다. 조선시대 수묵화의 선미禪味를 한껏 담은, 농익은 명작들을 모았다. 추사나 우암의 서예작품은 빠른 붓 길과 기세가 넘치며, 반면에 수묵화 수집품은 섬세하고 아련한 그림이다. 이들을 따라 김종학은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의 진경산수화법을 익혀 수묵 스케치를 즐겼고, 조선 문인이 추구한 맛도 자기화시키려 애썼다. 설악산의 폭포나 겨울 그림에 조선 수묵화풍의 구성미와 필묵筆墨 감각이 잘 살아 있다.

조선朝鮮의 아름다움을 사랑한 김종학의 눈은 고미술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1970-80년대에 이중섭李仲燮(1916~1956)의 대표작 〈빨간 소〉, 〈까마귀〉, 닭그림 〈부부〉 등을 수집한 적이 있었다. 우리 근현대미술에서 이중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김종학의 예술적 성향과 함께한다. 예술성과 미적 형상을 채는 눈썰미는 누구도 쉽게 따르기 힘들 게다. 숱하게 골동가게를 뒤지고 다닌 발품이 큰 역할을 했겠지만, 아름다움을 고르는 직관력이 타고나지 않았나 싶다. 그 특별한 안목은 ‘김종학’의 꾸밈없는 심성과 기질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김종학의 컬렉션은 이처럼 폭이 넓고 다채롭다. 고미술을 사랑하는 취향과 놀라운 수집벽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한때는 목기류나 민예품을 살 욕심에 전력을 다해 작업에 매진할 정도였다고 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조선시대 목기류는 김종학의 안목을 높였다. 자수나 민예품들은 김종학 회화의 색감과 모티브를 제공해주었다. 석불이나 목동자, 문인석에 새겨진 얼굴형의 김종학표 인물화도 빼놓을 수 없다.

김종학은 우리의 옛 문화에 동화되면서 그 전통형식을 토대로 작품세계의 개성미를 연출했고, 현대화해내었다. 김종학은 자기 회화를 “서양현대미술을 공부한 것에 전통미를 ‘컨닝구’해 ‘비빔밥’을 만든 거지”라고 즐겨 말한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고 창조한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나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모범적인 실천사례로 꼽을 수 있겠다.

설악의 사계절, 가슴에 품다

1979년 여름, 속초의 설악산 입구 개울가 너른 솔밭에 작업할 터를 잡았다. 42세 때, 친형의 도움으로 설악산과 인연을 맺었다. 설악산은 북쪽의 금강산과 쌍벽을 이룬, 암봉岩峯과 계곡이 아름다운 영동嶺東의 명산이다. 금강산의 미모 탓에 그 뒷켠으로 밀려 있지만, 실제로는 금강산보다 봉우리가 높고 계곡이 우람하다. 금강산의 아기자기함에 비해 원시성과 야성미를 간직한 곳이다. 설악산과 더불어 김종학의 회화예술이 이룩된 사실을 염두에 두면, 설악과 김종학의 만남은 필연인 것 같다. 명승名勝이 명인名人을 끌어당긴 걸까.

줄기차게 끊임없이 그려온 김종학의 설악산 풍경 그림들은 자연물의 형태를 담았기에 구상회화具象繪畵에 속한다. 그렇다고 대상을 앞에 놓고 사생하는, ‘눈으로 그리는 그림’은 아니다. 생각하는 형상들을 기억에서 끄집어내는, 동양화론으로 치자면 옛 문인들의 ‘마음 그림’ 사의화寫意畵 쯤 되겠다.

김종학은 대상을 단순히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실내에서의 캔버스 작업은 스케치에 의존하지 않고 머리에 기억된 형상을 체화體化해내는 일이다. 옛 문인화론에서 ‘가슴 속의 대나무를 그린다’는 소동파蘇東坡의 ‘흉중성죽胸中成竹’에 해당된다. 또 캔버스에 기억된 형상을 펼칠 때는 빠른 직감에 의존한다. 팽팽한 긴장 상태에서 벼락같이 즉흥을 쏟는다. 몸으로 그린 그림이랄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화면에 연출한 대상들은 꽃이면 꽃, 나무면 나무, 산이면 산 등 형형색색의 특징을 적절히 드러낸다. 구상화이면서도 단순화한 형태감에는 추상성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추상회화의 화법처럼 주관에 따라 재구성하는 의도는 드러내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감성의 흐름을 따른다.

김종학은 마음, 곧 머리에서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구상하여 그려왔다. 서양의 표현주의 예술론이나 동양의 서화론書畫論과 근사한 편이다. 또 그의 화면은 얼핏 무질서한 것 같으면서 전면을 꽉 채우든지, 여백 부분이 생기든지, 사선으로 배치하든지 나름대로 질서를 보인다. 비워지거나 채워지면 될 뿐 꾸밈새가 의도적이지 않다. 화폭의 공간구성부터 즉흥적 직관에 의지한 탓이다.

그렇다고 김종학이 스케치를 소홀히 한 것도 아니다. 늘 설악의 주변 자연을 머리에 담는데 그치지 않고 부지런히 사생하며 눈에 익혀 왔다. “스케치를 다시 캔버스에 옮기면 그림이 째째해져, 스케치는 스케치로 그쳐야지…”라며 꺼내놓는 연필, 수채나 수묵의 사생화들이 상당하다. ‘과연 김종학 회화의 예술적 포스가 여기에서 나오는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붓끝에서 분출되는 과감한 생략과 변화의 분방한 형상성을 수긍케 해주기 때문이다. 이들 스케치만으로도 김종학을 재평가하게 될 것 같다. 

화면구성과 형상미와 더불어 김종학 회화는 필치나 색감에 그 개성미가 뚜렷하다. 유화보다 빠르게 건조하는 수성 아크릴 물감Acrylic color을 선호한다. 붓질은 속도감나고 대담하다. 눈으로 익힌 대상을 가슴에 삭힌 대로 ‘벼락’ 같이 그린 형상들이 꿈틀댄다. 자연히 감정의 기복을 따라 즉흥적 필세筆勢와 어울린 색채감각 또한 급한 편이다. 물감과 물감, 물감과 기름이나 물을 섞을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물감 튜브를 직접 짜 캔버스에 바르기도 한다. 원색조의 화면이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붓과 색은 그렇게 격정의 몸짓으로 미적 흥분을 내지르게 하였다. 질료감의 니글거리는 움직임을 보면 육감적이다. 김종학의 화면에는 가슴으로 그린 색상의 리듬감이 생생하다.

 

현란한 민족색, 생태 예술이 되다 

김종학은 분명 우리시대의 빼어난 채색화가이다. 구상계열의 채색화가로 치자면 김환기 · 이대원 · 천경자에 이어, 김종학이 자기 독창성을 가장 선명히 부각시켰다. 현란한 색감과 색채배합에 김종학 회화예술의 개성미가 넘친다. 빨강 노랑 파랑 초록 갈색 등 짙고 안정된 원색조의 색채 활용은 물론이려니와, 특히 여름 그림에서 초록색을 바탕으로 삼은 빨간색의 보색대비가 눈길을 끈다. 이런 색채의 배열과 대비는 한국회화사에서 눈에 익은 전통색감과 유사하다. 웅혼한 고구려 고분벽화부터 섬려한 고려 불화, 조선시대 불화와 단청장식, 조선 후기 궁중화나 민화, 김종학 컬렉션에 포함된 자수나 섬유류의 민속공예에 이르기까지 1600년 이상 지속해온 민족적 색채감각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는 화려한 색채 정서를 즐긴 한韓 민족의 후예라 할 수 있다. 최근 김종학 채색화의 대중적 인기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어필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런 민족 고유의 색채정서를 현대에 재창조하고 발현發現해 놓았다는 점만으로도, 김종학의 회화가 우리시대에 남긴 커다란 업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김종학의 예술을 가능케 한 대상은 무엇보다 설악의 자연풍광이다. 산과 강과 바다, 그 대지에 자랐다 스러지는 숲과 꽃과 풀섶, 여기에 공생하는 나비와 새와 풀벌레, 이들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김종학을 김종학답게 만들었다. ‘설악은 봄 할미꽃 피는 광경을 보고 자살까지 생각했던 마음을 고쳐먹었다’라고 했듯이, 설악은 김종학의 인생에 대한 절망감과 모더니즘에 대한 회의를 한꺼번에 해소해 주었다.

설악산의 사계 순환은 분명 김종학에게 치유의 공간이 되었으니, 설악의 자연을 일군 김종학의 회화는 생태生態 예술이라 할 만하다. 생운生韻이 넘치는 순수 자연인, 김종학의 붓질과 색감이 내뿜는 에너지는 자연미自然美의 근사치이다. 그것만으로도 생태적 회화예술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생각된다. 김종학이 재창조한 민족색의 현란絢爛은 요즈음의 친환경 의식과 어울린 셈이다. 이는 인간의 원초적 자연성을 잃은 채 오염된 환경의 현대 대중들에게 김종학의 회화가 주는 메시지의 하나일 법하다. 김종학 회화가 인기 있는 이유도 그런 점에 있지 않을까. 아무튼 김종학의 설악풍경은 우리나라의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연이 예술을 창조하는데 얼마나 큰 진원震源인지를 알려준다.

‘색채의 폭풍과도 같은 미적 흥분’이라는 평가와 더불어, “김종학의 화면은 숨이 막힌다. … 자연 및 우주의 거대한 울림은 뜨거운 에너지로 화면에 폭발한다. 화면에 다가가면서 숨막히는 이유는 너무나도 생경한 자연 또는 우주의 기운에 부딪히기 때문이다.”라고 상찬하는 평론가도 있다. 이경성과 오광수에 이어 전람회 때마다 최석태, 유준상, 유재길, 윤우학, 김복기, 고동연, 김애령, 그리고 김종학을 녹취하며 작가론을 가장 많이 쓴 김형국 등의 평론들이 자자하다. 이들 모두 김종학이 한국현대화단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실감케 한다.

크고 작은 전람회를 통해 김종학은 그처럼 호의적 평가를 받았다. 원화랑, 선화랑, 박여숙화랑, 예화랑, 갤러리 현대, 가나아트센터 등에서의 개인전은 성황을 이루면서 늘 주목을 받아 왔다. 특히 2004년의 갤러리 현대와 2006년의 가나아트센터 개인전은 대작을 중심으로 김종학 예술의 피크를 보여주었다. 그런 만큼 좋은 작품이 쏟아졌고, 한때 투자가치 일순위로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또 분명한 점은 김종학이 우리시대를 대표할 거장巨匠으로서, 인간적 예술적 풍격風格을 유지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현대의 문명인들에게 그의 회화예술이 ‘김종학’의 속내처럼 자연과 인간의 생래적生來的 진면목을 일깨워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러하듯이 김종학의 작품세계는 미래의 현대인들까지 허브로 그 가치가 계속 빛날 거라 확신해본다. 이런 양상은 201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회고전으로 김종학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운대에서, ‘미적 흥분식지 않고 

설악산인雪嶽山人 김종학이 최근 부산으로 터를 옮겼다. 해운대인海雲臺人이 되었다. 한반도의 가장 서북쪽 항구도시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이 가장 남동쪽 부산 바닷가로 내려왔으니, 끝에서 끝으로 대각선 이동이 이루어졌다. 2015년부터 조현화랑이 내주었다는 작업실은 해운대와 광안리 바다를 굽어보는 달맞이길 언덕에 지은, 창 너른 공간이다.

2019년 말 12월 19일 작업실에 들어서니, 펼쳐진 대작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천진한 기운과 현란을 내뿜고 있었다. 반가웠다. 2011년 설악동 작업실 방문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기염을 토하고 계셨다. 80세를 훌쩍 넘어섰지만, 아직도 온몸의 격정으로 ‘미적 흥분’이 식지 않으신 듯하였다. 벽면과 바닥에 캔버스를 펼쳐 놓고 화면을 길게 쓰는 작업도 그러려니와, 소품들을 비롯해 쓰고 남은 물감을 짓이겨 그린 면 가방이나 티셔쓰가 화실 구석 한켠에 수북한 것을 보고는 질렸다. 붓그림 작업 틈 시간에는 닥종이로 학이며 오리며 입체조각들을 주무르고 계셨다. 그야말로 손을 쉬지 않는 모양이다. “여긴 공기가 따뜻해서 좋네! 요즘 꽃이나 오브제들이 더 크게 보이구!” 두 마디 외에 만남 내내 침묵으로 여전하셨다.

2011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이후 근 10년 동안 작업과 국내외 활동을 훑어보니, 종횡무진이다. 꽃, 나무, 풀, 새, 나비, 벌레들이 가득한 작품들은 격정의 몸짓이 쏟아낸, 다채로운 형태와 색채가 세찬 파장으로 넘실댄다.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대지의 향연답다. 마치 불교의 화엄華嚴 세계를 연상시킨다.

‘대상이 크게 보인다’니, 그만큼 자연과의 교감이 자연스러워지며 회화적 밀도가 높아진 듯하다. 같은 시기의 설경을 비롯한 단일 색조의 산이나 바다 풍경화들은 옛 유교 문인들의 격조, 곧 마음을 쏟은 남종산수南宗山水의 사의寫意에 더욱 근사해졌다. 화사한 꽃그림과 대조를 이루며, 양쪽을 넘나드는 호흡도 활기차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작업을 쌓을지, 혹은 어떤 변화로 새로운 신화를 창출할지, 작업실을 둘러보며 나로서는 김종학이 가늠되지 않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요즈음 십 미터가 넘는 캔버스를 채우고 삼백 호나 오백 호 대작들을 불쑥불쑥 소화해내는 붓질 동세를 보면, 그야말로 노익장이라 할 만하다. 요즘 말로 딱! ‘슈퍼 에이지’인 셈이다.

 

 

이태호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