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교육이 될까?
05/13/2020
/ 박평종

기욤 뒤셴 드 불로뉴, 인간 표정의 메카니즘, 1862

플로베르는 <감정교육>에서 주인공 프레데릭 모로가 19세기 프랑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특유의 사실주의적 문체로 담담히 묘사하고 있다. 왜 ‘감정교육’일까? 청년 프레데릭은 고향인 노장(Nogent)을 떠나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파리로 상경한다. 출세하고자 진입한 사교계에서 권력의 암투를 보기도 하고, 정치적 이상에 따라 2월 혁명을 준비하는 동료들을 만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기도 하며,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지만 현실에서는 그 사랑을 이룰 수 없어 결국 영원한 이별을 선언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이 결국 한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정을 학습하는 기간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대관절 감정을 ‘학습’한다 함은 무슨 뜻일까? 감정이란 외부 상황이나 자극에 대해 개체가 즉각 취하는 심리적 반응 아니던가? 감정에는 판단이나 성찰이 수반되지 않기에 ‘학습’에 요구되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치 않다. 말하자면 감정은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축적된’ 학습에 따른 즉각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반응은 표정이나 몸짓, 행동 등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이 표현의 양상들을 살펴보면 감정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최근 인공지능 분야의 화두는 감정 인식이다. 데이터를 분석, 종합하여 최적의 솔루션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여 사용자들에게 훨씬 정교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 발상에 따르면 정확한 감정 인식을 통해 스스로 감정을 표현하는 로봇 제작도 가능하다. 인공지능이 감정을 학습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감정은 목소리에도 실리고, 글에도 나타나며, 얼굴 표정에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특히 표정은 ‘내면의 목소리’가 표출되는 가장 구체적인 양태다. 감성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보는 이들은 예컨대 AI가 수많은 표정 이미지를 딥러닝으로 학습함으로써 어떤 표정이 어떤 감정 상태에 대한 반응인지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표정은 기계적인 방식으로 조합해낼 수 있다.

기욤 뒤셴 드 불로뉴, 인간 표정의 메카니즘, 1862

찰스 다윈,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 1872

이런 발상이 처음은 아니다. 19세기 프랑스의 신경의학자 뒤셴 드 불로뉴(Guillaume Duchenne de Boulogne)는 얼굴 표정이 특정 안면근육의 이완과 수축의 결과물이며, 따라서 국부적인 전기 자극으로 표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여겼다. 그는 실험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하면서 표정과 외부 자극의 상관관계를 연구했고, 그 결과 핵심 감정 6개(분노, 공포, 놀람, 혐오, 행복, 슬픔)를 추출하고, 다시 복합감정 60가지를 구분했다. 표정과 감정에 대한 연구는 다윈의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1872)>에서 한층 심화된다. 그에 따르면 감정은 진화의 결과물로 종의 보존에 필요한 개체의 반응이 세대를 거쳐 전수되면서 귀착된 것이다. 그리고 표정은 특정 감정에 대해 단일 종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고유한 신체 반응이다. 예컨대 배설물이나 썩은 음식에 대해 역겨운 감정을 갖는 것은 그 물질을 섭취했을 때 개체 보존이 위협받는 상황을 ‘미리’ 방지하기 위함이다. 표정은 일종의 ‘시각신호’로 특정 감정을 동일종의 다른 개체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다. 다윈은 감정이 진화의 산물임을 입증하기 위해 인간과 다른 영장류의 ‘표정’이 지닌 유사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여기에 활용된 도판의 일부는 불로뉴의 연구에서 가져온 것이다.

감정과 표정이 일정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면 감정 학습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그런데 기계가 수많은 표정을 학습하여 하나의 표정이 어떤 감정에 대응하는지 알 수 있다 할지라도 그 감정 자체를 알 수는 없다. 실제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감정교육>의 프레데릭이 아르누 부인과 영원히 결별하면서 느꼈던 그 감정, 비통하고 애절하며 가슴이 미어지는, 말로 온전히 형언할 수 없는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는 겪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아마도 언젠가는 기계가 감정을 학습하여 판별도 하고 나아가 표정을 통해 특정 감정을 표현하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 자의 표정은 결국 포커페이스다. 감정은 머리로 배우는 것이 아니기에.

인공지능의 감정 판독

박평종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