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석의 사진살롱 36 – 신낙균 선생의 졸업앨범 서명판
06/10/2020
/ 박주석

<동경사진전문학교> 2회 졸업앨범 중 서명판, 1927년

‘서명판’입니다. 일제의 억압 속에서 민족정신의 정기를 드높인 ‘동아일보일장기말소사건’의 주역이신 고(故) 신낙균(申樂均, 1899-1955) 선생의 흔적입니다. 선생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사진을 공부한 <동경사진전문학교> 2회 졸업앨범의 뒷부분에 붙어 있습니다. 졸업생들의 서명을 한곳에 모아 게재한 서명판인데, 당시에는 많은 졸업 앨범에 꼭 있었던 절차입니다. 한 학교의 학생 수가 많아지면서 사라지고 말았지만, 졸업생 수가 몇 십 명을 넘지 않았던 과거 일제 때의 앨범에는 항상 붙어 있던 페이지입니다.

위 서명판을 잘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다른 졸업생들이 일본어나 영어로 서명을 했던 것에 비해 신낙균 선생만 유일하게 서명을 한글로 했던 사실이 눈에 띱니다. 그것도 정 중앙입니다. ‘신락균’이란 친필 서명인데,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던 시절에는 ‘낙(樂)’을 ‘락’으로 표기했습니다. 대부분의 졸업생이 한자, 영어, 일본어 등으로 서명을 했음에도 유일한 조선인이었던 선생만이 한글을 사용했습니다. 선생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처음으로 영어전문 교육기관인 <동경정칙학교(東京正則學校)>에서 영어를 배운 분입니다. 한자(漢子)는 당시 지식인으로서 기본이었습니다. 이런 분이 당시 지식인 사회에서는 잘 쓰지도 않았던 한글을 고집했습니다. 

선생은 고작 20살의 나이에 안성 ‘3.1만세운동’의 주동자로 수배를 받았고, 검거를 피해 서울로 갔다가 매부 집에서 카메라를 처음 접하고 사진을 공부하기로 결심했고, 유학을 떠났습니다. 당시 조국의 현실을 타개하고자 노략한 많은 선각자들이 택한 길이었습니다. 한글로 한 ‘서명’의 존재는 선생의 유학이 단순한 학업이나 직업을 목적으로 한 차원이 아니라, 사진이라는 신지식과 학문을 통한 우리나라의 계몽과 민족정신의 고양을 위한 수단이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또 이후 근대의 선각자로서 민족정신의 수호자로서의 삶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동경사진전문학교>는 현재 사진을 비롯한 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한 대학 및 대학원 과정 교육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현 <동경공예대학>의 전신으로, 1923년에 창설되어 첫 학생을 선발한 사진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대학이었습니다. 원래 이 학교는 당시 일본에서 감광재료를 생산하며 사진공업을 이끌던 로쿠사쿠라사(六櫻社)와 코니시로쿠사(小西六社)의 주인이었던 스기우라 로쿠우에몬(杉浦六右衛門) 가문에서 일본 사진학의 발전을 위해 당시 동경예술학교의 교수였던 유키 린조우(結城林藏)을 교장으로 초빙해서 소서사진전문학교(小西寫眞專門學校)란 이름으로 설립했으며, 1926년에는 <동경사진전문학교>으로 개칭하면서 같은 해 17명의 졸업생을 처음 배출했던 학교였습니다. 

이 학교는 크게 본과(本科)와 선과(選科) 그리고 별과(別科)로 나누어서 학생을 선발했습니다. 이 중에 별과는 오늘날의 초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생을 선발해 3년의 교육과정을 통해 사진 관련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과정이었고, 본과의 경우 수업연한은 3년으로는 중학교(오늘의 고등학교) 졸업자 이상의 학력 소지자를 대상으로 했고, 선과의 경우는 본과와 마찬가지로 중학교 졸업 이상자를 선발했는데 주로 다른 대학 등을 다녔거나 졸업한 학생들처럼 인문적 소양이 확실히 갖추어진 사람을 대상으로 뽑아서 학생마다 다르지만 최소 1년 이상 수업을 통해 학위를 주는 과정이었었습니다. 대부분 사진가 혹은 사진예술가의 양성제도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선생은 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이미 <동경정칙학교>와 <동양대학교> 문화학과를 다녔기 때문에 당시 선과로 입학할 수 있었고, 거의 3년 정도의 수업 과정을 거쳐 제2회 졸업식에서 학위를 받고 졸업을 했습니다. 나중에 졸업생으로서 다시 같은 학교의 교수로 봉직하거나 일본 사진에서 명성을 떨친 사진가들은 대개 선과 출신들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당시 신낙균 선생이 이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한국에서 YMCA 사진과 교수로 초빙 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합니다. 또 한글로 당당하게 서명하신 조국에 대한 자부심은 왜 선생이 독립유공자의 삶을 사셨는지 짐작하게 해줍니다. 

<동경사진전문학교> 졸업앨범에 있는 선생의 졸업사진, 그리고 선생이 교수로 봉직한 YMCA 사진과 1931년 졸업 앨범에 있는 학생들의 서명판도 소개합니다. 

<동경사진전문학교> 제2회 졸업앨범의 신낙균 선생, 1927년.

<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YMCA) 사진과> 제23회 졸업앨범 중 서명판, 1931년.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