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일까, 정상일까
05/28/2020
/ 박평종

캔디

어린 시절 만화 <캔디 캔디>를 즐겨봤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얼굴의 절반 가까이를 덮어버릴 정도로 큰 눈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히려 ‘큰 눈’은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2019년에 개봉한 영화 <알리타: 배틀 앤젤>에 등장하는 사이보그 알리타도 과도하게 큰 눈을 가졌지만, 그 점이 오히려 관객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한편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어도 왠지 불편하고 때로는 불쾌하며 심지어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호러 영화에 등장하는 각종 유사인간 캐릭터나 좀비가 그렇다. 이들은 사람과 닮았음에도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다. 이처럼 사람과 생김새는 유사하나 ‘기이한’ 행동을 하는 존재로부터 받는 특이한 감정을 심리학자들은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이론으로 설명한다. 물론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는다. 본래 로봇공학 분야에서 나온 이 이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어떤 존재(예컨대 로봇)가 인간을 닮을수록 호감이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급격히 불쾌감으로 바뀌며 다시 원래의 호감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불쾌감은 인간과의 유사함에 대한 기대가 꺾이는 순간, 말하자면 비슷하게 생겼는데 어색한 행동을 보이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왜 그럴까?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중요하다. ‘불쾌감’으로 번역되는 ‘언캐니’의 원인이 핵심이라는 뜻이다.

‘골짜기’ 이론을 제안한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프로이드의 언캐니 개념에서 이 발상을 끌어왔다. 프로이드의 언캐니는 독일어 ‘운하임리히(unheimlich)’의 번역어다. 이 단어는 ‘하임리히(heimlich)’와 한 쌍으로 프로이드는 이 단어가 지닌 여러 의미 중 ‘익숙함/낯설음’에 중점을 두고 해석한다. 말하자면 언캐니는 원래 익숙했던 것이 갑자기 익숙하지 않게, 낯설게, 섬뜩하게 인식될 경우 발생한다는 것이다. 프로이드는 이 개념을 한스 호프만의 <모래인간> 해석에서 끌어왔는데, 복잡하고 난해한 해석의 여러 가지들을 쳐내고 ‘골짜기’ 이론과의 관련성만 따지자면, 여기에는 주술적 의미가 깔려있다. 언캐니가 발생하는 여러 원인 중 대표적인 예는 물건(예컨대 인형)이 특정 상황에서 살아있는 생명처럼 인식되는 경우다. 이를 프로이드는 현대인이 ‘이미’ 극복한 애니미즘적 사고가 ‘부활’한 것으로 본다. 말하자면 애니미즘이라는 ‘주술적 사고’는 완전히 극복되지 못한 채 ‘무의식’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본래 인형은 생명이 없는 물건이며, 그것이 ‘하임리히’, 즉 익숙한 관념이다. 그런데 그 ‘죽어있는’ 인형이 어느 순간 생명체처럼 느껴질 때 ‘운하임리히’, 즉 익숙하지 않은 관념을 건드린다. 당초의 익숙한 관념이 동요하면서 낯설음은 기이함으로, 나아가 섬뜩함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독일 작가 한스 벨머(Hans Bellmer)의 <인형> 작업에 대한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해석도 그런 맥락에 있다. 좀비가 전형적인 예다. 시체가 살아 움직인다는 허황된 발상에도 불구하고 언캐니는 주술적 관념의 찌꺼기 덕분에 이미 반세기 전 달에 토끼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현대인의 정서를 여전히 건드리고 있다. 물론 좀비를 믿지는 않지만 말이다. 로봇에게 느끼는 언캐니도 그렇다. ‘골짜기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로봇이 사람과 비슷할수록 호감은 당연히 증가하는데, 어느 순간 어색한 행동을 보이면 익숙함이 기이함으로 바뀌는 것이다.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던 휴머노이드 ‘소피아’도 이 ‘골짜기’ 근처 어딘가에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리얼돌(realdoll)도 이 ‘골짜기’ 안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리얼돌은 그냥 쉽게 섹스로봇이다. 킬러로봇도 개발되고 있는 마당에 섹스로봇이 없을 수 없다. 그런데 리얼돌의 상품성이 크다면, 다시 말해 이 ‘섬뜩한’ 인형을 찾는 사람이 많다면 ‘골짜기’ 이론은 잘못됐거나 리얼돌은 언캐니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아, 다른 가능성 하나가 더 있다. 언캐니를 ‘즐기는’ 경우다. 그 때 리얼돌은 호감도 그래프의 ‘골짜기’가 아니라 정상에 있다.

한스 벨머, 인형

리얼돌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