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의 답사 스케치13 – 오월 무등산을 그리다
06/0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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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균의 <하늘과 땅 사이 5>를 통해 광주민중항쟁 40주년을 돌아보고

금년은 광주민중항쟁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광주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광주항쟁을 기념하는 크고 작은 전시행사가 줄줄이 열렸다. 그중에서 광주광역시 동구 장동에 위치한 ‘예술공간 집’에서 5월 7일부터 24일까지 열린 전시, “강연균의 <하늘과 땅 사이 5>”가 여느 기획전보다 가장 눈길을 끌었다. 리플렛에 짧은 글을 써준 인연으로, 이 전시를 보러 5월 6일 광주를 내려갔다. 지난번 이이남 작가 탐방 이후 한 달 만에 다시 찾았다.

초여름 신록의 무등산을 여러 점 그렸다. 마침 광주를 방문한 5월 6일은 음력 4월 14일이었다. 망월동에서 무등산 서석대와 입석대 능선 사이로 저녁 무렵 뜨는, 보름달 근사치의 둥근달 그림 <무등산에 달 뜨고>를 맨 먼저 그렸다. (도 1) 그야말로 달을 바라보기 좋은 동네, 망월동(望月洞)이라는 지명과 위치를 실감하였다. (도 2)

강연균의 오월 그림들

강연균 화백은 남도의 땅과 사람들의 생동하는 현실감을 담아온 수채화가로 유명하로다. (이태호, 「남도의 빛, 그 땅의 사람들」, 󰡔강연균󰡕, 삼성출판사, 1993.) 동시에 1980년 오월 광주민중항쟁 직후 첫 오월그림을 그린 작가로 꼽힌다. 당시를 형상화한 대표작 <하늘과 땅 사이 1>(1980-81, 과슈, 194x259cm)는 금남로에서 자행된 계엄군의 만행으로 처참히 죽어갔던 광주시민을 상징한 작품이다. 현장을 목격하고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하늘과 땅 사이’ 그같이 벌어진 시대적 절망감을 굵은 먹선과 과슈로 200호의 대작에 담았다. (도 3)

때 강연균 화실은 학살과 항쟁의 중심인 금남로에 있었다. 현장을 본 직후 얼마간 붓을 들어 사실적으로 그리려 시도했다. 시민군이나 열사들의 주검을 모델링하기도 했으나, 사실 묘사로는 그 5월 현장의 엄청난 충격을 소화할 수 없었다. 체험 당시의 울렁거림이 너무 컸기에 차분히 사실성을 구현하기 쉽지 않았을 터이다. 굵고 검은 선묘와 강렬한 표정의 인물들 묘사로, 피카소의 <게르니카>(1934)처럼 입체파 화풍으로 재구성했다. 광주의 ‘게르니카’라고 불릴 정도이다.

이 작품 이후 강연균 화백은 1984년에 발가벗은 시신들 위로 분노의 남자와 슬픈 남녀들을 설정한 과슈 그림 <하늘과 땅 사이 2>를 완성했다. 1990년에는 해골 위 누드 여인이 정면으로 앉아 있고, 그 뒤로 신격화된 인간을 배치한 <하늘과 땅 사이 3>을 수채화로 그렸다. 1995년의 <하늘과 땅 사이 4>는 별격으로, 망월묘역과 길가에 1200장의 만장을 세운 설치미술이었다. 첫 회 광주비엔날레의 안티비엔날레로 조직한 ‘광주통일미술제’에서 강연균이 기획한 야외작업이었다. 망월묘지 4㎞의 가을 코스모스길에 설치한 장승과 솟대, 상여 그리고 1200여 만장이 휘날린 미술제의 최대 이벤트였다. 만장에는 200여 인사들이 5월의 뜻을 기리는 글과 그림으로 동참하였다.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 『광주통일미술제』 전시도록, 1995.) 강연균 화백은 한국민예총 4, 5대 공동의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이들과 달리 이번 전시에 선보인 <하늘과 땅 사이 5>는 작년 말에 40년을 삭힌, 1980년 5월 당시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려 내 목탄화로 작업한 7점이다. 이들은 드로잉 솜씨가 탁월한, 손맛이 유별난 화가임을 다시 실감케 한다. 전시 리플렛에 쓴 짧은 내 글이 강연균 화백의 작품들과 함께 『전라도닷컴』이라는 잡지에 두 쪽으로 실려 있어 소개한다. (도 4-1, 4-2)

40년 전 광주에 내려와 23년 살아

5월 6일 케이티엑스를 타고 송정역에 내리자마자 망월동으로 향했다. 광주 민예총 의장을 지낸 수묵화가 허달용이 픽업해주어 오월 영령들이 모셔진 국립518민주묘소를 먼저 들렀다. 묘소 근처에 처처히 핀 노란 꽃과 하얀 꽃씨들의 <망월동 민들레> 그렸다. (도 5) 그리고 제1 묘역 언덕에서 달이 뜨는 무등산과 해가 지는 담양 병풍산을 스케치북에 담아 보기도 했다.

5월 13~14일 광주에 또 다녀왔다. 40주년을 맞아서 당시 기록물들 전시와 기념전들을 관람하기 위해 일주일 만에 광주를 찾았고, 일박 이일로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14일 새벽 금남로와 옛 도청 앞 분수대가 있는 민주광장을 들렀다. 마침 떠오르는 일출을 만났다. 광장에서 볼 때, 여름 해는 무등산 왼편인 북동쪽 향로봉 쪽에서 하얗게 떠올랐다. <광주 민주광장 분수대의 일출과 무등산>을 스케치했다. (도 6)

돌아보니, 내가 광주에 살러 온 것도 40년 전이었고, 23년을 살았다. 나는 1980년 7월 1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사로 발령을 받고 광주에 내려왔다. 오월항쟁 한 달이 지난 그 현장의 처절한 모습과 매캐한 냄새, 충격에 놀란 사람들을 만났었다. 이를 새삼 확인한 것은 광화문 광장에 있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의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특별전’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2020. 5. 13~10. 31) 전시실에서였다. 누렇게 바랜 전남매일신문(현 광주일보의 전신) 1980년 6월 2일 1면이 단박에 눈에 들었다. (도 7) 항쟁이 진압된 후 처음 재발간된 신문이다. “광주사태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흰 고딕 글씨의 검은 띠와 “한국 민주정부로 신속 진전 희망”한다는 미국 카터 대통령의 발언, 그리고 아직도 미해결의 광주 문제 주역인 “전두환 중정부장서리 사퇴” “비상대책위원장 임명 계기”라는 등의 기사들이 지면을 채웠다.

이들 기사 위로 ‘아아, 광주여’라는 타이틀 아래, 김준태 시인의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로 시작하는 시가 보인다. 광주의 참상을 처음 알린 유명한 오월시이다. 신문이 나오기 전 편집본도 함께 소개되었는데,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 십자가여’라는 타이틀에서 뒷부분이 빠졌고, 시는 빨간펜으로 난도질당해 반으로 줄어 발행되었다.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2020.) 

시의 제목은 <아! 광주여! 무등산이여!>이다. 제1절 “아 아, 광주여! 무등산이여/죽음과 죽음 사이에/피 눈물을 흘리는/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우리들의 아들은/어디에서 죽어서 어디에 파묻혔나/우리들의 귀여운 딸은/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찢어져 산산이 조각나 버렸나//하느님도 새떼들도/떠나가 버린 광주여/아침저녁으로 살아남아/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아 아, 통곡뿐인 남도의/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를 보면, 역시 그 학살의 분노와 통한이 가득한 시인의 심장박동을 엿보게 한다. 한편 앞에 소개한 강연균 화백의 1980~81년 작 <하늘과 땅 사이 1>와 유사한 감정을 일으키게 한다.

김준태의 시 위에는 흐릿한 흑백사진 무등산 전경이 화면을 채웠다. 천왕봉 능선 아래 중봉이 전면에 등장하고 왼쪽 구석에 조선대학교 흰 건물이 보이는 점으로 보아, 양림동이나 양동에서 찍은 듯하다. 40년 전 금남로와 충장로에 고층빌딩이나 아파트가 거의 보이지 않고, 무등산 전면을 훤히 드러낸 경치가 새롭게 다가왔다. 이 사진을 보며, <40년 전 무등산>을 그렸다. (도 8)

국립공원 무등산은 광주를 품은 웅대하고 커담한 토산이면서, 후덕한 덕산의 이미지이다. 해발 1,187 미터의 정상 천왕봉 근처에는 화산암으로 원기둥의 주상절리의 바위들이 석책을 두른 듯 솟아 절경을 이룬다. 그 ‘입석대’와 ‘서석대’는 옛 문인들의 유람 명승지로 사랑을 받았고, 많은 명시를 남겼다. (김대현, 󰡔무등산 한시선󰡕,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7. ; 박준규, 󰡔무등산과 고전문학󰡕, 국학자료원, 2018.)

왼쪽 능선은 마치 코끼리의 얼굴과 코의 옆 모습처럼 보인다. 원효사에서 보면 천왕봉에서 북산으로 흐르는 능선이 가장 뚜렷하다. 그래서 무등산이 ‘보현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보현’은 지혜의 문수보살(文殊菩薩)과 함께 석가모니를 보좌하는 수행의 보현보살(普賢菩薩)에서 따온 것이다. 문수보살은 사자, 보현보살은 코끼리와 연관된다. 참고로 남도의 주산, 지리산(智異山)은 ‘지혜의 산’으로 문수보살의 산 이름인 셈이다. 40년 전 1980년 7월부터 2003년 월까지 23년을 살면서 대했던 <무등산을 추억하며>, 광화문에서 신록의 무등산을 다시 그리면서 이런 내력을 써넣었다. (도 9) 

 

이태호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