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석의 사진살롱 35 – ‘보도사진’의 한국적 변용
05/20/2020
/ 박주석

헤르만 비오우, 함부르크 대화재의 잔해 (1842)

보통 국내에서 출판된 대부분의 사진 관련 서적들에서 위 사진을 세계 최초의 ‘보도사진’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Hermann Biow (1804-1850)라는 독일의 사진가가 찍은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 사진입니다. 얼마 전 작고하신 이명동(李命同, 1920~2019) 선생이 1988년에 펴낸 책 『보도사진의 이론과 실제』에서 최초의 보도사진이라고 거론했고, 이후로 많은 신문사진이나 뉴스사진 관련 책과 논문에서 당연하게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명동 선생의 책은 원래 1982년 지금 <한국프로사진협회>의 전신인 <대한직업사진가협회>의 기관지 『寫壇』에 연재한 「보도사진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글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이 글에서 ‘보도사진’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사회현상의 여러 가지 단면이나 자연현상의 단면 등을 테마로 설정하여 카메라로 관찰, 기록해서 그 목적과 의미를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르포르타주 포토(Reportage Photo)로서 즉 미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다큐멘터리 포토(Documentary Photo)가 그 대표적인 것”이라고 정리했습니다. 그러면서 좋은 ‘보도사진’을 담당하는 사진기자는 뉴스사진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기록사진의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글에 따르면 ‘보도사진’은 ‘르포르타주사진’의 번역어로 미국식으로 하면 ‘다큐멘터리사진’이라고 했습니다. ‘다큐멘터리사진’을 ‘기록사진’이라고 번역해서 쓰는 요즘의 언어 감각과는 많이 다른 주장이었습니다. 일반 ‘뉴스사진’과는 다른 무엇이라고 했습니다.

해방 후 ‘보도사진’에 대해 명칭과 이론을 소개한 글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48년 허승균(許承均)의 「보도사진론」에서였습니다. 당시 유일한 사진 전문지였던 <조선사진문화사> 발행의 『寫眞文化』 2호에 실렸습니다. 허승균은 당시 『聯合新聞』의 사진부장을 지낸 분이었습니다. 이글에는 ‘뉴스사진’과 ‘보도사진’을 구별하고, “보도사진은 사회현상을 사진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다시 말하면 현실의 모든 상태를 있는 그대로 촬영해서 보고적, 문화적 스토리를 가진 사진이 되도록 해야 한다. 보도사진의 역할은 보도, 선전, 계몽, 지도에 있으며, 문화성과 사회성, 사상성을 구비한 사진을 통해 국가 사회를 위하여 대중에게 또한 대중을 위하여 지도와 계몽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진은 누구나 알기 쉽게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제작되어야 한다”라고 그 성격을 규정했습니다. 전회에 말씀드린 일본 사진가 이나노부오(伊奈信男)의 주장과 거의 일치합니다.

사진에 입문하는 학생들이 기술서가 아닌 이론서로 가장 많이 접하는 책이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를 지낸 한정식 선생이 1986년에 <열화당>에서 출판한 책 『사진예술개론』입니다. 여기에는 「사진의 분류」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한정식 선생은 여기에서 사진을 찍는 목적에 따라 사진을 크게 ‘실용사진’과 ‘창작사진’으로 나눌 수 있고, ‘실용사진’의 범주에는 ‘자료사진’과 ‘광고사진’이 있고, ‘창작사진’의 범주에는 ‘보도사진’과 ‘순수사진’이 있다고 분류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진예술의 중추를 이루는 이 보도사진은 문학예술에 가까운 일면”이 있다고 하면서 ‘보도사진’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건을 기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건은 뉴스사진이 지닌 특수한 의미보다는 어떤 보편적 의미를 지녀야만 한다. 각 사건마다의 개별 사진이 뉴스사진이라 한다면, 그 뉴스사진들 속에서 추출되는 보편적 문제를 추구하는 것이 다큐멘터리 사진이란 뜻이다. 이 글에서 말하고 있는 ‘보도사진’이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사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보도사진은 인생과 사회를 다루기 때문에 객관성이 요구된다. (후략…)” 

 

한정식 선생은 ‘보도사진’이란 일본식 용어를 다큐멘터리를 대체하는 용어로 수용했고, ‘순수사진’이란 용어는 심상사진이란 말을 더 발전시킨 용어로 자기표현만이 목적이고 작가의 내적 욕구에 의해 제작된 사진 그 자체가 목적인 사진으로 정의했습니다. 즉 시사적인 문제를 보편적인 기록으로 관점으로 풀어낸 것이 다큐멘터리사진 즉 ‘보도사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진교육의 대표인 중앙대 사진학과에서 전공을 세 개로 나누고 각각 ‘순수사진’, ‘보도사진’, ‘광고사진’ 전공으로 이름을 붙인 이론적 근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의 생산을 주업으로 하는 신문사와 통신사 사진기자들, 그들의 모임인 <한국사진기자협회>의 당 해년도 중요한 ‘뉴스사진’들을 정리한 연감의 이름이 『보도사진연감』인 것은 잘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허승균, 이명동, 한정식 선생 등의 주장은 사진기자들에게 전혀 씨알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학술과 현장의 괴리가 그만큼 컸습니다. ‘보도사진’이란 명칭이 일본군국주의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왜 신문사진, 뉴스사진이 ‘보도사진’으로 둔갑했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보도사진’이란 말이 멋있어 보였던가요? 묻고 싶습니다.

박주석 (명지대학교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