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정의 삶과 문화 1 : 두레밥상과 4인용 식탁
06/03/2020
/ 신수정

우리가 ‘식탁’에서 밥을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 아닐까? 지금 오육십 대에 접어든 세대만 하더라도 유년기 식사 풍경의 대부분은 ‘밥상’에 둘러앉은 식구들의 모습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둥근 밥상이 그립다”고 노래한 모 시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음식과 관련된 이 세대의 상상력은 “식구들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가 펼치시던 둥근 두레밥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최근 개봉한 윤가은 감독의 <우리 집>과 김보라 감독의 <벌새>를 보면서 이 ‘두레밥상’이 사라진 것을 불현듯 깨달았다. 어린 여자 아이들의 시선으로 가족의 일상을 되돌아보는 이 영화들의 또 다른 주인공은 ‘식탁’이었다! 무엇보다도, 4인용 식탁! 이 영화들은 그야말로 ‘식탁’에서 시작해 ‘식탁’으로 끝난다. <우리 집>의 주인공 12살 하나는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의 관계를 개선하고 ‘우리 집’을 재건하고자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매번 요리를 하고 밥을 차리며 식구들을 식탁 주변으로 불러 모은다. 14살 은희의 시선으로 성수대교가 붕괴되던 1994년의 내밀한 시대적 공기를 재현하고 있는 <벌새> 역시 마찬가지다. 정글 같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맨몸으로 달려온 은희 아버지는 집안의 규율과 관련된 일련의 행위를 전부 식탁에서 행한다. 4인 가족이 둘러앉은 아침 식탁은 그가 아들의 입시 경쟁을 독려하고 딸들의 규율을 감시하며 아내의 욕망을 제지하는 가장 중요한 자리다. 그는 식탁의 군주다.

재미있는 것은 두레밥상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전형적인 남성의 것이라면 4인용 식탁에서의 고독과 답답함을 토로하는 영화감독들의 시선은 지극히 여성적이라는 점이다. 이로부터 세대와 젠더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계보를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어머니가 펼쳐놓은 두레밥상에 둘러앉아 제비 새끼처럼 짹짹거리며 어머니의 음식을 탐하던 날의 기억을 소환하는 ‘남성-시인’은 식탁에 둘러앉을 때면 늘 엄습해오던 외로움과 감시의 시선에 짓눌린 ‘여성-영화감독’들의 ‘아버지-가부장’일 수도 있겠다.

세상에나! 대가족이 둘러앉은 두레밥상에서 4인용 식탁으로 진화해간 우리의 현대사는 아버지의 상실감과 분노, 그리고 제왕적 고독의 승화과정이었다고 해도 좋겠다. 어머니의 두레밥상이 제공하는 정서적 유대의 세계를 영원히 잊지 못하는 아버지는 4인용 식탁의 세계에서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를 키운 팔 할은 어머니의 나눔에서 온 것임을 그도 모르지 않는다. 그 역시 어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의 아이들에게 더 많은 밥, 더 맛있는 밥을 제공하고자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식탁은 어머니의 둥근 밥상의 세계로부터 멀어진다. 그는 이 역설을 이해할 수 없다. 그가 4인용 식탁의 세계에서 폭력적인 군주로 돌변하는 것은 바로 이 역설 때문인 듯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영화감독’들의 이야기에서 식탁 장면이 영화의 핵심 모티르로 등장하는 사실은 문화사적으로 흥미로워 보인다. 어쩌면 그녀들은 아버지의 ‘두레밥상’에 대한 향수, 그 돌이킬 수 없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어떤 새로운 가능성도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된 첫 세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들에게는 ‘4인용 식탁’이야말로 공포와 굴욕의 상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4인용 식탁’의 세계에서는 어느 식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김밥을 말던 12살 하나가 친구 자매와 밥을 지어 먹으며 비로소 외로운 허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거나, 14살 은희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일깨워준 영지 선생님을 영원히 잊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 식탁 너머의 세계를 꿈꾼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그녀들은 꿈꾼다. 모두 모여 맛있는 밥을 먹으며 서로를 위안하는 맛있는 음식 공동체를. 그것은 ‘두레밥상’의 세계도 아니고 ‘4인용 식탁’의 공간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어떤 규격도 없는 곳, 방바닥이든 길거리든 음식을 둘러싸고 서로의 온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곳은 딸들의 새로운 식사 자리가 될 것도 같다. 독박 육아와 군주의 감시와 잔소리를 피할 수 있다면 말이다.

 

<본 글은 세계일보 2020년 1월 31일자 오피니언/외부칼럼 카테고리에 “[삶과문화]두레밥상과 4인용 식탁“으로 연재된 글입니다>

 

신수정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